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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91화 (291/741)

290화

"뭐, 뭐요?"

돌팔이란 단어에 붉은 조끼 부대가 대번에 발끈하며 발언한 당사자를 찾았고 곧 앞으로 나서는 도진을 발견했다.

"어? 김도진?"

"네, 김도진 맞습니다."

전용 차량을 타고 왔을 뿐 따로 변장을 하는 등의 수고를 한 건 아니었기에 그들은 바로 잠룡 김도진을 알아보았다.

막무가내인 태도와는 달리 도진을 바로 알아볼 정도의 식견은 있는 듯했다.

잔뜩 불쾌한 감정을 담아, 이번에도 대표로 배가 불룩 나온 남자가 말했다.

"우리를 보고 돌팔이라 했습니까?"

"네."

마치 붓는 것이 기름이라는 걸 알면서도 불에 들이붓는 듯한 태도였다.

그럼에도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으니 배가 나온 남자의 감정이 더욱 격렬해졌다.

"무슨 근거로 우릴 돌팔이라고 하는 겁니까?!"

도진은 여전히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한 기색으로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다 먹지 못하고 놓아둔 햄버거와 감자튀김 등이 있었다.

그들이 식사중에 일어났음을 알게 해 주는 것들이다.

"저게 어쨌단 말입니까?"

"저거, 맥 버거 브랜드잖아요."

맥 버거는 많은 매장수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여 성공한 브랜드였다.

"…그래서요?"

그리고.

"오래도 아니죠. 바로 두 달 전에 맥 버거가 비인도적으로 식용 돼지와 소를 기르는 곳에서 재료를 납품받는다고 기사가 났었고 여러 단체가 항의하는 일이 있었죠."

"……어."

"그런데 동물 보호 단체라는 분들이 그런 곳의 햄버거를 드시네요? 모르셨어요?"

"……."

뒤룩뒤룩.

눈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러나 누구 하나 실제로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으니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환경, 그리고 동물 보호 단체라는 명분으로 앞을 막아선 것이었는데 그 근본이 흔들려 버렸다.

막무가내로 우기지도 못할 만큼 급소를 제대로 찔린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기세가 팍 꺾였을 때 경찰들이 도착했다.

"연행해 주세요."

"어, 어어! 무슨 짓입니까!"

"놔! 어딜 만져!"

"공무집행방해, 무단점유훼손 등의 혐의로 체포합니다. 여러분들은……."

항의하는 그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들은 할일을 다하고 체포한 그들과 함께 퇴장했다.

도진은 꾸벅, 조사대 대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조사관님."

"아닙니다. 잘 나서 주셨습니다."

엄연히 대장이 있음에도 전면에 나선 것에 대한 사과에 조사관은 미미하게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경찰은 부를 것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영물이 있을 거라는 추측으로 파견된 조사대의 일을 방해한 그들에게는 무관용 대응이 원칙이었고 그는 그대로 실행할 생각이었다.

다만 그 뒤에 시끄러운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도진 덕분에 그들을 침묵시킬 좋은 명분 하나가 생겼으니 뭐라 할 게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 할 일이었다.

그렇게 방해꾼들을 치운 뒤 그들은 목적지였던 산, 사패산에 입산했다.

"다시 한 번 브리핑드리겠습니다. 저희의 목적은 이곳 일대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영물을 육안으로 확인, 가능하면 포획하는 것이며 그를 위한 일련의 조사 진행을 목적으로 입산하였습니다."

단순히 여러 정황만으로 미루어 짐작해 조사를 진행하는 게 아니었다.

앞서 조사를 진행하던 조사대가 이미 물적 증거를 확보했으니 어떤 동물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긴 털이다.

정밀 조사 결과 그것이 '내공에 의해 형질 변화'된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

내공에 의한 형질 변화.

그것은 경지에 오른 무인에게서 나타나는 육체의 변화 같은 것이었다.

경지에 오른 무인의 뼈와 근육은 인간을 초월한다.

