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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34화 (234/741)

233화

일요일.

잠룡과 검봉의 이벤트 매치가 있었던 토요일로 랭킹전은 완전히 종료되었고 축제도 폐회식이 진행되는 마지막 날이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랭킹전과 집행부의 활동을 병행해야 했던 집행부원들도 온전히 쉴 수 있는 날이었으며 내일까지 이어진 이틀의 연휴가 된다.

본가에서 하루를 보냈던 도진은 어머니와 동생들과 무공 수련을 함께 한 뒤 점심 시간이 조금 못 되었을 즈음 집을 나섰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전날 유지은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오늘 점심을 함께 하며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후배!"

"선배."

숭무동을 나가니 바로 유지은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이전에 이미 가 보았기에 혼자 찾아가도 됐을 텐데 굳이 숭무동의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였다.

그리하여 도진의 슈킨팍시 로드런너를 타고 함께 정의검가의 본가로 향하게 됐다.

정의검가의 본가는 서울의 외곽에 산을 끼고 있는 큰 규모의 한옥이다.

그리고 그 뒤로 커다란 수련시설을 연상케 하는 건물과 부지들이 보이는데 '무림세가'로서의 정의검가다.

재벌과 무림세가를 나누는 기준 중 하나로, 무림의 세가는 이런 시설들을 갖추고 체계적으로 제자들을 육성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 시설에서 숙식을 하며 세가의 무공을 익히고 그 대가로 금전을 포함한 유무형적인 대가를 지불하고 인연을 맺음으로써 세가의 힘이 된다.

무력을 갖추지 못한 '상인'은 이렇게 세가와 인연을 맺는 것이 기본적인 현대의 상인과 무인 간의 관계였다.

오늘은 그런 복잡한 사정이 아닌 사적으로 방문한 것이었기에 도진은 유지은과 함께 바로 본가의 생활 공간으로 안내되었다.

-흠. 제법이구나.

-예.

유지은이 직접 안내를 해 주었는데 생활 공간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 무인들이 배치되어 있어 엄중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현대라고 하지만, 오히려 현대이기에 더더욱 경계를 엄중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이것이 다 실전을 대비한 훈련이기도 했기에 정의검가의 무인들은 경계를 허투루 하지 않았고 그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다.

"안녕!"

"응, 누나."

그 경계를 지나 혈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들어서자 유지은의 사촌들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어색하고 누군가는 경계한다.

그들에게 유지은은 활달하게 인사하거나 눈맞춤을 하는 등 각자에 맞는 방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 모습에 도진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렇구나.

이번에 대답한 것은 장호였다.

'사람을 보는 법'을 전수했던 장호는 유지은의 태도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무인에게는 무공이 전부이지만 '사람'에게는 무공이 전부일 수가 없다.

그것을 알게 된 유지은은 그동안의 태도를 버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해서도 공부하게 되었고 규격 외의 천재답게 벌써 그것을 능숙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무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혈족과의 관계를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보인다.

-이대로라면 '냉검후'가 되는 일은 없을 것 같구나.

-예.

한순간에 관계가 급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얼음이 이내 봄의 온기에 녹듯 유지은은 정의검가의 일원으로서 녹아들게 될 것이었고 그것은 곧 유지은의 미래가 냉검후가 아닌 '검후'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였다.

도진은 은은하게 미소지으며 유지은의 뒤를 따라 가 곧 그녀의 부모님과 마주앉게 되었다.

"어서오세요, 도진 학생."

"만나서 반가워요."

"네, 안녕하세요."

"허허. 나까지 끼게 되어서 미안하지만 자네를 꼭 보고 싶어 고집을 좀 부렸다네."

"하하. 아닙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갈하지만 정성으로 가득한 식사 자리에는 유지은의 부모님과 함께 무림에서 이름 높은 그녀의 할아버지 '징악검군(懲惡劍君)' 유은성까지 자리해 있었다.

사자군 오군성과 같은 무림 르네상스 시절 이름을 떨쳤던 유은성은 무림의 명숙이자 한국에서 손꼽히는 고수였다.

그 이름처럼 정의검가의 가치관을 관철해 흑도에서는 정의검가라고 하면 치를 떨도록 만든 사람이기도 했다.

다만 그런 악명(?)과 달리 유은성은 부드러운 인상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심성의 소유자였다.

식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수록 드러나는 그 훌륭한 심성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습니다. 처음 얻은 아이였기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했는데 그 소중한 딸이 비할 데가 없을 만큼 커다란 재능을 타고 났으니까요."

"하지만 그 재능이 점점 더 드러날수록 우리는 고민하고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또래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재능이, 오히려 딸 아이를 고립되게 만들었으니까요."

부부는 그렇게 속내를 털어 놓았다.

여기에 유은성이 보탰다.

"사람이 사람이기 위해선 받쳐줄 동반자가 필요한 법이지. 하지만 지은이에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

사람이 사람이기 위해서는 받쳐줄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人)의 모습은 서로가 받쳐 주어야만 성립하기에.

하지만 궤를 달리하는 유지은을 과연 받쳐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한국 무림에서 손에 꼽히는 유은성마저 부족함을 통감할 지경인데 그녀와 함께 해 줄 '또래'가 과연 있을까 하고, 유은성과 그녀의 부모님은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며 유은성은 미소지었다.

"하지만 기적처럼 자네가 나타나 주었어. 자네 덕분에 지은이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거지."

한 사람은, 적어도 한 사람은 그녀와 나란히 걸어 주어야 했는데 도진이 나타나 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자네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그러면서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

그 인사를 도진은 거부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감사에는 부정 대신 긍정이 어울린다 생각했기에.

"선배는 저에게도 소중한 인연이니까요. 하고 싶은 일을 했는데 감사 인사까지 받으니 정말로 기쁘네요."

