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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69화 (269/741)
  • 268화

    상미에게 있어 숭무고 입학 시험은 크나큰 용기와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합격에 대한 부담이나 인생이 걸린 시험이라는 것에 대한 압박감과 긴장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무림 수능이라고도 불리는 시험을 앞두고 긴장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고 어느 정도 압박감도 있긴 했다.

    허나 그건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상미는 도진과 마찬가지로 그런 것에 짓눌리지 않을 만큼, 도진에게 구원받은 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매순간 최선을 다했으니까.

    확신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무림학교라는 숭무고의 입학 시험이라 해도 분명히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그녀의 구세주이자 유일신인 김도진이 준 무공을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또 다하여 익혀 얻은 성취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까.

    때문에 문제는 무공이 아니라 그녀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는 '일진'이었다.

    그래, 사실은 보이는 것과 달리 그녀는 차라리 '인질'이었으며 그들에게 끌려다니는 신세였지만 그 속사정을 모두가 알아주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너무나 비참하고 가혹하여 빛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결국 부서져 자포자기하였던 탓에 상황에 저항하지 않고 휩쓸리기만 했다.

    당시의 끔찍했던 시간이 분명히 발목을 잡을 거라고 상미는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질 이유도 없었으며 자신을 감출 수 있었기에 괜찮았지만 무려 숭무고의 수석이 된다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것도 그녀는 무림중학교조차 나오지 않은 '무명소졸'이니까 더더욱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과거는 너무나 쉽게 퍼져 나갈 것이었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시선과 이슈는 그녀에게 그치지 않고 도진에게마저 피해를 끼칠 수도 있었다.

    상미는 그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고 용납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이에 관한 크나큰 각오와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수없이 많은 고민 속에서 그녀는 결론 내렸다.

    '무조건 수석을 차지해야 돼.'

    무인(武人)은 무(武)로써 말한다.

    상미는 원점으로 돌아가 결국 수석을 차지해 자신을 증명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분명히 나올 의문과 뒷말을 수석이 되는 것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단, 입학 시험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관문 시험은 사실 통과하기만 하면 그만인, 그러니까 숭무고에서 제시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증명하는 의미에서의 말 그대로 '관문' 시험이었다.

    본 시험 역시 탈락하지만 않으면 된다.

    진짜는 그렇게 입학이 확정된 뒤의 비무다.

    그 비무에서의 우승자가 수석이 되니까.

    그리고 입학 시험과 비무 사이에는 아주 많은 시간이 있다.

    상미가 두각을 드러내면 그 많은 시간 사이에 그녀에 대한 이슈가 발생할 것이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소란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상미는 함께 시험을 치르는 우서진이 벌써 두 개의 관문을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며 돌파할 때도 적당한 실력만을 드러내왔던 것이었다.

    이번 세 번째, '일격 시험'에서도 상미는 마찬가지로 기준점을 넘을 만큼만 실력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어그러지고 말았으니 그녀의 무공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형!"

    주목받는 후기지수로서 크나큰 활약을 하고 주목받는 중에도 우서진은 인파 사이의 도진을 단번에 찾아냈다.

    물론, 상미는 우서진보다도 빠르게 그녀의 유일신을 눈보다 빠르게 느끼고선 눈을 마주쳤었고.

    도진은 자신을 격하게 반기는 우서진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며 미소를 보여 주었다.

    동시에 상미와의 눈맞춤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게 원인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적당히 해야만 하는 순간.

    허나 상미는 유일신의 은총(?)에 가슴이 격동하고 말았으며 그 은총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성취를 증명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사아아아-

    그런 상미의 마음이 싸구려 검에 본래는 있어서는 안 될 예기와 냉기가 깃들게 만들었고.

    쩌저저저저저적-!!

    한 번의 휘두름에 깃든 한천검세(翰天劍勢)는 그 질기디질긴, 금강불괴라 불리던 합금석 동산을 반으로 가르는 대사건을 일으킨 것이었다.

    "뭐, 뭐야?!"

    웅성거림이 파문처럼 퍼져 나가며 점점 더 커졌다.

    신입생이, 설령 후기지수라 해도 결코 보여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적과도 같은 상황에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그 주인공인 상미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그렇게 집중되는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상미는 뒤늦게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깨닫고서는 자책했다.

