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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64화 (264/741)
  • 263화

    안티체리와 레드슈는 저번 '잠룡 오함마 사건' 이후로 조금씩이지만 반응을 얻고 있었다.

    아이돌이 성공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에는 그런 반응들이 필요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처럼, 여러 곳에서 활동하며 반응들을 모아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림으로써 소위 말하는 2군이나 1군에 등극하는 것이다.

    안티체리와 레드슈는 그런 면에서 충분히 긍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허나 모든 것이 순탄하지는 않았으니 다름 아닌 악연을 쌓은 DS 엔터의 방해 공작이었다.

    대한민국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DS는 그 이름만큼이나 연예계 여기저기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며 그 뒷배 또한 범상치 않았다.

    그런 곳에서 수작을 부리니 방송 출연 등 여러 곳에서 삐걱이며 제동이 걸리곤 했던 것이다.

    떴다고 하기엔 모자란 레드슈, 그리고 본래 미운털이 박혀 있던 안티체리가 그런 DS에 맞서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나마 마찬가지로 연예계의 마당발이었던 구 영선 엔터, 현 바른 엔터가 사실상 오성의 계열사라 할 수 있었기에 그런 방해 공작에도 조금씩이라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DS 엔터의 심기를 더더욱 상하게 만들었다.

    "거슬리네."

    "그러게요, 형님."

    이야기를 나누는 건 DS 엔터의 대표인 무석호의 오른팔 송원석 실장, 그리고 그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호원식 프로듀서였다.

    호원식은 DS의 산하 레이블인 타이거라운드레이블의 대표이기도 했는데, 실력보다는 '송원석의 뒤를 잘 닦아 자리 하나를 맡았다'는 소리를 듣는 인물이었다.

    험상궂은 얼굴에 커다란 덩치, 그리고 흑도 출신으로 이 자리에 오르며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사람을 위협하고 제압하려 드는 기세까지 쉽게 대하기 힘든 송원석을 상대로 능숙하게 비위를 맞추는 호원식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것이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런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거슬리는 존재란 다름 아닌 레드슈와 안티체리, 그리고 그 소속사인 바른 엔터다.

    DS에 엿을 먹인 놈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중심이었던 잠룡을 씹어먹고 싶어했다.

    세간에는 3대 기획사로 묶여 불리지만 그들은 스스로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겉으로야, 덩치야 비슷할지 모르지만 클래스가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 자신감의 이유가 과도한 자기애와 옳지 못한 뒷배라는 게 DS의 근본적인 문제였지만 물론 그들은 자각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그들이었기에 자신들에게 엿을 먹이고 체면을 제대로 구기게 만든 바른 엔터 일당을 씹어먹어야만 분이 풀릴 것 같았다.

    한데 현실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잠룡? 그들이 어찌하기엔 너무나 커져 버렸다.

    바른 엔터 또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성의 직계인 오대용이 대표로 있는 곳이니 어떻게 견제 말고 정타를 넣기가 쉽지 않다.

    단지 그것뿐이라면야 문제가 아니겠지만 예전 영선 엔터로 활동할 때의 업계 인맥이 더해졌다.

    때문에 기껏해야 레드슈와 안티체리가 성공할 수 없도록 치졸하게 훼방을 놓는 정도가 한계였고 그래서 요즘 송원석 실장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그런 모습에 눈치를 보다 호원식이 좋은 생각을 떠올리곤 말했다.

    "형님."

    "왜?"

    "이거 어떻습니까?"

    그가 꺼내 놓은 계획에 송원석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좋아. 한 번 진행해 봐."

    * * * *

    저번의 일로 안티체리는 제법 관심을 받고 있었다.

    여전히 비호감이니 행실이 좋지 않다느니 하는 좋지 않은 여론과 안티팬이 있긴 했으나 소위 말하는 '잠룡 버프'와 무대에 진심인 모습이 그런 좋지 않은 여론을 누르고 있는 형국이었다.

    한데 거기에, 치명적인 이슈가 터졌다.

    -안티체리의 리더 주교은, 학폭 가해자였다?

    아이돌 그룹 멤버가 학폭 가해자였다는 이슈는 사실 규명 이전에 그 자체만으로도 치명적인 일이었다.

    한데 그것이 다른 그룹도 아니고 언제든 꼬투리만 잡히면 불같이 타오를 부정적인 여론이 있던 안티체리의 주교은이었기에 더더욱 이슈는 폭발적으로 번져 나갔다.

    -시발ㅋㅋ 내 이럴 줄 알았다 ㅋㅋ

    -ㄹㅇㅋㅋㅋ 사람 고쳐쓰는 거 아니랬음.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난 안티팬들이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기사를 퍼다 날랐고 그와 함께 불길이 온갖 곳에서 타올랐다.

