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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24화 (224/741)

223화

"흠. 그러니까 무대는 참가하는 엔터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서 만들어지는 거네요?"

"예, 맞습니다."

"1번 조명, 2번 조명 이렇게 서류에 기입하는 게 실무자들이 일을 처리하기에 편하기 때문이고 정식으로 올라가는 서류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예, 예. 그게 관행이어서요. 말씀대로 정식 서류에는 제대로 된 명칭으로 기입해서 결재를 받습니다. 가끔 현장에서의 명칭 그대로 서류가 올라가는 경우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실수로 그렇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가는 오전.

도진은 현장의 사람들과 실무자들에게 이것저것을 묻고 서류를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것저것을 묻는 도진의 질문에 사람들은 조금 눈치를 보거나 어려워하면서도 성실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잠룡 김도진'이 물으니 속으로야 귀찮아할지 몰라도 겉으로도 그럴 순 없었다.

오히려 1학년 집행부원으로서 일을 꼼꼼히 진행하려는 모습이었으니 더더욱 성실하게 대답해야만 했다.

결정권이야 '어른들'에게 있다지만 실제 현장에서 그것을 행사하는 게 집행부였으니 더더욱.

그리고 그런 도진의 모습에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리며 초조함을 애써 감추는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DS 엔터에서 파견된 실무자였다.

'시발 그냥 대충 하지…….'

입술을 짓씹으며 속으로 중얼거리는 건 두말할 것도 없이 켕기는 게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관행'처럼 하던 일이었으니 걱정을 안 하겠는데 바로 얼마 전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그 김도진이다보니 불안했다.

차라리 바로 일을 터뜨리면 대응을 할 텐데 단 하나의 틈조차 주지 않고 철저하게 하겠다는 듯 이것저것 확인만 하고 있으니 가시방석이 따로없었다.

그가 그렇게 불안해하는 사이 속속 리허설을 진행하기 위해 오늘 공연을 진행할 연예인들과 관련 직원들이 도착했다.

랭킹전 축제의 가요제는 지상파가 무려 두 시간 이상을 특별 편성하여 방영할 정도로 라인업이 화려했고 그만큼 많은 연예인들과 인력, 자본이 들어가는 만큼 곧 수많은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작업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유니 걸즈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업블랙입니다!"

여기저기서 아이돌들이 그룹 이름을 크게 외치며 인사했다.

특히 도진에게도 일일이 찾아와 인사를 했고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팀도 있었다.

특유의 문화를 알고 있던 도진이었기에 여타의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리고 그들 중 도진이 특히 눈여겨 본 세 팀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DS 엔터 소속의 아이돌들이었다.

하나는 완전 신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탄탄한 팬덤을 보유하고 이름을 널리 알린 4인조 보이 그룹으로 DS 엔터가 큰 돈을 들여 데뷔시킨 팀이다.

얼굴 천재, 음악을 위해 태어난 카리스마 등 중2병이 아주 강하게 온 듯한 단어들을 본 기억이 강렬했다.

음악에 몰두하느라 세상에 조금 서툴다는 면을 어필하기도 했고 부끄러움이나 어색한 면을 보여준다는 '이미지 메이킹'에 대해서도 들었다.

'…보여주는 대로 믿어선 안 되는 법이지.'

하지만 도진은 그것을 전부 믿을 수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이돌이란 결국 팬들의 환상을 채워주는 사람이고 그 환상을 채워주기 위해 '가면'을 쓴다는 걸 알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인사한 팀은 비뚤게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도진은 신안과 장호에게 배운 사람을 보는 법으로 바로 꿰뚫어 보았다.

무덤덤한 얼굴로 인사를 했는데 '왜 내가 굳이 눈도장을 찍어야 하냐'는 불만이 눈동자에 어려 있었다.

이들의 이미지 메이킹이 무덤덤한, 부자연스러운, 혹은 일견 무례해 보이는 태도를 포장하기 위해서였음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만큼.

'DS가 인성 교육이 제대로 안 된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였지.'

스타성 등에선 대형 기획사 중 1등이라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반대로 그에 반비례하는 인성으로도 DS는 유명했다.

실제로 마약이나 음주 운전 등 여러가지 사고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왔고 말이다.

