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대산건설의 창립자이자 현 회장은 밑바닥에서부터 회사를 일궈낸 인물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위인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이 흑도였으며 시작이 용역 깡패였기에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결코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위압적이고 권위적이며 폭력적이었기에 좋은 아버지도 되지 못했고 그 영향 아래 자란 조중림 또한 비뚤어진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가정 환경에 의한 피해자.
허나 마냥 피해자가 될 수도 없었던 것이 피는 속이지 못한다고 그 역시 일진 무리들과 어울리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니까 동족 혐오라고 해야 할까.
그는 유독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다.
힘의 차이, 그리고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 때문에 대들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불만이 쌓였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무공 실력 향상을 위한 동기가 되어 주었다.
덕분에 그는 입학 시험에서 4강까지 오를 수 있었고 그 성적을 바탕으로 기숙사를 신청해 합격할 수 있었다.
본래 우승자만이 선택할 수 있었던 기숙사 혜택이 한유아에 의해 숭무고의 상위권 학생들도 신청 서류를 넣을 수 있게 바뀌었고 그 혜택을 조중림이 받게 된 것이었다.
반항의 의미로 기숙사행을 택한 그는 며칠 정도는 기분 좋게 지낼 수 있었다.
꼴보기 싫은 아버지, 잔소리와 신경질이 많은 어머니는 물론이요 아버지와 죽이 맞아 신경을 긁는 형도 안 볼 수 있었으니까.
밥, 빨래 등은 신청만 하면 사용인들이 해 주니 이와 관련한 불편함도 없었다.
허나 곧 불편한 것들이 생겼다.
가장 대표적인 불편함이 물건의 반입이었다.
그는 주당이어서 술을 달고 살았다. 한데 그 술을 기숙사로 배달시킬 수가 없었다.
택배로 주문할 수 없기에 웃돈을 주고 전문 업체에 학교로 배달토록 했는데 그 물건을 관리소에서 필수적으로 검수를 받아야 했다.
다른 곳도 아닌 숭무고였기에 택배를 포함한 물건의 반입을 철저하게 검수하도록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검수를 학생들의 입회 하에 진행했으며 끝난 뒤엔 또 학생이 직접 들고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불편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기숙사 관리인을 찾아가 '건의'했다.
"이거 관리인 아저씨가 대신 검사받고 가져와 주면 안 됩니까?"
귀찮으니까 다른 사람을 시킨다.
그의 기본적인 마인드였고 가장 적합한 인물로 기숙사의 관리인을 선택한 것이다.
관리인은 건방지게도 대번에 거절했다.
"반입하는 물건은 원칙적으로 본인 입회 하에 검수를 받아야 합니다."
"쓰읍."
거슬렸지만 자기 할 일 하는데 뭐라고 하는 건 가혹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래요? 그럼 내가 돈 줄 테니까 관리인 아저씨 이름으로 시키고 검사 받고 가져와 줘요. 심부름값은 줄 테니까."
"대리인 임명의 경우 합당한 이유를 포함한 사유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만 합니다."
"아 씨발, 좀. 그 정도는 알아서 해 줄 수 있잖아. 안 돼요?"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대부분의 경우 여기서 해결이 됐는데 중년의 관리인은 꼴에 숭무고 관리인이라고 모가지가 뻣뻣해진 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규칙이 엄격해 제 권한으로는 해결해 드릴 수 없는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하.'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꾸벅 고개를 숙이는 그에게 뭐라 더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게 계속 화를 돋궈서 다음날 다시 찾아가 말을 했고.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아, 씨발 진짜!!"
버럭 소리를 쳐 버린 것이다.
"아니 좆같네! 이게 뭐 어렵다고 못 해 줘?! 당신 여기 학생들 편의 봐주는 사람 아니야?"
이쯤 되니 화풀이였고 갑질이었다.
하지만 본래 그렇게 살아온 조중림은 그런 자각이 없었고 마치 한 대 칠 것처럼 살벌한 기세로 관리인을 몰아쳤다.
