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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27화 (227/741)

226화

시선을 모으던 도진은 어머니, 서정원의 손에 붙잡혀 슈킨팍시 클래식 안으로 사라졌다.

코끼리 두 마리가 잡아끌어도 미동도 없을 도진이었으나 어머니의 손길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형!"

차 안에서 호진이가 도진을 반겼으며 유진이 또한 슬쩍 엉덩이를 옮겨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랬지.'

예전에는, 이렇게 가족 모두가 SUV에 함께 탔던 때가 몇 번이고 있었다.

슈킨팍시 클래식은 아니었지만 커다란 SUV에 5인 가족이 모두가 함께 탔었던 때가 말이다.

"저쪽 주차장으로 가시면 돼요."

"그래."

앞좌석에서 아버지가 운전을 하고 어머니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자신과 동생들을 살폈다.

그리고 자신은 아직 어린 동생들을 챙기던 때의, 자세하지 않고 어렴풋하지만 빛바랜 사진처럼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기억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려 함께 걸었다.

"뭐부터 보러 갈까?"

"VR 체험관!"

"그래. 가보자."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번은 가족끼리 놀러를 다녔었다.

그때엔 도진이 호진이처럼 목소리를 높였었다.

걸음을 빨리하여 달리듯 무언가를 보러, 즐기러 갔었고 부모님은 동생들을 챙기며 그런 도진을 지켜보았었다.

당시와 다른 점은, 이제 도진이 부모님의 곁에서 동생들을 함께 지켜본다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저거 한 번 해보세요."

그리고 그저 지켜보기만 하시던 부모님을 신경써 드릴 수 있을 만큼 도진의 머리가 굵어졌다는 거다.

"와, 부모님이시구나!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유애라의 안내에 따라 부모님이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도진은 자리에 앉았다.

은은히 미소짓고 있지만 여전히 흔들리는 기세 덕분인지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없어 마음에 드는 도진이었다.

부모님이 오신 곳에서 소란이 이는 건 원치 않았기에 굳이 억지로 기세를 다 억누르지 않았는데 그 의도가 제대로 먹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의도를, 부모인 김서우와 서정원은 대번에 꿰뚫어 보았다.

"와, 진짜 저래서 평소에 그렇게 기세를 감추고 다니는 거였구나."

"그러게. 그냥 조금만 흘려도 저 정도인데 제대로 맘 먹으면 그 자리에서 지릴 듯."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소근거렸지만 김서우와 서정원에게는 그저 기분이 평소보다 좋은 아들이었다.

"가족이라도 저 정도면 무섭지 않을까?"

"그러게. 호랑이 형님 이야기 생각나네."

그들은 도진을 무서워하고 어려워했다.

삼류에 그쳤다지만 재능이 있었던, 무림인이었던 김서우였기에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를 넘어 아들이 부모에게도 쉽게 말 못할 만큼 엄청난 무공을 익혔음을, 정말로 상상도 못할 만큼 높은 경지에 들었다는 것도 잘 알았다.

하지만 김서우는 그럼에도 아들을 두려워 할 수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부모는 원래 자식을 못 이기는 법이니 말이다.

더 나아가 모순되게도 그렇게 못 이기는 자식이 제아무리, 얼마나 강해져도 오히려 강가에 내놓은 듯 불안하고 지켜줘야만 한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것이 자식이다.

끄덕.

그러니까, VR 체험관이라는 생소하고도 흥미 있는 장소에 있으면서도 대기석에 앉아 손을 흔드는 아들과 몇 번이고 눈이 마주치고 마는 김서우였다.

* * * *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이웃사촌들이 속속 도착했다.

"하하! 잘 지내셨습니까."

"예, 안녕하십니까. 우 명장님."

우벽진과 우서진, 우서연이 찾아왔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 안녕하세요. 웨일스 후작님."

웨일스 부부가 남매와 함께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상미야."

여기에 상미까지 합류하여 대인원이 되었다.

특별히 시간을 맞추어 이만큼이나 되는 인원이 모일 수 있었다.

열 명이 넘는 인원이 모이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과거의 도진이라면 상상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기우에 불과함을 도진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저 내키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축제를 즐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낮에 진행되는 가요제를 간식을 먹으며 구경하기도 하고 각 동아리의 학생들이 준비한 것들을 체험해 보기도 했다.

