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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35화 (235/741)

234화

집행부의 조직도는 그야말로 단순하다.

부장 밑에 총무와 서기가 있고 나머지는 모두 그냥 부원이다.

애초에 소수 정예 조직이기도 해서 복잡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건 지금 한유아를 중심으로 한 집행부에 '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먹튀'를 당한 거지만 말야."

여기에 관해선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사정이 있었다.

본래 숭무고의 집행부는 일진 클럽인 숭무회에 다름 없었다.

집안과 무공 실력 모두를 갖추고 숭무고에서도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는 그들이 집행부를 차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숭무회는 작년에 류대현을 시작으로 하여 한유아와 유지은에 의해 퇴출당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세 사람에 더해 민지서까지 넷이 차지했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어휴, 그렇게 찌질하게 굴 줄은 몰랐는데 말야."

개중 한 명이 집행부도 나가지 않고 부장 자리마저 붙잡은 채 버티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어이가 없는 건, 그렇게 버티는 걸 제지할 규정마저 없었다는 거다.

그런 규정이 필요가 없었기에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게 배경이다.

설령 논의가 된다 해도 집행부원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규정을 신설할 수 있으니 이 버티기를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세상이란 게 이성적이질 않으니까 말이죠."

이성적이고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이었다면 온갖 모순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

그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인해 그 학생이 3학년이 되어 졸업할 때까지도 집행부의 부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한유아가 사실상 부장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총무'였던 이유이기도 했다.

"뭐, 하지만 그것도 그 못난 선배가 졸업하면서 끝이고 이제 정식으로 내가 부장이 되는 거지."

보통 부장은 2학년이 맡는다.

당연한 이야기로, 대부분의 행사에서 예외가 되는 3학년이 집행부의 부장을 맡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배경에서 생각해 보면 한유아의 말은 곧…….

"선배는 학교에 계실 거예요?"

주정아의 물음에 한유아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학교에 있는 게 더 이득이니까?"

한유아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민간 무력 기업의 대표였다.

이런 기업들은 레드오션인 업계에서 일거리를 얻기 위해 실력과 동시에 여러 방면에서의 '연줄'이 필요했는데, 그런 면에서 한유아는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게 바로 대표인 한유아 본인이다.

'금화의 영애'라는 배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비할 데 없는 가치를 가지니까 말이다.

다만 그녀는 그 배경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니 배경 때문에 그녀가 하는 노력의 빛이 바래기 때문이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일구어도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배경의 힘이 작용하며 그로 인해 노력이 폄하된다.

하지만 그 폄하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으니 더더욱 쓴맛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 쓴맛을 억누르고 웃으며 말했다.

"교수님들이랑 친분도 쌓아뒀고 학교에 있으면서 들어오는 일감이랑 쌓을 수 있는 연줄들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1학년 후배들에겐 미안하지만 내가 부장 감투를 쓰려고 해."

찡긋 윙크를 하는 유지은의 모습에 주정아를 포함한 1학년들은 미소 지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그녀는 그야말로 집행부의 부장 그 자체인 사람이었기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럼 지서 선배도 계속 볼 수 있겠네요."

"응, 그렇지."

현재 서기를 맡고 있는 민지서는 한유아의 그림자와 같은 사람이며 그녀의 회사에서는 실제로 대표 수행 비서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지은 선배는 어떻게 돼요?"

주정아의 시선이 이번엔 유지은에게로 향했다.

유지은은 그 시선을 도진 쪽으로 이으며 답했다.

"뭐, 나는 크게 다를 게 없을 거라 생각해."

폐관 수련이 길어졌던 탓으로 유지은은 애초에 2학년 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다.

다만 유지은은 특별한 사정으로 1학년 때부터 '실습'을 위주로 했었으니 3학년이 되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저 한 가지 큰 변화가 있다고 한다면 도진이다.

그녀의 삶은 현재 도진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니까.

"이제 후배들도 2학년이 될 테니까 같이 실습 다니면 어떨까 싶네?"

그 말은 학교에, 집행부에 계속 얼굴을 비출 것이라는 말이었기에 주정아는 기쁨을 담은 미소를 지었다.

"뭐 우리는 이럴 예정인데, 너희는 어때?"

2학년의 이야기가 끝나자 한유아가 물었다.

어쩌다 보니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되었고 주정아가 가장 먼저 말했다.

"저도 뭐 가업을 이어야 하는데, 무공도 익혀야 하니까 그냥 열심히 해야할 거 같아요."

주정아는 무림세가가 아닌 '상가(商家)'의 외동딸이다.

호군자 주대운이라는 걸출한 무인에게 무공을 배워 숭무고에 다니고 있고 후기지수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가업을 잇는 일이다.

"저는…… 저도 뭐 열심히 해야죠. 무공이든 회사든."

주정아에 이어 말하는 오대용은 조금 복잡한 얼굴이었다.

오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의 3세인 오대용은, 본래 복잡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도진에 의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로 인해 할아버지이자 오성의 '군주'인 사자군 오군성의 눈에 들어 비로소 제대로 된 무공을 사사받고 사업도 맡게 되면서 여러모로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한 모양이라고 도진은 나지윤에게서 들은 바가 있었다.

여기에 1차 협력사이자 오군성의 친우가 회장으로 있는 성운의 무남독녀 주정아와의 사이도 보통이 아니니 오대용이 가만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듯했다.

'흐음.'

이미 경영 승계에 관해선 결론이 났다고 들었지만 다른 곳도 아닌 오성의 일이다 보니 별 수 없겠지라고 도진은 생각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오대용은 이제 혼자 일어섰고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저 그 걸음이 조금 힘겨워 보일 때 어깨를 빌려주면 될 일이었다.

