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242화 (242/741)

241화

"……."

상황을 이해가 따라가기 힘들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런 의문이 떠오르고 업계의 실무로 단련된 머리는 여러가지 가정을 짜맞추지만 그것을 답으로 도출해내지는 못했다.

'음…….'

도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답이 아닐까하는 '스토리'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것이 게임 등이 아닌 현실이기에 섣불리 단정짓지 못하는 가운데 우호문이 옅게 미소지었다.

"이걸 보시게, 소문주."

그러면서 외견과 어울리지 않게도 최신형의 롤러블 태블릿을 꺼내 들더니 어떤 화면을 재생했다.

채챙-!

날붙이가 격돌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며 무인들 간의 격렬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화면을 보는 나지윤의 눈이 커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풍회와의 회합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답청문의 내분이었다.

"……이건."

"맞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 소문주가 어서 이 장부를 가지고 가서 끝을 내야만 하는 싸움이야."

우호문은 부드럽게 말하고선 나지윤이 목표로 하던 장부를 직접 꺼내더니 가볍게 던졌다.

턱-

혹시 모를 일에 도진이 천마기를 집중하여 그것을 받아냈다.

장부엔 우호문의 내공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목표하던 곳에 정확히 책을 날리기 위해 깃든 것이어서 도진이 책을 잡자마자 잠시 머물던 산들바람처럼 흩어졌다.

도진에게 장부를 건네받은 나지윤은 그것이 틀림없는 진본임을 확인했다.

고개를 들어 다시 우호문을 마주하자 그는 변함없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게. 나도 곧 따라갈 터이니."

"……."

물어봐야 할 것이 많다.

확인해야 할 것도 많다.

"…같이 가줄래?"

"그래."

그러나 나지윤은 그 모든 걸 억누르고 회합장을 향해 달렸다.

지금은,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에.

* * * *

답청문과 신풍회의 회합 장소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고급 호텔 레스토랑이었다.

여유롭게 차로 10분, 일정 수준 이상의 무인이라면 전력으로 달려 5분만에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이다.

나지윤의 속도에 맞춘 도진은 그곳에 5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부에서 새어 나오는 날붙이가 격돌하는 소리와 내공을 감각으로 느꼈다.

'백중세…… 인가.'

스미하라가의 느낌은 소수다.

아마 회합이 시작되기 전에 격돌이 일어난 듯 스미하라쪽에 두드러지는 존재감은 읽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마 느껴지는 소수의 기운은 본래부터 답청문에 머물고 있었거나 미리 와서 준비를 하는 역할을 맡은 하급 무인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들이 섞인 쪽이 문주파로, 외부로 나가기 위해 출입구를 지키고 있는 나지윤파의 무인들을 연신 두드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의외인 건 처음 느꼈던 대로 상황이 백중세라는 점이다.

스미하라의 무인들이 더해진 문주파의 세력이 더 강성해야 하는데 판도는 그렇지 않다.

도진은 그것을 최고 고수인 나문기가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짚어냈다.

'왜 움직이지 않는 거요!'

'3분, 아니 2분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다급한 외침에 나문기는 그렇게 느긋한 목소리로 답하는 게 들렸다.

그 때문에 나문기를 중심으로 한 핵심들의 움직임이 효율적이지 못하다.

어떻게 보면 참 대책없어 보이는데 또 그가 정보 단체의 수장임을 생각하면 무언가 다른 수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문주파의 무인들은 불만을 가지면서도 나름의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내부의 상황을 읽은 도진이 이번엔 외부로 감각을 돌렸다.

겉으로 보기엔 일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무공을 익혔다면 그 일상 뒤에 무림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미 신고가 들어갔어.'

전세를 낸 건물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지만 그것이 무인들 간의 싸움이라면 기파, 내공의 요동과 소리 등이 조금씩은 새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반인이라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면 그것을 읽어낼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무림맹이나 경찰의 무림 전담 부서로 신고가 들어가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다.

