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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59화 (259/741)
  • 258화

    사실 도진에게 있어 가출이란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문월동에서 문월중과 문월고에 다녔던 전생의 도진은 가출 청소년을 흔히 접할 수 있었으니까.

    등교했는데 자리에 없던 동급생이 결국 나타나지 않았을 때 선생들은 덤덤하게 이놈 가출했구나, 여겼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동네 아줌마들이 누구누구네 누구가 가출했네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특별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가출한 놈들이 흑도의 심부름꾼이 되어 뒷골목을 돌아다니는 것까지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생의 도진 주변에서나 특별하지 않은 일이었지 이은지에게까지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도진은 우선 담담한 얼굴로 이야기를 계속 듣고자 했다.

    "그런데 어쩌다 숙식 제공 알바를 찾았는데 그게 여기 공사장 알바였어요."

    …한데 내용이 점입가경이었다.

    '끙.'

    숙식 제공 공사장 알바.

    그것은 무공을 배운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탄생한 알바 중 하나다.

    본래 흔히 말하는 '노가다'는 매일매일 나갈 수 있는 알바가 아니었으며 학생들이 덤빌 수 있는 알바도 아니었다.

    몸 성한 대학생들이 사회의 쓴맛과 인생을 알고자 한다면 경험 삼아 한두 번 해볼 만하다 정도로 이야기하던 그런 게 바로 노가다였으니까.

    하지만 여기에 무공이 더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공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일단 내공을 품은 무림인이 되었다면 덜 여문 중고등학생이라 해도 노가다를, 심지어 육체 단련 삼아 할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여기에 무림학교에 다니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한데 무공을 익힌 경우 노가다 페이를 더 주는 등의 배경들로 인해 공사판에 무림학교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쉽게 일을 구할 수 있고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닌 데다 무림학교 학생을 우대하니 이들의 비중이 늘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생긴 것들 중 하나가 숙식 제공이다.

    기왕 쓰는 것 하루하고 마는 것보다 며칠이라도 계속 시키는 게 능률도 오르는 등 장점이 많으니 페이에 숙식 제공을 더해 일주일 이상 단위로 계약하여 쓰는 형태다.

    …그리고 이런 계약의 특성상 모이게 되는 '학생'들의 다수는 필연적으로 가출 청소년이다.

    본래는 휴학하거나 재수 중인 학생들을 위해 생긴 것인데 여러가지 요건이 겹쳐 지금은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제도가 되어 버렸다.

    당연히 환경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한데 그런 곳에 이은지가 들어가 버렸다는 말이다.

    도진이 한숨을 꾹 누르며 말했다.

    "…돈 잃어 버리거나 하진 않았어요?"

    "…네, 현금을 좀 잃어 버렸어요."

    남녀 구분이야 한다지만 기껏해야 좁고 더러운 컨테이너의 몸 누일 공간 정도밖에 없는 숙소였을 것이다.

    그런 곳에 질이 좋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있었으니 정신 차리지 않으면 눈 뜨고 코 베이는 게 당연하다.

    그나마 이은지의 경우 숭무고 입학 시험에 응시할 정도의 실력이라도 있으니 봉변을 당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그것도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만 말이다.

    당장 오늘 도진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이은지는 빨대를 우물거리다 말을 이었다.

    "딱히 갈 곳도 없는 상황에서 오늘 일이 반장님 귀에 들어가면 쫓겨나거든요. 그러니까……."

    신고는 하지 말아 달라.

    그런 이야기였다.

    '…….'

    도진은 아까보다 더욱 길고 무겁고 진하게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꾸욱 눌러 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적어도 도진이 아는 범위 내에서 이 시기에 이은지가 가출을 하고 공사장에서 알바했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본 적은 없었다.

    알려지지 않았다거나 숨겼을 확률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니고 숙식 제공 공사장 알바에서 이은지 정도나 되는 여학생이, 그것도 가출을 한 상황에서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요즘 시대에 알려지지 않았을 리도 없었을 터.

    그러니까 무언가가 작용해서 전생과 다르게 이야기가 바뀌었다고 봐야 한다.

    고개를 들어 이은지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이은지는 도진의 시선을 잠시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이은지.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

    가수로 시작하여 노래는 물론 연기로까지 대성공을 거둔 젊은 여왕.

