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296화 (296/741)

295화

품 안의 '그것'은 분명히 천산설표였다.

그러나 같은 천산설표라 생각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

마주치는 얼굴이 동글동글하니 귀엽다.

먼치킨, 그러니까 소설의 그것 말고 고양이 중에 다리 짧고 동글동글한 귀여운 종을 연상케 하는 외모다.

한데 털은 티 없이 하얀 눈밭처럼 새하얗고 길며 꼬리는 특히 풍성해 노르웨이숲 이상의 장모종(長毛種)이다.

그리고 덩치.

믿을 수 없게도 본래 엎드린 높이만 해도 도진 이상으로 거대했던, 그야말로 집채만 한 호랑이 못지 않았던 덩치가 도진의 품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졌다.

덩치가 작아진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판타지스러울 정도로 작아지니 새삼 체감되는 느낌이 다르다.

미숙하던 시기에 열양지기를 억누르기 위해 필요했던, '필요없어진 껍질'은 그렇게나 거대했던 것이다.

그 껍질을 벗어던진 녀석의 덩치는 대략 4kg 전후라는 중형묘 정도였다.

한데 무게는 도진의 감각으로 10kg 정도였으니 그만큼 몸을 구성하는 근육과 뼈 등의 밀도가 높다는 걸 의미한다.

사실 사람도 그렇지만 야생의 지존이라 할 수 있는 코끼리가 그렇듯 동물도 체급이 깡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자란 설표'가 이토록 작은 건 도진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와는 다른 피지컬은 물론이요, 체급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내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고 귀여운 외모와 달리 내단을 통하여 느껴지는 기운은 호랑이라도 '냥냥펀치' 한 방에 K.O 시켜 버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만큼 무시무시하다.

내단의 힘을 구사하는 육체의, 근섬유의 능력 또한 인간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야아아옹."

"음."

다만, 그래.

분명히 설표, 그러니까 '눈표범'이라는 이름인데 환골탈태를 마친 녀석은 왜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의 형태가 되었을까, 라는 의문이 지금 도진의 머릿속에 가장 강하게 자리잡았다.

외모는 물론이요 울음소리까지도 완벽한 고양이다.

-사부님. 이름이 설표인데 왜 고양이 같이 생겼을까요?

-나라고 알겠느냐. 뭐 어릴 적에 털이 하얀 녀석인데 표범을 닮았으니 그런 이름이 붙지 않았겠느냐.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환골탈태 전엔 표범에 가까운 모습이었고 이후 영물이 되는 데에 성공해야만 고양이의 모습을 취하니 일반 민초들이 주로 보게 되는 건 표범의 모습이고 털이 새하야니 '설표'라는 이름이 붙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다르게 말하면 환골탈태를 함으로써 '정변'을 하는 녀석이라는 거고.

그런 영양가 없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린 도진이 웃으며 품에 안고 있던 설표를 내려 놓았다.

환골탈태를 마쳤으니 보내 주려는 의도였다.

"그럼……."

꾸욱.

"냐앙."

그런데 설표가 앙증맞은 네발에 힘을 주더니 도진의 상체에 착 달라붙었다.

양손을 놓았는데 상체에 붙은 채 떨어지질 않으니 이제 가, 라고 하려던 도진의 말도 중간에 끊겼다.

"……."

눈이 마주쳤다.

"냐아앙."

설표는 작게 울었다.

그것은 분명히 말이 되지 못하는 귀여운 울음소리였지만 마주친 눈을 통해 도진은 설표의 의도를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키워.

"으음……."

키우라고!

강력하게 피력하며 놈은 깃털처럼 가볍게 몸을 움직여 도진의 어깨 위에 자리잡아 버렸다.

-껄껄. 너를 보호자로 정한 모양이구나.

-음.

생각지 못한 경우였다.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면 자연스런 흐름으로 '키우자'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한데 도진은 성정상, 그리고 전생의 경험상 그쪽으로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책임질 수 없다면 결코 키워선 안 된다.

그리고 전생의 도진은 반려동물은 커녕 스스로도 건사하지 못하는 처지였으니까.

더더욱, 그냥 동물도 아니고 영물이다.

함께 할 경우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때문에 도진은, 조금은 긴 시간을 그렇게 서 있다 이내 결론을 내리고 집으로 향했다.

이번 토요일 밤은 꽤 특별했으니 가족은 물론이요 별채에 머물고 있는 이은지까지 다 모여 저녁을 먹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김서우는 일요일에도 회사를 지키기로 했기에 특별히 토요일 오늘 휴가를 받았다.

