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기레기.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이 시대에서는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단어였다.
하물며 그것이 결코 과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니 기레기란 말을 과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격 미달이면서 악질인 기자들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김용석은 그런 기레기 중 한 명이었다.
특종 전문 기자라 불리며 메이저 언론사에서도 에이스로 대우받았으나 사실은 그것들이 '악질 기레기짓'을 통해 얻은 특종이라는 게 드러났다.
그 공로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회사에서 커버를 쳐 줄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퇴출되었다.
하지만 김용석은 몰락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기레기였다면 여기서 커리어가 끝장났겠지만 김용석은 나쁜 쪽으로 난놈이었던 것이다.
대번에 너튜브를 주목하고 자신의 채널을 개설, 온갖 논란에 힘입어 크게 성공해 버렸다.
너튜브에선 그동안 그를 옭아매던 여러가지 것들을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였던 것이 오히려 그에게 있어선 목줄이었던 것이다.
사이버 렉카.
너튜브의 기레기라고 해야 할까.
온갖 사건 사고, 이슈에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그 정보들을 짜깁기하고 과장하며 교묘하게 왜곡하는 등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와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에 대한 멸칭.
김용석은 그 사이버 렉카계의 거물이 되어 오히려 더더욱 성공한 것이다.
그런 그가 상미의 이슈에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한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온갖 커뮤니티의 이슈를 수집했고 여타 '기레기'들이 영양가없는 기사를 올릴 때 그는 준비를 마치고 발로 뛰었다.
'그러니까 너희는 안 되는 거야.'
성공하기 위해선 특별해야 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기에 영양가없는 흔해빠진 영상이 아닌 특별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숭무고를 찾았고 그것이 스스로의 특별함이라 자부했다.
윤상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직 관문 시험을 다 치르지 않아 오늘도 학교에 왔다는 걸 확인했고 그는 특유의 감으로 이슈가 모이는 곳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카메라를 켜고 마이크를 준비하여 상미에게 접근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용석 전 기자입니다."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윤상미 학생에 관해 취재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원조교제나 일진설 등 좋지 않은 소문에 대한 해명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협의되지 않은 취재는, 그것도 무림에서의 취재는 금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라면 차라리 법 이상으로 금지되는 행위.
하물며 그가 입에 담는 것들은 하나같이 민감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온갖 것들에 구애되는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가 아닌 성공한 너튜버였기에 신경쓸 필요가 없는 금기였다.
"……."
상미가 그를 일절 상대하지 않으며 어린 나이치고는 제법 잘 대처하고 있지만.
"뭐야."
"아. 저 사람."
그리고 웅성거림과 함께 그를 알아본 사람들 중 일부가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그에겐 이것들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욕을 먹는 건 익숙했다.
일말의 타격도 되지 않는다.
그는 강렬한 관심이 된다는 면에서 오히려 그런 과격한 반응마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요(要)는 관심이다.
어떤 형태로든, 어떻게든 더 큰 관심을 끄는 것.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든 전 국민에게 욕을 듣는 것 등은 일절 고려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너튜브를 개설하고 처음 올렸던 영상부터가 그랬다.
낚시, 과장, 음모론.
영상을 본 사람들은 욕을 했지만 그는 그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보았다.
욕을 한다는 건 그 욕 댓글을 남길 만큼의 관심을 끌었다는 거다.
그것은 차라리 '업적'이었고 그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더더욱 어그로를 끌어대 사이버 렉카계의 대부라고까지 불리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그랬기에.
"동의없는 취재로 인한 소란은 퇴거 조치의 근거가 됩니다."
일순 숨이 턱 막힐 만큼의 존재감과 함께 등장한 도진의 시선에마저,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씨익-
'웃어?'
오히려 굳어 있던 입술을 움직여 곡선을 그리며 말했다.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윤상미 학생이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아 취재 욕심을 내고 말았습니다."
"……."
