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솜이는 귀여우니까요.
"……."
"……."
최 과장과 이용표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 지금 이걸 논리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논리가 맞았다.
"금황호는 누가 봐도 무시무시한 영물이고 맹수이지만 솜이는 이렇게 귀엽잖아요."
"냐아아앙."
도진의 손에 따라 솜뭉치처럼 흔들리는 솜이는 거짓말처럼 그 순간 기세를 눌렀는데, 그러고 나니 어디까지나 귀여운 생물이라는 걸 최 과장과 이용표마저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의 기색을 읽은 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외모라는 건 인상을 결정하는 지극히 중요한 요소잖아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적어도 솜이의 경우엔 외모 때문에 경계와 불안을 살 이유가 없을 테고 이건 지극히 중요한 요소죠."
그 말대로였다.
금황호는 '집채만 한 호랑이'였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숨막히는 불안감과 공포를 선사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가 지극히 힘들었던 건데 솜이는 상황이 달랐다.
기세만 억누르면 영락없이 귀엽디 귀여운 중형묘다.
이것이 사회에 녹아듦에 있어 얼마나 커다란 이익이 되는 요소인지는 생각할수록 커진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가 문의드리고 싶었던 건 이거예요."
도진이 책임자로 온 최 과장과 이용표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솜이는 제 반려동물로 지내게 될 거예요. 그 과정에 있어 해결해야 할 사회적인 부분을, 의논했으면 해요."
"……."
"……."
'제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일방적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용표는 겨우 고등학생 애송이를 상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질질, 여기까지 끌려왔다는 걸 자각하고서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애송이의 말대로 이야기는 이제서야 시작이다.
'사회적인 부분이라고?'
그것이야말로 본론이다.
영물을 개인의 반려동물로 키우겠다니. 그 자체야 법적으로 막을 수 없다지만, 과연 거기에서 파생되는 온갖 문제를, 애송이가 모두 감당할 수 있을까?
결코 없을 거라고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도진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최 과장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쉽지 않을 텐데…….'
만약 이 영물이 사람을 해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대체 무얼 해야 할 것인가?
도진이 여기에 대해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그는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부분이, 지금껏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최 과장의 전문 분야였다.
한데 바로 그런 최 과장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도진이 먼저 말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아무래도 제 전문 분야가 아니다 보니, 자문을 받았던 전문가 분들과 함께 의논을 했으면 합니다."
"전문가 분들이요?"
"네. 모실게요."
그 말과 함께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정장을 갖춰 입은, 올려 묶은 머리카락과 드러난 목선이 프로페셔널함과 동시에 눈을 사로잡는 매력을 발산하는 미녀.
또 한 사람은 50대 초반의 넉넉한 인심이 돋보이는, 그러나 동시에 그 분야의 대가만이 보일 수 있는 기세가 묻어나는 남성이다.
바로 잠룡문의 총관 역할을 맡고 있는 오성아와 변호사 나성보였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였다.
도진이 두 사람에게 시선을 향한 최 과장과 이용표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 * * *
전문가일수록 준비를 했느냐 하지 못했느냐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에서 영물을 당연히 인도받을 거라는 전제 하에 찾아온 최 과장과 이용표는 이미 주말부터 솜이에 관한 의논을 도진과 함께 해 왔던 오성아와 나성보를 결코 이길 수 없었다.
이기기는 커녕 기세에서부터 밀려 완전히 '참패하는 외교'를 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용표는 표정 관리를 실패한 찌그러진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무림맹에 입맹하셔서 활동하시는 걸로 신뢰를 주는 건 어떻습니까?
이야기 중에 이용표는 그렇게 제안했다.
영물을 데려가는 게 안 된다면, 차라리 잠룡까지 원 플러스 원으로 무림맹에 입맹시켜 활동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볼 때 영물만 데려가는 것보다 훨씬 큰 공적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뇨. 무림맹에는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았으면 하네요.
건방진 애송이가 대번에 거절해 버렸다.
'감히 무림맹을 거절해?'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길길이 날뛰지 못했다.
