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캬아아아아악!!
-으아아악!!
-크하아악!
-아아악!!
비명소리. 살점이 찢기는 소리. 그리고 뼈 부러지는 소리 등이 스피커를 통해 찢어지듯, 그러나 적나라하게 흘러나왔다.
영물, 아니 마물과 마주한 순간 조사대의 일원이 재빠르게 녹화한 장면에 담긴 당시의 소리였다.
마물은 전문가들의 추측대로 고양잇과인 표범을 닮았다.
본래는 '표범'이었을 그것은 온몸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는데 그것이 마치 부패하여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여 구토감을 유발했다.
그리고 몸 곳곳에 실제로 썩고 곪은 상처들이 있었다.
"…형질 변화의 부작용이 꽤 진행된 것처럼 보입니다."
전문가는 그렇게 말했다.
내공에 의한 형질 변화는 사람과 무림의 경우 좋은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무공과 내공이 없던 과거에는 형질 변화에 의한 세포는 암세포와 유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물의 경우, 형질 변화는 암세포 이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잦았다.
본래 표범이었을 마물은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호랑이를 연상케 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여기에 조사대를 호위하던 무인의 검을 단번에 부러뜨리는 걸로도 모자라 상반신을 길게 갈라 버린 발톱과 다른 무인이 몸을 숨기며 장애물로 썼던 커다란 나무를 대번에 씹어 버린 이빨까지.
여기까지였다면 경지에 이른 무인의 몸이 그렇듯 영물이라 할 만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당하지 못한 내공의 폭주, 주화입마에 의한 부작용이 이렇듯 영상에서처럼 끔찍하게 발현하는 사례가 압도적이었으니까.
동시에 부패한 육체처럼 정신도 오염되어 놈은 미쳐 날뛰고 있었다.
핏줄이 터진 듯 시뻘건 안구에 시꺼먼 점을 찍은 듯한 눈동자가 섬뜩했다.
"불행하게도 저희의 발견이 늦었던 것 같습니다."
조사대가 쫓던 놈은 영물이라 할 만큼 이성적이고 지능적이었다.
한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마물로 변모해 버렸으니 전문가들의 얼굴이 어두운 것이었다.
"놈은 무서운 속도로 사패산 방향으로 도주 중입니다."
미쳐 날뛰던 마물은 무인 셋에게 중상을 입혔으나 만일을 대비해 준비했던 강력한 테이저건에 크게 놀라 도주했다.
사실 깜짝 놀라는 수준의, 그야말로 정전기라도 일어난 듯한 수준의 피해조차 아닌 피해였으나 거기에 놀라 도주해 준 것이 놈과 조우한 조사대에겐 천운이었다.
그 사이 정부 소속의 타격대를 포함한 추격대가 구성돼 긴급 파견되었다.
이놈이 만약 민간으로 침투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되어 버리기에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천라지망'이 구성돼 일대를 포위하고 조여들었다.
그 이름만큼 압도적인 인원수는 아니었으나 그 이상의 장비들이 동원되었기에 물 샐 틈 없는 포위망이 구성될 수 있었고 오차 범위 내에서 놈의 위치를 파악, 몰아넣었다.
"우리의 역할은 빈틈을 메꾸는 것입니다."
도진이 포함된 정의검가는 현재 급파된 타격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조사대 대장이었던 조사관은 알고 보니 타격대 소속의 조사관이었다.
때문에 구면인 그와 함께 타격대의 백업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럴 확률은 희박하지만 포위망을 뚫고 놈이 도주를 시도할 경우 그것을 제지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조사관은 도진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이것은 본래 계약된 실습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만약 원하지 않으실 경우 아무런 불이익없이 계약의 해지가 가능합니다."
조사관의 말에 도진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함께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사관은 부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학생이 위험한 일을 수락했다는 걱정에 탐탁지 않다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도진과 유지은이 포함된 후방조는 포위망의 백업을 위한 위치에 배치되었다.
정의검가의 절반은 전방에, 그리고 나머지는 후계자인 유지은을 위해 백업에 함께 했다.
분위기가 워낙 살벌했기에 누구 하나 잡담을 하지 않고 언제든 내공을 폭발시킬 수 있도록 몸과 감각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
-크아악!