    그들에게 사실 확인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던 대상을 손가락질할 구실이 필요했을 뿐.

    그리고 그것은, 이내 잠룡 김도진에게도 옮겨 붙었다.

    -김도진이 왜 안티체리를 품어준 건지 모르겠음.

    -그러게. 김도진 패밀리에 안티체리는 좀 아니지 않냐.

    -솔직히 급 떨어지자너.

    바른 엔터 TV를 통해 김도진은 안티체리와도 좋은 그림을 많이 만들어냈었다.

    그것이 안티체리의 이미지와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때문에 더더욱 이번 이슈가 김도진과 엮일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은 김도진이 안티체리를 손절하기를 바랐다.

    그런 댓글은 당연히 도진의 SNS에도 수없이 달렸다.

    -손절좀요.

    -ㅅㅈㅈㅇ

    -ㅅㅈㅈㅇ

    단합하여 달리는 댓글들.

    그 댓글에 도진은 답글을 다는 대신, 하나의 게시물을 올렸다.

    게시물에는 글자가 아닌 사진 하나만이 있었다.

    기다란 봉에 뭉툭한 쇳덩이가 달린 그것은, 통짜 쇠로 만들어진 거대한 '오함마'였다.

    -?

    -이거..?

    심상치 않은, 그러나 과거 있었던 일로 무언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사진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그리고 단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기사가 떴다.

    -DS 엔터 산하 타이거라운드레이블 대표, 호원식 프로듀서 '노동 착취'로 피소!

    * * * *

    권이솔은 타이거라운드레이블, 그러니까 타고 올라가면 3대 기획사인 DS 엔터 소속의 작곡가였다.

    작곡가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서울로 상경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거라운드레이블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만 해도 이게 정말 현실인지를 의심했을 정도로 기뻤다.

    심지어 대표가 직접 그녀를 스카우트했다.

    "계집애, 진짜 성공했네."

    "그러게. 조만간 DS 아이돌들 노래 나올 때 작곡가 권이솔 뜨는 거 아냐?"

    "에이, 그렇게 쉽겠어?"

    친구들의 말에 처음엔 좋으면서도 아닌 척 대답했었다.

    하지만 친구들보다 그 자신부터가 그런 상상에 베개를 끌어안고 뒤척였었다.

    내가 다른 곳도 아니고 DS 아이돌들 곡의 작곡가가 된다니.

    …그런 꿈 같은 나날은 곧 무너져 내렸다.

    "여기서 머물면서 작업하면 돼."

    숙식 제공.

    그런 명목으로 고시원 같은 좁은 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처음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샤워도 주방도 공동 시설일 만큼 열악했지만 살인적인 물가를 생각하면 오히려 돈을 아낄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작사·작곡을 하는 사람들이니 영감을 얻기에도 좋은 환경이라 여겼다.

    한데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피폐했으며 미래가 없는 것처럼 어두웠다.

    그 이유를,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권이솔은 알게 되었다.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정규직도 아니고 심지어 계약직도 아니었다.

    "곡을 써서 가져 와. 괜찮아서 채택되면 그걸로 정식 작곡가로 이름을 등록할 수 있을 거야."

    호원식은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그 곡을 쓸 틈이 없었다.

    "이거 찍어서 가져 와."

    그녀는 이곳의 다른 사람들처럼 레이블의 대표이자 프로듀서인 호원식이 작업물을 던져 주면 그것을 기한 내에 완성해 가져다 주는 일을 했다.

    분명히 곡에 기여하는 작업이었지만 이름을 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커리어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커리어가 되지 않는, 몇 번이고 던져 준 작업물을 제출하면 수고했다며 몇십 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작곡을 할 동안의 '용돈벌이'라고 했다.

    한데 그 용돈벌이를 하느라 기한이 촉박해 밤을 새야 하기 일쑤였기에 제출하고 나면 제대로 된 컨디션을 되찾기 위해 또 시간을 써야 했다.

    그리고 제대로 회복이 되기도 전에 다른 작업물을 주니 자신의 곡을 만들 여유가 도저히 나질 않았다.

    이런 류의 일은 억지로 해 봐야 성과가 나질 않으니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물론 용돈벌이를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빠져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건강은 나빠져 갔고 곡을 쓸 틈은 없는데 돈도 모을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이십 만원, 혹은 삼십 만원을 받는데 생활비조차 버거웠다.

    저금이 다 떨어지고 하나둘, 필수라 생각했던 것들을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하루에 한 끼, 그나마도 라면 같은 거나 먹으니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저기, 대표님. 생활비가 필요해서요……."

