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254화 (254/741)

253화

-신풍회, 회주 명의로 사과문 전달.

카자카미 히로토를 포함한 '몸통'이 잡히면서 암산서가는 물론이요 봉합되는 듯했던 답청문의 사건 또한 재조사가 되면서 그 배후가 스미하라가 아닌 신풍회임이 드러났다.

스미하라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하려 했다는 비판과 비난이 쇄도하는 가운데 신풍회는 버티는 대신 허리를 숙였다.

-신풍회 회주가 허리를 숙였다!

단순히 사과문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신풍회의 회주가 직접 공식 석상에서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으니 그야말로 '바짝 엎드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처였다.

-본가의 직계 혈족이 벌인 일에 회주로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으며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어디까지나 신풍회가 아니라 '신풍회 혈족 중 한 명'이 주도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식으로 또 선을 긋긴 했다.

신풍회는 거대한 조직이며 홀로 전체를 아우르는 게 아니기에 공백이 있었다고.

허나 그 직계의 처분을 온전히 한국에 맡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피해자인 답청문과 암산서가는 물론이요 추후 드러날 모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충분한 피해 보상을 하겠다는 입장마저도 회주 명의로 밝혔으니 흔히 생각하는 '썩은 거대 집단의 뻗대기'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심지어 답청문과 암산서가에 아직 판결도 확정나지 않았는데 수십억의 위로금을 발빠르게 지급하기까지 했다.

-아잇 싯팔!

-처신 잘하라고!

-…라고 해야 하는데 왤케 처신 잘하냐;;

-너무 빼박이라 그런가 ㅋㅋ

때문에 한국에서도 욕은 하되 그 처신에 관해서만큼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발뺌하고 버티는 게 아니라 바짝 엎드리며 사과하니 오히려 이쪽이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사건에 대한 화제에는 당연히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으니 도진과 지인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번 작전에 폭룡 류대현만이 아니라 한유아가 운영하는 회사까지 포함돼 있었잖아. 뭐 어떻게 덮거나 비벼볼 만한 건덕지가 없으니 걍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지.

-거기다 저번 개미굴 사건에 참여했던 무림 전담 타격대에서 부대장 맡았던 사람이 김도진 신고에 과감하게 전력을 투입했다고 함.

-ㅇㅇ 그거 아니었으면 조금 힘들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있었는데 ㄹㅇ 구국의 결단이었음.

-구국의 결단 ㅋㅋㅋ

-그 결단으로 그 사람도 표창 받음 ㅋ

-닌자들이 표창 날렸음?;;

-아이시바 노잼ㅡㅡ

-나가이새끼야

-ㅈㅅ

한국의 대무림 전력을 상징하는 무림 전담 타격대에 폭룡 류대현의 가문이 운영하는 백호, 여기에 금화의 영애인 한유아가 운영하는 회사 또한 참여했다.

-나지윤이 제대로 칼을 갈기도 했지. 보니까 카자카미 히로토 잡으려고 회사 전체를 동원했더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댔자너.

-나지윤은 남자인데요.

-잘생겼으니까 소급적용 가능함.

-?ㅋㅋㅋㅋㅋㅋㅋㅋ

-얼탱이 없는 소린데 왜 설득력이 있지?..

그리고 나지윤을 필두로 한, 피해자였던 답청문도 크나큰 공헌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폭발적인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는데 무려 '비봉'이라 불리던 소담의 출신 가문이 얽힌 일이었으니 그야말로 다른 이슈를 모조리 잡아먹는 블랙홀급의 사건이 되었다.

-나는 진짜 서문호 그 사람 잘못은 전혀 없다고 생각함.

-나도.

-나라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숨기면서 헌신했는데 그 보답을 전혀 못 받았잖아. 근데도 나라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신념을 지켰으니 비석을 세워줘도 모자랄 일임.

-지원을 받긴 했는데 그러고도 절대로 무고한 사람을 해친 적은 없다는 데서 이미 게임 끝이지.

-신분 공개하고 국민에게 죄를 청하겠다 하는데 존나 멋있었음.

암산서가의 여론은 지극히 좋았다.