-백업조!
"크와아아아아악!!"
꾸우우웅-!!
포위망의 약한 부분을 본능적으로 돌파한 마물 표범은 절로 죽음의 공포에 몸을 굳게 만들 만큼 말 그대로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미친……."
누군가 한 명이 공포를 속이기 위해 중얼거렸다.
영상이 아닌 실제로 마주한 마물 표범은 괴물 그 자체였다.
비유나 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괴물.
사람을 내려다 보는 덩치는 그 자체만으로 어깨를 짓눌렀으며 귀신 같은 섬뜩한 눈동자에 서린 광기(狂氣)와 살기(殺氣)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극한을 넘어 초월에 이르기 위한 단련을 계속해 온 무림인들마저 공포에 미치지 않는 게 한계일 만큼, 마물의 기세는 흉악했다.
수많은 자상에 털과 거죽이 너덜너덜해졌음에도 그 기세에는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다.
주화입마로 인해 미쳐 버린 뇌가 감각을 거부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그리고 오로지 본능만 남아 있던 놈의 눈동자가, 무흔잠영의 묘리로 인해 기세를 감춘 도진을 포위망의 가장 약한 부분으로 인지하고 덤벼들었다.
"캬아아아아악!!"
"안 돼!"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방아쇠가 당겨진 뒤의 외침처럼 아득히 늦어 있었다.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기세에 무인들이 굳었던 그 찰나에, 마물은 이미 도진을 덮친 것이다.
그 자리의 무인들은 찰나보다 빠르게 같은 장면을 떠올렸다.
실습을 나온 학생이, 무참하게 찢겨 나가며 목숨을 잃는 장면을.
그러나 단 두 명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진을 믿는 유지은과,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당사자 도진이었다.
-온다.
낮게 경고하는 위지혁의 경고를 들으며 도진이 백설을 뽑음과 동시에 천마기를 아낌없이 터뜨렸다.
꽈아아아아앙-!!
"……."
고막을 터뜨려 버릴 듯한 굉음이 터지며 마물 표범과 도진의 신형이 반탄력을 흘리기 위해 자석의 같은 극을 댄 것처럼 주욱 밀려났다.
파르르-
도진은 검신과 함께 떨리는 손의 감각에 더욱 강하게 힘을 주어 백설을 잡았다.
상상 이상.
지금껏 도진이 상대해 온 것들 중 가장 강력한, 아니 그걸 넘어 격이 다른 충격이었다.
만약 지금 도진이 쥔 것이 백설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만약 도진이 터뜨린 것이 천마기가 아니었다면 그 발톱에 몸이 찢겼을 것이다.
'역시.'
효아의 묘리마저 담아 할 수 있는 거의 최대치의 힘을 담았다.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천마기가 폭주하지 않을 정도의 외줄타기였다.
그럼에도 도진은 마물 표범을 제압하긴커녕 살짝 밀려 버렸으니 종(種)의 태생적인 격차 때문이었다.
사람, 인간이란 순수한 육체의 능력으로 따졌을 때 결코 상위종이 될 수 없는 동물이었다.
인간의 장점은 지성과 집단을 이룬다는 것이지 힘이 아니었다.
무공은 그런 인간의 '힘'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한데 그렇다면, 만약 인간을 압도하는 동물이 그 힘을 증폭시키는 수단을 손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
…그 답 중 하나가 눈앞에 있었다.
"캬아아아아악!!"
집단을 이루어 인간의 지성이 낳은 전술에 따라 움직이는 타격대.
여기에 힘의 연마를 추구해 온 정의검가의 무인들까지 짝을 이루었음에도 마물 표범은 밀리지 않았다.
웬만한 공격은 형질 변화한 거죽을 뚫지 못했고 설령 타격을 입히더라도 마약성 진통제를 맞은 듯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든다.
그런 놈을 상대로 이쪽은 한 대라도 잘못 맞으면 목숨이 위험하니 이렇게 불합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도진이 한 번의 격돌에서 상처없이 밀려난 것이 외부의 시선에서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만약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무인들은 얼마간 방금의 격돌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을 것이다.
"괜찮아, 후배?"
"예, 괜찮아요."
유지은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도진의 곁에서 상황을 지켜 보았다.