관리인은 아들뻘의 학생의 행패를 그저 묵묵히 감내했다.
높은 급여를 받는 만큼, 그리고 이곳이 바로 숭무고의 기숙사인 만큼 웬만한 갑질에는 면역이 되어 있었다.
갑질은 차라리 애교다.
태생이 그러하기에 그런 자각조차 없는, 아주 자연스럽게 천민 대하듯 하는 학생들도 흔했으며 높은 급여에는 그런 정신 노동에 대한 대가 또한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회사의 철저한 교육과 멘탈 관리까지 받고 있는 그는 그저 대응팀을 기다리며 정신 노동을 계속할 뿐이었다.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이 나서지 않는 것도 이해했다.
숭무영재고도 아닌 숭무고 입학 시험의 4강에 올랐던 실력을 가진 학생이다.
여기에 대산건설의 둘째라고 하면 그래도 '2티어'는 되는 신분이니 괜히 나서서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 하는 게 당연하다.
그들 또한 숭무고와 숭무영재고에 다닐 만큼의 머리가 있는 천재들.
정의감만으로 나서기엔 아는 것과 알아야 할 것들, 짊어질 것들 마저 많은 학생들이니까.
"뭘 하는 거야?"
그렇기에, 갑자기 들려 온 부드러운 목소리는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일에 나서준 학생.
'벽태웅 학생.'
황룡이란 별호를 얻은 43기 신입생들 중에서 주목받는 후기지수.
불곰이 일어선 것만 같은 피지컬이 돋보이는 그의 개입에, 그러나 조중림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그보다 좋은 피지컬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8강에서 탈락한 놈이다.
정말로 운 좋게, 잠룡이 봐준 덕분에 돋보여 황룡이란 별호를 얻었다 생각했기에 애초부터 거슬리던 놈이기도 했다.
'좀 치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역시 어디가서 꿀릴 피지컬은 아니었다.
거기에 겉보기와 달리 그는 사실 내공을 중점적으로 익힌 무인이다.
그러니까 타고난 피지컬에 내공을 중점적으로 익혀 시너지를 낸 무인이었고 그렇기에 4강까지 오를 만큼의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보다 키가 큰 벽태웅을 노려보았고 벽태웅은 그 시선에도 '곰같은' 둥근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관리인님한테 그렇게 소리치면 안 되지. 사과드려."
"…뭐 이 새끼야?"
"사과드리라구. 네가 잘못 했잖아."
"하. 근데 이 새끼가!"
둥글둥글하고 템포가 조금 느린 벽태웅의 말은 조중림의 화에 기름을 부었고 결국 부딪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이다.
안 그래도 쪽팔리는 상황인데 '와! 재밌는 수법이네'하고 놀리는 듯한 말을 들은 조중림은 눈깔이 뒤집힐 뻔 했다.
하지만 노려본 그곳에서 도진과 눈이 마주쳤고.
'……어?'
화가 가라앉네?
거짓말처럼 화가 가라앉았다.
그는 의외로 강자를 알아보는 본능이 발달한 편이었다.
그 덕분에 굳이 기세를 일으키지 않았음에도 도진과 눈이 마주친 순간 덤비면 뼈와 살리 분리될 수도 있다는 본능의 경고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그 역시 무림학교의 학생.
지금 마주한 것이 '잠룡'과 '검봉'이라는 걸 알아보았기에 더더욱 판단이 빨랐다.
차이가 심하면 길고 짧은 걸 안 대봐도 구분이 된다.
스을쩍.
눈을 내리깔았고 도진의 물음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물론 그에게 유리하도록.
"흠, 그랬구나."
도진은 당연하게도 장호에게 익힌 '사람보는 법'을 통해 조중림의 말을 어느 정도 걸러들었고 관리인의 이야기도 들었다.
일부러 섭음술도 펼치지 않고 조중림도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사정 청취를 했는데 관리인은 베테랑답게 필요한 이야기를 조중림이 발작하지 않도록 잘 포장하여 말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도진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관리인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몸을 돌린 도진이 다시 조중림과 눈을 맞추었다.
