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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25화 (225/741)

224화

점심시간이 되어 작업이 멈추었을 즈음 도진을 찾아온 예쁜 손님들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걸그룹 레드슈와 안티체리의 멤버들이었다.

"안녕!"

"배고프지? 도시락 싸왔어!"

생기 넘치는 얼굴로 인사하는 그녀들은 예쁘게 포장된, 그러나 엄청난 사이즈의 5단 도시락통을 네 개나 들어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오, 누나들 도시락도 쌀 줄 알아요?"

"야! 우리가 자취하면서 해 먹고 버린 짬만 해도 한강 정도는 메웠을 걸?"

그렇게 말하는 건 안티체리의 리더이자 둘째인 주교은이다.

"아니, 걸그룹이 짬이 뭐에요, 짬이. 예쁜 말 씁시다. 어쨌든 그거 저 주려고 싼 거예요?"

"당연하지. 우리가 너 아니면 누구 주려고 이런 고생을 하겠어."

"하하하. 그거 감동적인 말이네요. 잘 먹을게요."

그리하여 도진은 레드슈와 안티체리, 그리고 스태프로 따라온 두 사람과 함께 점심을 먹게 되었다.

"일은 괜찮으세요?"

도진이 웃으며 묻는 건 바른 엔터에 새로 입사한 직원이었는데, 다름 아닌 대성기획에서 도진에게 수작을 부리기 위해 쓰고 토사구팽했던 바로 그 신입 직원이었다.

대성기획이 해고한 직원을 역으로 바른 엔터에서 채용한 것으로 인해 DS는 더블로 욕을 먹었었다.

그 신입 직원, 최정도는 예!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다들 배려해 주셔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웹 예능 촬영팀의 막내로 일하고 있었는데 활기에 넘치는 것이 정말로 스트레스없이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친구가 제법 팔방미인이더군요. 덕분에 제가 좀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최정도를 칭찬하는 또 다른 스태프는 웹 예능의 촬영을 도맡았던, 깔끔한 외모에 탄탄한 근육질의 팔뚝이 돋보이는 김성덕이다.

"다행이네요."

요 근래 랭킹전 준비로 바빠서 최정도가 들어온 뒤로 조금 신경을 덜 썼던 게 사실이었는데 바른 엔터는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듯했다.

'하긴.'

오대용과 주정아가 랭킹전을 대비한 수련으로 바쁜 중에도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었으니 문제가 생기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뭘 찍으러 온 거예요?"

노트북이나 카메라 등의 장비를 가져온 걸로 봐서는 웹 예능 컨텐츠를 위한 촬영을 하러 온 것 같았는데 쉽사리 짐작이 가지 않았다.

숭무동이 그렇듯 숭무고 내에서도 개인적인 촬영은 상당히 제한이 되어 있었다.

외부인이 가볍게 개인적인 사진을 찍는 건 허용이 되었고 축제 기간엔 그 기준이 조금 더 널널해지곤 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촬영 등은 학교 측의 승인이 있어야 했고 그나마도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숭무고의 보안 문제도 있었지만 서로에게 총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 조심하게 되듯, 무공이란 게 퍼지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더욱 존중을 받는 쪽으로 사회가 변화한 영향도 컸다.

도진이 알기로 레드슈와 안티체리가 소속사 차원에서 따로 촬영과 관련한 협조 공문을 보낸 건 없었다.

그에 따라 오대용 또한 그에 관한 업무를 처리한 적이 없었을 테니 어디까지나 촬영에는 미치지 못하는, 개인적인 사진을 찍는 정도로 밖에 권한이 없을 터였다.

도진의 물음에 답한 건 냉미녀 같은 겉보기와 달리 안티체리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있는 막내 설하은이었다.

"그냥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진만 찍을 거야."

"사진만요?"

"응. 그걸로 실제 방송에서 해주는 랭킹전 축제 특별 방송 동시 송출하면서 썰 푸는 식으로 콘텐츠를 구상했어."

"오, 나쁘지 않은데요?"

숭무고의 랭킹전 축제는 가요제만이 아니라 방송사에서도 특별 편성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것저것을 소개해 주곤 했다.