그녀는 압도적인 재능의 소유자답게 함부로, 단독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걸 도진과 마물 표범의 격돌에서 단번에 깊이 깨닫고 가장 필요한 자리에 선 것이다.
뭉쳐서 버티는 것 이상은 지금 그녀에겐 불가능하다.
그리고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지키기만 하면 돼.'
만반의 준비를 한 덕분에 짧지만 긴 격돌 중에 부상으로 이탈한 무인은 있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거나 죽은 무인은 없다.
이대로 조금만 버티면 포위망을 구성하던 무인과 타격대가 들이닥칠 것이고 그러면 제아무리 미쳐 날뛰는 마물이라 해도 제압될 수밖에 없다.
죽이는 게 아니라 제압이 가능할 만큼의 전력이 갖춰진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차륜전을 하며, 아낌없이 비싼 소모품을 소모하면서라도 포위를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유지은이 그렇게 판단을 내렸을 때였다.
-제자야.
-예, 장 스승님.
-저놈, 하나가 아니다.
-……예?
도진의 머릿속에서, 목덜미를 서늘하게 하는 내용을 장호가 말했다.
* * * *
-하나가, 아니라는 말씀은?
질문에 있었던 잠시의 텀으로 도진이 이성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허둥지둥 당황해봐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뿐이다.
그렇기에 도진은 삽시간에 냉정을 되찾고 물었고 장호 또한 언제나와 같이 일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놈이 입은 상처 중 사람이나 도구에 의한 상처가 아닌, 동일종의 이빨과 발톱에 의한 상처가 있다. 같은 개체에 의한 상처다. 알려야 한다.
-알겠습니다.
도진은 지체하지 않았다.
바로 무전기를 통하여 지휘 계통에 소리쳤다.
"같은 개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찾아야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 포위하고 있는 마물의 몸에 동일 개체의 발톱과 이빨에 의한 상처가 있습니다. 한 마리가 아닙니다!"
-…확인.
다행히 지휘를 맡았던 인물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 말을 믿을 수 있냐느니 자세한 근거가 필요하다느니 말하는 대신 이성을 붙잡고 있는 듯 딱딱한 목소리로 짧게 답한 뒤 통신을 종료했다.
마치 불행과 행운이 함께 오는 듯 지원은 예상 이상으로 빠르게 도착하여 마물을 단단하게 포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았으니 마물이 한 마리가 더 있다는 내용을 포위망의 구성원 전체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포위, 정정. 사살에 필요한 인원을 제외한 전체 인원은 즉시 수색에 착수합니다. 제한없는 사살 권한을 부여하겠습니다.
급박한 상황에 내린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었다.
제압이 아니라 사살을 위한 인원만을 남겨두고 타격대 전원이 다른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도진 역시 유지은과 함께 산을 빠르게 내려가 도시를 향해 달렸다.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모두가 필사적이었다.
마물이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천라지망이라 할 만한 자원과 인력을 투입한 것이었다.
한데 그 포위망이 뚫려 버렸다.
포위망이 헐거웠던 게 아니다.
애초에 포위해야 할 대상의 수를 잘못 알았던 것이 치명적이었다.
설마 하나만 해도 지구 단위에서도 희귀하다는 영물이, 마물이 둘일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설마 셋 이상인 건 아니겠지요?
-흔적으로 보았을 때는 두 개체가 싸웠다.
세 마리가 아니라는 확신은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걱정을 불릴 때가 아니었다.
그 존재마저 몰랐던 만큼 귀신 같이 포위망을 빠져 나간 놈이다.
이놈이 이성이 있어서 마물이 아닌 영물이었다면 이토록 급박하진 않았을 텐데 불행하게도 뒤늦게 산 외곽으로 이어진, 동물들의 처참하게 찢겨진 피와 살점이 발견되었다.
다른 한 마리 또한 마물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놈은 이미, 도시에 스며들었다.
웨에에에에에엥-!!
더 이상 숨기고 진행할 일이 아니었기에 긴급 사이렌이 요란하게 귀를 때리며 도시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뒤흔들리는 도시의 한가운데.
"캬하아아아……."
핏빛으로 물든 눈동자의 마물이 흘리는 울음소리가, 보육원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