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도진이 아는 권이솔은 '여왕의 파트너'라 불리던 업계 최고의 작곡가였다.
전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이은지가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경연 대회에서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뽐냈던 그 곡을 작곡한 것이 바로 권이솔이었다.
이름없는 무명 가수에게 주어진 역시 이름없는 무명 작곡가의 곡.
작사는 둘이 함께 했고 그렇게 탄생한 곡은 무려 4주간 차트에서 1위를 내주지 않았다.
10위권에서 내려간 건 3개월 뒤였고 그나마도 이은지의 신곡이 나오자 2위로 다시 올라가 버렸다.
1위는 물론 신곡이었고 그렇게 이은지는 3연속으로 대히트곡을 내놓았는데 모든 곡에 권이솔이 함께 했다.
본래 스포트라이트는 무대에만, 그것도 중심에만 비추는 법이니 프로듀서나 작사가, 작곡가 같은 사람이 그 조명을 받는 건 드문 일이었다.
가끔 예능에서 함께 그림을 만드는 PD나 방송에 패널로 참여하는 작곡가 등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PD나 작곡가가 아닌, 반쯤은 연예인으로서의 포지션이다.
그렇게 볼 때 온전히 작곡가로서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권이솔은 그야말로 '여왕의 파트너'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독보적인 사람이었다.
도진은 전생의 미래에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던 권이솔 작곡가를 만나려 했다.
운이 아닌 자신이 변수로서 개입해 이은지와 연결해 주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현재 DS 엔터 산하의 타이거라운드레이블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미래의 명성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쉽게 되겠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허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극히 쉬운 일이었다.
지금의 권이솔은 역겹기 짝이 없는 어떤 인간에 의해 여왕의 파트너는 커녕, 가진 재능의 일부조차 발휘할 수 없는 감옥에 갇혀 있었으니까.
도진이 굳이 순리대로 두지 않고 변수를 만들려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녀는 지독하게 착취당하고 있었고 도진은 그런 그녀를 감옥에서 구출하기 위해 그녀가 머물고 있는 원룸촌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제대로 손질하지 않아 제멋대로인 머리를 질끈 묶고 모자를 쓴 작은 체구의 여자.
롱패딩을 입었지만 그 아래로 드러난 앙상한 발목만으로도 보는 사람이 위태로움을 느낄 만큼 야위었고 힘이 없다.
굳이 아주 약간 드러난 턱선과 사진을 대조해 보지 않아도, 본능의 단계에서 그녀가 권이솔임을 도진은 첫만남에서 알아보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이는군요."
"예. 그럴 거예요."
함께 온 사람의 말에 도진이 동의했다.
도진의 옆에 멋드러지게 양복을 차려입은 그는 놀랍게도 오성 법무 팀의 간판인 나성보였다.
도진은 급작스럽게 접근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말을 걸기 위해 권이솔이 들어간 편의점에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뒤에서 말을 건넸다.
아니, 건네려 했는데 그녀가 휘청여 급히 몸을 움직였다.
"괜찮으세요?"
말을 걸었으나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위태로운 호흡과 느껴지는 기운으로 도진은 심상치 않은 상태라는 걸 바로 깨달았다.
"변호사님, 119요."
"예."
도진이 위험한 상태의 그녀를 내공으로 응급처치하며 지극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고 나성보 또한 당황하지 않고 119를 불렀다.
신속하게 도착한 구급차를 통해 이송된 권이솔은 바로 입원하게 되었다.
보호자 자격으로 도진은 나성보와 함께 의사를 마주한 자리에서 그녀의 상태에 대해 들었다.
"정말로 큰일날 뻔 했습니다. 극심한 영양실조로 쇠약해져 있는데 위천공의 위험이 있었고 복막염이 발생했다면 목숨에 지장이 있었을 겁니다."
몸이 극도로 약해져 있는데 까딱 잘못됐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그렇게 되기 전에 병원에 왔고 몸을 잘 추슬러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으음, 심각하군요."