분노 조절을 잘하는 조중림은 바른 자세로 도진을 마주했다.
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애로 사항이 있으면 집행부에 건의를 해 주지 그랬어."
"아, 이런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까?"
"응. 집행부가 하는 게 보통 그런 일들의 개선이니까."
"그랬었군요. 몰랐습니다."
"응. 괜찮아, 괜찮아."
고분고분한 양처럼 대답하니 굳이 손을 쓸 필요없이 부드럽게 이야기가 진행됐다.
"음……. 그러니까 택배 같은 걸 받는 데 불편한 부분이 있으니 이 부분을 해결해 주면 되겠네."
"가능하신 겁니까?"
"일단 안건을 올려보도록 할게. 당장 우리 후배가 불편하다고 하니까 최대한 빨리 해결할 수 있도록 해 보고 확정되면 공고해 줄게. 그러니까 조금만 좀 이해해 줘."
"알겠습니다. 선배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고마워."
사실 오는 동안까지만 해도 한따까리를 해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분위기가 훈훈하다.
"그럼 관리인님한테 사과드리고 마무리하자."
다만, 그래도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반발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알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관리인님."
"아닙니다. 도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조중림은 이 부분에 있어서도 도진의 말을 따라 주위를 조금 놀라게 했다.
-허허. 잠시 두고 부리기에는 괜찮은 아이로구나.
위지혁은 조중림을 그렇게 평했다.
-강자에게 숙일 줄 아는 처신을 잘하는 녀석이로군요.
그리고 장호는 그렇게 평했는데,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간단히 정의하자면 '이집 처신 잘하네'였다.
본질은 흑도의 왈패인데 강자 앞에서는 굽힐 줄 알고 성질을 조절할 줄도 안다.
여기에 무언가를 시키면 묵묵히 수행할 줄도 아니 위지혁은 잠시 두고 부리기에 괜찮은 아이라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 본질이 흑도의 왈패이기에 '잠시'는 두고 부려도 계속 곁에 두기에 적합한 성격은 아니었다.
강자에게 숙일 줄 안다는 건 반대로 말해 강자가 아니게 되면 얼마든지 태도를 달리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
처신을 잘 하는 만큼 태도를 달리하는 것이 어설프지도 않을 것이다.
곁에 두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인물은 못 되었다.
뭐, 사실 도진으로서는 신경쓸 부분이 아니었다.
도진은 언제나 강자일 것이었으며 조중림 같은 인물을 곁에 두어야 할 만큼 주변의 인재가 부족하지도 않다.
당장 곁에 있는 유지은과 상미가 그러했으며 잠룡문을 위해 고생해 주고 있는 오성아는 물론이요 그동안 쌓아온 인연이 결코 얕지 않다.
그러니까 문제는 도진이 아니라 벽태웅이었다.
-저놈, 원한을 품어 두는 성격으로 보이는데 무슨 사고를 칠 모양이로구나.
조중림은 도진에게 반발하지 않고 오히려 고분고분, 관리인에게 사과까지 했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도진에 대한 태도였고 강자로 인정하지 않은 벽태웅을 보는 시선은 달랐다.
벽태웅을 스쳐가는 조중림의 시선에는 분명히 감정이 묻어 있었다.
앙금이 남았으며 조중림은 성격상 그것을 풀어내지 않고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치고박고 싸워서 풀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무언가 또 다른 사고를 칠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마저 지금 도진이 언급하는 건 선을 넘는 일이니 그저 큰 사고는 치지 말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태웅아, 쟤가 너한테 감정 있는 거 같은데."
"예. 조심하겠습니다."
벽태웅에게 언급을 해 주는 정도로 일단 마무리 지었다.
* * * *
기숙사로 돌아온 조중림은 저장되어 있는 번호 중 하나로 전화를 걸었다.
-예, 도련님.
"어. 벽태웅 그 새끼 좀 파 봐."
빠르게도, 조중림은 예정되어 있는 사고를 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