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일요일 저녁.
갑작스레 시작된 도진의 너튜브 라이브 방송이었으나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일요일 늦은 저녁 시간이 호화스러워진 이유'
-'일요일 대표 예능을 망설임없이 외면해야만 했던 이유'
-'간장뿐이던 초라한 밥상이 갑자기 화려해진 이유'
무슨 밈인지 입장한 시청자들이 채팅창에 그런 멘트를 치는 사이 단숨에 인원이 천 명이 넘었다.
지금 도진의 인플루언서로서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이 북적이기 시작하자 곧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 나 멀미 있네?
-뭔가 화면이 좀 어지러운데?;;
-야! 너두? 나두!;;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방송을 보고 있으니 요상하게 좀 감각이 어지러운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대부분이 같은 이야기를 하자 셀카봉으로 비추는 화면의 중심에 있던 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제가 지금 수련중이라 그렇게 느끼시는 거예요."
-으잉? 수련?
-호옹이. 잠룡의 수방!
수방이란 '수련 방송'의 준말로, 무림인이 방송에서 흔히 쓰곤 하는 콘텐츠였다.
흔한만큼 이제는 웬만해서는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콘텐츠였는데 과연 잠룡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실제 상황을 가정하고 보법을 밟고 있는 중이라 위치가 계속 바뀌고 있거든요. 그래서 유심히 보시면 좀 어지러우실 수 있어요."
-??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단한 거 같음.
-ㅇㅇ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대단한 거 같음 ㅋㅋㅋㅋㅋ
-않잌ㅋㅋㅋ
다수는 그런 반응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단하다는 건 체감할 수 있었는데, 화면 너머로도 격하지 않지만 쉼없이 풍경이 바뀌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진은 평안한 얼굴이고 화면도 격하게 흔들리지 않는데 위치만큼은 쉼없이 바뀌니 무언가 '무공스러운 대단히 신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소리였다.
"음, 뒤를 좀 더 비춰드릴까요?"
-네.
-보여주세요 제발.
시청자들의 반응에 도진이 자신의 모습 대신 풍경의 비중을 높였다.
그러자 좀 더 격한 반응들이 쏟아졌다.
-? 움직임은 느린데 왜 이렇게 어지럽지?
-더 어지럽누;;; 구에에엑;;;
-와 개쩐다;; 이렇게 느리게 움직이는데 위치가 휙휙 바뀐다고? 이거 사람이 적응할 수 있는 움직임 맞냐? 진짜 잠룡은 전설이다;;
흑도 잡배 수준에서야 그저 빠르고 강하기만 하면 장땡이다.
하지만 그 수준이 올라갈수록, 무공은 '이치'를 추구하게 된다.
본래 무공이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을 이기기 위해' 탄생한 것이기에.
더 느린 움직임으로 더 빠른 움직임을, 더 약한 힘으로 더 강한 힘을 이기기 위한 깨달음이 추구되는 것이다.
지금 도진이 보여주는 무공은 그런 깨달음이 담겨 있었다.
급변하지 않음에도 끊임이 없으며 어지러울 정도로 잡을 수가 없다.
그 움직임에 담긴 뜻을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대로,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이는 사람들은 보이는 만큼 감탄했다.
그렇게 감탄하던 사람들은 그리고 어느 순간.
-?
-어?
풍경에 섞여든 '새하얀 것'에 눈을 빼앗겼다.
-나만 봄?;;
-아니 나도 본 거 같은데?;;
도진의 뒤편.
어느 순간부터 새하얀 털뭉치 같은 것이 나타났다 사라지더니 이내 완전히 드러났다.
-고양이다!!
-으아니 이게 웬 고양이여?
풍성하고도 아름다운 흰 털을 자랑하는, 특히 꼬리가 풍성한 고양이 한 마리가 화면에 잡혔다.
-뭐지? 왜이렇게 커여운 고양이가 있는 것이지?
-잠룡님, 그 고양이 뭐에요?
"음, 뒤에 뭐가 있나요?"
-네!
-빨리 뒤돌아보셈;;;
시청자들의 재촉에 도진이 웃으며 우측으로 고개와 함께 몸을 돌렸다.
스슷.
도진의 시선을 따라간 화면에서 '고양이'가 사라졌다.
"음, 없네요?"
웃으며 도진이 몸을 다시 돌린다.
스슷.
그러자 이번엔 왼쪽에서 고양이가 나타났다.
-않이;; 왼쪽ㄷ이요;;
-왼쪽좀빨리요;;;
다급한 채팅에 도진이 이번엔 왼쪽으로 고개와 몸을 돌린다.
고양이는 거기에 맞춰 또다시 몸을 숨겼으니 시야의 사각, 도진의 오른발치였다.