행인들은 그냥 넘어갈지 몰라도 하다못해 건물의 관계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신고를 할 수밖에 없다.

그 신고에 소위 말하는 오분대기조, '오대기'의 역할을 하는 무림 전담 타격대의 무인들과 무림맹의 무인들 몇 명이 도착해 있다.

그리고 속속 본대가 도착할 테지만 아마 바로 진입하진 않을 것이다.

이것이 흑도의, 조폭들의 싸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문파 간의 항쟁'이라 판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외부로 사건이 비화되지 않는 한 '무림의 일'에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거다.

다만 무림이 사회와 맞닿은 세상이기에 싸움이 끝난 뒤엔 그에 대한 소명의 의무가 있을 뿐이다.

"지윤아."

"응."

그 소명까지 계산에 넣은 게 나지윤의 계획이다.

나지윤은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 도진, 그리고 유지은과 함께 건물 안에 들어섰다.

"소문주님!"

불안과 간절함으로 뒤범벅된 얼굴로 대기하고 있던 무인 하나가 나지윤의 등장에 화색을 띠었다.

나지윤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선 망설임없이 문을 열었다.

콰장창-!

"비켜!"

"반란분자 놈들이!"

"반란분자는 너희들이겠지!!"

회합을 위해 대절했던 고급 레스토랑은 두 패로 나뉘어 격돌하는 무인들에 의해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나문기파의 무인들이 어떻게든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50대의 남자, 정과장을 중심으로 하는 나지윤파의 무인들을 두들긴다.

"소문주님!"

조급함에 점점 더 감정이 격해지고 피마저 튀는 그 현장은, 나지윤의 등장으로 잠시 소강 상태가 되었다.

그들 모두의 시선이 나지윤이 들고 있는 장부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나지윤은 집중되는 시선을 오롯이 받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부입니다."

캉-!

말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장부를 빼앗기 위해 나문기파의 무인들, 그리고 신풍회의 무인들이 덤벼들었다.

대비하고 있던 도진과 유지은은 이미 검을 뽑아들고 있었으나 그에 앞서 나지윤파의 무인들이 막아섰다.

카카카캉-!

문답무용.

말로 사실이 실체화되기 전에 장부를 빼앗아야만 했기에 다시 싸움이 벌어졌다.

쿠웅-!

그러나, 그 싸움은 오래가지 못했으니 뒤이어 등장한 우호문 때문이었다.

"부, 부대표님!"

기세를 숨김없이, 줄기줄기 내뿜으며 등장한 우호문을 본 나문기파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나지윤을 보호하듯 곁에 서며 나문기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문주. 퇴장할 때가 되었네."

잔잔하게 미소짓는 우호문의 말에, 지금껏 말없이 중심에 있던 나문기 역시 훗 웃었다.

"그렇군요. 끝이 났군요."

텅그렁-!

나문기가 손에서 무기를 놓았다.

이 자리에서 단 한 번도 휘둘러지지 않은 무기였다.

* * * *

-충격! 호국 가문 답청문의 가주가 매국노였다?

-속보1)답청문의 문주 긴급 체포!

시내 한폭판에서 벌어진 무인들 간의 싸움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무림 전담 타격대와 무림맹의 무인들에 의해 빠짐없이 체포되었다.

그 사건은 처음엔 관심을 끌지 못했다.

무인들 간의, 문파 간의 싸움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하루에도 몇 번이고 벌어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내막이 드러나며 대한민국은 물론이요 세계적인 토픽으로 번져 나갔다.

-호국 가문? 그거 존나 대단한 거 아님?

-대단한 거 맞지. 말 그대로 나라를 지키는 가문인데.

-? 답청문 듣보잖아. 대단하면 다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

-야이 빡대가리야. 정보 회사 같은 단체가 유명하면 안 되니까 숨긴 거지. 오히려 그런 대단한 가문인데도 우리한테 안 알려졌으니 대단한 거잖아.