    '…바보같이!'

    몇 번이고 스스로를 강하게 비난한다.

    "오!"

    그러나 그런 그녀를 도진은 오히려 감탄하며 흡족함을 담아 웃어 주었다.

    '아…….'

    그것이 스스로를 비난하던 그녀를 또 구원해 주었다.

    상미의 시선이 오롯이 도진에게로 향하며 입술이 그림 같은 미소를 지었다.

    또 한 명의 후기지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

    도진은 이제 후배가 될 동생들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하려면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은 건 혹시라도 나중에 부정적인 말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친분이 있는 우서진이나 상미와 접촉함으로써 본 시험에 대한 정보를 준 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조금 과한 경계일지도 모르겠으나 도진의 행동에는 많은 관심과 의미가 따르니 조금 과해서 나쁠 게 없었다.

    때문에 도진은 상미의 결과가 나오기 전 소담과 함께 시험장을 벗어나 순찰을 계속했고 또 하나의 인연과 마주치게 되었다.

    다만, 이번엔 좋은 인연이 아니었다.

    "……."

    길을 걷던 한 무리의 학생들이 입고 있는, 금갈색 실로 '檀波'란 글자가 수놓여진 그 무복은 단파중학교의 것이다.

    그래. 도진이 마주친 건 작년 입학 시험에서 충돌이 있었던 단파중학교의 학생들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는데 그 중요한 순간에도 정신을 못차리고 양아치짓을 하다 참교육을 당하고 수험생 자격마저 박탈당했던 단파문의 대사형 도슬구가 도진과 눈이 마주쳤다.

    "……."

    도슬구는 도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대번에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바로 1년 전만 해도 자만과 거만으로 가득 찼던 태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 데다 생각보다 실력도 는 듯해 도진은 좀 의외라 생각했다.

    풍문으로 단파문의 중학교 대사형인 도슬구가 '재수'를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허나 과연 그게 올바른 선택이었을지는 조금 의문이었다.

    재수라는 건 이 악물고 스스로와 일절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 정신 상태가 갖춰져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해서 스스로와 타협하며 오히려 도태되고 퇴보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도슬구는 퇴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한데 오늘 보니 머리도 완전히 빡빡 밀고 마음 잡고 수련을 한 모양이었다.

    '흐음. 문파에서 제대로 갈궜나 보네.'

    단파중의 학생들은 그날과 달리 칼같이 규율이 잡혀 있었다.

    인솔을 하는 것도 기간제 교사가 아니라 문파의 장로로 보인다.

    어쩌다 나지윤과 단파문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단파문은 반쯤은 흑도 취급이잖아. 이번 문주는 그런 꼬리표를 떼고 싶어 하거든. 그래서 도슬구를 후기지수로 만들고 숭무고에 입학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뒤집어진 거지.

    문주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결과는 문파 이름에 똥칠을 한 꼴이 됐다.

    그런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솔과 통제에 소홀했으니 자업자득이긴 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보니 도슬구의 빡빡머리와 군기가 제대로 든 모습이 이해가 간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일말의 타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굳이 인사할 사이는 아니었기에 도진은 소담과 함께 그냥 지나쳤다.

    단파중의 학생들은 넓은 길임에도 슬며시 몸을 물렸으며 장로는 그런 학생들을 데리고 갈 길을 갔다.

    도진에 관해 일말의 유감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런 감정을 가지기엔 잠룡의 이름이 너무 컸다.

    또 한 번 달라진 자신의 위치를 느끼는 도진이었다.

    그렇게 한 바퀴 순찰을 마친 도진은 집행부에 들렀다.

    안에서는 한유아와 민지서, 그리고 나지윤이 서류 업무를 보고 있었다.

    "별일 없었지?"

    "네."

    한유아의 물음에 도진은 가볍게 대답했다.

    이렇다 할 트러블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작년 단파중이 이상한 거였지 일생일대의, 수능과도 같은 숭무고의 입학 시험에서 별일이 생기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니까 도진의 말은 틀림이 없었는데…….

    "거짓말. 별일 있었잖아."

    한유아는 씨익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

    도진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되물었고 한유아는 태블릿을 도진에게 보여 주었다.

