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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01화 (301/741)
  • 300화

    오늘 식사를 함께 하는 멤버는 집행부 3학년에서 유지은, 2학년이 전부, 그리고 1학년에서 약리지와 남사현을 제외한 전부였다.

    3학년의 한유아는 본격적으로 무림에 나가기 위한 '비즈니스'가 바빠 그와 관련된 점심 식사 약속 때문에 민지서와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도진에게 집중하는 유지은만이 매일 참여했다.

    1학년은 약리지와 남사현을 제외하고 상미와 우서진, 벽태웅이 참석했다.

    약리지는 예의 실습 때문에 점심시간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뿐만이 아니라 집행부 활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에도 참석하지 못하곤 했다.

    때문에 개학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음에도 신입생들 중 유일하게 겉도는 느낌이 남아 있었다.

    남사현은 집행부 활동 자체에는 열심이었으나 '친구'가 많다 보니 그들과 관련된 여러가지 일 때문에 점심 식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다만 그럼에도 불3구하고 약리지와 달리 집행부에도 잘 녹아들었으니 과연 인싸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도진이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모두 참석하지 못한 3학년, 그리고 1학년과 달리 2학년 멤버들은 전원이 참석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나지윤이 이제는 자주 점심시간에 모습을 비추는 덕분이다.

    그리하여 꽤 많은 인원이 테이블 두 개를 차지하고 앉은 자리에서 솜이는 인기를 독차지했고 여성 멤버들이 모두 등을 살살 쓰다듬었다.

    솜이가 남자의 손길을 거부했기에 여성 멤버들만이 솜이를 쓰다듬을 수 있었는데, 여기에 관해 도진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여자애라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나는 '남자 무인'들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음. 그럴 확률이 높겠네."

    길게 말하지 않았지만 숭무고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천재들은 거기에 담긴 뜻을 대번에 이해했다.

    이번의 마물 사건에서 나타난 마물들은 아마도 한국에서 자연 발생한 마물이 아닐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것은 곧 '인위적인 어떤 것'이 개입했다는 뜻이고 그에 관한 조사가 진행중이었다.

    관련되어서 도진의 말대로라면 솜이는 그런 마물, 본래는 영물이었던 설표와 같은 종이었고 그 인위적인 사건에 연관되어 있을 터.

    그 사건을 일으킨 세력이 남자 무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그에 관한 기억, 곧 트라우마로 인해 남자의 손길을 거부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남자 무인'인 도진에게 모습을 드러냈던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으며, 영물 특유의 직감으로 도진이 본질적으로 무언가 다르다는 걸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솜이가 연관되었을 사건에 관해 혹시 정보가 없을까 하여 도진은 나지윤에게 의뢰를 넣었는데 아직까진 이렇다 할 정보가 없었다.

    "이렇게 같이 지내면서 신뢰가 쌓이면 아마 너희들도 인정해 주지 않을까 싶어."

    도진은 웃으며 집행부의 남자 멤버들에게 말했다.

    손뼉을 치기 위해선 양손이 마주치는 게 가장 좋다.

    마찬가지로 '사회화'라는 건 한쪽만이 녹아들려 해서는 안 되고 서로가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행히 도진의 주변에서는 솜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려 하고 있었는데 이 태도를 인간 이상으로 잘 읽는 솜이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도진과 함께 산책 겸 수련을 하며 기세를 컨트롤하는 수련을 하고 그 수련의 성과를 반영하여 주변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도진도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감각을 지니고 있어 감시의 시선을 분명히 느끼고 있음에도 불편함을 참아주고 말이다.

    여기에 호의를 호의로 읽고 받아들일 줄도 아니 시간을 함께 쌓아감으로써 곧 친구들을 솜이가 받아들여 줄 거라 도진은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조급할 것 없이 시간의 흐름에 맡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

    "냐아앙."

    솜이가 도진의 품에서 벗어나 무려 다른 사람의 품에, 상미의 품에 안긴 것이었다.

    '너무 빠른데?'

    도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상미의 품에 안긴 솜이를 보았고 멤버들의 시선 또한 단숨에 몰려들었다.

    "어, 뭐야? 둘이 무슨 사이야?"

    주정아가 바로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멤버들 또한 갑작스레 도진의 품을 벗어난 솜이의 행동에 의문을 표했다.

    "솜이는 너만 따르는 거 아니었어?"

    "아, 음. 그랬지."

    솜이는 도진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안기지 않았다.