정말로 뼈에 거죽만 붙어 있는 듯한 팔에 링거를 꽂고 있는 권이솔의 모습에 나성보가 눈살을 찌푸렸다.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는 도진의 말에 함께 온 자리였는데 과연 그 말대로였다.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근무했길래 사람이 이렇게 된단 말인가.
그 옆에서 도진 또한 권이솔을 응시하며 전생의 미래를 떠올렸다.
여왕의 파트너로 이름을 떨치던 권이솔은 어느날 연예계를 뒤흔드는 대폭로를 했다.
DS 엔터에서 이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과거 타이거라운드레이블의 대표였던 호원식이 무명 작사가와 작곡가들을 착취했다는 내용이었다.
계약서조차 쓰지 않은 채 데려와 월급은 커녕 제대로 된 보수조차 주지 않고 작업물을 착취했으며 괜찮은 것들은 아주 조금 각색하고선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그 내용은 연예계를 뒤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거기에 당했다며 몇 가지 증거를 제시했고 논란 속에 호원식은 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딱 그 정도 타격밖에 줄 수 없었다.
DS 엔터는 인맥이 넓었으며 뒷배도 대단했고 돈도 있었다.
온갖 것들을 다 동원하여 증거를 인멸하고 사태를 축소하였기에 호원식이 표면상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에서 사건은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DS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고 대중의 시선 또한 싸늘했지만 그것이 철옹성 같았던 DS를 흔들진 못했다.
그때 권이솔의 탄식을 도진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쓰러지고 난 뒤 그냥 그만두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증거를 모았어야 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도진은 오늘 권이솔을 찾아왔고, 다행히 아직은 늦지 않은 것 같았다.
"깨어나면 따로 연락을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헛걸음하게 해서 죄송하다 같은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나성보는 분노했고 도진은 그 분노를 풀 수 있도록 연락하기로 약속했다.
깨어난 권이솔을 설득하여 도진은 바른 엔터 쪽으로 데려올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물론 데스 노트에 여전히 이름이 올라 있는 DS에게 한 방 먹이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권이솔의 곁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오성아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 내용을 들은 도진의 눈동자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교은 언니가 학폭 가해자였다는 찌라시가 퍼지고 있어.
* * * *
팩트 체크가 되지 않은 기사였다.
커다란 커뮤니티에 주교은에게 학폭 피해를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고 그것을 어떤 기자가 올린 뒤로 같은 내용의 기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또 '조직적으로' 퍼져 나가 온갖 커뮤니티가 활활 타오르는 중, 이라고 바른 엔터에서는 확인할 수 있었다.
딸의 연락을 듣고 병원을 찾은 권이솔의 어머니에게 병실을 안내하고 바른 엔터로 온 도진은 오성아와 오대용, 주정아, 그리고 회사의 대응을 위해 모인 사람들과 마주앉았다.
베테랑 직원 중 한 명이 말했다.
"DS 엔터 쪽에서 터뜨린 악성 루머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진짜 너무 더럽네요."
"저희가 해명을 하고 유포자를 잡아 처벌한다 해도 웬만해선 이슈를 지우기 힘들 겁니다."
정말로 아니어서 아니라고 아무리 해명을 해도 이런 낙인은 결코 쉽게 지울 수가 없다.
크게 성공을 하고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3년을, 5년을, 10년을 써도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으려 하니까.
그리고 '아이돌 주교은'에겐 아마도, 그 정도의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을 것이었다.
"…잡아내세요. 전쟁입니다."
오대용은 주먹을 꽉 쥐며 그렇게 선포했고 바른 엔터가 전쟁에 착수했다.
도진은 본사 지하에서 연습하고 있던 안티체리를 찾아갔다.
"……."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아이돌이기에 이 이슈가 가지는 의미와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안티체리는 주저앉아 있었고 주교은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서 와."
"도진아."
억지로 웃으며 맞이해주는 멤버들의 인사를 받아준 뒤 도진은 주교은의 앞에 섰다.
"일어나요."
"……."
주교은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진은 그녀를 억지로 잡아 일으켰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주교은의 고개는 여전히 아래를 향했고 무릎은 땀이 아닌 다른 것으로 젖어 있었다.