"저는…… 모르겠어요."

조용했던 소담은 속내를 감춘 미소를 지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고 그것을 읽었기에 모두가 더 묻지 않았다.

"저는 가업을 이어야죠."

나지윤은 당연하다는 듯 예의 멋진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미소 안에 수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걸 도진만이 알았다.

친구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도진에게 시선이 모였다.

도진은 웃으며,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

"문파를 하나 세우려고 해요."

"……!"

* * * *

천마 위지혁과 사신 장호는 도진에게 무공을 전수하기로 하며 이렇게 부탁했다.

"나는 천마신교의 교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니 부탁하도록 하마. 가능하다면 그 맥을 이어다오. 강요는 아니다. 교주가 아닌 나 개인적으로는 역사와 함께 사라진 교를 억지로 이 시대에 다시 등장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

위지혁은 교주로서의 의무로 천마신공의 계승자인 도진에게 그렇게 말했다.

강요나 강제는 아니었다. 직접 말했듯 어디까지나 '가능하다면'의 부탁이었다.

도진은 스승의 그 부탁을 이루기로 마음 먹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세상을, 위지혁이 말한 '천마신교'의 이름으로 조금 바꾸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 힘은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도진은 천마신교의 이름과 힘으로 큰 변화를 일으켜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힘으로 스승들의 다른 부탁도 수월하고 광범위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만약 천마신교나 우리의 후손을 만난다면, 그럴 수 있을 상황이라면 도움을 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역시 강요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런 상황이 된다면의 이야기이니 괘념치 않아도 좋다."

어디까지나 희박한 가능성의, 그렇기에 스승들의 말대로 괘념치 않아도 될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는 게 좋다.

그래서 도진은 다시 주어진 삶의 기회에 천마신교를 현대에 부활시켜 보자는 목표를 세우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이, 18세부터 가능해지는 '문파의 등록'이었다.

"헤에, 우리 후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한유아의 말에 도진이 웃었다.

"문파라니, 진짜 거창하네. 아! 나쁜 의미 아닌 거 알지?"

주정아의 말에도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에 문파란 이 시간에도 새로운 이름이 수십 개나 등록되고 또 말소되는 '등록제'였다.

그만큼 신고만 하면 정식으로 간판을 내걸 수 있는 쉬운 일이었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난립하는 수많은 문파들 중에서 이름을 떨치는 건 극소수였다.

주정아는 도진이 물론 그 극소수에 해당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거창하다 말한 것이었다.

"그렇구나……. 다들 미래가 어떨지 기대되네."

조금은 발개진 볼로 주정아는 중얼거렸고 그렇게 우승 축하 파티 겸 송년회의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 * * *

-ㅋㅋㅋㅋ 개꼬시네 ㅋㅋㅋㅋ

-저새끼 별명 각목 아니었음? 모가지가 절대로 안 굽혀진다고.

-사실은 고무목이었던거임ㅋㅋㅋㅋㅋ

"……."

파르르-

모니터에 뜬 댓글을 보고 손을 파르르 떠는 건 다름 아닌 장영준이다.

축제에서 상미를 만나 수작을 걸다 도진을 마주한 그는 평생에 다시 없을 만한 개쪽을 당하고서 그 자리를 도망치듯 벗어나야 했다.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고 싶은 그날의 일은 그러나, 진짜 미쳐 버릴 일로 누군가가 동영상을 찍어 올림으로써 이 세상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일이 되어 버렸다.

죄다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음성 변조까지 했다.

하지만 숭무고 랭킹전 축제의 일임이 설명 되어 있었고 은유적이지만 분명하게 잠룡과 장영준 사이의 일이라는 걸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해 두었기에 의미가 없었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댓글을 남겼다.

-이거 좀 심하지 않나. 이러다가 고소 당하는 거 아님?

-장영준 어서 오고..ㅋㅋㅋㅋ

-궤쉐댕해넨게에넴?ㅋㅋㅋㅋㅋㅋ

"으아아아아아아아!!"

쾅!

알고 했을 리는 없겠지만 본인을 비꼬는 댓글에 결국 장영준은 폭발해 노트북을 집어 던지고 말았다.

꽝! 꽈자작!

그리고 화를 분출하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놈처럼 방 안의 온갖 집기를 던지고 때려 부쉈다.

"허억, 허억."

조금이나마 화가 풀린 건 호흡이 가쁠 정도로 감정을 토해낸 뒤였다.

그때가 되어서야 술집으로 친구들을 불러 그중 한 명에게 물었다.

"야. 너 상월중 출신이었지?"

"아, 응."

'씨발. 쪽팔리게.'

대답하면서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남학생은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와 반창고를 달고 있었다.

다름 아닌 그날 사건에서 장영준을 외면했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날 이전이었다면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생각을 입에 담았겠지만 요즘은 그럴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나마도 '사과'의 명목으로 몇 시간이고 구타를 당한 뒤에야 이런 관계로나마 남을 수 있었으니.

독한 술을 들이켠 장영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후배 몇 명만 좀 불러 봐."

"알았어. 그런데 어디다 쓰게?"

"일단 데려와."

"응."

장영준의 '명령'에 따라 그가 후배 몇 명을 불렀다.

본래는 미성년자 입장 불가인 술집에 덩치 큰 몇 명의 중학생들이 입장했다.

그들은 그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장영준에게 90도로 인사했고, 장영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니들, 알바 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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