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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82화 (282/741)

281화

우서진과 약리지가 소고깃집 마당 우측의 쉼터로 이동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을 기다리는 도진과 상미, 그리고 남사현에게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섭음술을 사용했기에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며 남사현이 도진에게 말했다.

"서진이가 리지랑 대화로 관계를 풀 생각인가 보네요."

"응, 그런가 봐."

"리지는 착한 애니까 잘 될 거 같아요."

"…동감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도진은 슬쩍, 묘한 눈으로 남사현에게 시선을 주었다.

긍정적이고 사람을 믿는 무림 명가(名家)계의 인싸.

그것이 남사현에 대한 평가였다.

과연 그 말이 틀리지 않아서 남사현은 그 나이대 특유의 복잡한 감성으로 더더욱 어렵게 받아들일 만한 상황에서도 소꿉친구 약리지와 동기인 우서진을 믿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한 치의 위선도 없는 진심이었기에 남사현은 무림 명가계의 인싸라 불릴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도진은 생각했다.

하지만 또한 그렇기에.

도진은 조금 묘한 시선으로 남사현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음…….'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도진은 곧 그 생각을 흩었다.

도진이 지금 '굳이' 깊이 할 만한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진은 그 생각을 흩어 버리고 당면한 문제에 시선을 옮겼다.

떨어져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얼굴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우서진은 웃으며 이야기했고 약리지는 예의 쌀쌀한 표정이었다가 어느 순간 토끼처럼 눈동자를 조금 크게 떴다.

우서진이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하게 어떤 말을 한 다음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쌀쌀함의 온도가 조금 올라갔다.

쉽게 말해 우서진에게 조금은 호의적인 태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약리지의 태도가 바뀌고 곧 두 사람이 기다리던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럼 내일은 웃으면서 보자."

"…그래."

돌아온 두 사람은 그렇게 인사를 나누며 도진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아직은 데면데면함이 묻어나지만 약리지는 명백하게 우서진에 대한 적대감을 씻어낸 모습이었다.

"잘 가."

"…너도."

우서진, 그리고 상미와 인사를 나누고 도진에게도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뒤 약리지는 남사현과 함께 돌아갔다.

그리고 우서진은 기다려 준 상미와 함께 걸으며 도진을 반짝이는 눈으로 보며 말했다.

"형 말대로였어요. 사과하니까 받아주더라구요."

도진은 피식 웃었다.

"걔 성격이 그렇게 모질지가 않거든. 고양이가 아니라 개과, 그것도 리트리버과라서."

"그건 잘 모르겠지만 진짜 형은 대단하네요. 이렇게 쉽게 해결될 줄은 몰랐어요."

"원래 사람 관계가 그래.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 일이 많아."

도진이 우서진에게 알려준 '방법'은 사실 전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약리지한테 사과해 봐.

-사과요?

-응. 진지하게 사과하면 아마 받아줄 거야.

-음……. 한 번 해볼게요.

바로 진지하게 사과를 해 보란 것이었고 우서진은 거기에 따랐다.

결과는 지금 나온대로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 사이의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곤 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너무나 큰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사실은 아주 많은 일들이 대화와 사과로 쉽게 해결되는 것이었다.

문제가 제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사실은 -1, 0, 1 중 하나가 답인 수학 주관식처럼 말이다.

다만 그래, 답은 간단해도 그 풀이가 어렵듯 대화와 사과를 잘 하지 못하고 또 받아주지 않으려 해 문제가 정말로 크고 어려워지는 것인데 우서진은 풀이를 해낸 것이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나.

어쩌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서진은 그러는 대신 어렸을 때의 내가 심한 말을 했어, 라고 솔직하게 사과함으로써 약리지의 찬바람을 데우는 데 성공했다.

우서진은 그런 사과를 할 수 있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약리지 또한 그 사과를 받아주는 성격이었다.

전생에서 약리지가 만만좌라 불리며 큰 미움을 사지 않았던 데에는 아버지이자 가주의 진상마저 포용하는 이미지 덕도 있었지만 그녀 스스로의 인성도 '호구스런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사과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치와와스런 면모와 달리 너무나 쉽게 용서하고 스르르 무너졌던 것이다.