    도진이 기억하고 있는 건 그런 여왕이었는데…….

    지금 눈에 비치는 동갑내기의 어린 그녀는 어리숙하기만 했다.

    그리고 도진은 그런 모습을 곧 이해했다.

    지금의 그녀는 어리숙한 게 당연하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지금 도진의 앞에 앉은 것은 도진이 아는, 풍파를 이겨내고 수많은 경험을 쌓은 이은지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아이돌 생활을 하느라 사회를 모르고 그저 노력만 해 오다 이내 한 번 실패를 겪게 된 소녀 이은지였다.

    도진은, 그런 이은지를 도와주기로 마음 먹었다.

    겨우 서른 중반까지의 삶을 살아 놓고 말하기엔 뭐하지만, 그래도 어른이었던 도진의 눈에 비치는 이은지는 그런 도와주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어린 소녀였으니까.

    팬이라고 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역경에 포기하지 않고 성공했던 그 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의 '내적 친밀감'도 있다.

    민중을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그녀와 친분을 만들어 둔다는 '속세적 목적'도 달성할 수 있고 말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린 도진이 말했다.

    "제가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거예요."

    "네?"

    고개를 든 이은지를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단순히 가림막만 쳐 두는 걸로 안심할 수는 없잖아요. 거기엔 CCTV도 설치가 되어 있어요."

    "아……."

    지금은 현장에서만 이야기 되고 있지만 몇 년이 지나면 현장의 무림학생들로 인한 일탈이 꽤 큰 문제로 대두된다.

    오늘 이은지가 당할 뻔 했던 것처럼, 여러 흉악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슈화되는 게 그때였던 거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이렇게 은밀하게 CCTV를 설치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이쪽도 아직 이야기가 퍼지지 않아 이은지는 물론이요 도진에게 얻어맞은 양아치들도 몰랐던 것이다.

    즉.

    "신고를 하든 안하든 내일이 되면 그 반장님이란 사람이 알 수밖에 없는 이야기란 거예요."

    도진이 굳이 '증거'를 만든 것도 무단침입을 한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가 생긴 듯해서 확인하기 위해 들어갔다고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이은지는 도진의 말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런 이은지에게 도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은 어쩌실 거예요? 거기 숙소로 돌아가긴 힘들잖아요?"

    "……네."

    그런 일이 있었던 뒤다.

    내일 일은 내일 일이고 지금 당장도 숙소로 들어가기엔 아주 많이 껄끄러운 상황이다.

    "……."

    이은지는 말없이 우물쭈물했다.

    도진은 잠시 생각하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말했다.

    "잠시 전화 한 통만 할게요. 어디 안 가고 여기서 좀요."

    "네에."

    통화 내용을 숨기기 위해서 보통은 자리를 떠나겠지만 도진은 섭음술을 사용할 수 있는 무림인이다.

    몸만 돌리고서 전화를 걸었다.

    -응, 도진아.

    늦은 시간에 선명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건 다름 아닌 레드슈의 리더이자 동기인 박소진이었다.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지만 무림인인 박소진은 아직 잘 시간이 아니었고 그것을 잘 알고 있던 도진이 망설임없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

    "응, 소진아. 다른 게 아니라 좀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뭔데?

    "그러니까 은지…… 씨랑 여전히 연락을 하고 있는지랑 사이가 괜찮은지."

    생각해 보니 동갑에 열일곱 학생끼린데 존댓말을 하고 있다.

    이은지가 처음에 존댓말을 한 탓에 이렇게 되어 버렸다.

    어쨌든 이건 사소한 문제고.

    '예전에 확인해 볼 걸 그랬어.'

    랭킹전 때 소진과 마주쳤을 때 이은지에 관해 물어볼까 생각을 했었으나 이내 하지 않았었다.

    하는 순간 이미 늦은 것이지만 이렇게 되니 약간 후회를 하게 된다.

    -혹시 지금 은지랑 있는 거야?

    "응. 어쩌다 보니……."

    도진은 짧게 이은지가 가출한 상황이라고만 설명했다.

    소진은 응, 하고 답하고선 잠시 텀을 둔 뒤 말했다.

    -요즘엔 연락이 뜸했어.