    안기기는 커녕 도진의 품 안에 있지 않을 때엔 다른 사람의 손길마저 일절 허락하지 않았었다.

    심지어 가족들마저 쉽게 손길을 허락하지 않았던 게 솜이였으며 아버지인 김서우나 동생인 호진이는 결국 쓰다듬지도 못했으니 말 다한 것이다.

    그런 솜이가 무려, 손길을 허락하는 것도 아니고 자의로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겼으니 도진마저 놀랄 수밖에 없었고.

    -음. 냉기로구나.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곧 이유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아마 상미가 익힌 무공 때문인 거 같아."

    "무공?"

    "응. 문헌에 따르면 설표는 강력한 양기를 품고 있거든. 그래서 추운 곳을 선호하는데 상미는 한공(寒功)을 익히고 있잖아."

    "아, 그렇구나."

    역시나 천재들답게 그 말만으로도 멤버들은 이어질 말을 추측하고 이해했다.

    설표는 냉기를 선호한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단 둘, 우서진과 상미만이 그 냉기를 띠는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솜이는 우서진을 흘끗 보았다가 이내 상미의 품으로 뛰어들었으니 그 목적이 상미에게서 묻어나는 한기임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미를 무리의 구성원으로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솜이의 인정이다.

    설표는 무리를 구성하는 습성이 있다.

    크지 않아 가족 단위이지만 분명히 무리를 구성하여 다닌다.

    이번 점심시간을 통하여 솜이는 뛰어난 본능으로 여기 모인 멤버가 다름 아닌 '도진의 무리'라는 걸 이해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열렬히 도진을 추종하는 것이 상미라는 것까지 읽어냈고 품에 안기는 걸 허락한 것이다.

    "냐아앙."

    무리 중 가장 리더인 도진에게 충성하는 것이 상미. 그러나 어디까지나 서열은 나>상미라고 생각하면서 솜이는 냐앙, 하고 상미의 품 안에서 울었다.

    그 내심까지 모두 읽지는 못했으나 도진은 잘됐다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사실 솜이가 나 말고는 아무한테도 안 가려고 해서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거든. 무슨 일이 있을 때 아무한테도 솜이를 맡길 수가 없으니까 말야."

    도진이 수업 등으로 떨어져 있을 땐 정부와 무림맹에서 나온 무인들이 솜이를 '감시'한다.

    외모와 달리 맹수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인 솜이가 과연 사회에서 위협이 되지 않고 녹아들 수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제 겨우 첫날이지만 솜이는 그것을 잘 수행해 주었다.

    다만 이와 별개로 솜이와 함께 있어줄 '가까운 사람'이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벌써부터 적임자가 한 명 생겼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 때 솜이를 부탁해도 괜찮을까?"

    도진이 솜이를 품에 안은 상미와 눈을 마주하며 말했고 상미는 그 '간택'에 활짝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얼마든지요!"

    "그래, 고마워."

    "아, 부럽다. 나도 빙공(氷功) 같은 거 하나 구해다 익혀볼까?"

    "그냥 하나 입양해."

    중얼거리는 주정아에게 오대용이 말한다.

    "음. 진짜 한 마리 입양해 볼까?"

    "그거 생각보다 힘들고 챙겨야 할 게 많으니까 쉽게 생각하면 안 돼."

    그렇게 이야기가 반려동물에 관한 쪽으로 흘러갔고 시간이 지나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리는 수업 들어가 볼게."

    "그래. 있다 보자."

    주정아와 오대용이 타이트한 시간표에 따라 가장 먼저 수업에 들어갔고.

    "나도 그럼 일 보러 갈게."

    "그래. 수고. 수업에서 보자."

    나지윤도 자리에서 일어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업무를 보러 갔다.

    하나둘 볼일을 보러 가고 이내 자리에는 도진과 상미, 우서진만이 남았다.

    셋이서 간단히 후식으로 디저트를 먹던 중 우서진이 말했다.

    "형."

    "응?"

    "여름 방학 시즌 때 무림열전 새 시리즈가 나온대요."

    "오, 그래?"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성장시켜 준 AAA급 대작 VR 게임 무림열전.

    본래 겨울 방학 때 셋이서 함께 하기로 했었는데 곽필섭 등이 엮였던 사건 등으로 인해 약속을 지키지 못했었다.

    "네. 그러니까 겨울 방학 때 못했던 거, 신 시리즈로 같이 해봐요."

    우서진의 제안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거 괜찮네. 기왕 하는 거 발표회 참석 신청도 한 번 해볼까?"

    "어? 괜찮아요?"

