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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77화 (277/741)
  • 276화

    승승장구하는 후기지수들은 위로 올라가면서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첫 번째가 미룡과 약봉의 대결이 되었다.

    양쪽 다 상대를 압도적인 실력으로 격파하고 올라왔기에 더더욱 누가 이길지에 관한 토론이 격렬했다.

    -미룡이 이기지 않을까? 김도진이랑 한 수 주고받는 것만 봐도 어나더 클래스 아님?

    -그렇게 따지면 약봉도 어나더 클래스지. 내공도 앞서는데 점접공(點蝶功)까지 있잖아.

    -ㅇㅇ 동감임. 미룡이 지금껏 압도적인 힘을 보여줬는데 그 힘이라는 측면에서 약봉이 밀릴 거 같진 않음.

    미룡 우서진의 강점은 막강한 '힘'이었다.

    그러니까 그 외모와는 다르게 파괴적이면서 강력한, 내공을 이용한 힘으로 상대를 제압해 왔다.

    외형은 무림 르네상스 시절 맹위를 떨치던 맹호추를 연상케하는 피지컬과는 반대되지만 구사하는 무공의 호쾌함과 강력함은 미룡이 맹호추의 분명한 후계자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허나 그 장점은, 또 아이러니하게도 청순가련하면서도 쿨한 이미지의 약봉과 공통되는 부분이었다.

    의선약가를 대표하는 게 바로 그 의술과 약술을 이용한 적공(積功), 내공 수련 효율의 극대화였기 때문에.

    무공에 관한 전반적인 부분에서의 아쉬움을 그 내공 수련 효율의 극대화로 얻은 우월한 내공량으로 상쇄하는 것이 의선약가였으니까.

    -서로가 똑같이 힘이 세면 결국 기술적인 면까지 갖추고 있는 약봉이 유리할 수밖에 없지.

    여기에 점접공이다.

    점접공은 의선약가를 대표하는 무공으로, 흔히 '방어가 통하지 않는 무공'이라 불린다.

    점접공은 점혈(點穴)을 수공(手功)에 접목하여 싸움 중에 상대의 혈을 짚어 버리는 무공이다.

    팔뚝으로 막으면 팔뚝의 혈을 짚어 버리고 다리로 막으면 다리의 혈을 짚어 버려 그 방어를 무력화하니 그야말로 방어가 통하지 않는 무공이 되는 것이다.

    물론 만능은 아니어서 항상 통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가지 제약도 많으며 실전에서 사용하는 게 지난하긴 했다.

    허나 일단 그런 게 가능은 하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고 자신의 역량이 받쳐주기만 한다면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는 그야말로 '무쌍(無雙)'을 찍을 수도 있다는 게 강점이다.

    그리고 약리지는 또래를 압도하는 무공으로 그렇게 무쌍을 찍으며 8강까지 올라왔다.

    "어떻게 생각해?"

    웹에서의 토론을 훑은 한유아는 씨익 웃으며 도진에게 물었다.

    승패를 묻는 말에 도진도 웃으며 답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약리지의 승률이 높긴 하죠."

    "헤에, 열혈신도를 외면하는 거야? 아니면 역시 남정네보단 예쁜 후배에게 더 끌리는 거?"

    "……."

    소담의 시선이 도진에게로 향했다.

    유지은 또한 슬며시, 남들 모르게 도진을 응시한다.

    그런 시선에도 도진은 언제나와 같은 분위기로 웃었다.

    "사실이 그런 거라 어쩔 수 없죠. 뭐, 하지만 저는 서진이가 이기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

    "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약리지보단 서진이를 더 응원할 수밖에 없기도 하구요."

    "흐응, 그렇구나아."

    그러면서 한유아는 다 알고 있다는 눈동자로 소담과 유지은의 눈을 스쳐갔다.

    두 사람은 움찔해 고개를 돌리면서도 어딘가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8강 1차전을 치르기 위해 약리지와 우서진이 비무대에 올랐다.

    "……."

    '으음…….'

    서로가 마주보는 자리에서 우서진은 자신을 노려보는 약리지의 시선에 조금 당혹스러워졌다.

    분명히 첫만남이었다.

    한데 어째서 이렇게 적대하는지 모르겠다.

    그 기세가 워낙 노골적이어서 중계 방송으로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약봉이 왜 저렇게 노려보는 거임?

    -그러게? 헛!@ 설마 치정 싸움인가?

    -치정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뭔 뜬금없잌ㅋㅋㅋㅋ

    -근데 또 모르지 정말로 그럴지도 ㅋㅋㅋ

    "풋."

    댓글을 읽은 한유아가 슬쩍 웃었다.

