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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31화 (231/741)

230화

탓-!

선공은 도진이었다.

무진혁 때의 특별했던 상황을 제외하고서 처음으로 선공을 취한 것이었다.

이번에 선공을 취한 이유는 간단했는데, 우정한이 선공을 취하지 않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정한은 무승(武僧), 그러니까 무공을 익힌 승려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가 아니라 '승'이라는 부분으로 무공을 익혔으나 그 본질은 무공이 아닌 불도(佛道)를 추구하는 승려이기에 '사람을 먼저 때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 분명한 이유로 우정한은 단 한 번도 랭킹전에서 선공을 취하지 않았고 도진은 친구의 뜻을 존중하여 선공을 취했다.

뽑아든 백설이 유려한 선을 그린다.

일견 아름답기만 해 보이지만 사실은 상상도 못할 거력(巨力)이 실려 있는 가로 베기로, 이번 랭킹전에서 도진의 비무를 관람했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것이었다.

신묘한 무공을 구사하는 도진의 작은 행동마저도 어마어마한 힘이 실려 있다.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32강의 상대가 그 가벼운 한 번의 베기에 관람석 근처까지 날아가 버렸던 일로 모두에게 강렬하게 각인된 것이었다.

그 한 수 한 수가 일격으로 상대를 잠재울 만큼 강력한 공격.

차라리 불합리할 정도의 그 공격을, 우정한은 담담히 받아냈다.

꾸웅-!

두 손으로 부드럽게 도진의 백설을 쓰다듬듯 받아낸 우정한의 몸이 버들처럼 흔들리며 힘의 방향을 바꾸었다.

평화롭게까지 보이는 움직임과 달리 마치 거대한 돌끼리 격돌한 듯한 묵직한 굉음이 터져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어 교차하듯 자연스럽게 날아간 도진이 자세를 바로했다.

다시 우정한을 마주한 도진의 눈동자에는 이채가 어려 있었다.

꾸웅-!

확인하듯 검을 날렸고, 마찬가지의 그림이 반복되자 도진의 입가에 이내 미소까지 어렸다.

-대단한 아이로구나.

-예. 정말로요.

어떻게 보면 차력미기(借力彌氣)의 연습을 하는 듯 급박함이라곤 없는 수련처럼 보인다.

상대의 힘을 흘려내고, 더 나아가면 역이용을 하는 수법.

무협지나 상상처럼 거창하게는 아니어도 웬만큼 수준이 있는 무공이라면 이런 수법을 흔히 담곤 한다.

힘껏 주먹을 내뻗는 상대의 손목을 잡아채 당기는 그런 단순한 수법도 모두 차력미기의 범주에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정한이 보여주는 건 당연하게도 그것을 아득히 넘어선 경지에 있는 것이었다.

"허허……. 그야말로 소림의 제자다운 모습이군요."

"그동안 만났던 학생들이 아이처럼 힘을 쓰지 못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잠룡 김도진의 한 수 한 수는 대포에 비견될 수 있다.

우정한은, 그런 대포와 같은 일격마저 뿌리 내린 거목처럼 단단히 중심을 유지하면서 갈대와 같은 부드러움으로 힘에 순응하여 '담담히' 흘려낸 것이다.

꾸웅-!

가슴이 무거워질 만큼의 굉음이 미소지은 김도진의 검격마다 담긴 힘을 상징한다.

그것을 우정한은 전혀 밀리지 않고 제자리서 받아내고 있으니 과연 소림 속가 제자 유룡이란 명성이 명불허전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친구의 모습이, 도진의 흥을 좀 더 이끌어 냈다.

두웅-!

도진의 기세가 용틀임하며 백설에 담긴 경력이 요동친다.

과연 이번에도 받아낼 수 있을까?

눈으로 물으며 도진은 백설을 휘둘렀고.

꾸웅-!

다음 순간 우정한은 하늘을 받치듯 양손을 위로 뻗었고 도진은 스스로 포탄이 된 듯 위로 치솟고 있었다.

"허어억!"

와아아아아아-!!

누군가는 경악하고 대부분은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지켜보는 누구나가 알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검격마저 우정한은 받아 냈다.

