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오오오오오오오-!!
사납고도 흉폭하다.
그야말로 분노한 맹수가 포효하는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기세.
"그러고 보니 처음이네."
어느새 다가와 중얼거리듯 말하는 유지은의 옆에서 소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것들이 생략된 말이었지만 같은 등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소담은 그 생략된 내용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1학년을 같이 보낸 소담이었지만 그랬다.
함께 지내면서, 단 한 번도 도진이 이렇게 흉폭하게 기세를 터뜨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유지은이 눈동자를 빛내며 도진의 등을 바라보았다.
"헤에, 후배가 화를 내면 이렇게나 무섭구나. 근데 멋있네."
유지은이 봐 온 도진은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인선(人仙)' 같았다.
신선 같은 무공을 구사하되 분명히 인간으로서의 모습으로 사는 사람.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단면뿐이었던 듯하다.
지금 도진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또 거창하게 말하자면 세계를 공포로 뒤덮을 마왕 같다.
그녀와의 비무에서 보여 주었던 신선의 춤사위보단 폭력 그 자체를 휘두를 것만 같은.
그 무시무시한 기세를 마주하며 카자카미 히로토는 이성을 차갑게 식혔다.
'냉정해야 한다.'
새삼 '잠룡 김도진'이 주요 경계 대상임을 카자카미 히로토는 상기했다.
검봉 유지은 이상으로 위험한, 한국 학생이라는 색안경을 버리고 경계해야 하는 인물.
실제로 그는 하련 무사라고는 하나 '시술'을 받아 내공이 폭증했던 무인마저 베어 버렸고 오오후미 카이토의 목을 찔러 버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를 이길 정도는 아니다.'
스르릉-
카자카미 히로토는 검을 뽑았다.
그 또한 시술을 받았다.
덕분에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내공이 폭증하였고 온몸을 힘차게 돌며 충만한 상태다.
중요한 건, 당시 개미굴의 '반 사람 몫'밖에 못하던 놈과 달리 카자카미 히로토는 이 상태에도 익숙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연구와 인체 실험 덕분에 단점을 보완하여 완성된 시술법은 내공이 폭증한 상태에 익숙해지기 위한 수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속 시간이 길어지고 부작용이 제거되었다.
즉 개선된 시술을 받은 그는 훈련을 통해 적응하여 이 상태가 어색하지 않았고 충분히 증가한 힘을 컨트롤 할 수 있었다.
'그래, 인정하마. 너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하다.'
그러나 시술을 통하여 얻은 '초월공(超越功)'을 발동한 카자카미 히로토의 내공은 그런 도진을 상대로도 아주 약간의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러니까 겁먹을 것 없다.
지금껏 해 온 대로, 철저하게 연습해 온 대로 상대하기만 한다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김도진마저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한 카자카미 히로토는 신중하게 기수식을 취했고.
뻐억!
다음 순간 다시 한 번 면상을 얻어맞으면서 '그럴싸한 논리'가 박살이 났다.
'뭐, 라고……?'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에 카자카미 히로토의 머리가 멍해졌다.
그렇게 멍해진 순간에도 도진은 자비없이 카자카미 히로토의 면상을 집중적으로 구타했고 그 격통에 카자카미 히로토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뻐걱!
"……!!"
도진의 손날이 울대를 강타해 그것마저 봉쇄당했다.
빠각!
"!!!!"
뻐억!
비명 대신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격타음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리고 카자카미 히로토는 소리없는 처절한 절규를 온몸으로 내질러야만 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힘의 총량'은 비슷해 보였을지 몰라도 그 질에서 그와 도진의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던 것이다.
도진이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경험을 쌓고 시행착오를 거쳐 '만렙'이 되었다고 한다면 카자카미 히로토는 초급 레벨까지만 착실히 쌓아 올렸을 뿐 중간 단계를 완전히 건너뛰고 만렙 캐릭터를 손에 넣은 꼴이다.
만렙 캐릭터 그 자체의 성능에는 익숙해졌을지 몰라도 본래 그 만렙이 되는 과정에서 쌓아야 했을 경험과 숙련도를 전혀 쌓지 못했다.
하물며 도진은 그냥 만렙도 아니고 위지혁과 장호가 의도한 기초 공사가 어느 정도 끝나고 그 성과가 조금씩 드러나는 단계에 이르러 평범하게 무공을 익혔다면 배웠을 것들마저 익혀 나가고 있는, '격이 다른 만렙'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힘의 총량이 비슷할 뿐 그가 그렇게 자신하던 '진심'을 드러낸다면 카자카미 히로토는 애초에 도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검을 쓸 것도 없이 배운 이치를 주먹에 담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일방적으로 구타할 수 있을 만큼.