몸을 돌리고 자리를 떠나려 했으며 일절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명백한 거절'이 아니었기에 욕심을 냈다고 그는 말한 것이다.
"와, 개뻔뻔하네."
"여윽시 김기레기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욕했다.
김용석의 악명은 대중에도 널리 날려져 있을 만큼 대단했다.
허나 그는 그것마저 오히려 명성으로 여겼다.
악명은 커녕 좁쌀만 한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자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는 독보적인 관심을 받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전직 기자로서 국민 여러분들의 알 권리를 위해 뛰고 있습니다. 김도진 학생도 인터뷰에 응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대박."
"어쨌든 저 정도 되니까 50만 구독자 찍는 거구나."
무시무시한 존재감과 명성의 도진을 상대로 빼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간 것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이었다.
어차피 대답을 듣지 못할 건 알고 있었다.
그건 애초에 예상했던 일이다.
중요한 건 영상에 김도진에게도 인터뷰를 권한 내용이 담긴다는 거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쏟아질 여타 영상들과 명백하게 차별화되는 요소이자 광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심상세계에서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읽은 장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난놈은 난놈이로구나.
위지혁도 허허 웃었다.
-그것이 올바르지 않은 방향이라 해도 확고한 신념을 가진 놈은 번거롭지.
도진이 나타나 눈을 맞춘 시점에서 웬만한 자들은 꽁지를 빼기 바빴을 텐데 김용석은 그러지 않았다.
거기서 김용석의 비뚤어진 신념이 보통이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이네요.
물론 도진은 거기에 감탄하거나 흡족해하지 않았다.
도진의 도기(道器)로서의 면모는 오직 선한 자에게만 드러나는 것이다.
악인을 상대로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호감을 보이지 않았으며 맞선다면 쳐부술 뿐이었다.
때문에 김용석의 물음에 도진이 떠올린 것은 이놈을 어떻게 응징할지 방법을 찾는 내용뿐이었다.
거기에 장호가 말했다.
-저놈, 그놈이지 않느냐.
-그놈이요?
-김용석.
-김용석이라면…… 아.
이름 석자를 되뇌이던 도진은 이내 전생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김용석. 그래, 김용석이었다.
네티즌들이 말하길 기레기와 사이버 렉카가 퓨전하여 탄생한 끔찍한 혼종.
미래에 심지어 정치계에도 줄을 댄 거물로 성장하는 김용석은 나쁜 의미로 레전드였다.
다만 그 끝은 결국 좋지 않았으니 몰락의 원인을, 도진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장호에게 세세한 내용을 들은 도진은 방법을 정하고 씨익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알 권리라……. 좋은 말이네요."
"예, 그렇지요."
갑작스런 태도의 변화에 김용석은 긴장하면서도 맞장구를 쳤다.
도진은 휴대폰을 꺼내 녹화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김용석 기자님에 관해 취재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말이죠."
"아, 그러십니까?"
김용석은 짧은 사이 당황을 갈무리하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웬만한 걸로는 결코 그에게 흠집을 낼 수 없을 것이었기에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흠집이 나 있었기에 김도진 같은 '정파의 무인'이 무언가를 해 봐야 의미 있는 흠집이 되지 못할 거라 확신했기에.
그런 그에게 도진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조강지처 놔두고 두 집 살림을 안 들키고 하는 기분은 어떠세요?"
"……예?"
* * * *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김용석이 무너진 건 두 집 살림을 무려 10년이나 지속했다는 걸 들켰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바람 핀 상대가 낳은 아이가 열 살이나 되었다.
더더욱 충격적인 건, 그 상대가 다름 아닌 본래 그가 기자로 일했던 언론사 사장의 딸이며 그 딸이 김용석의 두 집 살림 생활을 감추느라 아이 아빠를 알 수 없는 미혼모로 살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대한민국이 뒤집어질 거대 이슈로 화제가 되었고 필연적으로 '기레기'와 '사이버 렉카'들이 미친듯이 날뛰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레기이자 사이버 렉카의 정점이던 그가 업계에 스스로 희대의 장작이 된 것이다.