    이은지가 희생양이 된 건 레드슈 멤버들의 의지가 아니란 걸 서로가 알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까지도.

    -괜찮아. 너희 탓이 아니잖아? 내가 부족했던 거야.

    그러니까 이은지는 어른스럽게 그렇게 말하고 팀을 떠났지만, 정말로 어른인 게 아니었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그게 아니었고 힘들어 할 수밖에 없었으며 상황도 좋지 않았다.

    말수가 뜸해지다 단체 대화방을 나갔고 이후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다고 소진은 말했다.

    "음, 그럼 지금 은지 씨가 너희 숙소로 가면 많이 어색할 수 있겠네."

    -그렇긴 한데 싸운 건 아니니까. 혹시 곤란한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머물다 가도 된다고 말해 줘.

    "괜찮겠어?"

    -응. 결정되면 다시 연락해 줘. 그러면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 둘 테니까.

    "그래, 고마워."

    통화를 하다 보니 소진이 꽤 성숙해졌다고 도진은 생각하게 되었다.

    이은지가 무조건 온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확실히 정해지면 다른 멤버들에게 말할 테니 연락해 달라고 한 그 말에 꽤 많은 배려와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관현 게이트에서의 일을 포함한 요 일 년간의 일이 그만큼 그녀를 성숙하게 해 준 것이었다.

    통화를 끝낸 도진은 휴대폰을 넣고 다시 이은지와 마주했다.

    "숙소 말고, 따로 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죠?"

    굳이 돌려 말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도진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배려하며 말했고 이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멀지 않은 곳에 레드슈 애들 숙소가 있는데, 거기로 가실래요?"

    나쁘지 않다고 도진은 생각했다.

    사실 처음엔 자신의 집을 떠올렸다.

    어차피 쓰지 않는 별채가 있으니 거기 머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니 출입 절차가 필요한 숭무동 내에, 그것도 친하지도 않은 도진의 집으로 가자고 하는 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선책으로 떠올린 것이 레드슈의 숙소였던 것이다.

    허나 그런 도진의 생각과 다르게 이은지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거기는 싫어요."

    생각 이상으로 강한 거부 의사였기에 도진의 눈썹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싸운 건 아니라고 했는데 이렇게 단칼에, 강하게 거절하는 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호텔이나 모텔로 보내기도 그렇고…….'

    도진은 결국 첫 번째 생각을 꺼냈다.

    "음, 그럼 우리집에서 하루 주무실래요? 따로 안 쓰는 별채가 하나 있거든요. 오늘은 거기서 자고 내일 같이 일하시는 현장에 가도록 해요."

    CCTV에 출입하는 장면이 찍혔으니 어차피 도진도 해명할 겸 내일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도진의 말에 이은지가 안도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해 주시면 저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결국 도진은 이은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기에 택시를 타고 숭무동까지 왔다.

    오는 사이에 문자로 숙소에 가지 않게 되었다고 소진에게 연락했다.

    "출입증 발급해 주세요."

    "예."

    출입 관리소에서 이은지의 임시 출입증을 발급 받고 집에 들어왔다.

    이미 열두 시가 다 된 시간이라 동생들은 물론 어머니마저 주무시는 중이었기에 도진은 바로 조용히 별채로 이은지를 안내했다.

    "보일러는 넣어 두었고 화장실은 여기 쓰시면 돼요."

    오는 길에 일회용 샴푸, 칫솔 등을 사 왔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고 있던 별채라지만 주기적으로 청소 업체를 통해 관리를 받고 있었기에 하루 머물기에 지장이 없는 수준의 먼지만 있어 크게 불편한 부분이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내일 몇 시에 나가셔야 하죠?"

    "일곱 시까지는 가야 해요."

    "네. 그럼 그때 아침 먹고 같이 가도록 해요."

    "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는 이은지를 두고 도진은 별채를 나왔다.

    '어머니께는 내일 아침 먹으면서 말씀 드려야겠네.'

    어쩌다 보니 말도 없이 외간 여학생(?)을 재우는 모양이 되어 버렸다.

    6시면 어머니는 물론 동생들까지 함께 아침을 먹고 나갈 수 있는 시간이니 그때 말씀을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공사장에서의 일과 그 뒤의 일까지, 본래 예정에는 없던 일들을 생각하며 도진은 우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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