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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66화 (266/741)
  • 265화

    전생에서 권이솔은 제대로 된 증거조차 챙기지 못한 채 타이거라운드레이블을 나와야 했다.

    거기서 장비마저 대부분 회사의 것을 썼던 것이 나중의 한이 되었다.

    안 그래도 몇 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많은 증거가 거기에 남아 찾을 수 없었고 뒤늦게 준비를 하다 보니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애초에 장비를 회사에서 빌려주는 것마저 여러가지를 대비하고 고려한 덫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오성아와 나성보의 도움으로 충분한 증거를 모아 터뜨렸고 일의 진행 또한 호원식은 물론 DS 차원에서도 대응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몰아쳤다.

    -와 씨바 이거 걍 빼박이네 ㅋㅋㅋㅋ

    -우리나라 병신 같은 놈들 표절 시비 여부 존나 못가려서 아직 모름.

    DS의 뒷배는 강력하고 업계와 이런 '표절 시비'에서의 잔뼈도 굵은 질 나쁜 곳이었다.

    -응, 나성보 변호사야.

    -잠룡 이미 오함마 들었음.

    -아니 애초에 노동법 위반부터가 빼박이라고 ㅋㅋ

    그러나 이번에 상대해야 할 것은 나성보와 오성아, 잠룡에 철저하게 증거들을 챙긴 권이솔이었다.

    언제나처럼 들키면 표절을 샘플링 운운하며 뒤로는 돈을 찔러주고 협의하는 등의 수작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으며 노동 착취 부분은 뭐 어떻게 할 여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쯤되니 억눌려 있던 작사가와 작곡가들 중 일부도 폭로에 동참해 화력이 더욱 강해졌다.

    -야, 이것도 표절 아님?

    여기에 네티즌들이 그동안 발표한 호원식의 곡들을 샅샅이 뒤지며 '선례'들을 발굴했고 여론도 악화일로를 걸었다.

    뭐 어떻게 변명을 할 수가 없었고 '프로듀서 명가'라 불리던 DS의 이미지 또한 추락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단독) 삭제된 주교은 학폭 폭로글의 최초 작성, 타이거라운드레이블 사무실인 것으로 밝혀져!

    심지어 이번 학폭 루머를 퍼뜨린 것 또한 타이거라운드레이블이란 증거가 나와 버린 것이다.

    이것은 도진의 의뢰에 따라 답청문이 찾아낸 증거였다.

    처음 일에 착수할 때부터 부드럽게 끝낼 생각은 없었다.

    한데 여기에 저쪽에서 더러운 수작을 걸었으니 오대용의 말처럼 '전쟁'을 해 주겠다고 도진은 생각하며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오함마는 그런 의미였고, 이어서 손잡이에 '너흴 찾을 것이다'란 문구가 적힌 오함마에 사람들은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ㄷㄷㄷㄷㄷ...

    -너흴 찾을 것이다 ㄷㄷㄷㄷㄷㄷ

    -도망쳐 새끼들아!

    -아니 저건 도망쳐도 뒤지자넠ㅋㅋㅋㅋㅋㅋㅋ

    이번 증거는 안 그래도 악재에 허우적거리던 타이거라운드레이블에게 있어 목줄에 박힌 치명타가 되었다.

    조사가 더 진행돼 학폭 피해자 자체가 허구였으며 그 글을 작성한 것이 타이거라운드레이블의 신입 직원이라는 게 밝혀졌고 그는 조사를 받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서 시켰습니다. 싫다고 했는데 때렸구요, 맞기 싫어서 했습니다."

    조금 뭐한 이야기지만, 그는 '폐급 직원'이었다.

    어리바리하고 일도 제대로 못했으며 성격까지 소심했다.

    때문에 안 그래도 군대 문화이자 꼰대 문화로 얼룩졌던 회사 내에서 구타까지 당하며 치이고 있었다.

    업계에 악명이 자자해 직원 보충이 힘든 회사, 그리고 부당한 대우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직원의 '콜라보'였다.