날뛸 만큼의 위세가, 무림맹엔 없었다.
무림맹은 분명히 커다란 단체요 무림의 질서를 지키는 세력이기는 했다.
허나 그런 역할에 비해 무림맹의 위세는 무협지와 달리 그리 높지 않았으니 이 시대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무림맹은 정부와의 협조 하에 공권력을 행사하지만, 동시에 엄연히 현대의 정부가 기능하고 있기에 '무림의 정부'가 될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커다란 조직의 하나일 뿐 현대 사회의, 국가의 영역을 결코 넘볼 수 없다는 말이다.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정부와의 '협조 하'에만 가능한 일.
여기다 무림맹이 필요 이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바라지 않는 독자적인 세력의 영향력도 점점 커지는 추세이다 보니 무림맹의 영향력은 하락 일변도였다.
이용표는 그런 무림맹의 주축이 되는 가문의 사람으로서 지금 무림맹의 한계를 깨고 싶어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런 한계를 또 느끼게 만든 도진에 이를 갈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활활 타오르는 화를 억눌러야만 했다.
그리고 그날 이야기의 결과가 기사가 되어 퍼져 나갔다.
-속보! 잠룡의 영물, 반려동물로 함께 살게 되었다!
-영물의 종(種)은 설표. 잠룡의 문파에 그 자료가 남아 있었다! 인연인가.
자세한 협의 내용은 말하지 않았지만 도진은 라이브 방송에서 솜이가 반려동물로 함께 지내게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이야기했다.
이로써 솜이가 도진의 반려동물로 지내게 되었다는 부분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결정 사항이 되었다.
그리하여 화요일 오전.
기숙사에서 나오는, 솜이를 어깨에 올린 도진은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등교를 하게 됐다.
월요일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아 솜이를 집에 두어야 했지만 오늘부터는 공식적으로 반려동물로 인정을 받았으니 거리낄 게 없었다.
사실 숭무고 내에서도 '반려동물'과 관련된 여러가지 절차를 밟아야 했는데 이 부분은 집행부 부원으로서 모두 처리해 두었기에 이쪽도 완벽하다.
함께 걷는 소담은 평소 이상의 시선에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과 태도였다.
과연, 도진과 다르게 시선에 익숙하다는 게 확연히 드러난다.
"냐앙."
솜이는 모여드는 시선이 불편한지 꼬리를 도진의 날개뼈에 탁탁 쳤지만 그래도 기세를 최대한 갈무리하는 모습이다.
"옳지, 옳지."
도진이 그런 솜이의 태도에 웃으며 톡톡, 몸을 다독여 주었다.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가야 한다.
아직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솜이는 높은 지능으로 그 부분을 이해하고 이렇게 노력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은밀히 뒤따르고 있는 '정부와 무림맹의 무인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었다.
"그럼 다녀올게. 얌전히 있어야 해."
"냐아앙."
1교시 수업 시간.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 도진은 솜이를 근처 벤치에 두었고 그런 솜이의 곁에 은밀히 모습을 감추고 있던 무인 두 사람이 대기했다.
솜이는 그들을 경계하면서도 얌전히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도진이 미소지으며 솜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선 소담과 함께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한 과정이었다.
-금황호가 그랬듯, 솜이도 그런 식으로 인정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죠.
'영물'인 솜이가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을 받아야 했다.
무림인은 초월적인 힘을 가졌지만 '일반인'들은 그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간다.
그들과 마찬가지의 인식을 솜이는 획득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 도진이 말했던 '솜이는 귀엽다'는 말이 적용되는 것이었다.
"와, 저게 그 솜이구나."
"귀엽다."
정부와 무림맹에서 파견한 감시역의 무인들이 곁에 있음에도 학생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솜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다 제어하지 못한 기세가 흘러나오긴 했으나 적대적이지 않았기에 무림인인 학생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호감을 보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식의 특별한 관심이 계속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윽고 '평범한 관심'이 된다.
무림인들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그것이 평범한 관심이 되었을 때가 솜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녹아든 때가 될 것이다.
"헤에, 그렇게 되는 거구나."
점심시간.