본래는 버틸 수 없는 움직임, 유연성, 파괴력, 내구성 등을 보이는데 그것은 일정 경지를 넘어선 내공에 의해 육체 자체가 '형질 변화' 했기 때문이다.

육체 본래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것을 넘어 육체 자체가 변화, 그러니까 진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일정 경지를 넘어선' 내공이고 그것은 동물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즉, 형질 변화한 털을 떨어트린 동물은 영물이라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했기에 확언하지 못하는 것일 뿐 이 정도면 확신할 수 있을 만한 증거이기에 예산이 책정되고 여러 조사대가 파견될 수 있었다.

지금 도진이 포함된 조사대만이 아니라 몇 개나 되는 조사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저희는 이 영물이 고양잇과이거나 비슷한 습성을 지녔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몸놀림이 가볍고 민첩하며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있다.

청결을 중요시하며 배설물을 숨긴다.

영역본능이 있다.

미미하게 남아 있던 흔적들을 토대로 추론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경계심이 아주 강하다가 추가되었다.

"추적자들이 있다는 걸 알자마자,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라는 걸 알자마자 완벽하게 흔적을 지우고 모습을 감췄습니다. 인간을 경계하는 동물들은 흔했지만 전문가들마저 따돌렸다는 데에서 우리는 이게 영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조사를 통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덕분에 상당한 예산을 타낼 수 있었고 이렇게 조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조사 중에 조금은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조사대 대장은 말했다.

그리고 등산로를 벗어나 깊숙한 곳에 들어간 뒤로는 조사대의 영역이었다.

온갖 장비와 지식으로 무장한 그들이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무림인이 할 일은 없었다.

때문에 유지은은 슬쩍 도진의 곁으로 다가와 섭음술로 말을 걸었다.

"후배."

"네, 선배."

"그 버거 브랜드 논란은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야? 지윤이도 아니고."

도진은 슬쩍 웃었다.

"헤드라인 뉴스 기사 정도는 매일 챙겨 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알고 있었죠."

"아, 그랬구나. 나도 앞으로 뉴스 좀 챙겨 봐야겠다."

"네, 그러세요. 마음의 양식이 될 거예요."

"어? 그거 나 바보라고 디스하는 거 아냐?"

"에이. 누가 선배를 바보라고 하겠어요? 이렇게 똑똑한데."

"음……. 후배한테 조련당하고 있는 거 같은데."

조금은 근무 태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도진은 물론 유지은도 감각은 확실하게 열어두고 있었다.

산행은 오히려 이들이 전문이었으니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만 대비하면 되는 상황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해가 진 밤.

조사대는 큰 소득을 얻지 못하고 하산하게 되었다.

다만 표정이 그리 어둡진 않았으니 정말 고양잇과 영물이라면 겨우 하루만에 발견될 리가 없다고 이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계심 많은 영물이라도 모를 만큼 은밀히 여러 장치도 뿌려 두었기에 그들은 느긋하게 마음 먹은 태도로 오늘 조사를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도진은 근래 외박증을 끊고 보육원에 머물고 있는 벽태웅을 찾아갔다.

"선배님."

"응. 잠시 이야기 괜찮아?"

"예. 괜찮습니다."

10시에 가까운 시간.

늦다면 늦은 시간이지만 무인에게는 아니었다.

"수련하고 있었어?"

"예. 가만있기가 힘들어서……."

"응, 그렇지."

벽태웅은 트레이닝복 차림에 열을 훅훅 뿜고 있었는데 꽤 거친 훈련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벽태웅에게 이온 음료를 건네고서 도진은 말했다.

"비밀 엄수 의무가 있어서 내용 이야기를 해 줄 수는 없는 건데, 일단 조금 차분히 기다려 봐."

"…뭔가 방법이 있는 겁니까?"

"확답은 못 해 주지만 어쩌면 좋은 방향으로 풀릴 수도 있어."

전문가들의 확신대로 영물이 발견된다면 그로 인해 재개발 구역의 변경이 없었던 것이 될 수 있었다.