    그런 그에게 호원식의 명령에 따라 직원 한 명이 '이거 PC방에서 올리고 와라'고 업무 지시를 했었다.

    신입은 까먹고 있다 퇴근 전에 그것을 떠올렸고 퇴근해서까지 일을 하기는 싫어 무려 사무실에서 그것을 올려 버린 게 자초지종이었다.

    붙잡힌 그는 도진의 엄포와 나성보의 명성에 처벌받기 싫어 아는 것 모르는 것 죄다 실토했고 하나하나가 회사의 치명적인 치부였다.

    곧 호원식은 구속되었다.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그는 부하 직원들을 시켜 본사의 컴퓨터들은 물론이요 작사가와 작곡가들이 머물던 열악한 숙소 내 장비들의 증거를 인멸하려 했고 대기하고 있던 도진과 나성보 측 인물에게 걸림으로써 구속까지 당하게 된 것이었다.

    "혀, 형님……."

    "……."

    그리하여 갇힌 철창 너머서 간절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호원식의 얼굴을, 송원석은 골프채로 후려치고 싶다는 충동을 꽉 진 주먹을 떨며 억눌러야 했다.

    '이 씨발 진짜…….'

    맘 같아선 걸레짝이 될 때까지 두들겨 죽여 버리고 어디 바다에 묻어 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건 눈앞의 놈이 아는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놈은 '자신의 오른팔'이다.

    잘라냈다간 그 또한 무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눈치 빠른 놈이어서 자신이 버려진다는 걸 알아챌 테고 그러면 같이 죽자고 달려들 놈이었다.

    그래서 도진이 그야말로 오함마를 들고 호원식을 감싼 DS를 후려침에도 쳐맞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티스트'라는 자부심과 대한민국 최고라는 자부심이 금전적인 손해와 함께 도진이 휘두르는 오함마에 개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는 DS의 대표이자 보스인 무석호의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야구방망이를 감내하느라 욱신거리는 온몸의 통증을 티내지 않으며 말했다.

    "…곧 꺼내줄 테니까 걱정마라."

    송원석의 말에 호원식의 얼굴이 환해졌다.

    "예, 예."

    파르르-

    주먹이 떨렸다.

    집행유예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물론 상대가 잠룡에 나성보였기에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아야만 했다.

    둘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며 설령 문제가 생겼다 해도 곧 사라질 잡음 정도에 그쳤을 일이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런 정도의 일로 부딪쳤기에 여기서 끝낼 수 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더욱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야만 했다.

    회사적으로는, 커다란 레이블 중 하나였던 타이거라운드레이블이 공중분해 되었다.

    -타이거라운드레이블 폐업 ㅋㅋㅋㅋ

    -잠룡 오함마 성능 확실하네 ㄷㄷㄷ

    -키보드 한 번 잘못 놀렸다가 레이블 하나가 날아가네 ㅋㅋㅋ

    -타이거라운드면 DS에서도 꽤 큰 그룹이었는데 ㄷㄷㄷ;;;

    -그 정도인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함. 관현 그룹 보셈.

    -ㄹㅇ;;

    전쟁은 그렇게 DS가 만신창이가 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DS는 회사의 이미지와 금전적인 손해까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어야만 했으나 도진은 물론 만족하지 않았고 또 한 번 손잡이에 글자가 적힌 오함마 사진을 올렸다.

    -지켜보고 있다.

    또 개수작을 부리면 얼마든지 휘두를 거라는 뜻이었다.

    * * * *

    호원식은 감방에 처박으려면 처박을 수도 있었다.

    허나 집행유예로 나오게 만든 건 그게 DS에 더 타격이 되기 때문이었다.

    집행유예로 나오게 만들기 위해 DS는 아주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으니까.

    그렇게 DS를 두들김으로써 도진은 주교은과 권이솔에 대한 복수를 해 주었다.

    "어허, 어깨 펴고 다녀요."

    "응."

    도진은 여전히 안티체리에게 바른 자세를 엄하게 요구했다.

    고개 들고, 어깨 펴고.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다니라 했고 그 자세 교정의 효과가 요즘 들어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권이솔은…….