"하하하! 그거 정말 좋은 일이군."

-이 아이가 어긋나지 않았던 건 이들 덕분이로구나.

-예.

어딘가 어긋나 있던 천재인 유지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게 자랐다.

도진은 그 이유를 그녀의 부모님과 유은성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유지은은 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생에서도 이들이 있었기에 구성원들이 경원시하던 정의검가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럼, 앞으로도 우리 딸 아이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무공만 할 줄 알지 부족한 게 많은 아이야. 허물을 탓하지 말고 잘 보듬어 주게."

"무슨 일 있으면 지체없이 연락 주세요.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돕도록 하겠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껄껄. 코가 꿰였구나.

어쩐지 대화가 시집 보내는 딸을 부탁하는 듯한 느낌이라 어색했으나 이걸 또 지적하기엔 뭐해 도진은 그저 예, 예하고 잘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 * * *

저녁.

정의검가에서의 점심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도진은 연신극기공의 수련을 끝내고 다시 외출을 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오늘 저녁에 랭킹전에서의 '우승턱'을 내기로 친구들과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장소는 예의 서태주네 부모님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소고깃집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도진을 서태주가 맞이해 주었다.

"어서 와."

"뭐야. 오늘은 여기서 알바야?"

"그럴 리가. 네가 예약했다고 해서 온 거지."

서태주는 씨익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선 직접 도진이 예약한 룸을 직원들과 함께 챙겨 주었다.

준비가 되는 사이 속속 친구들이 도착했다.

"어서오세요."

"오, 안녕."

오늘 모임은 자연스럽게 집행부의 회식처럼 되었는데 숭무영재고의 집행부 소속으로 랭킹전 업무를 함께 보며 안면을 익혔기에 친구들 또한 서태주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1학년에서는 소담과 오대용, 주정아, 나지윤.

2학년에서는 한유아와 민지서, 류대현과 유지은까지 도진을 포함하면 총 아홉 명이다.

우정한은 현대 소림의 경우 육식을 완전히 금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술 한잔 할까?"

"네. 괜찮겠네요."

'이런 자리'까지 참석하는 건 조금 뭐한 경우라 불참하고 축하 인사로 대신했다.

랭킹전이 끝나고 12월 중순이 되었기에 우승턱 겸 송년회 느낌도 나 도진은 한유아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날에 이런 시기라면 흥을 돋우는 정도로는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식단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무인들은 술 또한 마시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풍류'도 그렇고 흥을 돋우는 수준에서의 음주는 생을 윤택하게 해 주는 좋은 것이라고 위지혁 또한 말할 만큼 애주가 또한 적지 않았다.

-무림제일미가 천마를 낚아챘던 것도 술 덕분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지.

-사부님이 아니라 무림제일미가 낚아챘다구요?

-그런 걸 TMI라고 한다네, 장 제.

"좋아. 그럼 도진이의 우승을 축하하며 건배!"

"건배!"

평소 그런 지론에 동의하지 않았던 도진은 그러나, 오늘로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오늘의 주인공 김도진 학생. 소감 한 말씀!"

일부러 내공을 억눌러 둥실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과하지 않은 수준에서였으며 마음 먹은 순간 바로 취기를 내보낼 수 있었다.

허나 그 정도만으로도 어쩐지 크게 웃음이 나올 것처럼 함께 하는 시간이 더욱 즐거워졌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앞으로도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우! 재미없다! 재미있는 내용으로 다시 해라!"

짓궂은 장난과 축하, 소소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며 자리가 무르익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고 술기운이 조금은 돌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선배들은 3학년이 되네요."

"아……."

말을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주정아였다.

그리고 그 말에 분위기가 조금 '멜랑꼴리'해졌다.

무림학교, 그것도 숭무고 3학년은 그런 분위기가 될 법한 이야기였다.

숭무고를 기준으로 하여 1학년 1학기는 날붙이를 일상화하는 시기다.

1학년 2학기는 그렇게 날붙이를 일상화하고 무림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기.

이런 준비를 거쳐 2학년이 되면 실습으로 경험을 쌓아 무림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무림에 나갈 본격적인 준비를 한다.

이렇게 2년을 거친 숭무고생은 3학년이 되어 무림에 뛰어드는 것이다.

학생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사실상 학교를 떠나 무림에서 살게 된다.

평범한 학생들은 교수진으로 있는 무인들과의 접점을 통해서, 혹은 랭킹전을 통한 평가에 따라 여기저기 취업을 하거나 여러가지 형태로 무림에 진출한다.

그러니까 학생 딱지를 떼지 못했을 뿐 사실상 '무림초년생'인 것이다.

때문에 랭킹전도 그렇고 대부분의 행사에서 3학년은 예외가 되어 학교와의 접점이 거의 없어진다.

한유아와 민지서, 류대현, 그리고 유지은은 그런 3학년이 되었으니 내년부터는 요 1년처럼은 지낼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선배는 어떻게 하시기로 했어요?"

분위기가 더 가라앉기 전에 근황 인터뷰를 하는 톤으로 나지윤이 물었다.

질문을 받은 류대현이 씨익 웃으며 활달한 얼굴로 답했다.

"뭐, 본격적으로 후계자 수업을 해야지."

무림세가의 후계자인 류대현은 3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무림인으로서 살며 세가의 소가주이자 운영 중인 민간 무림 군사 기업의 후계자로서도 활동을 해야 했다.

그렇게 되면 류대현은 여타 3학년들이 그렇듯 학교에서 보기 힘들게 될 것이었다.

"유아 선배는요?"

류대현의 말이 끝나자 주정아가 한유아를 보며 물었다.

모이는 시선에 한유아는 술 한 모금으로 입술을 적시고선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나는, 집행부 부장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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