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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49화 (249/741)

248화

천마와 사신에게 사사받으며 이치의 끝자락에 닿아 신안을 뜬 도진과 무공을 배우는 게 아니라 '익숙해진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압도적인 재능의 소유자인 유지은의 안목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만큼 특별하지 않다고 해서 다른 이들이 장님인 건 아니다.

오랜 세월을 무림에서 보낸 무림인들, 그리고 그날 토벌에 함께 했던 정부 소속의 무림 전담 타격대 또한 시간과 경험, 그리고 정보의 습득으로 쌓아 온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그들이 도진이나 유지은과 같은 것을 볼 수 없었던 건 그런 '특별함'을 가지지 않고선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흑도의 간부와 귀신가면의 무인들이 익힌 무공이 많이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무공의 기원은 신풍회의 것이지만 거기에 다른 것이 섞여 완전히 다른 형태와 색깔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 무림의 경우 그 살벌하고도 혹독한 환경과 나라 특유의 폐쇄성까지 더해져 정보를 얻기가 특히 힘들다.

허나 그렇다 해도 국가 단위에서 수집한 정보가 내려오는 무림 전담 타격대의 대원들이, 일본을 대표하는 무림 문파 중 하나인 신풍회의 무공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그들의 무공은 변질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네. 신풍회가 단독으로 일을 벌였을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

유지은은 일리가 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선 이어서 말했다.

"혹은 신풍회가 완전히 숨기고 있던 다른 무공일 수도 있고."

"맞아요."

다른 세력과 협업했을 확률은 얼마든지 있지만 반대로 신풍회가 단독으로 일을 벌였을 확률 또한 얼마든지 있다.

이 경우엔 신풍회가 외부의 시선에서 완전히 숨기고 있던 패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나온다.

"아직 미지수를 찾기엔 단서가 모자라네."

"그렇죠."

유지은의 말에 도진이 동의했다.

나지윤의 사건 때와 같은 상황이다.

미지수 x가 있는데 그 x를 찾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다 모이질 않아 하나로 특정이 되질 않는다.

마인드맵을 하는 것처럼 답을 찾기 위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펼쳐 보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그 가능성이 너무 많아져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결국 가장 좋은 건 미지수 x를 찾기 위한 요소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맡아줄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지윤이에게 걸어봐야겠네."

"네. 필요한 건 다 전달해 줬으니까 기다려 봐야죠."

도진은 나지윤이 늦지 않길 바라며 그렇게 말했다.

* * * *

기말고사가 완전히 끝남과 동시에 숭무고의 1년 또한 마무리되었다.

대학의 시스템을 따르는 숭무고의 특성상 따로 종업식이나 졸업식을 대규모로 하지는 않았다.

다니는 학생들의 면면이 면면이다 보니 굳이 대규모로 학생들을 모으는 데에도 여러가지 애로 사항이 있었고 말이다.

때문에 졸업생들은 따로 인연이 있는 학생들과, 혹은 동아리 단위로 여기저기서 졸업을 기념하고 추억으로 남기곤 했다.

도진이나 소담 등의 경우엔 인연이 있는 졸업생이 없었기에 거기서 조금 동떨어져 있었으나 반대로 '비즈니스'적으로도 여러 졸업생들과 인연이 있었던 한유아는 민지서와 함께 여기저기를 다니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도진은 교정 여기저기서 보이는 졸업생들의 모습에 새삼 1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감개가 무량한가 보구나.

위지혁의 말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진짜 새로운 인생을 한 번 산 거 같네요.

1년. 길다면 길수도 있고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시간.

다만 '인생'을 비교대상으로 한다면 '겨우 1년'이라고 쉬이 말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1년의 밀도가 지극히 높았던 도진이기에 새로운 인생을 산 것 같다 말하는 것이 과장이 아닐 수 있었다.

-끌끌. 벌써부터 인생을 운운해서야 창창한 앞날이 지겹지 않겠느냐.