    "제가 계속 이 길로 나가도 되는 걸까요?"

    잘 먹고 잘 쉬어서 조금은 체력을 회복한 그녀가 침상에 앉아 물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앙상한 모습을 보고 펑펑 우셨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권이솔의 모습은 좋지 않았었다.

    도진은 이은지와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것을 믿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는 그녀에게 말했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삶이겠죠."

    "네."

    "그리고 저는 아마도, 작곡가님은 그럴 만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호원식이 훔쳤던 결과물 중에는 권이솔의 작업물이 다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어느 정도 히트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만들어낸 것들과 그 이전에 만들어낸 작업물들이다.

    '여왕의 파트너'가 이미 그때 만들어둔 작업물들이 바로 이은지의 연타석 홈런을 이뤄낸 곡들의 초안이었으니까.

    도진은 그녀가 조금 더 확신을 가져도 된다고 믿었다.

    "대용이가, 바른 엔터 대표가 그러더라구요. 회사에 능력있는 작곡가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건……."

    "네. 작곡가님만 괜찮으시다면 바른 엔터가 스카우트하고 싶어해요."

    며칠 뒤.

    퇴원한 권이솔은 바른 엔터 소속의 작곡가가 되었다.

    도진이 만들어낸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리고.

    "도진 씨."

    "네, 은지 씨."

    "바른 엔터도 연습생을 받나요?"

    "물론이죠. 다만 허들은 좀 높을지도요?"

    "그렇구나아. 그럼 좀 더 열심히 연습한 뒤에 찾아가 봐야겠어요."

    "네. 은지 씨라면 합격할 수 있을 거예요."

    또 하나의 긍정적인 변화와 만남이, 머지 않아 있을 것 같았다.

    * * * *

    일본의 모처.

    신풍회의 회주가 편안히 앉아 녹음을 즐기고 있었다.

    한겨울 숲속임에도 불구하고 그리도 편안한 건 그가 일본에서 한 손에 꼽히는 고수이기 때문이다.

    "편안해 보이시는군요."

    그런 그의 근처에서 사람은 보이지 않은 채 목소리만이 들려왔음에도 회주는 놀라지 않았다.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름 하나 보이지 않는 입매를 슬쩍 올리며 답했다.

    "편안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목소리가 말하는 건 추위가 아니었다.

    이번 답청문과 암산서가의 사건으로 인해 추락한 신풍회의 위신과, 그 대처가 또 일본의 체면에 먹칠을 했다는 비난에 대해서였다.

    신풍회의 회주는 물론 그것을 말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대답한 건, 말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하찮은 것에 대한 문제를 길게 끌고 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찮은 것 몇 개를 던져주고 의미가 없는 말과 행동을 좀 보여주면 끝날 문제였고 거기에 대한 하찮은 목소리들이야…… 역시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우문현답이시군요."

    회주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우리는 그런 하찮은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회주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회주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듣지 못할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

    대한민국이 타이거라운드레이블의 일로 떠들썩하던 2월 말.

    그러나 대한민국의 무림은 그 외에 또 다른 커다란 행사로 떠들썩했으니 이때가 다름 아닌 무림학교 입학 시험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2월 말부터 3월 초.

    일반 학교는 개학 시즌이지만 무림 학교는 바로 이 시기에 입학 시험을 치른다.

    도진 또한 일 년 전에 이 시험을 치렀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도진은 수험생이 아닌 재학생, 그것도 집행부의 일원으로서 입학 시험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벌써 일 년이구나.'

    서류와 실무를 처리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감회가 새로웠다.

    불행과 후회로 점철되었던 삶의 끝에서 기적과도 같은 또 한 번의 기회를 부여받았고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여기서, 도진은 자신과 인연을 맺은 동생들을 곧 보게 될 것이었다.

    숭무고에 입학할 수준이 되는지를 증명하기 위한 관문 시험.

    며칠 뒤 시작되는 그 관문 시험에, 윤상미와 우서진이 수험생으로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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