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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61화 (261/741)

260화

3월을 코앞에 둔 시기.

잠룡문은 이제 어엿한 문파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도진이 문주로서 갖춰야 할 필수적인 것들을 갖추었고 꼬마 빌딩 또한 리모델링이 끝나고 필수적인 것들을 모두 갖추었다.

남은 건 문도들의 준비였다.

식객이자 문파의 중심이 되어야 할 서소담을 포함한 암산서가의 제자들은 정식으로 '신분'을 인정받게 되었다.

암산서가의 인물들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가문의 특성상 필수적인 부분이었고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비봉 서소담'을 만든 것도 그런 '사실이 아닌 신분'으로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암산서가의 제자들이 대대로 전해 내려온 족보를 근거로 하여 양지의 떳떳한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소담 아가씨. 이제서야 온전한 신분을 되찾으셨군요."

"아이, 왜 그래."

도진의 장난스런, 그러나 진심이 담긴 축하에 소담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어깨를 톡 쳤다.

그 모습이 참 귀여웠다고 도진은 생각하며 머릿속에 저장했다.

이후로는 무림인으로서 활동하기 위한 교육을 듣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수련했다.

과거라면 어디 문파의 어디 제자요, 혹은 실력으로서 자신을 증명하는 걸로 충분했겠지만 지금의 무림은 그런 '무협 세계'가 아니라 '현대'에 공존하고 있다.

때문에 객관적인 신분의 증명과 실력의 증명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흔히 말하는 '무림인 자격증'의 시험을 치를 필요가 있었다.

무림학교 학생의 경우엔 학생증으로, 공신력 있는 문파나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경우엔 그것으로 증명할 수도 있었지만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으면 자격증의 등급으로 '객관적인 증명'을 하는 것이 현대의 무림이었다.

이에 따라 소담의 경우엔 비봉이자 숭무고의 후기지수였기에 자격증을 딸 필요가 없었지만 학생도 아니고 실적이 없는 신생 잠룡문의 식객인 암산서가의 제자들은 무림인 자격증을 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추가로 경호를 위한 자격증에 심지어 보건증까지 꽤 따두면 좋은 것들이 많았던 이유로 잠룡문의 본격적인 활동은 예상대로 4월 즈음이 될 것 같았다.

"뭐, 그러니까 너희는 숭무고에 입학할 테니까 몇 가지 자격증이나 교육은 생략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꽤 바쁘게 움직여야 할 거야."

"복잡하네요."

설명에 우서진은 그렇게 말했고 도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일이 일인 만큼 그렇지."

감정을 다 떼 놓고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무림인은 '지능이 있는 무시무시한 맹수' 같은 존재다.

그런 존재들이 무림이란 세계를 구축하고 현대에 녹아들어 활동하니 그에 따른 규제나 제도가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명성과 신뢰도가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고.

"그러고 보면 무림열전 같이 하기로 했었는데 벌써 3월이 코앞이 돼 버렸네."

"그러게요."

랭킹전 축제에서 도진은 우서진, 상미와 함께 VR 게임인 무림열전을 하자고 이야기를 나눴었다.

한데 본래 예정에 없던 문파 창설과 그 준비로 어느새 3월을 코앞에 두게 되었다.

"뭐, 그건 언제든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맞아요."

우서진의 말에 본래 그것을 기대했던 상미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과 함께 VR 게임을 한다는 건 분명히 기대되는 일이었지만 지금 그 이상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우서진의 말대로 무림열전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같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근데 형."

"응?"

"우리 첫 일로는 뭘 하게 될까요?"

"흠, 그러네."

소규모 신생 문파는 보통은 그 지역의 연고자가 알음알음 인맥을 통하여 소소한 일들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신뢰를 쌓고 인맥을 쌓아 조금씩 큰일을 맡아 나가는 게 기본적이다.

하지만 도진의 잠룡문은 조금 다른 형태가 될 확률이 높았다.

일단 도진의 명성과 인맥부터가 '소규모'나 '신생' 같은 단어와 어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이 부분은 조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으니 문주인 도진이 'SNS 대기업'이기도 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후기지수로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림은 인맥과 실력이 중요한 곳이며 그것으로 일이 돌아가는 게 당연한 곳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초장부터 인맥으로 '날로 먹는' 것을 보여주는 건 이미지상 좋지 않은 일이니까.

때문에 이 부분도 외부 고문으로 열심히 활동해 주고 있는 오성아의 조언에 따라 계획을 짜 볼 예정이었다.

"뭐, 그건 그때의 재미로 남겨두기로 할까?"

"그게 재밌겠네요."

동생들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도진은 오성아를 만나 좀 더 전문적인 업무의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을 함께 한 뒤 헤어졌다.

이후 아버지의 회사에 들러 연호신공을 봐 드리고 집에 들어와 어머니에게 인사하고, 동생들까지 더해 연호신공의 저녁 수련을 함께 한 뒤 자신의 수련을 위해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연신극기공을 운용하여 육체 단련을 위한 달리기를 한다.

연신극기공으로 육체 내외에 부담을 가하여 산소가 극히 희박한데 중력은 몇 배나 되는 조건과 흡사한 환경을 만들고 거기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초식의 동작을 곁들여 수행해야 하는 달리기다.

이것을 30분 수행하고 10분은 평범하게 수련하여 어느 정도 회복한 뒤 반복하는 식이었다.

웬만한 인내력과 정신력으론 채 3분도 못할, 다시는 할 엄두도 못낼 만큼의 무시무시한 수련이었지만 도진은 이것을 말 그대로 일상처럼 수행해내고 있었다.

하물며 자세가 정확할수록 그 효율이 높아지는데 도진은 그것의 최대 효율을 끌어냈다.