집행부의 멤버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도진은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주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월요일 솜이에 관해 나누었던 전문적인 이야기의 결론이었다.
한 마디로 솜이는 사회 구성원으로 녹아들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
그 문제를 방지하고 지켜보기 위해 정부와 무림맹에서는 무인들을 파견했고 솜이의 집을 제외한 외부 활동을 근처에서 관찰하기로 했다.
도진과 함께 있을 때엔 은밀히, 그리고 도진이 함께 있지 않을 때엔 모습을 나타내 그들이 솜이를 지켜본다.
"좀 불편하겠네."
설명에 주정아는 그렇게 말했고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하지만 1년 정도만 불편하면 되는 일이니까."
금황호는 20년이 걸렸다.
하지만 솜이는 1년이면 될 거라고 도진은 생각했고 최 과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금황호의 경우는 앞서의 사례가 없었고 영물에 대한 논의도 되지 않았으며 정보도 없던 시기였다.
허나 이젠 금황호를 포함하여 몇 건이나 되는 사례가 있었으며 사회에 섞여 살아가는 영물도 있기에 인식도 변했으며 정보 또한 쌓였다.
이제 영물이 높은 지능을 가지고 사람을 적대하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으며 심지어 솜이는 외모도 그러하니 더더욱 사회에 녹아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는 거다.
그런 것들까지 감안하였기에 도진은 굳이 널리 솜이가 영물이라는 걸 알린 것이었다.
솜이를 책임지기로 했기에 깊이 고민하였고 필요한 것들을 생각했다.
거기에는 솜이가 영물이라는 걸 밝힐 것인가 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그 해답이 이것이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오해를 낳으며 사람을 당당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니까 아예 오픈하고 당당하게 나간다.
다행히 일은 긍정적으로 진행되었고 솜이 또한 잘 적응하고 협조해 주고 있었다.
이렇게 1년을 무사히 보내면 솜이는 공식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냐앙."
테이블 위에서 솜이는 미디움으로 구운 고기를 복스럽게 먹는다.
도진의 동기들은 물론이요 식당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솜이를 반짝이는 눈으로 관찰했다.
"도진아."
"응?"
"나, 솜이 쓰다듬어 봐도 돼?"
"밥 다 먹고 나서."
"응응!"
동물을 좋아하는 주정아가 특히나 적극적이었다.
주정아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약속을 지키라는 눈으로 도진을 압박했고 도진은 피식 웃으며 솜이를 안은 채 주정아의 곁에 섰다.
"등은 쓰다듬어도 되는데 머리는 안 돼. 나 말고는 허락 안 해 주거든."
"응응!"
흥분한 얼굴과 달리 부드러운 손으로 주정아는 솜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냐아앙."
솜이는 마음에 안 들지만 특별히 허락해 준다는 듯 울었다.
"대용이 너도 한 번 쓰다듬어 볼래?"
"아. 남자는 안 돼."
"어? 진짜?"
"응. 얘가 남자는 특히 싫어하더라."
"헤에……. 여자애라 그런가?"
그런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도진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솜이를 포함한 무려 세 마리의 설표가 이곳 한국에 나타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분명히 어떤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솜이는 '남자 무인'들을 마주한 것은 아닐까.
만난지 이제 겨우 며칠이지만 솜이는 특히 '남자'를 꺼리는 기색이었다.
도진을 제외한 남자가 자신에게 닿는 걸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도진의 아버지인 김서우와 동생인 호진이에겐 적대적이지 않았으나 역시나 몸을 만지는 건 허락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솜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도진은 나지윤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근래 들어 점심 시간에 함께 하기 시작한 나지윤은 그 시선에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이렇다 할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나지윤과 은밀히 시선을 주고받던 때였다.
"오?"
솜이가 갑자기 폴짝, 도진의 품을 벗어나더니.
"냐아앙."
상미의 품에 안착했다.
"아?"
상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고 집행부 멤버들의 시선이 상미에게로 집중되었다.
주정아가 눈을 반짝이며 취조하듯 말했다.
"어, 뭐야? 둘이 무슨 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