신인도 이러하니 나머지 두 팀, 기성 아이돌 두 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익숙함에서 묻어나는 거만함과 받들어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태도를 따라다니는 스탭들이 일일이 받아주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런 곳에서마저 그러하니 안 보일 때는 어느 정도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런 모습들이었기에, 도진은 아무런 마음의 부담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저기요,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아, 예!"

존재감을 슬쩍 드러내며 다가가니 대번에 시선들이 도진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렇게 집중된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도진이 말했다.

"진행 시퀀스에서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요."

"이상한 부분이요?"

도진의 말에 대번에 작업자들이 긴장했다.

이미 준비를 마치고 리허설에 들어가며 합을 맞춰야 하는 때에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 그것도 집행부의 잠룡에게서 들어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들고 무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서류의 1번 조명과 2번 조명이 무대의 메인 조명, 저거 맞죠?"

"아, 예. 맞습니다."

도진이 말하는 1번 조명과 2번 조명은 특설 무대의 중심을 비추는, 아주 커다란 조명이었다.

외공을 제대로 익혔거나 내공으로 육체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두 명이서 들어도 위험할 정도로 크고 무거운 물건이다.

작업자들 중 관리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진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여기 보니까 1번 조명이랑 2번 조명을 중간에 교체한다고 되어 있더라구요. 굳이 바꾸는 이유가 있나요?"

"아, 그건 저희가 요청을 했습니다."

도진의 물음에 대답을 한 건 관리자가 아니라 우측에 있던 사람이었는데, 다름 아닌 DS 엔터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도진이 시선을 향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가요제가 아이돌들에겐 중요한 무대이다 보니 조금 더 투자를 해서 더 좋은 무대를 보여줄 수 있도록 조명 교체를 요청했었습니다."

"예. 그런 사정은 알고 있고 그걸 문제 삼는 건 아닙니다."

"그러시면……."

그가 불안한 눈동자로 말을 흐렸다.

도진은 그 눈동자를 정면에서 마주하며 말했다.

"제가 알기로 1번 조명과 2번 조명을 교체하기 위해 배정된 분들은 무림인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아뇨,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분들이 1번 조명과 2번 조명을 단 5분만에 교체할 수 있는 거죠? 그것도 이 조명보다 더 크고 무거운 걸, 천장에다가 말이죠."

"그, 그건……."

"보통 이런 조명을 교체해야 한다면 적어도 15분 정도는 배정했던 걸로 그동안의 기록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한데 이번엔 왜, 어떤 이유로 단 5분을 배정한 거죠?"

"…그, 그게."

도진의 물음에 DS 엔터의 직원은 명쾌한 답을 하지 못했다.

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시퀀스를 확인하니 본래는 없던 신인 팀의 무대가 추가되어 있더군요. 본래 배정된 시간은 그대로인데 팀은 하나 늘어났고 조명 교체를 위한 시간은 10분이 줄어 있네요."

왜죠.

도진은 물었고 그는 쩔쩔매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이상해질 때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일을 잘 몰라서 설명을 제대로 못 드렸네요."

DS 엔터의 직원들이 모여 있던 곳에서 험상궂은 얼굴에 덩치 큰 남자 하나가 나서며 말했다.

한 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는데, 다름 아닌 용인의 공원에 행사를 위해 찾아갔을 때 대면했던 DS 엔터 계열의 회사인 대성기획의 직원이었다.

레드슈와 안티체리를 물먹이려다 오히려 반대로 물을 먹었던 바로 그 남자를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흠. 그랬었나요?"

웃고 있지만 결코 쉽게 마주할 수 없는 도진을 앞에 두고도 그는 주눅들지 않고 말했다.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한 팀을 더 재능기부의 형태로 참가시키기로 서류를 올렸습니다. 재능기부인 만큼 따로 페이를 받지 않기로 했고 저희로 인해 일이 늘지 않도록 나름 시간을 조율하기 위해 교체 작업 시간을 활용하기로 조율을 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조명을 교체할 수 있도록 따로 저희 쪽에서 인력을 고용하기로 말씀도 드렸습니다."

청산유수다.