    그 웃음에 뭔일인가 싶어 한유아가 든 태블릿 화면의 댓글을 본 다른 멤버들도 작게 웃었다.

    "후배. 혹시 뭐 아는 거 없어?"

    "아뇨.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한유아의 물음에 도진이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도진도 약리지가 왜 우서진을 저렇게 째릿 노려보는지 이유를 몰랐다.

    심각하거나 부정적인 게 아니라 옐로카드가 남은 골든 리트리버가 으르릉, 하는 느낌이라 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보이긴 하는데…….

    "자기도 기억 못할 만큼 정말로 어릴 적에 썸이라도 있었던 거 아닐까요?"

    "꺄아! 폭 씨! 들었어? 썸일지도 모르겠대!"

    "…하다 못해 류 씨라고 해라, 이 아줌마야. 좀!"

    폭룡 류대현이 호들갑을 떠는 한유아를 밀어내며 비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서로 포권하고 바로 비무가 시작됐다.

    쿠웅-!

    기세를 일으켜 비무대에 한기를 퍼뜨리며 우서진이 돌진했다.

    비무이기에 본래의 무기 대신 특수한 나무로 만든 거대한 망치를 든 우서진의 돌진은 황소를 연상케 한다.

    틈이 크게 드러나는 휘두르기를 하는 대신 빠르게 접근하여 가볍게 끊어치거나 무기를 주욱 밀어 타격할 생각이었다.

    돌진하는 힘이 더해지면 그것만으로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기다란 자루를 양손으로 쥐었기에 어느쪽 손을 움직이냐에 따라 타점이 달라진다.

    약리지는 그런 우서진의 돌진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고 그만큼 생기는 반격의 기회를 노리려 했다.

    후웅-!

    한기와 함께 망치의 머리가 약리지의 상체를 노렸다.

    약리지는 반 걸음 옆으로 움직이며 망치 머리의 측면에 왼손바닥을 대고서 강하게 밀어냈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게 아니라 마찬가지로 강력한 내공의 힘으로 밀쳐 후속타를 억누름과 동시에 우서진의 균형마저 깨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공격을 위해 오른손을 동시에 움직였다.

    훅-!

    그 오른손엔 12cm짜리 판관필(判官筆)이 들려 있었다.

    본래는 쇠로, 그러나 역시 비무이기에 나무로 만들어진 판관필은 붓이라는 이름의 역할을 하기 위한 털 대신 뭉툭하게 갈린 촉이 달려 있다.

    그 촉이 약리지의 오른손을 막기 위해 움직이던 우서진의 팔뚝을 찍었다.

    팡!

    살과 뭉툭한 나무의 끝이 닿았는데 펑 터지는 소리가 난 건 서로의 내공이 격돌했기 때문이다.

    우서진은 팔의 저릿함을 터프함으로 억누르며 거리를 벌렸다.

    '음…….'

    점접공은 워낙 유명하기에 우서진은 이미 대비를 하고 있었다.

    허나 그렇게 대비를 하여 내공을 돌려 점혈을 위해 파고든 내공을 막았음에도 약간이나마 피해를 입고 만 것이었다.

    과연.

    그의 구세주 덕분에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며 잃었던 세월을 보상받는 것 이상의 힘을 얻게 되었지만 숭무고 입학 시험 비무의 벽은 그것만으로 훌쩍 넘을 만큼 낮지 않은 듯했다.

    만약 약리지의 판관필이 비무이기에 뭉툭하지 않았다면 더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뭐 우서진 또한 본래의 무기를 쓸 수 없었으니 이 부분은 '쌤쌤'이긴 하지만…….

    쉼없이 정진해 온 의선약가의 돌연변이는 우서진 못지 않은 내공에 아직 우서진은 가지지 못한 고도의 지식과 기술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야금야금 갉아먹혀 패배할 것이다.

    우서진은 그것을 알 수 있었기에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쾅!

    미미하나마 승기를 잡은 약리지가 끊임없이 몰아쳤다.

    중병기를 든 우서진은 한 손엔 판관필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수공을 구사하는 약리지를 상대로 지근거리에서는 불리했다.

    더더군다나 점접공을 통해 우서진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약리지가 끊임없이 하고 있으니 내공은 물론이요 정신적으로도 소모가 컸다.

    약리지는 그렇게 우서진의 방어를 깎으며 승리를 확정지으려 했고, 이내 우서진의 왼팔이 잠깐 마비되며 가슴팍이 훤히 드러났다.

    그 승리를 확정지을 수 있는 틈을 약리지는 놓치지 않았다.

    짧고 빠르게 파고들어 명치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충격을 주어 무력화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약리지는 굳이 길고 예쁜 손가락을 세웠다.