받아 내는 걸 넘어 도진을, 잠룡 김도진을 하늘로 날려 버리기까지 한 것이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높이에 일부가 걱정했다.

"어어, 근데 저거 위험한 거 아냐?"

"그러게. 무림인이라도 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크게 다칠 거 같은데?"

마치 새총으로 돌을 날린 것처럼 도진의 위치는 그냥 볼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실제로 웬만한 무림학교의 학생들이라면 배운 모든 것을 동원해 낙법에 집중하더라도 몇 군데 부러질 각오를 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높이 날려진 도진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

전생에서 이 랭킹전의 주인공은 우정한이었다.

후기지수로서 대한민국의 관심을 어깨에 짊어지고서도 조용히 승려로서의 삶을 살며, 그랬기에 더더욱 커다란 '도'를 걸었던 우정한.

그런 우정한이 약할 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우정한을 상대로.

두근두근!

도진은 지금 검을 든 채 마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뛰는 게 당연했다.

김도진은 더 이상 어두컴컴한 공장 구석의 공허할 뿐인 이름의 김 과장이 아니다.

잠룡 김도진이다.

잠룡 김도진으로서 우정한과 함께 무대의 결승에 섰다.

두웅-!

그러니까 나 또한 주인공으로서 검을 휘두르고 싶다!

'천마검공(天魔劍功), 효아(哮牙).'

쿠오오오오오-!!

도진의 감정에 반응하여 천마기가 날뛰었다.

꽈과과과광!!

내리친 백설에서 쏘아진 효아가 비무대를 강타하며 굉음을 터뜨렸고 우정한은 그 경력을 연신 두 팔을 움직여 흘려냈다.

터억.

효아의 경력으로 낙하의 기세를 줄여 내려선 도진이 웃으며 백설을 겨눴다.

그런 도진의 미소에 우정한 또한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합장했다.

꾸웅-!

* * * *

"김도진, 승!"

와아아아아아아-!!

결승 비무의 승자는 도진이었다.

소림 속가 제자 유룡 우정한을, 잠룡 김도진이 이겼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수준 높은 비무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렇게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1학년만 끝났는데 시상식을 하네요?"

시상식을 지켜보며 릴리가 물으니 곁에 있던 우서연이 대답했다.

"분위기 좋을 때 바로 시상식을 하는 쪽으로 진행하거든."

릴리의 시선이 향하자 우서연이 설명을 더했다.

"오늘은 1학년 시상식, 내일은 2학년 시상식. 그리고 토요일에 특별전 관련 시상식을 해."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릴리가 다시 시선을 도진에게로 향했다.

친구들이 모여 축하를 해주고 있었는데, 그런 친구들에게 웃으며 한 턱 쏘겠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축제 분위기 속에서 약간은 정리가 되고 수여식이 이어졌다.

"준우승, 우정한!"

와아아아아아!!

시상대 위에 오른 우정한에게 함성과 함께 준우승 메달과 준우승패, 그리고 꽃다발과 부상들이 수여되었다.

우정한은 그것들을 양손에 가득 들어 합장을 할 수 없게 돼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에 관중들이 와하하,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김도진의 차례가 되었다.

"우승! 김도진!"

와아아아아아아아-!!

역시 커다란 함성 속에서 도진이 시상대 위에 올랐다.

순금 메달과 함께 그 메달을 거치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한 순금 우승패가 수여되었다.

각종 부상까지 받아든 도진은, 돌연 꽃다발과 부상들을 내려 놓고선 메달, 그리고 우승패만을 들었다.

"어?"

"뭐지?"

도진의 돌발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관중들. 그리고 이어진 행동에 더더욱 사람들이 놀랐다.

타앗!

시상대에서 도진이 무언가를 던지고선 몸을 날린 것이다.

"어어어?"

흉흉한 기세라곤 전혀 없었기에 '사고'는 아니었다.

도진은 던졌던 무언가, 스티로폼 패드를 공중에서 밟아 한 번 더 도약했다.

오오오-!

그 뛰어난 경공술에 사람들은 따로 준비한 퍼포먼스인가 싶어 감탄했고, 그 감탄을 한몸에 받으며 도진은 지켜보던 어떤 부부의 앞에 내려섰다.