-하하. 할일이 앞으로도 산더미 같으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게 밀도 높은 삶을 살았음에도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서야 출발 선상에 제대로 선 것 같다.

하지만 그럼으로 인해 조급하거나 부담을 느끼진 않는다.

목표가 있음으로 해서 더 열심히 달릴 수 있는 도진이었다.

많으면 많을수록, 도진은 더 많은 힘을 낼 수 있다.

그 넘치는 활기를 미소에 담아 도진은 겨울의 벚꽃길을 걸어 마주한 소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녕."

"응. 안녕."

기말고사가 끝나고 본가로 돌아간 도진이었으나 벚꽃길에서 소담을 마주하는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일상이었다.

그저 그 시간이 오후로 바뀌었을 뿐.

도진은 기숙사에 남은 소담과 매일 점심을 함께 하며, 인연을 쌓아 나가며 곁에 있어 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만나자.

나지윤의 연락을 받고 답청문에 찾아간 도진은 유지은과 함께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는 사무실에 앉게 되었다.

"커다란 답 하나를 찾게 되었어."

도진과 유지은을 마주한 자리에서 나지윤은 그렇게 말했다.

커다란 답.

정보 업계에서는 쉽게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었고 그 말을 자신 있게 담았던 만큼,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마어마한 것들이었다.

"알다시피 일본은 무림만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세력 구도가 포화 상태인 만큼 더 이상 덩치를 불리기 힘든 상황이야. 그래서 신풍회는 외부로, 바다 건너이지만 지리적으로 지극히 가까운 한국으로 눈을 돌렸고 쌓아왔던 힘을 투자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 수법 중 하나가 마약의 유통이었지."

관현 그룹의 몰락에 깊숙이 연관된 것이었으며 그렇기에 도진과도 적지 않은 접점이 있는 수법이었다.

"신풍회는 수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직을, 그것도 한국의 조직을 만들어내서 활동시켰으니 그게 바로 '개미파'였어."

알고 있는 것들을 조합하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주장할 수 없는 내용일 뿐.

"부산에서 시작한 개미파는 신풍회의 은밀한 지원과 마약을 통한 연줄의 확장으로 서울까지 진출했던 거야."

당시 사건에는 관현 그룹만이 아니라 연예계는 물론이요 정계의 인사들마저 적지 않게 연루되어 있었다.

그들 다수가 알았든 몰랐든 개미파의 뒤를 봐준 것이다.

"중요한 건 그때 사건으로는 신풍회와 연결되어 있던 자들이 일망타진 되지 않았다는 거야."

당시의 '관현 게이트'는 한국을 넘어 세계마저 떠들썩하게 만들 만큼 커다란 사건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리지 않았던 자들이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들 중에 핵심인물이 바로 장하직이야."

"장하직."

"응, 맞아."

장하직.

삼선 의원으로 바로 얼마 전 상미에게 수작을 부리다 호되게 당했던 바로 그 장영준의 아버지다.

장영준을 집행유예로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로 힘을 썼으며 그 수작에 나성보는.

장영준을 '일부러' 놓아 주었었다.

"걸린 거야?"

도진의 물음에 나지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제대로 걸렸어."

여러가지로 '전과'가 있었던 장영준이 나성보에게 걸렸는데 집행유예가 나왔다는 것부터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성보는 '십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결단으로 장영준을 놓아준 것이었다.

나지윤의 조사로 장하직이 신풍회의 한국 조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지윤은 그 정보를 도진, 그리고 나성보와 공유하며 장영준을 몸통을 찾기 위한 실마리로 쓰기 위해 풀어 주었고 그것이 제대로 통했다.

"장하직은 HK 항공의 실소유주야. H는 후쿠오카, K는 코리아에서 따온 저가 항공사지."

그 이름에 벌써부터 장하직과 신풍회 사이의 연관점이 드러난다.