설하은의 말은 그러니까 그렇게 송출되는 방송을 동시 송출하면서 자신들이 직접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보이는 라디오'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연예인이면서 동시에 그 장소에 있었던 일반인 같은 느낌을 주면서 생생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꽤 괜찮게 느껴지는 콘텐츠였다.

"이번엔 무대에 올라가지 못해서 이걸 선택했지만, 다음에는 무대에 올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

느릿하게 그렇게 말하는 건 거북이를 연상케하는 분위기의 안티체리 셋째 은미소다.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년에는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죠. 노오오오력이요."

"너 진짜 그렇게 꼰대처럼 말하지 마. 아저씨 같잖아."

"뭐 이 나이 되면 다 아저씨죠."

"어휴."

아쉽게도 안티체리는 랭킹전 축제의 가요제에 초청받지 못했다.

날고 기는 많은 가수들 중에도 톱급만이 선택받는 자리이니까.

현실은 냉혹한 법이었다.

"너희들도 같이 노오오오오력 해야 하는 거, 알지?"

"응."

그리고 레드슈는 가요제만이 아니라 랭킹전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숭무고 재학생이지만 아쉽게도 중도에 유혜진과 여은영이 탈락했고 박소진 역시 분전했으나 128강을 정하는 마지막 라운드, 그러니까 256강에서 아쉽게도 탈락했다.

"랭킹전 백수에 가요제 백수라니, 처량하네."

굵은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카락을 꼬며 말하는 건 낯을 많이 가리는, 그러나 친해진 사이에선 이런 식의 장난스런 자학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여은영이다.

"그런데 도진아."

"네."

안티체리의 큰언니이면서도 막내 같은, 작은 체구의 '맏내' 포지션인 설현주의 부름에 도진의 시선이 향했다.

설현주는 펜스를 쳐 둔 야외 특설 무대를 보며 물었다.

"보니까 분위기가 좀 어수선한 거 같던데, 무슨 일 있었어?"

그녀들 또한 연예계 관계자다 보니 아무래도 그쪽으로 좀 더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이곳에 들어오며 보았던 DS의 관계자들 분위기가 특히 좋지 않았던 걸 보았기에 하는 질문이었다.

그녀의 물음에 도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어요. DS가 또 귀여운 개수작을 부리길래 퇴짜를 놔 주었죠."

"진짜?"

"네."

신인을 끼워팔기 위해 부린 꼼수를 도진은 그 자리에서 까발리고 퇴짜를 놓았다.

업계에서 어깨 좀 펴고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그렇게 퇴짜를 당했으니 DS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리허설을 위해 찾아왔던 신인은 무대에 서 보지도 못한 채 돌아가야 했다.

착한 친구들이었다면 조금 미안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인성이 글러먹은 친구들이라 전혀 미안하지가 않았다.

"헤에, 그래서 걔들 얼굴이 그렇게 죽상이었구나."

"조만간 SNS 난리나겠네."

그녀들이 알기로 DS는 SNS에 이번에 새로 데뷔한 그룹이 랭킹전 축제에 선다는 홍보를 이미 하고 있었다.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그 내용이 슬그머니 사라져 있어 조만간 말이 나올 것이었다.

거기에 이번 일을 보았던 눈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 분명히 인터넷에 '썰'이 올라와 아주 활활 타오를 확률이 높았다.

-DS, 또 너야?

-ㅋㅋㅋㅋ 아니 무슨 깡이야 도대체 ㅋㅋㅋ

-김도진 : NAGA!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만 꼭 긍정적인 반응만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뒷말 나오는 거 아니야?"

주교은의 물음에 도진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오겠죠? 저랑 DS 사이에 일이 있었으니 안 나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겠네요."

"괜찮을까?"

"제가 뭐 나쁜 일 했으면 안 괜찮았겠지만 나쁜 일 한 게 하나도 없으니 안 괜찮을 이유가 없죠."

도진은 당당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집행부의 권한이나 잠룡으로서의 이름으로 부당한 일을 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DS가 그런 부당한 일을 저질렀고 철저하게 나쁜 쪽이었으니 도진이 켕길 게 있을 수가 없었다.

