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298화 (298/741)

297화

일요일 저녁.

갑작스런 특보가 인터넷에 도배되었다.

-속보! 잠룡 김도진, '영물을 데리고 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영물, 사실은 세 마리였다?!

인터넷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뒤흔든 그 이야기의 진원지는 도진의 너튜브 라이브 방송이었다.

-???;;

-예? 영물이요??????

자신의 선언으로 인해 쏟아지는 물음표의 쓰나미에도 도진은 여전히 담담한 페이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바로 얼마 전 있었던 마물 사건. 그 아이들 중 유일하게 마물이 되지 않고 영물이 되는 데 성공한 게 바로 이 아이, 솜이입니다."

-??????????????????????????????

-예? 그 눈 시뻘개서 존나 무섭게 생겼던 호랑이인가 늑대인가 생겼던 걔요?

-???? 머임? 진짜 머임??

-몰름.. 몰르겟ㅇ므.. 먼가 일어나고잇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잠룡 김도진'의 이야기이니 장난이나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도진이 그런 시청자들을 이해시켜 주기 위해 말을 계속했다.

"설표……라고 불리는 모양입니다. 엄청 크게 성장을 하는데, 영물이 되면 오히려 덩치가 이렇게 작아지네요. 어제 제가 이 녀석이 영물이 되는 데 좀 도움을 줬는데, 그래서 이렇게 저를 따르게 됐습니다."

-아니, 냥줍이 아니라 영줍이었다고?

-뭐지 이 스케일은?ㅋㅋㅋㅋ

-뭔가 존나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잠룡이야! 늘 새로워! 짜릿해! 평범하지가 않아!

"귀엽지만 분명한 영물입니다."

흘끔.

도진과 눈이 마주치자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솜이가 가볍게 뛰더니 앙증맞은 앞발로 땅바닥을 후려쳤다.

꽈과과광!

-??

-????

-오늘 방송 물음표 수확하는 날이냐?ㅋㅋㅋㅋ;;;;

폭탄이라도 터진 듯 땅이 움푹 패이는 장면이 방송을 통해 고스란히 송출되었고 시청자들은 솜이가 '고양이'가 아니라 '영물 설표'라는 걸 분명히 알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게 영물을 반려동물로 들이게 됐는데, 이게 또 한국에서는 사례가 없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일단 시청 홈페이지에 문의는 넣어놨으니 내일쯤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네요. 월요일이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대한민국을 뒤집어 버리고 세계에서도 관심을 끌 만한 폭탄 선언이 있었던 라이브 방송은 종료된 것이었다.

관련 뉴스 기사가 도배됨은 물론이요 공공 기관과 무림맹마저 아닌 밤중에 홍두깨마냥 뒤집어졌다.

"아니, 이게 진짜 뭔……."

"깜빡이도 없이 이게 뭔 일이랍니까."

'관련 부처'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혼란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 전문가들도 거의 확신했던, '대한민국에서 영물이 발생할 일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과 실제로 관련 이슈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영물을 담당하는 부처가 없었다.

때문에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몰라, 그리고 도대체 어디서 이 일을 맡아야 할지 결정하느라 예상치 못했던 대혼란을 겪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침.

회의 끝에 무림청 아래 '생활안전부'의 최 과장이 이른 아침 잠룡문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큰 범위 내에서 무림과 관련한 이슈에 관하여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생활안전부의 일이라는 명목이고 현실은 '짬에서 밀려서'였다.

-예. 그럼 오전 7시에 사무실에서 뵐게요.

"예, 예. 감사합니다."

'어휴 시발. 만만한 게 나지.'

서른이 되지 않은 나이의 젊은 최 과장은 5급 공무원으로, 그 유능함과 싹싹함으로 윗선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때문에 '또래'에게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지만 현실은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치이고 이런 일이 있을 때 선봉에 서야만 하는 고달픈 포지션이었다.

-알지, 최 과장? 잘못 처리했다간…….

짬에서 밀려 그에게 일을 맡긴 상관이 부담을 있는 대로 준 탓에 위장약을 하나 먹고 무림맹에서 파견 나온 사람을 만났다.

"반갑습니다. 나 호검(虎劍) 이용표입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생안부의 최범규입니다."