HK 항공은 서울과 부산, 후쿠오카를 전문으로 운항하는 저가 항공사였는데 겉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는 인물이 대표로 등록되어 있으나 실소유주는 장하직이었다.

"그리고 일원 해운이라고, 부산과 후쿠오카를 전문으로 오가는 해운사가 있어."

이쪽은 부산과 후쿠오카를 주로 오가는 해운사다.

일본쪽 기업으로 이쪽의 실소유주는 거슬러 올라가면 신풍회다.

나지윤은 이 두 곳이 협업식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별 관심도 없고 관심 가져봐야 나오는 것도 없는 두 곳의 협업식인 만큼 따로 기사가 나간 것도 아니고 눈여겨 보는 사람도 없어."

그리고 그렇기에, 신풍회가 주목받지 않고 일을 진행하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양지, 그러니까 외부로는 협업으로 시너지를 높이고 그걸 위한 회사를 하나 부산에 세울 것 같아. 동시에 뒤로는 음지와 무림에서의 일을 처리하기 위한 흑도 조직을 지원하는 거지."

흔히 쓰는 수법이다.

허나 흔히 쓰는 수법이라고 해서 불법이 아닌 게 아니다.

심지어 이 경우 음지와 무림에서 이들이 하게 될 일이 마약의 유통 등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더더욱.

"이 협업식에 장하직이 동료 의원들이랑 참석하기로 되어 있어. '겉'으로 보자면 실소유주인 장하직이 참석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하지만 동료 의원들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어."

"석연치 않은 부분?"

"응. 장하직을 포함한 참석 의원들의 공통점은 신풍회와 어떤 형태로든 연관이 되어 있다는 거야. 마약이든 돈이든. 그런데 굳이 알려지지도 않은 행사에 장하직을 포함한 의원 여럿이 참석하는 건 시선을 모을 수 있는 일이잖아."

"그렇지."

"카자카미 히로토는 장영준을 통해서 장하직에게 연락을 넣었어. 연관이 있는, '협업'하는 의원들과 함께 이번 행사에 참석하라고. 그리고 그 이유가, '토사구팽'이었어."

토사구팽(兔死狗烹).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사냥하던 사냥개도 필요가 없어지니 삶아먹는다는 말이다. 그 말은 즉.

"그 자리에서 장하직을 포함한 의원들을 다 처리하려 한다는 거야?"

유지은의 말에 나지윤은 한 치의 틀림도 없다는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슨 계획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서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을 주었던 의원들을 한 번에 처리할 계획인 건 확실해요."

"음……."

유지은은 있을 수 있는 수많은 가정을 이리저리 조립해 보았으나 개중에 하나를 콕 찝어 선택할 만한 건 없었다.

"그리고 이 의원들을 처리하기 위해 부른 것이…… '처단자 가문'이에요."

"잠깐만. 처단자?"

근래에 들었던 단어에 도진이 되물으니 나지윤은 그것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맞아. 우리와 같은, 잊혀진 호국 가문이야."

나지윤의 가문이 매국노의 정보를 취합했다면 처단자 가문은 그 정보를 토대로 하여 매국노를 처단하던 가문이다.

그런 가문이, 이번 일에서 의원들을 처리하기 위한 칼로 쓰이고 있다고 나지윤은 말한 것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사정으로 휘둘리고 있는 걸로 보고 있어."

신풍회가 답청문에만 수작을 걸었을 리는 없다.

여러 곳에 그 검은 손을 뻗었을 것이고 비슷한 사정이었던 처단자 가문이 연루된 건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거기까지 말한 나지윤은 물컵을 집어 들었다.

목이 말라서, 입술을 축이려고……가 아니었다.

이 다음 나올 내용이 보통이 아니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려는 것이었고 그 기색을 읽었기에 도진과 유지은 또한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리고 이윽고 나지윤의 입이 열리며 나온 말에, 도진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 처단자 가문은…… 소담이의 가문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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