    혈을 짚어 뻣뻣하게 굳게 만듦으로써 더 인상 깊고 확실한 승리를 가져오려 했고.

    쿡!

    손가락이 명치에 닿고 내공이 쏘아짐으로써 그것은 성공하는 듯했다.

    허나.

    펑!

    '……아?'

    다음 순간 약리지는 우서진의 반격에 큰 충격을 받고 비무대 위에 눕게 되었다.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점혈은 성공했고 우서진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약리지의 감각이 거짓말이었다고 강요하듯 우서진은 곧바로 움직여 이겼다는 생각에 큰 틈을 드러낸 약리지를 제압한 것이다.

    처억.

    코앞에 들이밀어진 우서진의 무기에 결국 약리지는 패배하고 말았다.

    "승자! 우서진!"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퍼져 나간다.

    그것은 약리지의 것이 아니라 미운 우서진의 것이 되었다.

    그것이 분해서.

    "씨이……."

    약리지는 눈물을 글썽이고 만 것이다.

    "헐."

    상체를 일으킨 약리지의 눈에 맺힌 눈물에 도진이 입을 벌렸다.

    "야. 우네?"

    "응. 우네."

    집행부의 멤버들 또한 눈을 크게 떴고 지켜보던 사람들도 난리가 났다.

    -헐 ㅋㅋㅋㅋㅋㅋ

    -운다 ㅋㅋㅋㅋㅋ

    -뭐냐 이거 ㅋㅋㅋㅋㅋㅋㅋ

    어린 아이도 아니고 심지어 숭무고 합격생, 더욱 이름 높은 후기지수가 보이고 만 눈물이었으니 난리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닠ㅋㅋㅋ 정말 억울했나보닼ㅋㅋㅋ

    -승부욕 때문인가?

    -아니 어쩌면 진짜로 뭔가 둘 사이에 있었던 거 아님?

    폭발적으로 채팅이 쏟아졌으나 약리지가 왜 눈물을 보였는지에 관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우서진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이기고도 크게 당황해 허우적거리는 사이 약리지는 우서진의 내공에 깃든 삼음지체의 냉기보다 차가운 바람을 쌩쌩 풍기며 몸을 돌려 비무대를 내려가 버렸다.

    그런 모습을 도진과 한유아가 흥미진진한 눈동자로 지켜보았다.

    "와, 재밌다."

    "그러게요. 나중에 서진이한테 정말로 뭔 일 없었나 물어봐야지."

    "나도, 나도 같이 가! 후배!"

    "에이. 프라이버시가 포함된 문제일지도 모르는데 우르르 몰려갈 수는 없죠."

    "아! 진짜 너무하네!"

    "아줌마냐……. 적당히들 해."

    신나서 이야기하는 둘을 류대현이 짜게 식은 눈으로 보며 말했다.

    그러는 사이 약리지에 이어 우서진도 비무대를 내려갔다.

    그러면서 도진에게 시선을 향했고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었다.

    답하듯 도진 또한 웃어 주었고 그 장면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비무대 위에 다음 학생들이 올랐다.

    예상치 못했던 큰, 그러나 흥미진진한 사건에 웅성거리던 관람석이 조금은 가라앉았으니 다음 대전 또한 커다란 기대를 모았던 매치였기 때문이다.

    빙봉 윤상미 대 황룡 벽태웅.

    그냥 기대를 넘어 이번 입학 시험 비무에서 사람들이 가장 바라고 기대했던 매치였다.

    황룡 벽태웅.

    무림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했던 고수의 직전 제자로 무려 잠룡 김도진을 힘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폭발적인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설령 그것이 지극히 특수한 상황에서, 나쁘게 말하며 폄하하는 사람들이 '잠룡이 손가락 하나로 봐 준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심지어 그들마저 벽태웅의 힘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하고 있다.

    그런 벽태웅을 상대로 비무대 위에 오른 것이 빙봉 윤상미다.

    불행한 환경과 절망마저 딛고 이내 봉황의 이름을 얻은, 한겨울에 피어난 생명력 넘치는 난초와 같은 무인.

    잠룡 김도진과 같은 무맥을 이었다는 후기지수.

    이 둘의 격돌은 시선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한유아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이번에는 누가 이길 거 같아?"

    "상미요."

    한 치의 망설임없이 나온 대답에 한유아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헤에. 이번에도 팔이 안으로 굽은 거야?"

    "그건 부차적인 거고 이 승부는 상미가 이길 수밖에 없어요."

    "왜?"

    도진이 미소지으며, 그 안에 의심없는 확신을 담아 답했다.

    "저랑 약속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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