굳이 상상도 못할 만큼 화려하고 대단한 것을 체험할 필요도, 거창하게 특별한 것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도진은 미소지으며 그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겼고, 잠시 쉬기 위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마주한 우서진과 상미를 보며 도진이 물었다.

"슬슬 입학 준비 시즌인데 어때?"

11월. 숭무고를 목표로 하는 우서진과 상미에게 있어서는 입학 시험까지 채 반 년도 남지 않은 시기였다.

우서진은 자신 있는 얼굴로 잘 하고 있어요, 라고 답했다.

"검정고시는 합격했고 할아버지에게 특훈을 받고 있어요."

"그렇구나."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대체한 우서진은 단번에 합격했다. 여기에 무림고등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 따로 응시해야 하는 '무림 검정고시' 역시 만점이었고.

"저도 합격했어요."

여기에 중학교를 자퇴하고 마찬가지로 검정고시를 선택한 상미 역시 대번에 시험을 통과했다.

"응. 잘했어."

우서진은 삼음지체의 저주가 축복으로 바뀜으로써 그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잃어 버렸던 시간을 보상받듯 문무 양쪽으로 재능을 겸비한 천재로서 또래를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고 또 추월하는 중이다.

요 1년은 우서진에게 있어 또래를 넘어 숭무고를 목표로 할 정도로 무섭게 발전하는 시간이었다.

상미 또한 뒤쳐지지 않았다.

위지혁마저 인정한 천재가 그녀였기에 학교를 자퇴한 뒤 하는 독학은 오히려 제한없이 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공 면에서는 도진이 건네준, 천마신교에서도 장로급이 익힐 수 있는 극상승의 한천검공을 익히고 있는 그녀였으니 아마 입학 시험 때 또 한 번의 파란이 일 것이라고 도진은 예상하고 또 기대할 수 있었다.

"힘내세요, 오빠!"

"이겨야 돼! 형!"

"하하. 그래."

그렇게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저녁이 되어 도진은 비무를 준비하기 위해 따로 움직이게 되었다.

동생들의, 가족과 이웃들의 응원을 받으며 도진은 대기실로 이동했다.

도진의 순서는 마지막으로 앞서 몇 번의 비무가 진행되었고 거기에는 오대용과 주정아의 비무도 포함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비무는 당연히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크게 화제가 되었고 과연 누가 이길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도진은 주정아의 승리를 점쳤다.

오대용은 그 기초가 탄탄하다지만 아직 상위 무공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부분이 약점이었다.

그에 비해 마찬가지로 기초가 탄탄한 주정아는 오래 전부터 상위 무공에 입문했었고 요즘 들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으니 도진으로선 주정아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고 결과는 그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분전했지만 오대용은 주정아에게 패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도하는 표정이어서 도진은 낄낄 웃었다.

"준비해 주세요."

"네."

그리고 드디어, 도진의 차례가 왔다.

그럴 리가 없는데 긴장이 된다.

마치 전생에서 붙을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면접 전까지 가슴을 죄는 듯한 긴장을 느껴야만 했던 문월고 면접 때가 떠오를 만큼.

그 긴장 끝에 치러야 했던 면접은 과연 스스로의 무지와 무능을 절절하게 체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격했기에 더더욱 의문이었던 기억이고.

물론,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다르다.

당시의 무능하고 무지했던 때와 달리 지금 도진은 승리를 장담하고 있으며 그저 그 승리를 얼마만큼이나 멋지게 장식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와아아아아-!

크나큰 함성 속에서 도진은 백설을 들고 당당하게 비무대 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런 도진과 마주한 64강 상대는.

'인생……. 시발…….'

무진혁이었다.

* * * *

랭킹전에서 한 번 만났더 상대를 다시 만나는 건 의외로 자주 있는 일이었다.

우승 후보야 일부러 떨어뜨려 놓는다지만 그 외의 경우 예선전에서 세 번 싸워 두 번 이기면 올라가는 시스템상 같은 상대를 다시 만나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도진에게야 무력하고 못난 모습을 보였지만 숭무고에서도 손꼽히는 배경과 실력을 가진 무진혁이 64강에 이름을 올린 건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당연한 것들의 결과로 64강에서 도진을 다시 마주해야 했던 무진혁은 스스로의 인생과 불행을 곱씹고 있었다.