    -아, 그래? 지금 부쳐줄 테니까 확인해 봐.

    "가,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둘 수가 없었다.

    당연히 받아야 하는 노동의 대가를, 그나마도 푼돈을 뒤늦게 자존심에 상처가 날 말로 부탁하고서야 받았음에도 감사합니다란 말을 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임에도.

    여기서 나가면 본가로 돌아가지 않고서야 갈 곳이 없다.

    배운 거라곤 이것 뿐인데 여기서 나가 다른 곳을 찾아 '다시' 바닥부터 시작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곳이 'DS 엔터'보다 나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처우 개선을 요구한다?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반기를 든다? 그랬다가는 이 바닥에서 매장될 뿐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니까.

    이곳 '개미지옥'에 빠지고 만 사람들은 모두 미래가 없는 얼굴로 피폐해져만 갈 뿐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버티지 못하면, 사라진다.

    까득-

    문득 권이솔은 스스로의 처지에 분노가 치솟아 이를 악물었다.

    '감사합니다? 미친 년아. 뭐가 감사한데. 이것밖에 안 돼?'

    앙상한 손가락을 그러쥐지만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띠링-

    휴대폰의 알람에 권이솔이 내용을 확인했고, 입금된 20만 원에 결국 주르륵 억누르던 것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더 비참한 것은, 그 입금된 돈에 밥을 사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분노보다 앞서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제 삼각김밥 하나를 먹었고 오늘 점심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권이솔은 눈물을 닦고 비척이며 일어나 외출했다.

    편의점에 들어섰고 언제나처럼, 삼각김밥 하나와 가장 싼 컵라면 하나를 두고 고민했다.

    그러면서 분노는 사그라들고 겁쟁이가 고개를 치들었다.

    알바생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체크 카드를 내밀어 계산하고 물을 받기 위해 구석에 비치된 온수기로 향했다.

    그러다가 휘청,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

    '아?'

    요즘 자주 겪던 빈혈 비슷한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괜찮으세요?"

    급히 내딛은 다른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몸 전체가 그랬다.

    누군가가 그녀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꼴사납게 넘어졌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괜찮으세요, 라고 그녀를 도와준 사람이 물었는데 그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고 심지어 말도 나오지 않아 두려움에 휩싸였다.

    '내가 왜 이러지?'

    반문했으나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아, 내가 아프구나.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아프면 안 되는데…….'

    밥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처지. 당연히 병원비는 있을 수가 없었다.

    몸이 아닌 치료비를 걱정하며 그녀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낯선 천장을 가장 먼저 보게 되었다.

    '여기는……!'

    정신이 또렷해지자 그녀는 크게 놀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부드럽게, 그러나 강하게 제지하는 손길이 있었다.

    "급격하게 움직이시면 안 돼요. 큰일날 뻔 했거든요."

    목소리는 그 손길의 주인임을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손길과 마찬가지로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다.

    권이솔의 고개가 힘겹고 느릿하게 돌아갔고, 이내 손의 주인을 확인하고선 눈을 크게 떴다.

    "김…… 도진?"

    갈라진 목소리에 손길의 주인,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김도진 맞습니다."

    "왜……?"

    "영양실조. 거기다 여러가지 이유로 정말로 몸 상태가 좋지 않으셨거든요. 조금만 늦었어도 정말 큰일났을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구요."

    "아……."

    그 말에 권이솔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걱정이었다.

    몸 걱정이 아니라 치료비 걱정.

    그렇게 걱정하는 권이솔에게 도진은 여전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 괜찮을 거니까."

    뭐가 다 괜찮을 거라는 건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데.

    그렇게 생각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권이솔은 그 말에 거짓말처럼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도진이 무슨 드라마의 능력있는 남주인공처럼 보였다.

    …그녀는 여주인공이었다.

    '나 정말 미쳤나 봐.'

    아니면 몸이 허한 탓이거나.

    머리맡에 앉은 도진은 잘생기진 않았으나 모나지도 않았다.

    그 평범함에 그녀가 알고 있는 '잠룡'의 명성과 천마의 후계자로서의 격을 갖추어가는 도진의 기질이 동시에 작용하여 특별함이 깃들었고 그녀가 그런 망상을 하게 만들었다.

    그 망상의 영향 때문이었던가.

    정신을 차리고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그녀는.

    "호원식, 용서하면 안 될 놈이잖아요."

    "네."

    도진의 말에 전의를 불태우며 자신의 등에 업혀 있던 겁쟁이를 패대기쳤다.

    그리고 작전이 먹혀들었다며 낄낄거리던 호원식을 고소한 것이었다.

    -DS 기획 산하 타이거라운드레이블 대표, 호원식 프로듀서 '노동 착취'로 피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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