어찌되었든 사람을 죽였으니 잘못이다, 라는 의견은 무림과 공존하는 사회에서 그다지 공감을 얻지 못했다.

지극히 윤리적으로 따지면 '살인(殺人)'은 죄이지만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안 된다며 그런 사람이라면 목숨을 잃어도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 또한 팽배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암산서가 출신이었던 소담에 대한 여론 역시 다행히도 우호적이었다.

모두 모인 자리에서 고해 성사를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소담을 친구들 또한 감싸주었고 말이다.

-근데 진짜 이번 숭무고 42기는 황금 시대 그 자체네.

-아니 42기가 아니라 잠룡 패밀리가 황금 패밀리 아님?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이번 빅 이슈에 얽힌 건 죄다 잠룡 지인들이자너.

그리고 화제는 그렇게 도진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사실 개미굴에서 활약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대단한 신진 고수 하나 탄생하겠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완전히 잘못 생각한듯.

-ㄹㅇ. 않이 이제 겨우 1학년인데 업적 무엇?ㅋㅋㅋ

-개미굴에서 시작해서 아예 뿌리인 신풍회 직계까지 잡아 버렸는데 아직 1학년이라고요 ㅋㅋㅋㅋ

-검봉 유지은이랑 정의검가랑도 사이 좋고 오성이랑도 사이 좋고 명성공방은 아예 이웃사촌이자너.

-웨일스 후작가랑도 사이 좋음. 잠룡 동생들이 그쪽 또래랑 어울려 다님 ㅇㅇ

잠룡(潛龍).

아직 하늘에 오르지 않고 물 속에 숨어 있는 용.

'아직' 학생인 도진에게 이보다 어울리는 별호는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아직 학생이지만 머지 않아 무림인이 될 도진은,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일들을 해냈다.

그렇다면 과연 학생의 딱지를 뗀, 승천을 하는 용은 얼마나 대단한 것들을 보여줄까.

사람들은 그런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 * * *

2월을 코앞에 둔 1월 말.

도진은 소담과의 약속으로 어느 카페의 프라이빗룸에 들어섰고 소담과 함께 있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을 마주하게 되었다.

비단 같은 까맣고 긴 머리카락을 커다란 리본으로 가지런히 묶어 어깨 앞쪽으로 늘어뜨린 헤어스타일의 그녀는 폭신해 보이는, 그러나 약간은 유행에서 뒤쳐진 스타일의 니트 티셔츠 차림까지 더해 외모와 달리 연륜이 느껴지는 푸근한 분위기였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서른한 살로 상당한 동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소담은 그녀를 언니라고 불렀는데, 어릴 적부터 그녀를 돌봐 주어 흔히 말하는 '업어 키웠다'고 할 정도의 나이 차가 있었다.

소여은.

암산서가에서는 후대를 잇기 위해 고아나 불우한 가정의 아이들을 거둬들여 제자로 삼곤 했는데 30대의, '1대 제자' 중 막내가 그녀였다.

본래 심지가 약한 그녀는 암산서가의 제자가 될 수 없었으나 서문호가 일부러 제자로 들였다.

서문호 대에서 더 이상 암살자를 키우지 않으려 했기에 버려진 아기였던 그녀를 굶어 죽거나 객사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들였던 것이다.

그렇게 암산서가의 아이가 된 그녀는 여리지만 섬세한 성격으로 이후 들인 2대 제자들을 돌봐 주어 '엄마'란 별명으로 불리며 암산서가의 살림을 도맡아 주었다.

그런 배경을 들었기에 도진은 소여은과 소담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큰언니의 보살핌 속에 자랐으나 사춘기가 온 동생, 같은 느낌을 말이다.

그런 그녀와 소담을 오늘 만나게 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거취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신가요?"

"아뇨……."

바로 처벌을 피한 암산서가 제자들의 거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암산서가의 모든 인물이 살행에 가담하거나 도움을 준 건 아니었다.

제자란 명목으로 아이들을 들이긴 했으나 가면 속 꿍꿍이를 알게 된 뒤로 서문호는 1대 제자의 막내인 소여은부터 2대 제자까지를 살행에서 완전히 배제한 것이다.