애초에 산 외곽에, 인간들이 근처에 있는 곳에 야생동물들이 돌아다닌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때문에 재개발과는 별개로 조사가 진행된 것이었고 영물이 있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 나왔다.

이 영물에 의해, 영역 본능이 있는 영물에 의해 본래 살던 곳에서 동물들이 밀려난 것이라면 이 동물들을 다시 산으로 돌려보내는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영물에 의한 인위적인 일이라면 그것을 되돌리는 게 맞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면 시위하던 자들의 환경과 동물 보호라는 명분이 사라지니 시공사는 물론이요 재개발 조합도 손해를 보며 변경된 구역으로 진행할 이유가 없어진다.

일단 아직은 영물에 대한 게 대외비이기에 벽태웅에겐 말해 줄 수 없었지만 잘 풀린다면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재개발도 진행되지 않을 거고.'

관련자들은 이 일을 다 알고 있다.

그러니까 해결이 날 때까지는 재개발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이 올 스톱 상태가 유지될 것이니 영물과 관련한 일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벽태웅은 도진의 표정에서 무언가가 있음을 읽어내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

"그래. 믿어줘서 고맙다."

답답한 상황임에도 벽태웅은 내색하지 않고 도진을 믿어 주었다.

그런 후배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도진은 좀 더 열심히 할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면 저번 생에선 영물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죠?

-그래. 그랬었지.

도진의 기억에도, 심지어 스승들의 기억에도 도봉구 재개발 사건과 관련하여 영물에 대한 뉴스는 물론이요 위키의 기록도 없었다.

그것은 곧 또 무언가 전생에서는 밝혀지지 않은, 혹은 감춰진 요소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도진은 그것이 가능하면 긍정적인 요소이기를 바랐는데, 사건은 그런 마음과 달리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후배!

"네, 선배."

조사 3일째.

대상이 영물이었기에 조사 범위를 사패산만이 아니라 아예 북한산까지 크게 넓혔지만 그만큼 조사대도 여럿이 활동하고 있었기에 슬슬 성과를 기대해 봐도 될 시기였다.

한데 그것이 성과는 성과인데 안 좋은 결과와 함께 찾아왔다.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도진은 수련 중 유지은의 전화를 받았고.

-조사대 중 한 팀이 영물을 만나서 여럿이 크게 다쳤다고 해! 지금 바로 소집이야!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네, 바로 갈게요."

평일이었지만 실습계를 낼 틈도 없이 도진은 조사대에 합류했다.

이런 경우는 선 실습 후 보고가 원칙이다.

조사대 대장은 버스 안에서 굳은 얼굴로 브리핑을 했다.

"안타깝게도, 영물은 마물(魔物)로 확정되었습니다."

"……."

마물. 혹은 괴물.

영물이라 불리는 동물의 대부분은 그렇게 마물이나 괴물로 불렸으니 '주화입마(走火入魔)'를 그 원인으로 보고 있었다.

현대의 동물들은 오랜 '수도(修道)' 끝에 영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또 우연이 겹쳐 '내공이 쌓여' 영물이 된다고 연구가들은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축기(蓄氣)부터가 통제 하에 있지 않고 심지어 그 흐름이 체계적이지도 않으니 인간이 내공 수련 중 잘못되는 것처럼 일종의 주화입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물이 말 그대로 괴물처럼 미쳐 날뛰다 발견되었고 그 때문에 사살되거나 겨우 포획해도 이윽고 폭주하는 내공을 버티지 못하고 절명하자 나온 추론이었다.

사실 이번 영물 탐색이 기대받던 것도 그런 사례들과 달리 인간을 경계하고 철저하게 몸을 숨기는 등 이성적으로 움직이니 혹시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은, 정말로 지극히 드문 사례인 '영물'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대는 접어야 할 듯했다.

"현재 포위망을 구성하여 마물을 쫓고 있습니다. 저희가 담당하던 사패산으로 도주중입니다. 민간 구역으로 진입하기 전에 차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곧 그 마물을 상대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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