최 과장을 포함하여 생안부에서는 단 세 명이 나온 데 비해 무림맹에서는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신경질적인 인상의 간부 한 명과 함께 스무 명이 넘는 무인이 나왔다.

과한 건 아니었다.

'진짜 영물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신경질적인 인상의 무림맹 간부, 최범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역시 그 방송을 봤고 기사도 접했다.

보아하니 잠룡이라는 어린 애송이가 갑작스럽게 영물을 곁에 두게 되어 관심을 받고 싶어 방송으로 자랑을 한 듯했다.

다만 자랑은 자랑이고 그런 영물을 곁에 두는 게 무섭고 부담스러웠던지 시청에 글을 쓴 모양이었다.

고민을 조금만 했다면 글을 쓸 게 아니라 주말이라도 바로 무림맹이든 어디든 전화를 했어야지, 하고 그는 생각했지만 이름 높다고 해 봐야 학생은 학생이니 그러려니 했다.

바로 그 애송이에게서 영물을 안전하게 인계받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이번 임무였다.

'이번 임무로 우리 이름과 입지도 꽤 오르겠지.'

한국에선 없을 거라던, 그것도 마물이 되지 않은 영물이다.

보아하니 정부 쪽에선 담당할 부처가 없어 혼란스러운 모양이니 잘만 진행한다면 무림맹이 책임진다는 논리로 영물을 데려올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임무를 수행했던 그들 가문이 영물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가문의 주도 하에 정부와의 끈도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니 그들 가문의 발언권과 권력이 강해지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모나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으나 최 과장 또한 영물을 인도받은 뒤를 고민하고 있었다.

'당분간 골치 좀 썩겠네.'

대한민국에서는 영물이 등장한 적이 없다.

그 말은 곧 거기에 관한 '매뉴얼'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리이니 이에 관한 업무가 얼마나 파생될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그런 걱정을 안고, 당연히 영물을 인도받을 거라 생각하는 그들은 곧 도진이 기다리고 있는 잠룡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잠룡, 잠룡 해도 역시 고등학생의 신생 문파로군.'

이용표는 데리고 온 무인들이 다 들어가기엔 좁은 작은 사무실에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과 부관 둘만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어서오세요."

최 과장을 포함한 공무원 3인, 그리고 무림맹의 대표로 나온 이용표와 부관 2인까지 총 여섯 명을 도진은 담담한 얼굴로 맞이했다.

"따로 내드릴 건 없고, 커피라도 한 잔씩 드실래요?"

"예, 감사히 먹겠습니다."

"……."

이용표는 대접이 왜 이리 부실하나 생각하며 대답하지 않았고 최 과장이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마주앉은 서로의 앞에 차가 한 잔씩 놓이고 방문자들의 시선은 시종일관 도진의 어깨에 머무는 '영물'에 고정되었다.

'으음…….'

"대, 대단하네요."

굳은 표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이용표.

그리고 연신 흐르는 식은땀을 닦는 공무원들.

개중 최 과장의 말에 도진이 옅게 웃으며 예, 하고 답했다.

"영물이니 아무래도 기세가 좀 강하네요. 아직 기세를 완벽히 컨트롤하지는 못하고 있어서, 그리고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다보니 이해를 좀 부탁드릴게요."

"예, 예."

영물은 심기가 꽤 불편해 보인다.

적대감을 드러낸다거나 노골적으로 위협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약간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압박을 받아야 했다.

덩치가 크면 몰라, 겉보기엔 그저 작고 귀여운 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집채만 한 호랑이가 지그시 응시하는 것만 같은 압박감이었다.

공무원들은 그것을 그저 불편해 했지만 무림맹의 무인인 이용표는 자신이 그렇게 기세에서 밀린다는 게 너무나 심기가 상해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이었다.

'한낱 미물이라도 영물은 영물이란 건가.'

도진은 그들의 속내를 읽었으면서도 변함없이 담담한 표정이었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러니까, 잠룡문주님의 스승 되시는 분께서 이 영물이 설표라는 걸 말씀해 주신 거군요."

"네. 오래된 문헌에 솜이에 대한 내용이 있었거든요. 백 퍼센트 확실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아닌데, 보고 겪은 것들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는 것 같습니다."