아직 어려 순수한 지금은 더더욱 그런 면모가 부각되었다.

두 사람을 생각해 굳이 엿듣지 않았음에도 도진은 약리지가 우서진의 순수한 사과에 움찔하고 철벽인 척 했던 종이벽이 우르르 무너지는 대화를 상상할 수 있었다.

도진의 조언에 순수하게 사과한 우서진.

그리고 그런 우서진의 순수한 사과를 받아줄 수 있었던 약리지.

두 사람이었기에 풀이 또한 쉬울 수 있었다고 도진은 생각했다.

그런 도진의 생각과 달리 우서진과 윤상미는 도진교 열혈신도답게 또 한 번 이적이라도 목격한 것처럼 초롱초롱한 눈이었지만.

웃으며 도진이 말했다.

"이번 1학년은 팀워크가 정말 좋겠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유일하게 껄끄러웠던 우서진과 약리지의 사이도 해결되었으니 이제 새내기들 사이에 걱정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하나의 일이 해결된 회식 후 며칠 뒤.

도진은 오성아와 함께 집 안 주차장에 있었다.

* * * *

주차장 안에서 도진은 편안한 추리닝 차림이었는데 오성아는 꽤 파격적인 차림이었다.

밑은 기름때 묻은 거친 청바지에 위는 탱크탑이다.

어떻게 입든 스타일리시한 것은 변함없지만 오늘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어서 특히나 시선이 간다.

능력이 돋보이는 정장 차림이나 밥 잘 사주는 어른스런 대학생 누나, 혹은 여친룩 등의 모습이 아니라 남초 세계에서도 이질적이지 않은, 오히려 돋보이는 능력 있는 누나처럼 보이는 게 오늘의 모습이었다.

슈킨팍시의 본네트를 열고 살펴보는 그녀의 예술품과 같은 곡선을 그리는 등허리가 그 화룡점정이다.

"응, 매뉴얼대로 관리 잘한 거 같네."

"뭐, 별로 어렵게 할 건 없었거든요."

"어렵진 않지만 귀찮아하는 사람이 많잖아. 그런 면에서 도진이는 합격."

"감사합니다."

내부를 살피던 상체를 드는 그녀의 묶은 머리가 찰랑인다.

평소와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그녀는 이윽고 준비해 왔던 물건들을 세팅했으니 차량용 도장(塗裝) 장비들이다.

금이야 옥이야 다루지 않고 정말로 일상용 SUV로 슈킨팍시를 쓰던 도진이었기에 여기저기 까진 도색을 셀프로 해결하기 위해 그녀가 가져온 것이었다.

차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능력자답게 그 관심만큼이나 관련 지식과 기술을 겸비하고 있었으니 이렇게 셀프 정비와 도색마저도 가능했던 것이다.

-누..눈나..

-다음 생에는 슈킨팍시 철판으로 태어나고 싶다..

-나는 붓이 되고 싶어..

날을 잡아 정비와 점검을 하고 도색도 하기로 했는데 그날이 오늘이었으며 이것을 아예 콘텐츠 삼아 게시물만이 아니라 너튜브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덕분에 색다른 매력의 오성아가 방송을 찾은 사람들의 심장을 폭격하고 있었다.

"자, 그럼 내가 먼저 할 테니까 누나 잘 보고 따라해."

"예, 눈나."

"크큿, 눈나는 뭐야."

"그렇게 불러야 할 거 같아서요."

"꺄하하!"

좋은 분위기 속에서 도색이 진행되었고 여기저기 까져 있던 슈킨팍시의 외관이 번쩍번쩍하게 복구되었다.

-오성아 여신 눈나 도색 작업.gif

-아아.. 이것이 '눈나'라는 것이다..

-우리가 화화공룡의 안티가 되어야 하는 이유.avi

생각 이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온 도색 작업과 촬영이 끝나고 오성아는 샤워 후 촉촉해진 머리를 쓸며 일 이야기를 했다.