"결재를 받기 위해 서류를 올렸고 문제없이 인가되어 리허설을 진행하는 걸로 저희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이 진행될수록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나왔고 언뜻 들으면 정말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도진이 잘 몰라서 꼬투리를 잡는 것 같다.

조용히 듣고 있던 도진은 아주 조금, 그러나 차갑게 입꼬리를 올리고선 말했다.

"문제없이 인가되었다라……. 아뇨. 잘못 알고 계시네요."

"……예?"

"인가가 되는 건 리허설이 문제없이 진행되었을 때입니다. 그리고 그때 인가를 내리는 건 저구요. 그러니까 아직 인가는 되지 않았습니다."

"……."

칼을 뽑아 들었다.

사람들은 도진의 선언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도진은 그럴 의도로 선언한 것이었다.

"자, 한 번 해보죠. 고용하셨다는 분들로, 지금 한 번 조명을 교체해 봅시다. 5분 안에 문제없이 교체가 가능하다면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대성기획 직원이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굳었다.

그러나 그는 멍청하니 굳어 있지 않고 도진의 말대로 데려온 인력들을 움직여 작업을 진행했다.

사다리를 통해 두 명이 올라가 조명을 해체하고 아래에서 세 명이 기구를 이용해 내리는 건, 보는 사람이 손에 땀을 쥘 정도로 위태위태하고 조급해 보였다.

금방이라도 사고가 날 것처럼 서두르는 모습.

허나 그러고도 조명의 교체에는 10분이 걸렸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그들이 베테랑에 일반인 이상의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경이로운 속도였지만 그대로 진행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안 되네요. 흠. 숙련도가 부족해서 그럴 수 있으니 다시 한 번 해봐야 할까요?"

"아뇨, 아닙니다."

"네, 그래야죠. 저래서야 대형사고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한데, 그걸 몇 번이고 반복할 수는 없는 법이죠."

"……."

"덜 위험하려면 작업을 천천히 하면 되는데, 그러려면 최소 15분 정도는 필요하겠네요. 하지만 그 15분 때문에 가요제 진행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겁니다. 여러 상황을 대비해서 시간 여유를 충분히 두었으니까요. 그러니까 DS 분들은 처음부터 한 팀을 더 포함시키고 싶으니 시간을 더 달라 했으면 됐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게 되네요."

왜 그랬을까요, 라고 도진은 묻지 않았다.

여기까지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 자리에 있는, 업계의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었으니까.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RTX마저 참가하는 가요제다.

제아무리 대형 기획사인 DS라 해도 이미 정해진 팀 이외의, 그것도 신인 한 팀을 더 넣고 싶다고 멋대로 요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꼼수를 부려 갓 데뷔한 신인을 홍보하기 위해 '끼워 넣기'를 한 것이다.

어차피 시간에는 여유가 있다.

그러니 서류에는 5분으로 교체 시간을 올렸지만 실제로는 15분을 배당해도 된다.

여유 시간이 있으니까 행사는 그래도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었다.

"결재를 받기 위해 서류를 올리셨다고 했죠? 그런데 그 서류, 확인해 보니까 1번 조명, 2번 조명 이런 식으로 현장에서의 명칭을 썼네요. 실수를 한 게 아니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심지어 교체 시간을 5분으로 단축한다는 내용도 없더군요. 시퀀스에서나 아주 작게 표시되어 있는데 이거, 실수인 거죠?"

"……예.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업무량이 많았던 데다 욕심으로 실수를 했던 것 같습니다."

-껄껄. 뻔뻔한 것으론 고수가 따로 없는 놈이구나.

위지혁의 말대로였다.

그것도 심지어 자신의 탓이 아니라 말버릇처럼 다른 직원의 탓으로 돌린다.

"제가 개인적으로 한유아 선배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그 선배가 총책임자로 있는 행사에서 불미스러운 사고 같은 게 일어나면 안 되지 않겠어요? 이런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더라도 랭킹전 축제에서 사고 같은 건 당연히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구요. 그렇죠?"

"예."

도진은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는 그 직원을 마주하며 옅게 미소지었던 얼굴을 대번에 굳혔다.

그리고 말했다.

"DS 엔터의 시퀀스, 다시 짜세요."

그의 얼굴이 결국 일그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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