"예, 그렇네요."

대화는 도진과 최 과장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설표'에 관한 정보를 도진이 우선 이야기해 주었다.

설표는 강렬한 열양지기를 제어하기 위해 그 커다란 덩치를 유지하는데, 영물이 될 때엔 그 내단을 스스로의 힘으로 제어할 수 있게 돼 '불필요한 껍질'을 벗어 이렇게 솜이처럼 작은 체구가 된다는 이야기 등을 말이다.

앞서 나타난 '마물'과 도진의 품 안에 있는 솜이가 같은 종이라는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알려 준 정보였다.

"귀한 정보인데 이렇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께서 괜찮다고 하셨거든요."

도진은 별 거 아니라고 겸양하는 대신 액면 그대로 인사를 받았다.

도진과 위지혁의 입장에서는 별 거 아니지만 분명히 다른 이들에겐 귀하디 귀한 정보이니 당연히 받아야 할 감사였다.

"혹시, 스승이 어떤 분이신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던 중 호검 이용표가 끼어들어 물었다.

세간에서는 이런 대단한 후기지수를 키운 게 누구인지에 관심을 집중했지만 자부심이 과해 자만심이 될 정도로 가문을 맹신하는 그는 그쪽이 아니라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정보를 알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신경질적인 곡선을 그리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도진은 옅게 웃으며, 그러나 단호히 거절했다.

"아뇨. 지금은 아직 제가 밝힐 수 있는 자격이 안 돼서요."

사신 장호는 자신의 존재가 양지에 공공연히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다.

굳이 이 시대에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다 떠나서 은인인 스승의 의지다.

때문에 도진은 필요하지 않다면, 이를 테면 장호와 연관 있는 이와 마주하는 정도의 일이 아닌 한 스승 장호를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스승 위지혁의 제자임을 밝히기 위해선, 천마의 제자 소천마(小天魔)임을 천명(闡明)하기 위해선 천마신교의 규율에 따라 천마심공의 5성을 성취해야만 했다.

때문에 여지조차 없이 거절했는데, 그 모습에 이용표는 더더욱 심기가 불편해졌다.

'목 한 번 건방지게 뻣뻣하구만.'

마음 같아선 무림의 선배로서 훈계 한 마디라도 하고 싶은데 괜히 소란을 일으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꾹 참았다.

그 미묘한 감정을 읽었기에 최 과장이 다시 나서서 말했다.

"그, 잠룡문주님이 올리신 문의, 영물에 관해 상담을 하고 싶다는 말씀 말입니다."

"예."

"지금 함께 있는 그 영물을 저희 쪽에 인도하고 싶으신 거지요?"

영물이란 건 꽤나 부담스러운 이름이다.

제아무리 요즘 이름 높은 후기지수라지만 개인이, 그것도 학생이 데리고 있기엔 너무 부담스러울 터.

이를테면 매머드가 아직 멸종하지 않았으나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면 그것이 옆에 있는 격이다.

눈앞의 이 영물은 작지만 본래 영물이란 '거대한 것'이다.

그것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관심, 압박감 등 온갖 거대하고도 무거운 것을 짊어져야만 한다는 걸 체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눈앞에 있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후기지수 역시 이렇게 관심을 끈 것이 뒤늦게라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을 터.

다만 그 나이 또래의 자존심 때문에라도 스스로 그걸 인정하고 말하긴 꺼려질 테니 최 과장은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꺼내 준 것이었다.

여기에 도진이 네, 라고 말한 뒤 형식적인 절차만 진행하면 이곳에서의 일은 간단히 마무리된다.

진짜는 그 뒤의 일인데…….

"아뇨."

'일단……?'

"예?"

최 과장이 생각지 못한 답에 되물었다.

앞서의 정보를 이야기해 준 것도 그렇고 참으로 협조적인 태도였기에 설마 거절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내가 딴 생각을 하느라 잘못 들었나?

그렇게 생각하는 최 과장의 착각을 완전히 날려 버리려는 것처럼 도진은 다시, 분명히 말했다.

"제가 왜 솜이를 인도하나요?"

"……."

"제가 상담하고 싶은 건, 솜이가 앞으로 제 반려동물로 지내게 될 텐데 거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는 거였는데요."

이용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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