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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73화 (273/741)

272화

원칙적으로 숭무고의 본 시험은 공개 전까지 비밀이었고 그 비밀을 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니고 숭무고의 본 시험에 도전하는 학생들의 집안이 보통이 아닌 만큼 어떤 형태로든 약간의 정보는 새어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이번 시험도 금화도에서 열린다는 게 알려졌다.

그를 포함한 몇 가지 단편적인 정보로 숭무고 응시생들은 이번 본 시험 또한 배틀로얄이라 생각하고 철저한 준비를 해왔던 것인데…….

"팀 데스매치라니, 제가 생각하는 그게 맞습니까?"

어느 응시생의 물음에 정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생각을 내가 읽을 순 없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데스매치의 형식이라면 틀리지 않다."

응시생들은 눈으로 '이런 미친'이라고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들의 눈에 비치는 2학년들의 면면이 면면이었으니까.

무림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1년의 차이는 단순한 발육의 차이가 아니라 적공(積功), 쌓은 무공의 차이다.

하물며 압도적인 재능을 인정받는 숭무고 학생들 사이에서의 1년은 그야말로 바다가 땅으로 바뀌는 '간척 사업'에 비유할 정도의 차이를 만든다.

심지어.

작년 숭무고 42기는 손꼽히는 황금 세대였는데 거기서도 예외로 여겨지는 괴물 중의 괴물 김도진이 끼어 있다.

백설을 만지작거리는 잠룡을 보고 있자니 마치 범퍼카를 타고 싸우는데 진짜 트럭이 와서 들이받아 버리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정도수는 응시생들의 그런 표정을 마주하며 말했다.

"물론 무턱대고 응시생들에게 2학년과 싸우라고 하는 건 아니다. 세세한 규칙이 있으니 나눠주는 유인물을 꼼꼼하게 숙지하도록."

"유인물을 숙지할 수 있도록 30분 뒤 1조의 시험을 시작하겠다."

이 시점에서 응시생들은 깨달았다.

장소가 금화도일 뿐 이번 본 시험이 배틀로얄과는 아주 많이 다른 형태라는 것을.

어쩌면 장소가 금화도라는 정보부터가 낚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맞을 것이다.

응시생들은 숨을 죽이고 유인물의 내용을 확인해 나갔다.

"기본적인 구도는 팀 데스매치가 맞구나."

273명의 응시생을 네 조로 나눠 네 번의 시험이 치러진다.

시험을 치르는 응시생들은 3인 1조로 활동하며 2학년들은 단독으로 활동하되 할당된 자신의 구역을 벗어날 수 없다.

응시생들이 합격하기 위해선 포인트를 모아야 하는데 이 포인트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셋이다.

하나는 맵, 그러니까 금화도 곳곳에 숨겨진 구슬을 습득하는 것이다.

가장 적은 점수를 주지만 안전하고 빠르게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는 2학년을 공격하여 포인트를 따내는 것이다.

응시생과 2학년들은 모두 특수 제작된 무복을 입게 되는데, 이 무복에는 입은 피해를 수치화하는 장치가 달려 있다.

입힌 피해에 비례하여 점수를 얻을 수 있는데 구슬 수집보다 훨씬 많은 점수를 획득하는 게 가능하다.

문제는 응시생과 2학년들 모두에게 게임처럼 '체력'이 부여되었으며 이 체력을 다 잃으면 게임 오버라는 거다.

괜히 2학년을 공격하다 체력을 모두 잃으면 시험마저 탈락할 리스크가 있었다.

더 나아가, 시험은 그렇게 간단하게 구성되지 않았다.

구슬의 총 수량은 응시생들 중 절반이 겨우 합격선에 턱걸이 할 정도로밖에는 배치되지 않았다.

그리고 점수를 다 모은 순간 선착순으로 합격이 결정되며 거기에 사용된 구슬은 소멸된다.

더욱, 시험이 치러지는 금화도의 구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좁아진다.

2학년은 처음엔 아주 많은 제약을 달고 있다.

일정 이상의 내공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다른 2학년과 팀을 이룰 수 없으며 단독으로 활동해야 한다, 도주는 가능하지만 추격은 할 수 없다 등등.

이 제약은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해제된다.

여기서 응시생들의 선택지가 늘어난다.

차라리 구슬을 모을 시간에 2학년들이 제약을 덕지덕지 달고 있을 때 협공을 하면 어떨까, 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흘러가면 응시생 전체가 2학년들을 무찌르고 합격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이상적인 이야기다.

2학년들은 도주를 할 수 있는데 과연 그것을 잡을 수 있느냐는 의문만이 아니다.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세 번째 방법, 다른 응시생들을 공격하면 된다는 게 치명적이다.

이쪽 역시 구슬을 모으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으며 심지어 '팀킬'마저 가능하다.

같은 조를 구성할 팀원의 선택부터가 골치 아파진다.

구슬은 부피가 큰 편인데 그것만으로 합격하려면 수십 개를 넘게 모아 들고 다녀야 하니 합격이 가까워질수록 위험해지기까지 한다.