"김도진이 DS가 거슬려서 그랬다는 건 사실이고 말이죠."

DS는 아직 도진의 '살생부'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도진이 집행부로 있는 자리에서 그런 수작을 부렸으니 오히려 이 정도로 끝난 걸 다행으로 알아야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DS는 그걸 다행으로 여기지 않을 테니 앞으로 더 큰 일을 당할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DS 쪽 팬덤은 널 욕할 텐데."

-아니 좀 너무한 거 아님?ㅡㅡ 재능 기부한다고 갔는데 그걸 그냥 보내고;;

-그러게ㅠㅠ 시간 내서 찾아간 건데 그 노력을 봐서라도 기회 정도는 줄 수 있는 거잖아 ㅜㅜ

실제로 이런 글들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는 순간 올라올 것이었고 심지어 수위를 높여 조리돌림하거나, 아예 도진의 지인들과 심지어 동생들의 계정을 찾아가 욕을 하는 악성팬도 등장할 것이었다.

허나 도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 걸 일일이 마음 쓸 정도로 한가하진 않으니까 괜찮아요."

흙탕물이 더러워봐야 밟을 일이 없다면 신경 쓸 이유도 없다.

물론, 흙탕물이 튈 상황이라면 대처를 하겠지만 말이다.

-와, 잠룡 가족을 찾아가서 욕을 하네 ㅋㅋㅋ 님 돈 버리는 거 좋아하시나봐요?

-캡쳐했읍니다. 나성보 변호사님에게 보내겠읍니다.

-(삭제된 계정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을 넘는다면 도진도 가만 있지 않는다.

그리고 도진에게는 이런 때에 나성보 변호사라는, 치트키나 다름 없는 지인이 있었다.

-아 ㅋㅋㅋ 조만간 타자치는 고양이 무리 출몰 예정..ㅋㅋ

그런 미래가 안 봐도 비디오, 아니 블루레이였으니 도진으로선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동생들의 SNS 계정을 조금 더 꼼꼼히 살피는 정도로 충분하다.

"헤에, 대인배네."

"뭐 누나들만큼 대인배는 아니지만요."

악플이라 하면 안티체리에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그룹은 없다시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꿈을 향해 매진하는 안티체리는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아이들이었다.

'아니, 아이라고 하기엔 몇 살 차이가 안나는 구나.'

전생을 포함해도 동생들 나이대이긴 하다.

…새삼 안티체리의 걸그룹으로서의 짬이 느껴지는 도진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식사가 끝나고 주교은이 물었다.

"밥 다 먹고 나면 뭐해야 해?"

"글쎄요. 실무는 뭐 맡겨놨고 리허설은 한 세 시간 뒤에나 확인하면 돼서 시간이 좀 남네요."

퇴짜를 놓으면서 시퀀스 전체를 재점검하라고 했다.

덕분에 안 해도 될 일을 하게 된 모두에게 DS는 공공의 적이 되었고.

"헤에. 1티어 걸그룹들 많이 올 텐데 안 보러 갈 거야?"

가요제는 며칠에 걸쳐서 진행되고 RTX 같은 '초월 티어'들이야 마지막 날에 온다지만 첫날인 오늘만 해도 유명한 걸그룹이 몇 팀이나 온다.

리허설이 미뤄졌다면 오히려 그런 걸그룹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인데 안 가도 되겠냐는 은미소의 은근한 물음에 도진은 웃으며 답했다.

"제가 봐야 할 걸그룹은 다 여기 있는데요?"

"어……."

훅 들어온 도진의 멘트에 느릿하던 은미소의 움직임이 더욱 느릿해졌다.

"와…… 도진이 너 진짜 선수구나?"

진짜 거북이가 된 은미소의 모습에 설현주는 감탄했고.

"저런 멘트를 좀 배우란 말이야, 너도."

"아니 난 저런 건 좀……."

어느새 등장한 두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다름 아닌 안티체리와 레드슈가 소속된 회사의 대표인 오대용과 경영 2팀장을 맡고 있는 주정아였다.

손만 안 잡았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정히 걷는 게 훌륭하게 썸 타고 있는 커플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며 도진이 말했다.

"와, 부부사기단 등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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