"여기도 없네요?"
-...??
-???;;;;;
-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혹시 이거 귀신 방송임?;; 내가 헛걸 보고 있나?
시청자들이 단체로 물음표를 난사했다.
뻔히 보이는 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잠룡 김도진이 못보고 있으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중에도 도진은 끊임없이 움직였고 그렇게 변화하는 풍경 속에서 고양이 역시 연신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마치 틈을 보이는 순간 망설임없이 도진의 뒤를 덮치려는 듯했다.
-어어;;
-뒤;;;
-뒤봐요;;
그리고 기회를 잡았다는 듯 고양이가 한계까지 응축됐던 용수철이 튕기듯 도진의 등을 덮쳤고.
"요놈."
채팅창의 경고가 뜨는 것보다 빠르게 도진이 빙글 몸을 돌려 고양이, 솜이를 품에 안았다.
"냐아아앙."
솜이는 불만이 있는 얼굴로 냐아앙, 하고 울었으나 곧 도진의 품에 얌전히 안겼다.
-머임?
-진ㅉ나 머임? 설명좀요;;
그 모습에 시청자들이 아우성을 쳤고 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죄송합니다. 이녀석이랑 장난을 좀 쳤습니다."
장난은 장난인데, 따지고 보면 수련이기도 했다.
도진이 일부러 뒤를 내주고 끊임없이 이치가 깃든 보법으로 움직인다.
솜이는 그렇게 뒤를 내 준 도진의 기습에 성공하기 위해 말 그대로 발바닥에 땀나게 뛴 것이었다.
솜이는 환골탈태에 성공했지만 아직 갈길이 멀었다.
99레벨을 찍고서야 시작인 고전 게임과도 같은 느낌이다.
내단을 더욱 키워야 했고 그 힘을 키우는 수련도 해야 했으며 아직 다 품지 못하는 여력을 분출하기도 해야 했다.
지금의 '숨바꼭질'은 그 세 가지를 다 충족할 수 있는 놀이이자 수련이었으며 산책이었다.
-아;; 그랬구나 어쩐지;;
-리얼 개꿀잼 몰카였누;;
-그래서 그 고양이는 어디서 나온 고양이인가요?
시청자들은 곧 뉴페이스인 솜이에 대해 연신 질문했다.
"어제 수련을 하다 만난 녀석입니다. 좀 도와주고 보내려 했는데 키우라고 강요해서 키우게 됐습니다."
-엌ㅋㅋㅋㅋㅋ 간택ㅋㅋㅋㅋ
-와! 간택ㅋㅋㅋㅋㅋㅋ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곧 웃으며 채팅창을 도배했다.
고양이가 먼저 다가와 '야. 키우라고. 키워.'라고 한다는 바로 그 간택을 당했다는 이야기에 싱글벙글 텐션이 업 된 것이었다.
-그래서 종이 어떻게 되나요? 첨 보는 거 같은디.
"음. 설표입니다."
-설표? 첨듣는데.
-저거 놀숲아님?
-노르웨이숲이라기엔 얼굴이 너무 순둥순둥한데.
-브리티쉬 롱헤어 같음. 근데 그렇다 쳐도 털 하얀 건 첨보네 ㅋㅋ
시청자들이 종을 찾기 위해 저마다의 지식을 내놓았다.
-그래서 암놈인가요 숫놈인가요?
"암컷입니다."
그러다 도진의 대답에 이어 나온 누군가의 말에 화제가 바뀌었으니.
-와.. 화화공룡이 이제 하다하다 봉황 말고 고양이까지 꼬시네;;
"아니, 이게 뭔……."
-엌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ㅋㅋ
도진의 어이없다는 얼굴에 건수를 잡았다는 듯 공격이 이어졌다.
-뭐?! 화화공룡이 고양이를 꼬셨다고?
-소식듣고 찾아왔습니다. 여기가 고양이를 꼬신 화화공룡의 방송인가요?
-네, 맞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날조, 아니 날조는 또 생각해 보니까 아니네?"
생각해 보니 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어서 그렇게 중얼거리니 시청자들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
-무섭다! 화화공룡!ㅋㅋㅋㅋㅋㅋ
키읔으로 도배되는 채팅창.
여기에 또 누군가가 진지한 궁서체로 타자를 쳤다.
-아이 싯팔! 세상 진짜!
-?
-뭐임?;;
-왜 급발진?;;
-않이! 요즘 인싸들은 이성 꼬실 때 고양이 보러 갈래? 라고 한다면서. 근데 쉽헐. 잠룡은 말도 필요없이 그냥 쟤 사진만 보여주면 바로 넘어올 거 아녀;;
-아니 이게 뭔ㅋㅋㅋㅋㅋ
-미친ㅋㅋㅋㅋ
-존나 갑분싸 같으면서도 생각해 보니 쟤 사진 보여주면 나라도 보러 갈 거 같긴 하네 ㅋㅋㅋㅋ
그런 이야기를 하던 때였다.