결국 다 따져보면 구슬을 모으는 게 안전하다고 빠르다는 장점마저 사라져 버린다.

"구슬을 모으면서 우리끼리도 경쟁을 하게 될 텐데 차라리 초반에 2학년을 노리는 게 낫지 않을까?"

여기에 응시생들은 목숨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것까지 더해지니 정말로 골치가 아프다.

응시생들은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분주했다.

그 사이 30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1조가 시험을 치를 시간이 되었다.

"지금부터 5분 안에 조를 짜도록. 먼저 완성된 조부터 선착순으로 입장해 바로 시험을 치른다."

"이런 미친!"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고 응시생들의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졌다.

사족이지만, '이런 미친'이라 소리친 학생은 정도수에 의해 감점을 받았다.

처음부터 믿을 만한 친구가 있는 응시생들은 빠르게 조를 구성해 입장했고 그 모습에 초조한 얼굴로 급히 조를 짠 응시생들이 뒤따랐다.

"어쩌지?"

"글쎄……."

우서진과 윤상미는 다급하지 않은 얼굴로 고민하고 있었다.

조를 만들기 위해선 한 명이 더 필요했는데 두 사람에게는 이렇다 할 만한 지인이 없었던 것이다.

무조건 3인으로 구성하도록 강제되었기에 무조건 한 명이 더 필요했다.

우서진은 슬쩍 주위를 둘러 보았고, 우연히 약리지와 눈이 마주쳤다.

찌릿!

'어?'

그리고 약리지는 우서진을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고선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뭐야?'

우서진으로선 초면인 약리지에게 무슨 원한을 샀나 고민을 하게 만드는 눈맞춤이었다.

그런 고민을 안긴 약리지는 소꿉친구인 남사현, 그리고 남사현의 친구와 조를 이뤄 입장해 버렸다.

결국, 우서진과 상미는 마지막까지 남아 버렸고 마찬가지로 홀로 남은 곰 같은 체구의 남학생과 조를 짜게 되었다.

"잘 부탁해. 벽태웅이라고 해."

"아, 응. 잘 부탁해."

동글동글한 인상에 그렇지 못한 흉악한 몸.

도진이 눈여겨 보았던 그는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먼저 인사했고, 그렇게 마지막까지 남은 인원으로 구성된 최후의 조가 시험장에 투입되었다.

* * * *

"2학년들을 치자."

도슬구는 의견을 낸 조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삼수생에게 시선을 향했다.

단파문과 동맹이라 할 수 있는 문파의 제자인 그는 그리 뛰어난 무인이 아니었다.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그 문파 문주의 장남이었던 덕분에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한데 정작 자신은 그런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하고 숭무고에 들어가겠다 호언장담하며 두 번을 들이박았고 이내 삼수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림고등학교는 수능과 달리 단 세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으며 나이 제한도 있다.

공부와 달리 무공은 제한없이 응시하게 둘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극단적인 예시로 이미 무림에서 이름을 떨치는 중년의 고수들이 대거 숭무고에 입학하겠다고 원서를 내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식의 문제를 막기 위한 장치였고 그로 인해 삼수생, 태진헌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이런 배경이고 이쯤 되면 좀 진중하게 움직여야 할 텐데…….

태진헌은 도슬구의 눈으로 보기에도 불안불안했다.

두 번째까지도 관문 시험을 통과 못했던 그는 이번에 기어코 관문 시험을 뚫고 본 시험을 치게 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자신감을 부여했는지 기세등등하게, 자신감에 넘치는 얼굴로 2학년을 치자는 선언을 하게 만든 것이다.

"…괜찮을까요?"

도슬구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태진헌과 또 한 명의 삼수생은 썩어도 준치라고 2년이나 무공을 더 익힌 만큼 기준을 넘길 수준은 되었다.

거기에 도슬구도 이를 악물고 이 1년동안 실력을 늘렸다.

-숭무고에 입학하지 못하는 한 너는 중등반을 졸업하지 못한다.

문주의 엄명에 따라 그는 아직도 '중등반 대사형'이었으며 이번에 입학하지 못하면 내년에도 중등반 대사형으로 남아야만 했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세 번의 기회마저 놓치면…….

때문에 그는 본성마저 죽이고 필사적으로 수련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힘든 1년을 보내야만 했다.

유망주에서 낙오자로.

여기서 더 나빠져 최악의, 벼랑 끝에 몰리기 전에 재수만으로 끝내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그렇기에 그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숭무고의 2학년들은 아마 지금의 그 이상으로 강할 텐데 과연 세 명이라 해도 이 멤버로 2학년을 치는 게 맞을까, 하고.

그런 그의 불안에 태진헌이 강하게 주장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우리 전력이 응시생들 중에선 상위권일 거란 말이야."

"……."

동의하기 힘들어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구슬을 모으다 보면 끝없이 치고박아야 할 지도 모르는데 그러다 보며 분명히 사고가 날 거란 말이지?"

"예, 아마도."

이건 동의할 수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 같은 룰은 분명히 배신, 통수, 기습 등의 장면을 수도 없이 만들어낼 것이었다.

변수가 너무 많았다.