    생각지 못했던 제안에 우서진이 놀라며 묻자 도진이 피식 웃었다.

    "나는 시간 많잖아. 오히려 니가 엄청 바쁠 텐데 내가 물어야 하는 거 아냐?"

    우서진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에이, 아니죠. 형이 간다면 그게 저한테 가장 중요한 스케쥴인데요."

    "우리 동생이 그렇게 말해주니 이 형이 참으로 기쁘구나."

    겨울 방학 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있고 해서 동생들을 위해 시간을 내주려니 그 반응이 열렬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우서진만이 아니라 상미 역시 눈을 반짝이며 기대하는 얼굴이었기에 도진은 이번에는 꼭 약속을 지키자고 마음 먹었다.

    '여름 방학엔 특별한 예정도 없으니까.'

    해야 할 일은 적지 않지만 동생들을 위한 시간을 내지 못할 정도로 빡빡하진 않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게 무림열전에 관해 생각하다 보니 홍보 모델이자 너튜버였던, 축제 때 직접 만나 이야기도 나누었던 유애라에게까지 생각이 미쳤다.

    취미로 너튜버를 시작했던 그녀는 그 일이 생각 이상으로 잘 됐고 출시 초기라 명성이 없었던 무림열전의 홍보 모델로도 활동했었다.

    그리고 이 시기, 여름 방학에 나오는 무림열전의 새 시리즈가 초대박을 치면서 AAA급 반열에 들고 그 흐름에 유애라까지 '대기업 너튜버'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아직은 AAA급이 아닌 무림열전의 새 시리즈의 발표회는 아마 큰 경쟁이 없을테고 변수가 없다면 도진은 동생들과 함께 그 발표회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유애라를 다시 만나게 될 터.

    지금은 도진의 집 별채에 머물고 있는 이은지와 단짝이 될 미래의 대기업 너튜버와 재회하는 것이다.

    '이어지려면 이렇게 계속 인연이 생기는 거구나.'

    과거엔 모니터 너머로만 볼 수 있었던 사람들과 이렇게 인연이 이어지니 또 느낌이 새롭다.

    도진은 그렇게 여름 방학의 일정 하나를 머릿속에 기록해 두며 고개를 들었고.

    "어? 리지네요."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약리지를 마주하게 됐다.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그녀에게서는 약품 냄새가 나고 있었는데 병원에 다녀온 듯했다.

    그녀는 곧 도진의 시선을 알아채고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병원에 갔었던 거야?"

    "네."

    짧은 대답이었지만 일이 조금 길어져 점심시간이 늦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그럼 아직 점심 안 먹었겠네."

    "네. 이제 먹으려구요."

    "여기 앉을래? 선배가 쏜다."

    "아뇨. 안 그러셔도……."

    "혼자 먹기엔 그렇잖아. 너만 안 불편하면 여기서 같이 먹자."

    "음, 그러면 감사합니다……."

    약리지는 조금 머뭇거리다 이내 합석했다.

    "뭐 먹을래? 비싼 거 먹어도 돼."

    "이걸로 할게요."

    약리지가 선택한 메뉴는 볶음국수였다.

    빨리 나오고 간편히 먹을 수 있는 메뉴.

    그렇게 빨리 나온 메뉴를.

    후르륵.

    약리지는 5분만에 다 먹어 버렸다.

    "어, 체하는 거 아냐?"

    "아뇨, 저 원래 밥 빨리 먹어요."

    도진의 걱정에 작은 입술을 톡톡 닦은 뒤 약리지가 여상스레 답했다.

    "음, 병원 환경 때문이구나."

    "네. 의료진이 환자에게 맞춰야 하는 곳이니까요."

    원망하거나 불만을 표시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마인드가 묻어나는 말이었다.

    그런 모습이 과연 어리지만 프로페셔널하면서도 의선약가의 인물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밥 먹고 바로 가야 돼?"

    우서진의 물음에 약리지는 아니, 하고 고개를 저은 뒤 보온병을 꺼내 컵에 쪼르륵 따랐다.

    "조금 쉬고 수업 들어가면 돼."

    오늘은 이제 여유가 있다며 약리지는 차를 호로록 마셨다.

    밥 먹던 때와 달리 철저하게 그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다.

    할 때는 확실히 하고 또 쉴 때는 확실히 쉬는, 프로 그 자체의 태도.

    그런 약리지를 마주하며 도진이 아, 하고 말했다.

    "리지야."

    "네, 선배."

    "나 이번 주말에 너희 집 갈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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