애초에 그쪽으로 키우질 않았다.

덕분에 소여은과 2대 제자 일곱 명까지 총 8명은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남았으니 소여은을 포함한 제자들이 세상 물정에 너무나 캄캄해 물가에 내놓은 아이와 다름 없는 상태였다는 거다.

여기엔 교육에 한계가 있는 폐쇄적인 환경과 카자카미 히로토의 수작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러고 보면 소담이도 그랬지.'

재능 충만한 천재임에도 기계에 약하다거나 물정에 대해 어둡다거나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나마 딸이었던 소담은 아버지의 신념에 반발하여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했던 만큼 덜한 편이었지만 소여은을 포함한 여덟 명은 거둬들여 키워 준 '문주'를 철저하게 따랐기에 꽤 심한 편이었다.

지식은 있지만 경험이 깃들지 않아 죽은 것이고 사회의 삶에 대해 무지했다.

때문에 안 그래도 동안인 소여은은 시선에 따라선 홧김에 가출한 물정 모르는 불안한 눈동자의 소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배타적이기까지 해 외부의 조력을 쉬이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담이 믿고 신뢰하며 큰 도움을 주었던 도진에게 조언을 얻고자 만남을 청했던 것이다.

'흐음…….'

암산서가의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여론도 좋았고 여러가지 상황이 참작되었으며 답청문 때와 마찬가지로 모범수 서약까지 할 수 있으니 소담의 아버지이자 암산서가의 문주인 서문호도 5년 이상은 나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신풍회가 사죄의 의미로 대번에 수십 억의 배상금을 입금하기까지 해 금전적인 걱정도 없다.

다만 오히려 그런 큰돈이 생겼기에 돈을 보고 꼬이는 날파리들을 걱정해야 했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보호자마자 없는 암산서가의 제자들은 사기꾼들에게 있어 이보다 먹음직스러울 수 없는 작업 대상이었으니까.

"음……. 여러분들은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도진은 우선 그렇게 물었다.

소여은은 깊이 고민하여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대답을 했다.

"문주님을, 삼촌을 기다리고 싶어요."

서문호는 자신의 대에서 암산서가를, 처단자 가문으로서의 소임을 끝내려 했다.

제자들은 처단자 가문으로서의 신분을 버리는 데에는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암산서가 자체의 맥을 끊으려는 데에는 동의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합심해서 문주님의 의견에 한목소리로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삼촌은 우리를 모두 파문해 버리셨어요."

서문호는 그런 아이들에게 혹여 피해가 갈까 소여은 이하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모조리 파문해 버렸다.

때문에 이들은 암산서가에 남아 그 이름을 지킨다는 선택지조차 고르지 못한 채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삼촌을 떠날 수 없어요. 죄송하지만, 이번 말씀도 어기기로 했어요."

이들은 기다리기로 했다.

서문호가 형을 마치고 나오면 정식으로 찾아가 파문을 물려달라고 할 계획이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하나다.

"삼촌이, 문주님이 나오실 때까지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 물정을 모를 뿐이지 큰돈을 쥔 '아이들'이라는 상황 파악마저 못할 정도로 이들은 둔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공을 익힐 만큼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인재들이다.

이들이 약 5년에서 6년 가량 세상에 적응하며 서문호를 기다릴 수 있도록 조언해 주는 것을 소여은과 소담은 기대하고 있는 것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들은 그나마 소담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도진이기에 기대를 가진 것이고 그 외에는 지극히 배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신풍회의 일까지 있었기에 도움을 주려는 외부 세력을 전혀 믿지 않는 것이다.

인간 관계가 지극히 협소했고 환경 또한 그러했기에 생각 이상으로 이 부분의 문제가 크다.

그렇다고 이들끼리 독자적으로 사회에 대해 공부하고 살아가게 한다는 것 또한 수많은 문제를 야기할 터.

이들이 큰돈을 소지하고 있다는 걸 전국민이 다 알고 있으니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음…….'

차가 식을 때까지 고민하던 도진이 이윽고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소담과 소여은의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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