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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33화 (233/741)

232화

"……."

카앙-!

카카캉!

비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침묵했다.

도진과 유지은의 비무를 논하던 사람들도.

함성을 내지르며 어느 쪽을, 혹은 둘 다 응원하던 사람들마저도.

도진과 유지은의 비무에 심취하여 말을 잊었다.

콰아아아아-!

서로가 떨쳐낸 검풍이 맞부딪쳐 상쇄되며 내공의 편린이 빛의 안개처럼 비산한다.

그 비산하는 빛의 안개는 일견 아름다워 보이나 사실은 잘게 부서진 칼날과 같아서 지극히 위험했으나 도진과 유지은은 그런 내공의 편린을 가로질러 다시 검을 맞댄다.

카캉!

검풍의 여력을 가로지르는 건 면도칼의 칼날을 무수히 뿌리고 그 사이를 아무런 상처없이 지나치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비무대의 두 규격 외 천재는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해내고서는 또 또래를 아득히 넘어서는 무(武)를 연신 풀어내 부딪치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규격 외라는 말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이미 학생을 넘어 무림에서도 통용될 만큼의 경지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을 잊은 건 단순히 그런 높은 경지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케미.

'케미스트리(Chemistry)'라는 단어를 줄인 말로 두 사람이 지극히 어울릴 때 쓰곤 하는 세속적인 단어다.

사람들은 도진과 유지은의 비무에서 그런 케미를, '화학 반응'을 보았다.

둘의 비무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서로의 무공이 만나 더 높은 경지로 승화(昇華)하는 것만 같은, 무의 겨룸을 넘어 사람을 홀리는 예술 같았다.

혹시 이대로 두 사람이 하늘로 승천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두 사람의 비무는 그 수준이 지극히 높았으며 또 아름다웠다.

승부를 잊고 이 비무를 그저 계속 바라만 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은 그러나, 곧 비무의 끝을 봐야 했으니 마치 있어서는 안 될 옥의 티처럼 유지은의 검에 작은 파탄이 발생했다.

캉!

하모니를 깨듯 파열음과 함께 유지은의 검이 검로를 벗어나 튕겨 나가고 도진의 백설이 유지은의 목덜미에 닿아 차가운 기운을 흘렸다.

"아……."

마치 어머니의 품 속에 안겨 있는 것만 같은 지극한 열락을 느꼈던 유지은이 탄식과도 같은 아쉬움을 흘리며 눈동자에 현실을 담았다.

그리고 이내 웃었다.

"졌습니다."

아쉽고도 아쉽다.

맘 같아선 이 비무를 끝없이 계속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의 떼와 같다는 걸 유지은은 이해하고 있었다.

비무가 멈춘 건, 도진이 유지은의 틈을 망설임없이 찌른 건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도진의 등을 좇는 다시 없을 꿈결 같은 순간 속에서 유지은은 또 한 번 말도 안 되는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허나 무한정 그 성장을 계속해 나갈 순 없었다.

도진에 의해 이미 깨달은 '심기체'에서 아직 준비되지 않은 육체와 정신에 기술만이 비대해지는 형상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도진은 그 균형이 깨지려는 순간 절묘하게 비무를 끊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유지은은 아쉬운 마음을 접고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할 수 있었다.

"……."

판정을 내려야 할 무인은 꿈결 같은 유지은의 목소리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하여 '기, 김도진 승!'이라고 외쳤다.

1학년 우승자와 2학년 우승자의 랭킹전 특별 비무는 그렇게, 1학년 도진이 승리하며 온갖 커뮤니티에 커다란 장작을 던졌다.

-김도진이랑 유지은 사귄다던데?.fact

-뭐이시발?

-???????

-미안하다.. 이거 보려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잠룡이랑 검봉 비무 수준 실화냐?

-야이 개****

-아놬ㅋㅋㅋㅋㅋㅋㅋ

숭무고 랭킹전의 이벤트 매치는 2학년의 승리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같은 천재들 사이에서 1년이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재능에 차이가 있다면야 반대로 얼마든지 무시될 수 있는 시간이지만 1학년과 2학년들 중 우승을 차지할 정도면 그 재능 또한 최고치인 만큼 변수없이 2학년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당연함이 언제나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당연함을 뒤집을 만큼의 '규격 외'가 몇 번 있었고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유아의 오빠이자 젊은 나이에 이미 무림의 명숙, 한국 무림을 대표하는 존재가 된 금군(金君) 한유성이다.

그리고 금군 한유성만큼이나 화제가 된 인물이 바로 숭무고 현역인 검봉 유지은이었고.

유지은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2학년 우승자를 꺾고 이벤트 매치 우승마저 차지했었다.

재미있는 건, 그 예외였던 한유아가 바로 다음해에 1학년에게 패한 장본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차이는 작년의 이벤트 매치 내용이 압도적이었다면 이번의 이벤트 매치는 '환성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부분이다.

두 사람의 비무를 관람한 사람 모두가 '아름다웠다'고 평했다.

비무인데 격렬했다거나 짜릿했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아름다웠다고 하니 고개가 갸웃거려졌지만 그날 관람했던 모두가 같은 평을 하니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그저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날 참석했던 무림의 이름 있는 사람들 모두가 김도진과 유지은은 이미 무림에서도 이름을 날릴 수준이라 말해 두 사람의 경지가 학생을 초월해 있었다는 것이었다.

-ㅋㅋㅋㅋ 유지은 코인 탔던 등신들 모두 나가리죠? ㅋㅋㅋ

-존나 깝치네 운 좋게 잠룡 찍은 놈이

-아니 얘들은 또 왜 싸움? 둘이 비무도 이미 끝났는데.