비수기였기에 야근이나 당직을 자처하고 있음에도 받게 된 휴가였다.

어머니 역시 오늘은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

이은지 또한 오늘은 쉬는 날이라는 지극히 드문, 그러나 즐거운 우연의 겹침이었다.

그래서 어머니 서정원이 특별히 솜씨를 발휘하고 도진과 동생들, 그리고 이제 완연히 집에 녹아든 이은지까지 손을 보태 파티라도 하듯 푸짐한 저녁을 함께 했었다.

도진은 그 즐거운 저녁 식사 이후 수련을 나갔다 저녁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가족들과 이은지가 다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반려동물을 한 마리, 키워야 할 것 같아요."

"야아옹."

* * * *

"야아옹."

녀석은 마치 인사하듯 도진의 어깨 위에서 작게 울었다.

"음……."

웬 새하얀 고양이 한 마리를 어깨에 올린 채 들어올 때부터 혹시나 하긴 했는데 그 혹시나 했던 말이 나오자 김서우와 서정원은 할 말을 고르기 위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부의 자랑인 큰아들이었다.

너무 대단하다 보니 오히려 어디 가서 자랑하기가 뭐한 정말로 자랑스런 아들.

특히 서정원이 그래서, 요즘은 정말 자랑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이 먼저 알아주니 겸손해야만 할 것 같은, 그래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참기가 힘든 그런 아들이다.

그 큰아들의 말이니 갑작스럽긴 하나 반대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반대할 이유도 없었으니 다만 그저 갑작스러웠을 뿐이다.

"웬 고양이니?"

가장 먼저 그렇게 물었다.

도진은 웃으며 답했다.

"수련을 하러 올라간 산에서 만난 녀석이에요. 조금 도와주고서 보내려 했는데 이렇게 안 놓으려 하네요."

꾸욱.

도진의 시선이 향하니 설표는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듯 앙증맞은 발에 힘을 주어 어깨를 붙잡았다.

시종일관 설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호진이가 반짝이는 시선으로 물었다.

"형아, 그럼 그거 냥줍한 거야?"

"아하하. 그렇게 되네."

냥줍. 고양이를 줍다.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단 제가 책임지고 돌볼 거고, 평소엔 기숙사에서 데리고 있을 테니 허락해 주신다면 주말에만 여기서 지내면 될 거예요."

숭무고의 기숙사는 반려동물의 반입을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그만큼의 의무가 주어질 뿐.

"응, 당연히 우리는 반대하지 않지."

부모님의 말에 도진이 감사합니다, 하고 말을 이었다.

"혹시 알레르기가 있으시다거나 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거 같은데……."

하지만 다행히 그런 반응은 가족들은 물론 이은지에게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외에는.

"털이 빠질 수 있으니 은지 씨에게는 조금 부담을 지우게 되네요."

아무래도 장모종이다 보니 자연스레 빠지는 털이 있을 수 있다.

집안 관리를 도맡고 있는 이은지 입장에서는 일이 추가되는 것이다.

이은지는 도진의 말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뇨아뇨! 오히려 수련도 되고 좋죠!"

안력(眼力)도 기를 수 있을 거고 그 정도로 부담은 되지 않는다며 이은지는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형아, 근데 그러면 캣타워나 밥그릇 같은 거 사야 되지 않아?"

"아, 밥그릇 같은 건 사야겠지만 캣타워는 괜찮을 거야."

"왜?"

"얘는 캣타워보다는 아무래도 바깥에서 노는 걸 더 좋아하거든."

겉보기는 이렇지만 정말로 고양이는 아니다.

만년설이 내린 천산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설표이니 캣타워가 아니라 도진의 수련에 어울려 뛰어다니는 것이 몸을 풀고 또 노는 것이 된다.

"워낙 똑똑한 녀석이니까 한 번만 알려주면 바로 적응을 할 거예요."

이야기가 얼추 정리되자 도진은 그렇게 말했는데, 곧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냐앙."

도진의 어깨에 얌전히 앉아 있던 녀석이 갑자기 어깨에서 내려오더니 어디론가 향했다.

마치 집 구조를 알고 있다는 듯 우아한 걸음으로 녀석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화장실이었다.

"냐앙."

도진에게 문을 열어달라는 듯 시선을 향했기에 문을 열어주니 녀석은 내부를 잠시 둘러보다 가볍게 점프하여 변기 위에 자세를 잡고 소변을 해결했다.