-오성아 : 도진아. 지금 어디야?..
-오성아 : 시간 있어? 나 지금 너 만나러 가고 싶은데..
-오성아 : 위치만 말해주면 내가 바로 갈게..
심상치 않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름이 채팅을 쳤고 채팅창이 뒤집어졌다.
-응?
-엌ㅋㅋㅋ??
-이, 이게 머선 일이곸ㅋㅋㅋㅋㅋ
-않이 이게 왜 찐인데 ㅋㅋㅋㅋㅋㅋ
-제안도 안했는데 왜 보러 가고 싶다고 매달리세욬ㅋㅋㅋㅋ
오성의 SNS 여신 오성아의 등장에 채팅창이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진 또한 그녀의 갑작스런 등장에 어허허, 웃었다.
"아니, 누나. 갑자기 왜 그러세요."
-오성아 : 솜이 보고 싶어서..
-아. 쟤 이름이 솜이구나.
-잘 어울리넹.
-나도, 나도 만질 거야..! 만지고 싶어..
"어휴, 오전에 보셔놓고서는. 그럼 저녁에 밥이라도 같이 먹을까요?"
-오성아 : 응. 너희집 갈까?
"네. 저녁은 드셨어요?"
-오성아 : 아니. 밥 차려줄 거지?
"뭐 제가 만든 건 아니지만 반찬 많으니까 오시면 차려 드릴게요."
-오성아 : 응. 지금 가도 돼?
"음, 한 시간 뒤에 오시면 될 거 같아요."
-오성아 : 응. 준비하고 바로 갈게.
어차피 오성아와는 나눠야 할 이야기도 많았기에 즉석에서 약속을 잡았다.
그러자 채팅창이 다시 한 번 폭주했다.
-? 뭐지?
-이게.. 화화공룡의 삶..?
-내 자신이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진수성찬이 갑자기 상해 버린 이유'
-와.. 진짜 고양이가 있으니까 이렇게 엮일 수가 있는 거구나..
-님은 호랑이가 있어도 안 됨;;
-개****야.
-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
그야말로 어어하는 사이에 성사된 만남에 시청자들이 아우성쳤다.
그 사이 도진은 솜이의 '우다다다'를 양손으로 받아주고 있었다.
막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일어서더니 앞발을 권투하듯 쉼없이 몰아치는 것이다.
도진은 그 앞발을 검지와 중지를 세운 양손으로 맞받아쳤다.
-와, 저걸 받아치네. 난 그냥 몸으로 쳐맞는데.
-이 또한 잠룡 클라스..
겉으로 보기에는 놀아주는 것 같다.
받아주는 게 아니라 정확히, 한 번도 빠짐없이 맞받아치는 건 평범하지 않았지만 잠룡이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허나 사실 이건 보이는 것 이상으로 경악스런 일이었다.
지금 솜이는 내단의 여력을 담아 앞발을 무서운 속도로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지금 솜이의 '우다다다'는 집채만 한 호랑이가 연속으로 앞발을 후려치는 것과 같다는 소리다.
비록 전력은 아니라지만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힘이 담긴 그것을 도진은 검지와 중지만 세운 채 단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치고 있는 것이다.
앞서 했던 수련과 놀아주기를 함께 하는 개념이었다.
솜이 입장에선 체력을 빼기 위한 산책이자 놀이, 그리고 도진에게는 솜이와 놀아줄 수 있으며 수련까지 병행할 수 있는 일석이조였다.
사실 도진은 이제 연신극기공을 쓰지 않고선 제대로 된 단련이 힘들 만큼 경지가 올라 있었는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영물'이 반려동물이 됨으로써 심상세계가 아닌 현실에서도 수련의 바리에이션을 늘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다다다까지 끝내고 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송을 키기도 했고 오성아와 약속도 잡혔으니 오늘은 여기서 수련 겸 솜이의 산책을 끝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잠룡님.
"네."
-진짜 솜이 종이 어떻게 돼요? 너무 귀여워서요..
어떤 시청자가 물었고 다른 시청자들도 동조했다.
-잠룡은 솜이의 종을 밝혀라!
-잠룡은 솜이의 종을 밝혀라!
몸을 툭툭 털고 솜이가 지정석이라는 듯 도진의 어깨에 오른다.
그런 솜이를 비추며, 도진이 웃는 얼굴로 답했다.
"설표입니다."
똑같은 대답.
거기에 시청자들이 항의하려 할 때였다.
"고양이가 아니라, 영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