그것을 도진은 알았으나 카자카미 히로토는 몰랐고 지금의 결과로 이어졌다.
도진이 쉼없이 카자카미 히로토를 두들기며 말했다.
"너처럼 싸가지 없고 재수없는데 잔대가리까지 얄밉게 굴리는 놈은 진짜 쳐맞아야 돼."
뻐억!
"근데 꼭 그렇더라고. 너 같은 새끼들이 안 쳐맞으려고 또 머리는 더럽게 잘 굴리잖아. 그래서 내가 좀 열이 받았었거든."
그래,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도진은 카자카미 히로토를 줘 패버리고 싶었다.
다만 그럴 상황이 되지 않았기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그저 말로만 속을 긁었던 것이다.
"근데 참 내가 운이 좋아. 이렇게 속 시원하게 줘 패 버릴 수 있으니 말이야?"
빠각!
턱뼈가 불길하게 으스러지고 어긋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도련님!"
그리고 다음 순간 절규하듯 그를 부르며 달려오는 정예 무사가 하나 있었다.
'외칠 시간에 빨리 구하란 말이다! 무능한 놈!'
평소의 체면도 자존심도 잊고 카자카미 히로토는 그렇게 속으로만 외쳤고.
꽈직-
안 그래도 내려앉은 코뼈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도진이 그의 면상을 디딤대 삼아 몸을 회전했다.
꽈아앙!
회전력을 이용해 정예 무사의 검과 격돌한 도진이 폭음과 함께 생겨난 반탄력을 이용해 몸을 뒤로 날렸다.
쓰러지지도 못하고 과거 복날 개 맞듯 처참하게 얻어맞던 카자카미 히로토는 그제서야 무릎을 꿇을 수 있었다.
"끄, 끄으으으……."
"와, 아프겠다……."
등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며 유지은이 입을 가리며 말했다.
"선배. 손 치워봐요."
"안 돼."
"웃고 있어서요?"
"어떻게 알았어?"
"제가 선배를 모르겠어요?"
"우와, 좀 심쿵."
상황에 맞지 않게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으니 등에 내려앉는 그 농담에 카자카미 히로토는 더더욱 몸을 떨어야만 했다.
"겨우 이걸로 심쿵해서야 되겠어요?"
"이것 때문만이 아닌데?"
"그럼요?"
"소담이한테 그런 것처럼 나도 누구한테 한 대 맞으면 이렇게 화 내 줄 거잖아."
"뭐, 그렇죠."
과연 유지은이 누구한테 맞을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한테는 따듯하지만 적한테는 자비없는 남자. 얼마나 매력적이야."
"으음……. 좀 부끄럽네요."
뿌드득-!
"다 이긴 줄 아느냐!!"
이를 갈며 소리치는 건 고통을 넘어선 분노에 몸을 일으킨 카자카미 히로토였다.
기세를 줄기줄기 피워올리며 노려보는 모습은 그러나.
"풋."
유지은의 비웃음을 샀다.
무시무시한 분노마저 일순 흔들리게 만들 만큼 통렬한 비웃음에 카자카미 히로토가 주춤거렸다.
"와, 진짜 잘 때렸다."
"그렇네요. 어때, 소담아. 속이 좀 풀려?"
"응."
"……."
카자카미 히로토의 눈두덩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부풀어 오르고 내려앉았다.
코뼈는 대수술을 한다 해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으스러졌고 입술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처참하게 터져 있다.
이빨이 몇 개나 털려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고 어긋난 턱뼈만이 겨우 제자리를 찾았을 뿐이니 제아무리 분노해봐야 모양이 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무인이라 어느 정도 스스로의 몰골을 짐작할 수 있었던 카자카미 히로토는 그마저도 분노로 바꾸어 으스러져라 주먹을 쥐고서 스산하게 말했다.
"…네놈들은 결코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 그럴 듯한 계획이 있다더라."
"쳐맞기 전까지 말이지."
죽이 맞아 조롱하는 유지은과 도진.
그러나 카자카미 히로토는 극을 넘어선 분노에 오히려 킥킥거렸다.
그리고 소담을 노려 보았다.
"가주가 말하더군. 우리를 제압하고 우리와 자신들의 죄를 만인에게 고하고 처분을 기다릴 거라고."
"……."
"근데 그게 될 것 같으냐?"
채채챙-!
카자카미 히로토의 물음을 장식하듯 날붙이가 격돌하는 소리가 연신 터진다.
카자카미 히로토가 데려온 정예 무사들이 암산서가의 무인들과 격돌하며 발생하는 소리였다.
"너희들은 죄를 고백할 수 없다. 죄를 고백한다해도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거든. 시대에 도태된 너희들 따위가 내밀 수 있는 증거를 내가 남겨두었을 것 같으냐? 그런 건 없다! 설령 이곳에서 나가 고래고래 소리친다 해도 네놈들의 말은, 절대로 증명되지 않을 것이다!"