    -쩌저저저저저적-!!

    "아."

    그리고 재생되는 영상과 그 밑의 댓글들에 도진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 * * *

    인터넷에서 이슈가 퍼지는 속도는 무협지 속 경공이 가장 빠른 무인보다도 빠르다.

    하물며 그것이 대한민국 최대의 관심사 중 하나인 숭무고 입학 시험에서의 일임에야.

    상미에 관한 이야기는 도진이 일격 시험장을 떠나 집행부에 들어선 그 짧은 순간에 이미 온갖 곳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와, 개쩐다;; 저걸 자르네;

    -저거 그 금강고무불괴 아님?;

    -맞음 ㅋㅋㅋㅋ시밬ㅋㅋㅋㅋ

    -아니 어케했노;;

    -처음은 아님. 이미 반갈 해 버린 사람이 있음.

    -아 ㄹㅇ? 누구?

    -그것도 모르냐. 금군이 잘랐잖아.

    -아니 ㅋㅋㅋㅋ 금군밖에 못 잘랐다는 게 더 미친 이야기잖앜ㅋㅋㅋㅋㅋ

    금군. 한유성.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 금화의 장남이자 후계자로 학생 때부터 이미 후기지수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으며 졸업 후 사회에 나가자마자 사회의 거물이자 무림의 명숙 취급을 받은 예외 중의 예외였다.

    그런 금군만이 성공했던 합금석의 절단을 성공해낸 후기지수, 그것도 무명 소녀에 사람들은 폭발적인 관심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교복 안 입었으니까 무림중학교 출신 아니란 건데 그럼 설마 무림출도냐 또?

    -와, 진짜 제 2의 무림 르네상스가 오려고 하나. 뭐지?

    -보고 있으니까 진짜 서소담 떠오르네.

    -그러게. 분위기도 그렇고 갑툭튀한 것도 그렇고.

    -몬가 눈밭에 핀 향기 좋은 풀 같은 느낌임.

    -풀은 뭐냐 ㅋㅋㅋㅋㅋ

    -근데 뭔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다ㅋㅋㅋㅋ

    눈이 내려 추운 날 새하얗게 쌓인 눈 사이에 핀, 자극적이지 않지만 분명한 존재감으로 멀리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를 품은 난초.

    영상 속 상미는 그렇게 보였다.

    서리를 배경으로 하고 또 한기가 깃든 내공을 구사하지만 정작 본인의 인상은 생명력과 생기가 은은하면서 분명하니 그 이미지가 딱 들어맞는다.

    단번에 마력이라고까지 불릴 정도의 매력으로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유아와 달리 서서히, 그러나 결국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서소담과 닮은 면이 있다.

    여기에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으니 무림출도를 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며 두 사람을 엮는 이야기가 많아졌다.

    -않이, 근데 왜 또 화화공룡이냐.

    -화화공룡, 또 너냐!

    -또 잠룡 패밀리였구나.

    그리고 또 많이 나온 이야기는 누가 봐도 명백했던,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알 수밖에 없었던 상미의 시선이었다.

    한순간 향기가 확 퍼지는 것처럼 환상적인 미소를 지으며 오롯이 도진에게로 향해 있는 시선이 영상으로도 명확하기만 하다.

    새로이 등장한 뉴페이스는 그렇게 도진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혹시 비봉이나 빙봉은 김도진 같은 타입을 좋아한다는 공식이 있나?

    -빙봉이 뭐냐?

    -영상 보니까 후기지수 되겠던데 얼음 쓰니까 딱 빙봉(氷鳳) 아님?

    -그렇네. 앞으로 빙봉이라 부르자.

    -않이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비봉이나 빙봉의 이상형에 대한 의논 아니냐?

    -그거 해서 뭐하냐.

    -왜?

    -정답을 안다고 해서 애인이 생기는 게 아니니라. 어리석은 중생아.

    -아이 싯팔 팩트 쓰지 말라고 ㅡㅡ

    그렇게, 상미에 대한 이야기는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타오르는 듯했다.

    허나.

    "호오."

    상미가 예상했던 대로 조금의 시간이 지났을 때.

    이슈는 부정적인 방향으로도 조금씩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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