"와아."

"똑똑하다!"

유진이와 호진이가 감탄을 했고 부모님과 이은지 또한 새삼 녀석을 다시 보았다.

처음 온 집에서, 심지어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화장실을 찾아가서 변기에 올라 소변을 해결했단 말인가.

한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냐앙?"

뒤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묻는 것처럼 시선을 향하기에 물 내리는 버튼을 가리켰더니 정확히 그것을 눌러 뒤처리까지 했다.

"와아아아……!"

-껄껄. 영성이 트인 녀석이니 이 정돈 당연한 것이지.

설표는 '화장실의 냄새'를 정확히 감지하고선 화장실로 향해, 그것도 변기 위에서 볼일을 해결했다.

그리고 또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털을 핥는 모습을 보고 도진이 혹시나 하며 샤워기를 틀어 주니.

쏴아아아아-

"냥."

폭포라도 맞는 양 그 물을 맞아 몸을 적셨다.

"와! 물냥이다!"

"물냥이?"

"응. 고양이는 원래 물을 싫어하는데, 가끔씩 물을 좋아하는 고양이도 있대! 물냥이 키우는 집사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하던데?"

"아, 그래?"

요즘 호진이가 너튜브는 물론이요 책도 많이 보더니 꽤 많은 지식을 쌓았구나 하고 도진이 생각했다.

그저.

'얘는 고양이가 아니지만.'

-스승님, 천산설표가 물을 좋아하던가요?

일단 표범은 표범이긴 한데 표범의 생태는 잘 모르고 애초에 영물이 된 천산설표를 평범한 표범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도 의문이다.

도진의 질문에 위지혁이 심상세계에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본 건 그 300년 묵은 녀석뿐이다만, 그 놈이 딱히 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쯤 얼은 호수에서 헤엄치기도 했었지.

"냐앙."

문답을 하는 사이 녀석은 또 무언가를 바라는 듯 도진을 보며 울었다.

씻겨달라는 것이었다.

'끙.'

키울 거라면 책임을 져야한다.

그런 마인드의 도진이었기에 소매를 걷고 녀석을 꼼꼼히 씻겨 주었다.

본래 동물들은 전용 샴푸 등을 써야 한다고 언뜻 들은 거 같은데, 무려 영물 천산설표니 일단은 괜찮겠지 싶어 화장실에 있던 샴푸로 씻겼다.

환골탈태를 하고 난 직후라 따로 땟물은 나오지 않았고 샴푸와 린스 덕분에 털이 더욱 보드라워졌다.

"자, 말리자."

"냐앙."

다 씻은 뒤엔 드라이어로 말렸다.

뜨거운 걸 싫어하는 녀석이어서 열풍이 아닌 자연풍으로 과연 잘 마를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녀석이 내단이 품은 열기를 내뿜음으로써 대번에 보송보송하게 말릴 수 있었다.

그 과정을 구경하던 호진이가 말했다.

"근데, 형아."

"응?"

"얘 이름은 뭐야?"

"아."

도진이 살짝 입을 벌렸다.

갑작스러워서 생각을 못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 녀석에게도 이름이 필요했다.

그 이름을 정하기 위해 2차 회의가 열렸다.

"점순이?"

"점순이가 뭐야, 오빠?"

"아니, 그냥 갑자기 떠올랐어."

"하얀 앤데 점순이는 아닌 거 같아요."

"아하하. 그렇죠."

귀여운 아이에게 걸맞는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단호히 반대하는 이은지의 말에 도진이 아하하 웃었다.

정말 표범 무늬를 가졌다면 몰라도 사모예드마냥 새하얀 털을 가진 녀석에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솜사탕?"

유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 나이대의 아이가 떠올릴 수 있을 법한 귀여운 단어 선택이었지만 아주 조금 아쉽다.

그때 유진이의 의견을 가공하여 이은지가 제안했다.

"솜이는 어때요?"

"오."

"괜찮은 거 같아!"

도진에 이어 유진이가 적극 찬성 의견을 보였다.

"괜찮은 거 같구나."

"응. 나도 그게 좋은 거 같아, 형아."

"그래. 앞으로 니 이름은 솜이야. 솜. 이."

"냐앙."

눈을 맞추고 또박또박 불러주는 단어에 녀석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한국말'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걸 분명히 이해한 녀석은, 솜이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한 번 더 기분 좋게 울었다.

"냐아앙."

* * * *

다음날.

도진은 오랜만에 너튜브의 라이브 방송을 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