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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76화 (276/741)

275화

숭무고의 본 시험이 마무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올해, 숭무고 43기 신입생이 203명으로 확정되었다.

작년 42기보다 조금 신입생이 늘었다.

이제 남은 건 그 203명의 등수를 가리기 위한 비무회뿐이다.

그렇게 새로운 학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도진의 잠룡문도 슬슬 개파(開派)를 선언할 수 있을 만큼 구색이 갖추어졌다.

"문파 쪽은 서류를 포함해서 이제 다 갖춰졌어."

식사와 함께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특화된 레스토랑에서 도진과 마주한 오성아는 그렇게 말했다.

"암산서가의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생활에 익숙해졌고."

"잘됐네요."

암산서가의 사람들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자격증을 따면서 인터넷 학교도 다니고 있다.

그러면서 이사하고 무공까지 익히는 등 여러가지 일을 병행해야 했으니 쉽지 않은 일정이었는데 훌륭하게 소화해 주었다.

"개파식은 어떻게 할 거야?"

"음……. 글쎄요."

개파식.

한 문파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

결혼식과 같은 행사처럼 가능한 크고 화려하게 하는 게 관례이긴 했다.

"누나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도진의 물음에 오성아는 와인을 한 모금 그림처럼 마시고선 말했다.

"크고 화려하게는 하지 않아도 파티 정도는 여는 게 좋지 않을까? 특히 암산서가 입장에서는 세상에 자신들을 드러내는 의미가 있으니까."

"확실히 그렇네요. 네, 그렇게 진행해 주세요."

"응."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던가.

지인들이 참석하는 파티를 여는 건 확실히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첫 의뢰 말인데."

"네."

"대용이 회사에서 지인 찬스로 의뢰를 하고 싶어 해."

"대용이가요?"

"응. 이번에 경호를 늘리려 하는데 타임이 좀 애매한 감이 있거든. 거기서 우리를 떠올린 거야."

바른 엔터는 이번에 DS와 또 한 번 마찰을 빚기도 했고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작곡가 권이솔을 영입했다.

평범한 엔터였다면 괜찮은데 DS는 업계의 겉의 화려함만큼이나 어두운, 업계의 사람들은 다 아는 뒷골목 흑도의 성격이 짙은 회사였다.

때문에 그들을 경계하여 경호를 강화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기존의 경호를 전문으로 하는 문파 중 한곳과 계약을 맺고 있긴 한데 거기에 추가로 '파트 타임' 형식으로 경호를 늘리고 싶어했다.

"정규 계약을 하기엔 애매한 타임인데 그래서 딱 암산서가 사람들한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야."

네 명의 인원이 하루에 다섯 시간 가량 경호를 해 주는 조건이었으며 상황에 따라 연장될 수도 있다.

현재 소담을 제외하고 여덟 명인 암산서가의 제자들이 딱 2교대가 가능한 인원.

"개인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면서 특기를 살려서 경호를 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렇네요."

오성아의 말에 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파를 개파하긴 했지만 시작부터 무슨 거창한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건 아직 시기상조이기도 하다.

애초에 이른 시기에 잠룡문이란 이름의 문파를 개파한 것도 도진은 문주로서의 예행 연습을, 암산서가의 사람들은 문주를 기다리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목적에서 볼때 사회에 암산서가의 제자들이 적응하기 위한 공부도 하면서 특기를 살려 일할 수 있는 '파트 타임 경호'는 마치 맞춰서 준비하기라도 한 듯한 적절한 의뢰였다.

더더군다나 바른 엔터는 도진과도 깊은 연관이 있으니 시선이 집중되는 지금 외부에서 보기에도 나쁘지 않은 그림이다.

"개파식 이후에 계약을 검토해 보도록 하죠."

"응, 그렇게 진행할게."

오늘의 비즈니스를 위한 대화는 거기서 일단락 되었다.

식사가 끝나고 정원으로 나왔다.

도진은 후식으로 둘로 나뉘는 커플 아이스크림을 사 와 절반 똑 떼어 벤치에 앉아 있던 오성아에게 건넸다.

