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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70화 (270/741)

269화

그날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도진은 집행부 멤버들과 함께 집행부실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TJ 푸드, 그러니까 서태주네 부모님의 회사에서 협찬한 '고기듬뿍도시락'이다.

그 이름대로 고기가 듬뿍 들었는데 무인에게 해로운 영향이 있는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영양소는 확실하게 챙긴 '퓨어 푸드'다.

일반 음식보다 몇 배는 비싼 무림인을 대상으로 한 그 퓨어 푸드 라인의 도시락을 TJ 푸드에서도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이번 숭무고 입학 시험에 협찬함으로써 광고했다.

"오, 맛있네."

"응. 자 아, 해."

"아……."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먹여주는 건 이젠 완전히 대놓고 커플질을 하는 오대용과 주정아다.

주정아가 적극적이고 오대용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여자친구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했다.

한유아는 언제나처럼 웃었고 민지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도진은 삼촌이라도 되는 것마냥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 보았고 소담은 반찬을 집는 젓가락의 움직임이 조금 부자연스럽다.

자기도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물론 시도하진 못했는데 그것을 나지윤은 보고도 모른 척해 주었다.

유지은은 그런 모든 멤버들의 모습을 두 눈에 다 담으며 식사했다.

현재 집행부의 멤버는 이렇게 여덟 명이었다.

작년의 아홉 명에서 폭룡 류대현이 빠져 여덟 명이 되었다.

류대현은 작년을 끝으로 집행부를 '졸업'했다.

탈퇴라고 하면 어감이 조금 좋지 않으니까 졸업이란 단어를 썼다.

사실 3학년이 되는 숭무고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이렇게 졸업반으로써 무림과 가까워지고 학교와는 멀어지게 되니 3학년이 되었음에도 그대로 집행부에 남은 한유아와 민지서, 유지은이 특이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집행부를 졸업한 류대현은 여러 행사에서는 빠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연락은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오늘은 도시락이지만 내일은 포장마차 거리로 나가야 할 거야. 그러니까 다들 예쁘게 꾸미고 와."

"네! 대용아, 있다가 백화점 가자."

"그래."

이번에도 주정아가 활기차게 대답했고 오대용은 예스맨의 역할에 충실했다.

오늘 집행부의 점심이 도시락이 된 건 업무가 바쁜 것도 있지만 외부로 나가면 수많은 시선들에 아무래도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빗룸을 잡으려면 외부로 나가야 하는데 업무로 바쁜 학생 신분으로 시선이 집중되는 지금 시기에 굳이 프라이빗룸까지 잡기엔 뭐해서 이 시기 집행부는 보통 점심을 도시락으로 떼우곤 했다.

다만 매번 그럴 수 없는 건 마찬가지로 시선이 집중되는 이 시기에 시찰을 포함한 여러가지 목적으로 포장마차 거리에서 점심을 먹는 게 전통 아닌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도진은 신경쓰지 않아 몰랐지만 작년에도 한유아의 집행부는 포장마차 거리에서 점심을 해결했었고 올해도 그 일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도진은 어쩐지 정말로 국회의원이라도 된 것만 같은 기분에 피식 웃었다.

"정장 입고 와야겠네요."

도진에게는 웨일스 후작에게 선물받은 맞춤 양복이 있었다.

그것을 떠올리며 농담을 하니 한유아가 하얗고 기다란 검지손가락을 들고선 좌우로 저었다.

"에이, 그건 너무 작위적이잖아."

"아하하. 그런가요?"

학생이니까 당연히 교복을 입어야 한다.

"그러지 말고 같이 장식이라도 사러 가는 건 어때?"

"오, 찬성!"

함께 쇼핑하러 가자는 한유아의 제안에 유지은이 동의했고 소담도 눈을 반짝이면서도 어쩐지 아쉬운 감정을 함께 담아 찬성했다.

"어, 그럼 우리 다 같이 가는 건가요?"

주정아의 물음에 한유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희는 커플 데이트 해. 여긴 솔로들의 모임이니까."

"헤헤."

주정아는 웃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는 사이 저녁에 다 같이 쇼핑을 하러 가기로 약속이 잡혔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가 이번 년도 신입생들로 바뀌었다.

"이번 년도에도 눈에 띄는 후배들이 많네."

"그래요?"