-오, 너 좀 똑똑한데?

-ㄳ

답청문의 존재가 외부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 답청문의 이야기가 함께 세상에 공개되었다.

-답청문 이번대 문주가 세력 확장하려는 신풍회 돈 먹고 협조했다고 함. 정확히는 정보 제공. 근데 그걸 문주 아들이 증거를 찾아내서 고발한 사건임.

-헐. 요약본만 들어도 존나 흥미진진한데?

-근데 그 문주 아들이 무려 잠룡 친구인 그 미남 친구임.

-나지윤? 헐 ㅁㅊㅊㅊㅊㅊㅊㅊㅊㅊ

-심지어 거기에 잠룡이랑 검봉이 직접 도움을 줘서 성공시킨 거임.

-와 뭐냐 이거.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속속 알려지며 거대한 관심을 끌게 되었고 그렇기에 이 사건은 한일 양국에서도 쉽게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

-잘못하면 전쟁나는 거 아님?

-그건 너무 나가긴 했는데, 그만큼 존나 심각한 문제긴 함 ㅋㅋ

개미굴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마약이 신풍회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정보는 새어 나가지 않았다.

애초에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확보된 것도 아니어서 흘러 나간다 해도 영향을 미칠 순 없었다.

허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신풍회의 가신 가문인 스미하라에서 답청문을 삼키기 위한 시도를 했다는 것만큼은 나문기가 쓰고 나지윤이 확보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었기에.

-신풍회가 세력을 한국으로 확장하기 위해 한국의 호국 가문을 집어삼키려 했다.

국제적인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신풍회는 여기에 과감하고도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가신 가문을 돌보지 못했던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신풍회 가주, 그리고 스미하라 가문의 가주 이름으로 공식적인 사과문이 발표되었다.

그 사과문과 함께, 할복하듯 스스로 단전을 찔러 '무림인으로서의 자살'을 한 스미하라가의 무인 여럿이 신풍회 무인들에게 압송되어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 안에는 치료를 받으며 구금되어 있는 스에코의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답청문을 도모하려 했던 자들을 책임지고 그들 스스로 한국에 인도한 것이었다.

그런 그들의 행동에 한국과 답청문은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멈춰 버리고 말았다.

증거와 사과, 그리고 범인들이 눈앞에 들이밀어져 버렸기 때문에.

사과는 정중했고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범인들과 함께 제공되었다.

어떻게 불만을 말하거나 항의할 수도 없을 만큼 완벽하게.

-엌ㅋㅋ 바로 꼬리 내려 버렸죠?

-빼박인데 바싹 엎드릴 수밖에 없지 ㅋㅋㅋ

이런 반응이 나올 만큼, 나쁘게 말하면 김이 빠질 정도로 신속하게 정의구현이 이뤄졌기에 사건은 여기서 마무리 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보아도 소위 말하는 '손절'이었으나 그것을 지적할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사람들은 나지윤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아버지의 일이어서 쉽지 않았을 텐데 진짜 대단하다.

-그러게. 역시 잠룡 친구라서 뭔가 다르긴 다르네.

잘못된 길에 들어선 아버지를 제 손으로 고발하고 그를 위한 증거를 잠룡, 그리고 검봉과 함께 쟁취해낸 숭무고 학생.

그 공을 바탕으로 하여 당당하게 죄인들을 도려내고 답청문의 다음대 문주 자리에 앉은 나지윤은 이 시기만큼은 잠룡 이상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잘 생겼지. 무공 쎄지. 잠룡 친구지. 아니 시발 세상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냐?

-그런 사람이라 그런지 갖고 싶다, 형..

-...형??

-형이라 더 좋은 거잖아. 알못쉑.

-뭐지? 미친놈들인가?

사람들은 그렇게 나지윤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지윤은, 그런 사람들의 분위기에 섞여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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