도진이 물었다.
"주교은."
"……."
"학교 다닐 때 다른 사람 괴롭힌 적 있어요?"
"……."
"대답해."
"…없어."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이었잖아. 누구 괴롭힌 적도 없잖아."
"맞아."
"아이돌 활동하면서야, 그리고 개인 방송하면서야 잘못한 게 좀 있겠지만 지금 같은 비난 들을 이유는 없잖아."
"응."
점점 더 대답에 물기가 어린다.
도진은 그런 그녀의 뒤로 돌아가 손을 치켜들고선 휘둘렀다.
짝!
큰 소리가 났다. 하지만 때린 건 아니었다.
등에 닿은 손바닥은 마치 격려하는 것처럼 주교은의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깃들게 했으며 움츠렸던 어깨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그제서야 눈을, 젖은 눈을 마주할 수 있게 된 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잘못한 거 없으면 고개 들어. 내가 다 줘패 줄 테니까."
주교은의 눈동자가 반달을 그리며 고여 있던 것을 흘려냈다.
그리고 말했다.
"야. 은근슬쩍 반말하지 마."
도진이 씨익 웃었다.
* * * *
이틀 뒤.
주교은에 대한 여론은 악화일로를 걸었으며 그 불똥은 이내 도진의 SNS에도 튀었다.
-ㅅㅈㅈㅇ
-ㅅㅈㅈㅇ
주교은을 내치라는 댓글로 도배가 되었고, 깨어난 권이솔과 대화를 마치고 나성보가 준비에 착수하는 사이 도진은 그 댓글에 대한 대답을 게시물로 대신했다.
통짜 쇠로 된 오함마로 말이다.
그리고 고소장이 오함마처럼 호원식의 머리통을 후려갈긴 것이었다.
-DS 기획 산하 타이거라운드레이블 대표, 호원식 프로듀서 '노동 착취'로 피소!
"아니 씨발, 이게 뭐야?"
호원식은 당황했다.
멋진 계획을 떠올렸고 멋지게 성공시켜 성공을 위한 연줄을 더 단단히 붙잡는 데 성공했다 생각하며 양주로 자축하는 중에 터진 기사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타이거라운드레이블의 호원식 대표는 무명 작사가와 작곡가의 노동력과 결과물을 편취하였으며 그중엔 대중들에게 널리 날려진 인기 아이돌의 곡들도 있어 충격이……
"미쳤나!"
버럭 소리치며 다급히 폭로한 게 어떤 새낀지 확인하며 대응을 시작했다.
"증거 될 만한 거 싸그리 없애고 입단속 해!"
그에게 밉보이면 쥐뿔도 없고 능력도 없으며 비빌 곳도 없는 노예 놈들은 조금만 겁을 주고 당근을 주면 입을 다물 것이었다.
그리고 급히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지우려 했으나 그것은 이미 크게 늦어 있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작곡가 권이솔 씨, 신상을 공개하며 '타이거라운드레이블 사단'의 실상을 폭로.
-작곡가 권이솔 씨, 빼앗긴 결과물 공개.
"저 미친년이!!"
이런 일에 대한 지식이 없다시피한 권이솔을 오성아와 나성보가 도왔다.
-권이솔 씨, 법률 대리인으로 나성보 변호사 선임.
주교은을 공격하는 데 신나 있는 사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오성아'와 '그 나성보'가 이미 전쟁 준비를 마치고 선전포고를 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전쟁의 전선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단독) 삭제된 주교은 학폭 폭로글의 최초 작성, 타이거라운드레이블 사무실인 것으로 밝혀져!
-조사 결과 주교은 학폭 피해를 주장한 인물은 허구였음이 밝혀진 가운데 최초 게시글을 작성한 곳이 타이거라운드레이블인 것으로……
거대한 충격의 연속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주교은은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도진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SNS에 새로운 게시물을 올렸다.
이번에도 사진 하나, 그것도 오함마였는데 손잡이에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너흴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