"응. 특히 주목할 만한 건 여섯 명 정도?"

"많네요."

도진은 이번 년도의 '본래 후기지수'에 관해 단 한 명, 약봉 약리지밖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는데, 전생을 기준으로 하여 15년도 넘었던 과거의 후기지수를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 순 없었으니까.

심지어 전생의 이 시기에 도진은 평생을 감당해야 할 장애와 불행에 짓눌려 있었으니 더더욱 그런 것에 관심을 둘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약리지를 아는 것도 이 시기가 아니라 미래에도 명확히 기억에 남을 만큼의 활약(?)을 그녀가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섯 명 중 둘에 관해선 잘 알고 있었으니 그 두 명이 아마도 본래는 이 시기에 없었을, 도진에 의한 '변화'였기 때문이다.

우서진과 윤상미.

도진에 의해 삶이 바뀐 두 사람은 이번 년도의 후기지수가 되어 숭무고 입학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한 명은 도진의 전생에서 유일하게 친구였던 사람.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전생에서는 스쳐 지나간, 미래에 어찌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이번 생에선 도진의 첫 신도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참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어쨌든 그렇게 여섯이 된 후기지수들 중 집행부 내에서도 가장 주목받은 건 상미였다.

"재작년도 작년도 그랬지만 올해도 정말 반칙같은 천재가 들어올 거란 말이지."

정작 그 자신도 반칙같은 사람이면서 한유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더 열심히 해야지."

주정아는 한유아의 말에 동의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상미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무공을 익히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 나쁜 말 아니야. 오해하지 말아 줘."

"아하하. 오해 안 해."

이어서 말하는 주정아에게 도진은 웃으며 답했다.

집들이에서도 보았고 '잠룡 패밀리'로서 상미는 집행부 멤버들과 안면이 있었다.

다만 주정아의 말대로 그들은 상미가 이렇게까지 대단한 실력을 보일 줄은 몰랐기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배려하는 부분이 도진이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리고 모든 상황이 이럴 수는 없었으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그러했다.

* * * *

-진짜 잠룡 패밀리 완전 사기 아니냐? ㅋㅋㅋ

-ㄹㅇㅋㅋㅋ 뭔 후기지수란 후기지수들은 다 모이는듯.

-잠룡이 숭무고를 다 해먹음.

-근데 젤 중요한 건, 그 후기지수들 중 제일 사기가 잠룡이라는 거지 ㅋㅋ

-듣고보니 그렇네 ㅋㅋㅋㅋ

사람들은 새로운 후기지수들 중 특히 돋보이던 우서진, 그리고 그보다 더 센세이션하게 데뷔한 상미에 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둘과 이미 보통 이상의 관계로 보이는 도진에 관해서도 이야기 되었지만 결국 그 관심은 무림출도라도 한 것처럼 무명이었던 상미에게로 흘렀다.

-근데 진짜 누군지 모름?

-또 뭔가 비봉처럼 대단한 비밀이 있는 건가?

본래 이 시대의 '후기지수'라고 하면 웬만한 신상 정보는 한 번의 검색만으로도 상세하게 확인되는 법이었다.

'금화의 영애'라거나 '의선약가의 돌연변이'라거나.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정보를 알 수 없는 갑자기 등장한 후기지수에 더더욱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바라던 정보를 발견한 순간 득달같이 달려든 것이었다.

-얘 우리 동네 출신인데.

-?

-구라 ㄴ

-진짜임. 얘 잠룡이랑 같은 문월동 출신이었음.

-헐?

그 정보는 대번에 수많은 추천을 받아 메인으로 가 버리는 기염을 토했고, 이런 관심이 상미를 알고 있던 어린 친구들의 '관심병'을 자극했다.

그 나이 또래라면 으레 관심에 민감한 법이었고 자신의 한 마디에 요동치는 반응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키보드를 두들기는 손가락과 손가락을 통해 쏟아내는 정보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존재감없이 삐쩍 마른 애였는데 갑자기 일진 애들이랑 어울리더라고. 그래서 뭔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걔들한테 협박 당하던 거였음;;

-헐 ㅁㅊ

-존나 흥미진진하다.

-다음. 제발 다음.

-니들도 아는 이야긴데 ㅋㅋㅋ 그게 그 잠룡이 원조교제 하던 일진 애들 개박살낸 그 이야기임 ㅋㅋㅋ

-미친쉬바.