그럴 리 없다지만 만에 하나를 철저하게 대비한 카자카미 히로토였다.
그가 지시하여 이뤄진 '암살'의 증거 따위는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의 자백으로 인해 수사가 시작된다 해도 그 자백이 인정받는 일조차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애초에, 너희는 자백을 할 수도 없지만 말이지."
카자카미 히로토는 킬킬거리며 그렇게 단언했다.
채챙-!
그의 뒤로 연신 암산서가와 신풍회 정예 무사들의 날붙이가 격돌하고 있다.
본래 정예 무사들을 압도하는 듯 보였던 암산서가는 그러나 지금 겨우 수평을 이루는 것이 한계였으니 정예 무사들 또한 '초월공'을 발동한 것이었다.
카자카미 히로토만큼 극적인 내공의 증가는 없었으나 고수들의 세계에선 종이 한 장 차이만으로도 승부가 갈리곤 했으니 눈에 띌 만큼 내공이 증가한 정예 무사들이 심지어 카자카미 히로토를 구하기 위해 한 명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암산서가를 오히려 밀어붙이게 된 것이다.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윽-
피가 뚝뚝 흐르는 날붙이를 쥔 일반 무사들이 카자카미 히로토의 뒤에 도열했다.
어느새 그들은 해부파의 전원을 도륙해 버린 것이었다.
본래 실력에서 밀리던 해부파는 거기에 우왕좌왕하느라 조직력에서도 대응에서도 실패해 너무 빠르게 전멸하고 말았다.
"초월공의 사용을 허락한다."
구구궁-!
그리고 본래 '일반 무사'였던 그들의 기세가, 카자카미 히로토의 허락이 떨어지면서 두 배로 폭증했다.
그들마저 초월공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초월공을 구사한 무사들 이십여 명이 합류함으로써 전세가 기울어 버렸다.
내공을 최대한 짜내어 대항하던 암산서가의 가주 서문호마저 패배라는 단어를 떠올릴 만큼 극명하게.
그 반응을 즐기며 카자카미 히로토가 두 눈을 번들거렸다.
"이 자리에서 암산서가는 모조리 도륙당할 것이다. 더 없을 정도로 처참하고 잔혹하게 말이지. 그리고 너희는 그저 한국과 일본의 야쿠자들 싸움에 휘말린 밑바닥 하류 인생 중 하나로 잊혀질 것이다. 그래, 너를 포함해서."
암산서가는, 서문호는 가문의 해체를 앞둔 상황에서 정체를 숨긴 '일본인 자산가'의 후원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시간 힘든 시간을 보내며 판단력과 시야가 흐려지고 만 서문호는 위선적인 가면을 쓴 자산가의 모습에 속아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의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면, 우리는 당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천륜'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면, 설령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라 해도 한 번은 반드시 돕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당신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하는 약속입니다.'
그리하여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하고 말았고 이내 지금까지 온 것이었다.
속았다는 걸 알았음에도 물릴 수 없었다.
약속은 약속이었고 서문호는, 암산서가는 어찌되었든 가문의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는 번복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신념이 있었으니까.
상대가 '약속'을 지키는 한 암산서가가 먼저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설령 그로 인해 딸과 멀어질지라도.
서문호는 신념을 관철해야만 하는 우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관철해 온 신념을, 카자카미 히로토는 짓밟으려 했다.
암산서가가 스스로의 죄를, 카자카미 히로토의 죄를 대중에 고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처절한 끝을 맞이한 뒤 가치없는 목숨들 사이에 뒤섞여 구분되지 않는 쓰레기가 되어 잊혀질 것이다.
암산서가에 서소담, 김도진, 유지은?
그 정도로는 그가 준비한 전력을 결코 넘을 수 없으니 그가 결정한 미래 이외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하, 하하하하!!"
그렇게 확신해도 될 만큼 전력차가 극명했기에 카자카미 히로토는 미친듯이 웃었고 그런 카자카미 히로토를.
피식-
도진이 극명하게 비웃었다.
"쟤는 몇 번이나 당해놓고도 저러네. 병신인가?"
"……."
카자카미 히로토의 웃음이 뚝 그쳤다.
노려보는 카자카미 히로토를 마주하며 도진이 입꼬리를 올린 채 물었다.
"왜 이게 전부라 생각하는 거야?"
"……뭐라?"
도진이 두 손을 펼쳤다. 그러자.
콰앙!
"전원 거수(擧手)! 무림 전담 타격대다!"
벽이 무너지며 무림 전담 타격대가 들이닥쳐 주위를 포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