그렇기에 매일 한 걸음씩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여유롭게 거닐던 도진은, 생각지도 못하게 어느 편의점 앞 야외 테이블에서 소주를 '까고' 있는 이은지를 발견한 것이었다.

-오늘은 못 들어갈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아뇨, 죄송할 건 아니죠. 수고하세요.

그런 문자를 받은 게 저녁 시간 즈음이었다.

무슨 일이려나 싶었는데, 이렇게 야외 테이블에서 세 병째의 소주를 앞에 두고 볼이 발간 이은지를 보고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늦게 들어가는 건 면목이 없는 일이다.

하물며 그냥 늦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설령 일찍 들어간다 해도 눈치가 보일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가는 건 결코 안 될 일이다.

그런 생각으로 이은지는 아예 들어가지 않을 결정을 하고 그렇게 문자를 남긴 것이었다.

'그렇지.'

도진이 아는 이은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리다 해도 이런 건 어릴 적부터 확립되는 가치관이니 기억 속의 이은지와 다르지 않았다.

도진은 잠시 생각하다 이은지에게 다가갔다.

"이런 데서 혼자 술 먹고 있으면 위험해요."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곳은 위치상으로 숭무동과 문월동의 중간 정도 되는 동네다.

치안이 극악하다, 고 할 만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은지 같은 여자 아이가 혼자 술에 취해 널부러져도 괜찮은 곳도 아니다.

문월동이었으면 벌써 양아치들이 꼬였거나 술에 못 이겨 잠들기만을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곳도 그런 위험성은 얼마든지 있는 곳이었기에 도진이 다가와 인사한 것이었고.

무공의 어두운 면, 뒷골목 흑도들이 탄생한 뒤로 한국의 밤도 조금은 더 위험해졌다.

이은지는 마주 앉는 도진을 거절하지 않았다.

아주 살짝 눈이 풀려 있는 것이 취기를 억제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은지가 '혼술'을 즐긴다는 건 비밀이 아니었지.'

따로 술자리를 좋아하거나 즐기는 건 아니었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 혼자 집에서 소주를 마시곤 했다는 이야기를 이은지는 인터뷰나 팬카페에서 몇 번이고 했었다.

오늘도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던 듯했다.

쪼르륵-

소주를 종이잔에 한 잔 따라 마신다.

크으 소리를 내지도 않고 크게 넘기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속에 쌓인 것이 내려가길 바라는 것처럼 한 모금 쓴 액체를 무겁게 삼켰다.

그리고서 취기를 빌어 도진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것이었다.

"돈 벌기가, 쉽지 않네요."

"고시원 방 한 칸 구하구, 학원 다닐 정도로만 벌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만'이라고 할 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자취라는 걸 해 본 사람들은 말한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돈이 나간다고.

그만큼 힘든 일이었고 생각 이상으로 돈이 필요한 일이었다.

여기에 이은지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큰돈이 들어가는 트레이닝 학원 또한 다녀야만 했다.

그런 돈을 모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숙식 공사장 알바를 다시 해보려 해도, 문제를 일으켜 해고된 이력이 남아 있어 힘들었다.

"…이모 말이 맞았는데."

이은지는 어려운 집안 환경에서 자랐다.

첫째 딸로 무공에 특출난 소질이 있어 그쪽으로 나가면 큰돈을 벌 수 있으니 부모가 조금 무리를 하여서 무림학교에 진학시켜 주었다.

한데 거기서 문방구 엔터의 눈에 띄어 걸그룹을 준비하게 된 것이었다.

"하고 싶었거든요. 집이 힘들다는 걸 알았고 이러다 실패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는데, 그래도 하고 싶었어요."

문방구 엔터면 그래도 이름이 있는 회사였기에 이은지는 고집을 부려 서울로 상경해 이모집에 머물게 되었다.

이모는, 그런 이은지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너네 엄마도 힘든데 꼭 해야겠니?

이은지의 부모는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결혼할 때부터 집을 마련할 형편이 안 되어 외할아버지, 할머니네와 합쳤던 것이다.

그리고 요즘 들어 벌이가 시원찮아 더 힘든데 굳이 걸그룹 같은 데 도전해야겠냐는 말이었다.

물론 이은지는 예뻤다. 또래 중에서 대번에 눈에 띌 만큼.

허나 아이돌이란 '천운'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세계였다.

하물며 소속사에서 돈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았고 그것을 문방구 엔터는 연습생의 집안에서 부담하게 했다.

이모 입장에서는 그것이 결코 좋게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입학 시험에서 떨어지고 결국 방출되기까지 했는데 그러고도 이쪽 길을 포기하지 않으니 이모는 물론이요 집안 전체가 이은지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았다.

'그랬었지.'

이은지의 이야기를 도진은 전생의 기억으로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이은지는 선택의 기로에 있었고, 이 악물고 성공하겠다 다짐하며 결국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몇 년 뒤 성공한 것이었다.

-어휴, 저게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언제까지 저렇게 철없이 살려는 건지…….

친척들의 그 말에도 이은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엔 우유나 신문 배달, 오후에는 카페 알바를 하고 저녁에는 학원에 다니며 실력을 쌓았다.

도진이 기억하는 이은지는 그랬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알고는 있는데, 그날따라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가출하고 만 거예요."

…한데,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소진이랑 혜진이랑 은영이는 합격해서 조금씩 꿈을 이루고 있는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정말로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이모랑 이모부가 그런 말을 하시니까…… 울컥하고 말았던 거예요."

말과 함께 되살아나는 그때의 감정을 이은지는 소주 한 잔으로 조용히 삼켜 내렸다.

그리고 그런 이은지를, 도진은 깊어진 눈동자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도진의 기억과는 다른 지금 이은지의 모습.

그것이…… 도진으로 인한 변화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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