-ㅁㅁㅁㅊㅊㅊㅊㅊㅊㅊㅊ 그게 이렇게 이어진다고?

-잠깐만. 그러면 얘가..?

-와.. 어쩐지 김도진 보는 눈이 심상치 않더만 김도진이 구해준 애란 말이네?

민감한, 쉽사리 말할 수 없는 내용이었으나 커뮤니티에서 그런 걸 바라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이야기는 대번에 온갖 곳으로 퍼져 나갔고 기사화 될 만큼의 형태를 갖추었다.

허나 그럼에도 메이저라 할 수 있는 곳들에서 바로 기사가 나지 않은 건, 거기에 잠룡 김도진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민감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거기에 잠룡도 엮여 있다.

높은 확률로 갑자기 등장한 후기지수 '윤상미'는 잠룡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그들은 유추할 수 있었고 섣불리 기사를 내지 않고 확인 과정을 먼저 거치기로 했다.

그러나 업계에는 그들처럼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상식적인 처리를 하는 곳만이 아니라 '불나방'들 또한 적지 않았다.

-속보! 숭무고 관문 시험에 새로이 등장한 후기지수의 과거는 일진?!

-단독! 숭무고의 '빙봉'은 원조교제를 당할 뻔 했던 피해자?

자극적이고,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기사들이 대번에 포털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하……."

도진이 분노하는 건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 * * *

다음날 포털을 도배하기 시작한 역겨운 기사들을 도진은 방치하지 않았다.

"죄송해요, 변호사님.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기사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오성아가 찾아왔다.

너무나 유능한 그녀는 일이 터지자마자 도진을 찾아오며 일처리를 시작했고 나성보가 움직인 것이었다.

그리고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바퀴벌레처럼 증식하던 역겨운 기사들이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사라졌다.

-기레기는 존중받아야 하는 기자와는 다른 종임.

도진은 자신의 SNS에서 그렇게 '빠꾸없이' 말했고 메이저 언론사들은 움직이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언론사 같지도 않은, 불나방들 대부분은 정말로 불에 타죽는 것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선을 넘는 걸 도진은 결코 좌시하지 않았고 오성아와 나성보가 나선 이상 '알 권리' 운운하는 것으론 그 분노의 불길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잠시 포털을 도배했던 더러운 기사들은 사라졌지만 상미의 상처는 그리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닐 터.

도진은 조치하며 바로 상미를 찾았으나 그보다 먼저 상미를 찾은 불청객이 있었다.

* * * *

기사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미는 불청객을 마주하게 되었다.

안경을 쓰고 후줄근한 차림의 그는 비대칭의 눈동자로 인해 비뚤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카메라를 든 그는 거침없이 상미를 향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용석 전 기자입니다."

"……."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윤상미 학생에 관해 취재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무례하고도 대책없는 접근이었다.

좋지 않은 상미의 표정조차 아랑곳하지 않는다.

본래 이런 식으로 무림인에 대한 동의없는 취재는 금기시되었다.

사회에 무림이 깃든 요즘 취재 윤리와 법적인 부분은 꽤나 엄격해졌다.

당사자에 대한 '동의를 구하지 않은 길거리 취재'는 그 모호성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된 부분은 국소적이었다.

허나 윤리적인 잣대로 어떤 것을 지양해야 하는지는 명백했는데 이런 식의, 그것도 민감한 부분에 관한 막무가내 취재는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일반적이지 않기에 상미는 제대로 대처하기가 힘들었다.

"……."

상미는 그를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만요. 몇 가지만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지금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좋지 않은 소문에 대한 해명 기회가 될 겁니다."

허나 김용석은 모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끈덕지게 달라붙으며 심지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뭐야."

"아. 저 사람."

웅성웅성-

이윽고 소란으로까지 발전한 상황에서 상미는 고민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두웅-

소란을 억누르는 밀도 높은 존재감이 현장을 뒤덮었다.

그 존재감의 주인인 도진이 상미와 김용석의 사이에 서며 말했다.

"동의없는 취재로 인한 소란은 퇴거 조치의 근거가 됩니다."

웃고 있지만 그 내용과 분위기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의도하는 바는 명백했다.

나가.

도진의 웃지 않는 시선이 김용석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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