"고마워."

단 것을 좋아하지만 적게 먹는 습관을 들인 오성아는 아이스크림마저 이렇게 작은 것을 먹곤 했다.

도진이 두 개가 아니라 일부러 하나의, 1인분을 둘로 나눌 수 있는 커플 아이스크림을 산 건 그런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

"고마워요, 누나."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도진이 말했다.

오성아는 작은 입술로 아이스크림을 오물거리면서 매력적인 미소를 그렸다.

"내 문파잖아."

그러면서 하는 대답에 도진도 미소지었다.

이 눈부시게 매력적이면서 유능한 사람은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잠룡문의 기틀을 갖추고 세공해 주고 있었다.

의무가 아니라 스스로가 원해서.

그 마음가짐은 아까의 대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너의 문파를 떠올린 거야가 아니라 우리를 떠올린 거야.

오성아는 잠룡문을 자신의 문파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오성이 도진에게 접근하기 위한 의도에 따라 파견되었던 그녀가, 이제는 그 마음이 도진에게로 넘어와 버린 것이었다.

-껄껄. 인재를 홀려 버렸구나.

-그러게요.

-그 맹수 같은 아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구나.

오성의 군주를 '아이'라 칭하는 건 본래 어색해야 할 단어 선택인데 그걸 사용하는 게 천마 위지혁이다 보니 어색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오군성이 이 현대 무림의 절대자 중 한 명인 건 사실이니 아직 여물지 않은 도진에게는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도진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DS나 카자카미처럼 수작을 벌일 사람은 아니니까, 배에 힘 꽉 주고 있어야겠네요.

오군성은 동물에 비유하자면 하이에나가 아닌 호랑이다.

그러니까 도진이 '따님을 주십시오!'라고 하면 모은 저금이 얼마고 가진 집이 몇 평이냐고 묻는 게 아니라 '나에게 인정을 받아 봐라!'라고 포효하며 무공을 시험하려 드는 타입이란 말이다.

무력으로 일을 해결하려 드는, 다만 이런 경우에 한해선 오히려 환영할 만한 타입이다.

결론은 하나였다.

오성아를 쟁취할 수 있도록 더 강해지는 것.

그를 위해서도 도진은 천마심공의 5성에 이를 수 있도록 더 정진해야 했다.

"아이스크림 잘 먹었어."

"일 잘 해 달라고 드리는 뇌물이에요."

"어휴, 악덕 문주 같으니."

"하하."

* * * *

시간이 지나 숭무고 수석을 가리기 위한 비무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위해 입장했고 그 안에는 명문 무림 방파와 대기업의 스카우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명성을 쌓기 위해 신입생들은 각자의 기량을 비무대 위에서 뽐냈다.

그런 후배들을 도진을 포함한 집행부의 멤버들 또한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 년도에도 전도유망한 후배들이 많네."

말하는 건 이제는 집행부를 졸업한 폭룡 류대현이다.

3학년이 되며 집행부를 졸업한 그는 집행부원이 아닌 민간 무림 군사 기업 백호의 일원으로서 이 자리에 있었다.

밑바닥부터 경험해 올라와야 제대로 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아버지의 지론에 따라 오늘은 이렇게 스카우터 업무 수행 겸 비무를 지켜보러 온 것이었다.

그런 류대현의 말을 받는 건 비로소 집행부의 부장이 된 한유아다.

"그러게. 제일 탐나는 인재들은 우리 잠룡님이 쏙 빼갔지만 말이야."

무림 각계의 인사들이 이 비무를 보러 오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미래가 기대되는 인재들을 빠르게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번 43기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인재들을 상대로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약리지는 의선약가의 직계이니 당연히 다른 곳에 소속될 수 없다.

한데 마찬가지로 명성 공방에 소속되어 있으며 무림 르네상스 시절 이름을 떨치던 고수인 맹호추 우벽진에게 사사받은 우서진은 놀랍게도 잠룡 김도진이 세운 문파에 들어갔다.