"개파식 게스트 초대는 잘 진행되고 있어. 우리 도진이 인맥이 워낙 좋아서."

"잘 됐네요."

"명성공방이랑 웨일스 후작가에다 유아도 회사 대표로, 대용이도 공식적인 신분으로 참석하기로 했고……. 규모 자체는 엄청 크지 않지만 게스트 네임벨류가 좋아서 충분히 화제가 될 거야."

"그렇군요."

"대용이랑 계약은 개파식 이후로 잡으면 되겠지?"

"네, 그렇게 해주세요."

개파식에 관한 준비도 오성아가 거의 다 해 주어서 날짜만 잡으면 된다.

슬슬, 비록 '천마신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문파를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도진이었다.

그런 문파의 업무를 도맡아주고 있는 오성아에게 도진이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누나. 누나 없으면 안 될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네요."

"어머, 그건 또 설레는 발언이네."

* * * *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여가 지났다.

그리고 주말.

도진은 상미와 함께 우벽진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명성공방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입학 시험 비무 우승자의 자격으로 받은 부상 중 하나, 명장 우벽진이 만들어줄 무기에 관한 미팅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하려면 입학식 전에 해야 했으니 상당히 늦은 시기에 방문을 하게 된 것인데 이는 우벽진과 협의가 된 내용이었다.

-으음, 혹시 괜찮다면 조금만 더 내게 시간을 줄 수 없겠나?

-네, 괜찮아요.

-고마워. 우선 이걸 이자 대신 주도록 하지.

우벽진은 상미에게 양해를 구하며 명검 하나를 이자 대신이라며 선물했고 상미는 수업 중 그 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우벽진이 상미에게 양해를 구하며 시간을 원한 건 이번에 새로 런칭하는 무구들의 작업 때문이었다.

우벽진의 작업 스타일은 제작 중인 하나에 철저히 집중하여 그 외의 모든 작업은 배제하고 그것의 제작에만 올인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작업이 끝나기 전엔 다른 작업을 하지 않는데 공교롭게도 일정이 입학 시험 비무와 겹쳐 버린 것이다.

때문에 상미에게 양해를 구했고 바로 어제, 하나의 작업이 끝났다며 연락을 주었다.

그 연락을 받고 방문한 명성공방 내에 마련된 우벽진의 공방은 최첨단의 장비들이 갖춰져 있음에도 흔히 대장간하면 떠올리는 클래식한 느낌이 강한 곳이었다.

실제로 우벽진은 무공까지 사용하여 그런 클래식한 작업으로 무구를 완성하는 타입의 명장이다.

"어서오시게."

"네, 안녕하세요. 내부가 꽤 시원하네요?"

우벽진의 환영에 인사를 나누고 도진이 웃으며 물었다.

눈빛은 형형하지만 지속된 작업으로 소모한 티가 나는 우벽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제 작업을 끝내고 불을 끈 뒤에 한숨 푹 잤거든."

클래식한 방식을 메인으로 작업하는 우벽진의 공방은 화로의 열기로 인해 데워져 있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드물게도 어제, 작업을 끝낸 우벽진은 한 번 화로의 불을 껐던 것이다.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으세요?"

이어지는 물음에 우벽진의 입꼬리에 강한 기세가 담겼다.

"음. 자네 덕분에 꽤 열심히 달릴 수 있었지. 이제 화룡점정만 남았어."

"화룡점정이요?"

"그래. 이번 시리즈의 이름은 '설란(雪蘭)'으로 정했어. 저번 눈(雪) 시리즈의 연작이지."

설란. 눈밭에 핀 난초라는 뜻이었다.

저번 시리즈가 새하얗게 내린 눈에 여러 뜻을 담았다면 이번엔 그 눈에 핀 도드라지는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우벽진은 말했다.

그리고 듣다보니 자연스레 도진의 시선이 상미에게로 향했다.

우벽진이 그 시선에 또 한 번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번 시리즈의 화룡점정은 상미 네가 되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도진이 예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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