온갖 유언비어가 휘몰아쳤고 심지어 목숨의 위협까지 받으며 그는 자진하여 감옥에 들어갔고 이후로도 스스로를 숨기며 두문불출해야 했다.
시기상 그게 지금으로부터 8년 뒤였으니 지금 김용석은 한창 두 집 살림 중이며 심지어 아이까지 있었다.
도진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찔러 넣었고 김용석은 경악한 얼굴로 '그걸 어떻게 알았'까지 중얼거리다 스스로 치명적인 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알게 모르게 도진의 압박에 판단력이 흐려진 데다 장호에게 배운 수법까지 응용했다.
여기에 상상도 못할 내용으로 허를 찔렸으니 김용석 정도나 되는 인간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그 뒤는 뭐, 안 봐도 블루레이였다.
허접지겁 자리를 뜬 그는 8년 일찍 기레기와 사이버 렉카들이 크게 키우는 불길의 장작이 될 것이고 몰락할 것이었다.
그렇게 김용석을 보내 버린 도진은 상미와 함께 카페의 프라이빗룸에 마주 앉았다.
상미는 고개를 떨구고 커피를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명백히 상심한 기색이었다.
"기운 내."
도진의 말에 상미가 고개를 들고서 눈을 맞췄다.
"이번 일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에요."
"그래?"
"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제 과거의 과오는 스스로 감당해야 하고 그것을 씻을 수 있는 무인으로서의 증명을 하기로 했거든요."
"헤에. 대단하네."
그 칭찬은 진심이었다.
어느새 그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상미는 성숙해져 있었다.
"다만, 이번에도 또 도움을 받고 말았다는 게 스스로가 아직 부족하다는 걸 깨달아서요."
이어진 상미의 말에 도진은 조금 진지한 눈이 되었다.
그리고 사과했다.
"미안."
상미의 눈이 커졌다.
"왜 오빠가 사과하세요."
도진은 상미와 눈을 맞춘 채 말했다.
"이번에도 네가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내가 끼어들고 말았으니까."
그래, 저번 장영준 때의 일도 그렇고 이번 일 또한 '결국은' 상미가 해결할 수 있는 시련들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감내해야만 할 것들을 용납하기 싫어 도진은 나선 것이었고.
어떻게 보면 과보호였다.
"사실은 알고 있어.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잡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게 좋다는 거. 아, 조금 안 맞나? 어쨌든 중요한 건 상미 네가 할 수 있었던 일들에 내가 멋대로 끼어들었다는 거지. 그래서 넌 이렇게 침울해진 거고. 그러니까 나는 사과해야만 하는 거야."
"아뇨, 그래도……."
도진의 말이 옳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미는 도진이 사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유일신은 언제나 옳으니까.
명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순수하게 자신을 동경하는 그 마음만큼은 읽을 수 있었던 도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과를 했으니 조금 변명을 하자면…… 너는 도움을 받아도 돼."
"너는 항상 스스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고 실제로 해결한 적도 있고 해결할 줄도 아니까. 그러니까 조금은 도움을 받아도 된단 말이야."
"게다가 너는 이제 겨우 열일곱이 되었잖아? 스스로 다 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도움을 받아도 되는 나이야. 도움만 받으려 하는 나태한 사람이 아니니까. 날 돕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아니까."
그래, 모든 걸 스스로 짊어질 필요는 없다.
아직은 보호를 받아도 될 아이이지 않은가.
조금 서툴러도 되고 조금 잘못해도 된다.
벌써부터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지 않아도 상미는 반성하고 발전하여 이윽고 그럴 수 있는 어른이 될 거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아. 부담가지지 않아도 돼. 지금은 도움을 받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