더더욱,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아 영입 대상 0순위였던 빙봉 윤상미 또한 이미 잠룡문 소속으로 이름을 올렸음이 알려졌다.

뭐 어떻게 접촉을 하기도 전에 후기지수 둘이 잠룡문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하. 이게 다 제가 문주로서 유능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와! 양심 어디? 새내기 때는 그래도 조금 풋풋한 느낌이 있었는데 2학년 되자마자 헌내기 느낌 풀풀이네."

한유아는 그러면서 폭, 한숨을 내쉰다.

"이래서 인맥, 혈연, 지연 같은 게 무서운 거라니까."

우서진과 윤상미가 도진교 열혈신도라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사실 잠룡문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더라도 두 사람이 다른 곳에 갈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니 한유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배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죠. 선배야말로 양심 어디? 그 미모랑 바꾼 건 아니죠?"

"오, 우리 도진이 그래도 아직 풋풋함이 남아 있구나?"

"……."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다른 멤버들은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비무는 계속되었고 후기지수들이 활약했다.

호협남가의 남사현.

호협남가는 순수한 무가(武家)로 무공 실력만으로 명문가로 인정받는 곳이었다.

그 무림세가의 후계자답게 남사현은 인싸 기질이 다분한 분위기와 잘생긴 얼굴에 더해 뛰어난 무공 실력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그리고 그 남사현을 줘팬 전설 아닌 전설을 보유한 약봉 약리지.

약리지는 의선약가의 강점인 특출난 내공량과 '방어가 통하지 않는 무공'으로 또래를 압도하며 승승장구했다.

의선약가는 그 신체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의술로 무공의 효율을 높임과 동시에 내공심법의 효율도 극대화하는 기술을 연구했고 성과를 거뒀다.

그 성과 덕분에 의선약가의 무인들은 특히 높은 내공량을 자랑했고 그것이 의가(醫家)이면서도 무림세가로서의 지위 또한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졌으니 이른바 방어가 통하지 않는 무공이다.

경지에 이른 무인은 손가락에 내공을 담아 '점혈'을 할 수 있는데 의선약가는 이 점혈법을 무공에 접목하여 구사했으니 방어를 하면 그 방어 부위의 혈을 짚음으로써 방어를 무력화하는 방식이었다.

이를테면 팔로 막으면 그 팔의 혈을 짚어 팔을 마비시킨다.

그래, 팔꿈치의 어떤 부위를 강하게 부딪치면 느낄 수 있는 '그 고통'을 떠올리면 된다.

애초에 내공을 담아 점혈을 한다는 것부터가 웬만한 지식과 경지로는 할 수 없는 일인데 이걸 실전에서 구사할 수 있는 '의사이자 고수'가 약리지였으니 설령 숭무고 신입생이라 해도 웬만해선 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어찌되었든 도진을 상대로도 통하는 힘을 보여 주었던, 특히나 주목받는 황룡 벽태웅.

벽태웅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피지컬로 상대가 무엇을 시도하든 전혀 통하지 않게 만들었고 압살했다.

소거인 강거혁은 따로 세력에 소속되지 않은 야인이었고 그 야인의 제자인 벽태웅 또한 소속된 곳이 없었기에 우서진과 윤상미가 잠룡문에 이름을 올린 지금 영입 대상 0순위가 되었다.

우서진과 윤상미야 말해봐야 입이 아프다.

이미 본 시험에서 두 사람의 경지가 또래를 압도한다는 걸 도진에게 도전하며 단 한 수만으로 증명했었다.

차가운 기운이 어리는 닮은꼴의 기세를 발산하며 두 사람은 파죽지세로 이겨나갔다.

그렇게 주목받는 다섯 후기지수 중 두 사람이 이내, 격돌하게 되었다.

"오. 재밌겠다."

약봉 약리지 대 미룡 우서진.

별호를 얻은 후기지수들의 대진이 8강에서 이루어졌다.

"헐."

그리고 거기서 결국, 큰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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