김서우와 서정원.

부모님의 앞에 내려선 도진이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회장님, 사모님. 제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우승 메달은 어머니에게 걸어 드리고 우승패는 아버지에게 안겨 드리는 것이었다.

도진의 행동에 부모님은 말이 없었다.

그저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혔고 아버지 또한 크흠, 하고선 감정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 도진은 씨익 웃었으나, 도진 역시 차오르는 어떤 것을 티내지 않기 위해 연신극기공의 공부를 최대한 발휘해야만 했다.

-껄껄. 제법 연신극기공의 성취가 높아졌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위지혁과 장호, 두 스승이 그런 도진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놀렸다.

* * * *

시상식이 끝나고 도진네 식구들과 이웃사촌, 그리고 상미까지 모였다.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허나 이렇게 헤어지긴 아쉬웠고 김서우가 말했다.

"이렇게 좋은 날에 모여 주셨는데 그냥 헤어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렇지요. 이런 날은 한잔해야지 않겠습니까?"

우벽진이 맞장구치자 김서우가 호쾌하게 외쳤다.

"맞습니다. 제가 한턱 거하게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고 그렇게 일행은 소고깃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 예상되었으나 김서우의 걸음엔 망설임이 없었고 어깨 또한 당당하게 펴져 있었다.

본래 빚을 갚는 데만도 힘겨워 끼니마저 걱정해야 했던 건 이제 먼 과거가 되었다.

두 부부의 벌이는 매달 내야 하는 돈을 감당하고도 저축을 할 수 있을 만큼 늘었고 여기에 아들, 도진 또한 크게 기여했다.

이래저래 생긴 수입을 생활비라며 부모님에게 통장을 건넨 것이다.

부부는 그것을 거절하려 했지만 물론 실패했다.

항상 그렇듯, 부모는 자식을 이길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이 좋은 날.

김서우는 아들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이웃사촌들과 함께 그토록 기쁜 감정을 나누어 두 배 세 배로 크게 누릴 수 있었다.

"어허. 도진이 아버님. 여기서 빼셔서야 남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런 파티에서 빼는 건 매너가 아닙니다."

"하하. 우 명장님, 웨일스 후작님. 제가 운전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이, 그 자랑스런 아드님 놔두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핑계입니까. 그렇지 않나?"

이미 흥이 오른 우벽진의 물음에 도진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이번만큼은 아버지 편을 들어드릴 수 없겠는데요?"

"하하하.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오랜만에…… 벨트를 좀 풀 준비를 해야겠는데요?"

"하하하! 그렇게 나오셔야지요!"

그렇게 어른들이 술로 흥을 돋우는 자리 옆에 미성년자들이 모여 앉았다.

도진이 고기를 굽고 그것을 상미와 우서진, 유진이와 호진이, 그리고 릴리와 윌리엄에게까지 기술 좋게 나누어 주었다.

"제가 할게요, 오빠."

"맞아요, 형. 우리가 할게요."

"어허. 됐으니까 열심히 먹기나 해."

우서진과 상미가 그런 도진을 만류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잘 굽힌 고기 한 점씩을 입에 넣어 주니 곧 조용해졌다.

"형아. 우리 콜라 마셔도 돼?"

"그래. 오늘은 무제한으로 허락하마."

"와아아아아!!"

솜씨 좋게 구워서 동생들의 입에 넣어 주니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겉으로야 고등학생이지만 본래는 30대 중반이었다. 기억 속 흐릿했던 때의 어린 동생들을 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싶은 도진이었다.

은근히 기대하며 바라보는 릴리와 윌리엄에게 한 점씩 입에 넣어주는 재미도 있고 말이다.

'좋네.'

무엇 하나 기쁘지 않은 게 없다.

이곳 소고깃집이 서태주네 부모님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데 그 서태주가 본선에 올랐던 기념이라며 가게에서 서비스로 주는 술까지도 좋다.

그리고 그 좋았던 기분은 그날 밤을 넘어 다음날.

랭킹전 특별 비무가 잠룡과 검봉으로 결정된 순간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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