-그러게. 지들이 빠는 잠룡이랑 검봉은 둘이 오붓이 데이트 중이라던데.

-???

-화화공룡이 또?

* * * *

비무의 여파로 온갖 커뮤니티가 한창 불타는 와중에 도진은 유지은과 카페의 프라이빗룸에서 음료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특별 비무가 끝나고 유지은의 부탁에 따라 둘이서 조용히 얘기할 시간을 가진 것이었다.

유지은은 레몬티를 한 모금 마시고선 씨익 웃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도진을 그 신묘한 눈동자에 감정을 가득 담아 바라보았고 도진은 슬쩍 어색하게 웃었다.

"계속 그렇게 보시면 조금 부담스러울지도요?"

"나 같은 미녀가 이렇게 전력으로 바라보는 건데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 거 아냐?"

"뭐, 그건 맞지만요."

그래도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이제 열여덟 파릇한 소녀가 바라본다고 해서 안절부절하진 않는다.

마치 세상의 편애를 받은 듯한 재능과 미모를 타고난 그녀인 만큼 전생의 보잘 것 없는 '김 과장'이었다면 그럴 수 없었겠지만 이번 생의 도진 또한 천마와 사신의 후계자였으니 그 누구의 시선에도 당당할 수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장난스런 대화를 주고받은 유지은이 표정을 바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고마워."

도진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유지은은 순수한 감정을 숨김없이 풀어내며 말을 이었다.

"나의 목표가 되어 줘서 고마워."

"수련을 하면서 느꼈어. 그동안 내가 무공에 보람을 느낄 수 없었던 건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어. 간절할 이유가 없었고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어."

"그 간절함과 의미를 느낄 수 있게 되어서 기뻤어. 하지만 동시에 이 기쁨을 혹시 다시는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어."

"하지만 아니었어. 네가 있었어. 너는 내가 계속해서 그렇게 무공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목표가 되어 주었어."

"내가 마음 놓고 달려도 될, 너는 내 삶의 목표가 되어 준 거야."

"그러니까 고마워. 정말로."

꾸밈없이 그저 느낀 대로 유지은은 감사를 표했고 그만큼 순수한 감정의 파도를 도진은 느낄 수 있었다.

유지은은 더없이 아름다운 미소로 말했다.

"내가 네 등을 따라잡을 때까지, 나는 너를 목표로 달릴 거야."

그 감사에 도진은 약간 짓궂은 미소로 답했다.

"절 따라잡을 때까지라니, 그러면 평생 절 쫓아다니셔야 할 텐데."

도진의 장난에 유지은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나쁘지 않은데? 오히려 좋은 걸?"

"음……."

"지금 기분 같아선 너 없이는 못 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

"아니, 그건 좀."

실없는 장난으로 부끄러움을 감춘다.

그리고 유지은은 화제를 옮겼다.

"이건 조금 조심스러울 수 있는데……."

슬쩍 자신을 살피는 유지은의 모습에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응, 그러니까 네 무공……."

"네, 맞아요. 선배의 무공과 비슷할 거예요."

"역시 그렇구나……."

조금 돌려 말한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시대의 무공'에 관한 이야기다.

신비가 깃들었다는 진무를 넘어서 아예 신비 그 자체인 무공.

보는 사람이 그야말로 승화한다고까지 느꼈을 만큼 깊이 몰입하여 무공을 나누었으니 그녀가 도진의 무공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도진은 굳이 숨기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도진에게 깊이 매료된 유지은이 본래 성격도 그렇고 그것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닐 이유도 없었으니 말이다.

사람 대 사람의 감정으로서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계산적으로 장호에게 배운 '사람을 보는 법'으로도 그러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그렇구나.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긴 했어. 우리 집안 말고도 무림의 진전을 이은 곳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응."

-흐음.

유지은의 말에 위지혁과 장호 역시 관심을 보였다.

-하긴 그때의 흔적이 남았다면 단 하나만 남았을 리는 없겠지. 이 나라만이 아닌 여러 곳에도 당시의 진전을 이은 가문이나 무인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예.

그리고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천마신교나 구파일방의 흔적 같은 것도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구파일방 중 소림의 흔적은 남아 불완전하게나마 소림이 부활한 예도 있고 말이다.

물론 소림의 경우엔 그 수준과 신비는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이 정말로 소림의 진전인가에 대해선 아직 논란이 있지만.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정말로 언제였을지 모를 무림의 흔적이 남았다면, 그 후손마저 이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 후손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후배."

유지은의 부름에 도진은 상념을 지우고 그녀를 보았다.

"네, 선배."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렸어. 앞으로 진지하게 후배랑 행동을 좀 같이 해보려 한다고."

"아, 그런가요?"

"응. 후배도 이제 곧 2학년이잖아. 그러니까 제한없이 같이 다닐 수 있을 테고 내가 후배 일정에 맞추면 될 거 같아서."

"음, 그렇네요."

조금 갑작스러울 수 있는 말이었지만 도진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유지은은 자신을 이긴다면 도진을 목표로 삼겠다고 했었다.

그랬던 그녀인 만큼 당분간 무림에서 도진과 행동을 함께 할 거라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예상이었다.

오히려 이건 도진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그녀는 도진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것은 앞으로 도진이 구상한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도 크나큰 플러스가 될 일이었으니까.

함께 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는 거다.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도진을 마주하며 유지은은 잠시 입술을 오물거렸다.

"응? 왜요?"

그녀는 애꿎은 빨대를 오물거리다 말했다.

"응, 부모님께 그런 말씀을 드리니까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널 좀 보고 싶다고."

"아, 그럴 수 있죠."

"딸 데려갈 대단한 사람이 누구인지 보고 싶으시대."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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