"그런 리스크를 수없이 안아야 할 바에는 차라리 2학년을 노리는 게, 그것도 지금 노리는 게 정답이란 말이지."

"자, 생각해 봐. 지금 2학년은 추격도 못하고 중등반 수준으로밖에는 내공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야."

바로 지금, 시험을 시작한 이 순간이 2학년이 제일 약한 순간이다.

"심지어 무슨 문제가 있으면 우린 도망가면 돼. 지금은 추격도 금지잖아."

"어……."

듣고 보니 생각 이상으로 그럴싸했고 설득력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2학년은 정상적인 싸움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심지어 이쪽은 세 명이지 않은가 말이다.

"괜찮지? 오케이. 그럼 해보자."

결국 도슬구는 삼수생들의 의견에 따라 2학년을 노리기로 했다.

그리하여 금화도의 중앙을 향해 전진하던 그들이 처음 보게 된 2학년이…….

'아, 시발…….'

김도진이었다.

도슬구는 과거 굴욕을 준 도진에 대한 유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엔 김도진이 너무 거물이 되었고 타의였다지만 꾸준하고 고된 수련으로 인한 내면적인 성장이 생각보다 컸다.

덕분에 객관적인 비교와 판단으로 이건 물러나야 한다 생각했지만.

"오케이. 처음부터 대박이 걸렸네. 하자."

"……예?"

이게 뭔 개소리지?

입밖으로 내지 못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도슬구를 두고 삼수생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정면에서 미끼가 될 거다. 너희는 뒤에서 쳐."

나름 희생적이고 멋있는 면모를 보여주는 태진헌이었지만 도슬구는 거기에 감동할 수 없었다.

"김도진이니까 우리가 몇 대만 때려도 대번에 합격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가산점도 받을 수 있겠지!"

2학년이 모두 같은 점수를 주는 게 아니었다.

작년 성적에 따라 차등으로 점수가 주어졌고 도진은 수석이었기에 가장 큰 점수가 배정돼 공격을 성공시킬 수만 있다면 압도적인 점수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곳으로 오며 생각보다 많은 구슬을, 그것도 충돌없이 획득한 태진헌과 다른 삼수생은 몇 대라도 때릴 수만 있다면 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눈이 돌아갔고, 도슬구가 어어하는 사이 행동을 시작해 버렸다.

"김도진!"

태진헌이 소리치며 특수 제작된 목검을 내밀고 기세 좋게 돌진했다.

그야말로 만점짜리 어그로였다.

그런 태진헌의 정면, 그러니까 도진의 뒤로 돌아가 다른 삼수생과 어쩔 수 없이 맞춰 공격을 시작한 도슬구가 있었다.

'됐다!'

제자리서 움직이지 않는 도진을 보며 태진헌은 목검을 쥔 손에 불끈 힘을 주었다.

침착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어쨌든 기습은 성공했다.

제아무리 잠룡이라지만, 아니 오히려 잠룡이기에 중등반 수준으로 제한된 내공은 치명적일 것이다.

그에 비해 태진헌은 삼수생의 최대 장점인 응시생들 중 손꼽히는 내공을 제한없이 사용할 수 있다.

미끼이지만 동시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역할을 자처한 자신감의 이유였다.

여기에 퇴로를 그의 친구와 단파문의 재수생이 차단하며 공격해 들어오고 있으니 이건 그가 그린 합격 플랜의 화룡점정이다!

슥-

…라고 생각했던 그는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사라진 도진의 모습에 '어?'하고 멍청한 얼굴이 되었다.

확 트인 시야로 두 눈을 크게 뜨는 친구와 단파문 재수생의 얼굴이 보였다.

뭐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세상이 반전했다.

아니, 그의 몸이 뒤집힌 것이었다.

한 박자 늦게 그는 바로 옆에서 도진이 다리를 걸었다는 걸 깨달았다.

타의로 공중 옆돌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뭐야? 뭔데?'

귀신에 홀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그는 혼란스러워하며, 그래도 관문 시험을 통과한 수준의 무인으로서 대응하려 했지만.

뻑!

"켁."

도진의 손이 명치를 때리자 훨훨 날아 개구리처럼 바닥에 엎어졌다.

"어, 시발?"

이어서 이번엔 다른 삼수생이 무력화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눈에서 사라졌던 도진이 뒷목을 쳐 한 방에 보내 버린 것이었다.

그것을 모두 지켜본 도슬구는 생각했다.

'인생, 시발…….'

그의 눈에는 도진이 훤히 보였는데 삼수생들의 눈에는 도진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멀리면 보면 희극이라 할 만한 광경이었지만 도슬구는 그들을 바보취급하지 않았다.

우습게도, 아니 슬프게도 그는 그걸 이미 작년에 겪어 봤기 때문이다.

서소담의 미모에 낚여 시비를 걸다 쳐맞았을 때 딱 그랬다.

그리고 그렇기에 예상할 수 있었다.

작년과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당하리라는 걸.

훅-

이런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어서 그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귀신처럼 사라진 도진의 한 수에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악몽을 꾸었다.

내년, 열아홉의 나이에도 중등반 대사형이라 불리는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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