비록 예선에서 도진을 만나는 불행을 겪었으나 생각지도 못하게 삼촌의 덕분으로 무난히 넘기고 본선에 진출했다.

허나 대진표를 보고선 다시 한 번 절망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겨 나갈 경우 64강에서 도진을 '또' 만나야 했던 것이다.

어차피 이겨 나간다면 언제든 만나야 했지만 그것이 8강도 16강도 심지어 32강도 아니고 본선 2라운드인 64강이라니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말이다.

너무 이른 그 피할 수 없는 미래는 기어코 찾아와 이렇게 도진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도대체 왜…….'

다시 마주한 도진은 그때와 달리 기세를 줄기줄기 내뿜고 있었다.

그때가 우뚝 선 절벽이었다면 이번엔 그 절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자신을 휩쓸 것만 같아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기권할까?'

이번에야말로 몸 성히 걸어서 퇴장하기 위해 기권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례!"

두웅-!

하지만 벌리려던 입은 도진의 기세에 닫혔고 몸은 이번에도 정직하게 포권지례를 취함으로써 퇴장불가의 상황에 놓였다.

"시작!"

쾅!

그리고 도진이 굉음과 함께 덮쳐들었다.

'주, 죽는다!'

랭킹전에서 처음으로 도진이 선공을 취한 것이었다.

심지어 기세를 드러낸 채 백설을 앞세우기까지 했다.

죽는다. 이건 100% 죽는다.

무진혁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살고 싶어 전력으로 군홍청권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쾅! 쾅! 카아앙!

백설과 수투가 연신 불꽃과 경력을 흩뿌렸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도진의 백설을 무진혁이 필사적으로 군홍청권 특유의 거리를 유지하며 쳐냈다.

팔, 필요하다면 각법까지 써서 있는 내공 없는 내공을 다 끌어내 저항하는 무진혁.

와아아아아-!!

그 모습에 사람들이 함성을 내질렀고 무아지경으로 저항하던 무진혁은 함성 소리에 한줄기 이성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어?'

뭔가 이상하다.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건 도진이 몰아치고 있음에도 스스로가 버티고 있는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그래도 타고난 머리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김도진'이 몰아치는데 자신이 버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자존심을 챙길 여지도 없이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다.

그 의문에서 시작하여 무진혁은 여러가지 상황을 검토한 끝에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무진혁 또한 소문을 들었다.

오늘 이 자리에 도진의 부모님이 참석했다는 것을 말이다.

정문에서 그런 퍼포먼스까지 벌인 탓에 화제가 되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 부모님이 참석한 자리였으니 도진이 이렇게 '쇼'를 하고 있다는 것까지 그는 훌륭하게 추론해냈다.

그렇다면.

'오냐. 어울려 주마.'

원하는 바를 알았다.

거기에 맞춰 무진혁은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의 자세로 현란하게 초식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런 무진혁의 모습에 도진은 은은히 미소지으며 만족했다.

무진혁은 속으로 '됐어!'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스로의 모습과 자존심을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었고 그것은 언젠가 도진이 그에게 한 번은 면죄부를 줄 수 있을 만큼 스스로를 놓은 모습이기도 했다.

쾅! 쾅! 쾅!

명문가의 자제답게 무진혁은 또래를 압도하는 내공을 아낌없이 초식에 때려박았고 화려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비무를 연출했다.

두웅-!

그리고 마치 피날레를 장식하듯 도진의 백설이 이를 드러냈다.

그 백설의 기세에 무진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니, 잠깐만…….'

입학 시험 때 보여주었던 '효아'였다.

'이건 좀 시발아!'

무진혁은 살고 싶어 남은 내공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 비기에 때려박았다.

예선에서 저지당했던 그 비기는 가진 내공을 한 점에 집중하여 쏘아내는, 그 한 점에 집중하기 위한 온갖 기술이 집대성된 일점홍(一點紅)이었다.

꾸웅-!

대포를 쏜 것처럼 일점홍의 경력이 폭발했고 그것은 효아의 경력에 믹서기에 갈린 듯 사라졌다.

콰아아-!

그리고 채 해소되지 않은 경력에 무진혁이 비무대 위를 날았다.

패배가 확정된 상황.

그러나 무진혁은 은은하게 미소지었으니 '필살기 대결' 끝에 멋지게 패배한 연출이 되어 만족했기 때문이다.

털썩!

명예로운 죽음, 아니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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