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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23화 (223/741)

222화

도진과 강정민의 대결은 모았던 기대 이상의 볼거리를 보여 주어 크나큰 함성과 박수를 받았다.

보고 있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화려한 강정민의 주먹과 그 주먹을 맞상대하는 도진의 백설.

그리고 주먹과 검이 부딪치며 연신 터지는 굉음은 불쾌한 소음이 아니라 몸과 감정을 뒤흔드는 쾌감이었다.

"와, 개쩐다. 예선처럼 그냥 바를 줄 알았는데 저쪽도 꽤 하네?"

"저 사람이 그 호원무가 장남이니까 그렇지."

"아, 그 권법 최고라는 곳?"

"그래. 야간반 다니면서 조용히 학교만 다녀서 그렇지 유룡이랑도 친하고 아무도 안 건들만큼 알아주는 사람이잖아."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강정민 같은 학생도 많아."

"오, 그 말씀은 요란한 잠룡은 빈수레였다?"

"와 이 새끼 가불기 쓰네? 매너 보소."

공교롭게도 도진을 만나 입학 시험 때도 일찍이 탈락을 한 데다 그들의 말처럼 호원무가의 장남으로 섣불리 시비거는 학생도 없어 조용히 학교 생활을 했던 강정민이었다.

랭킹전에서도 그때의 데자뷰처럼 본선 1차전에서 도진에 의해 탈락하고 말았지만, 그러나 이번에는 완전히 반응이 달랐다.

도진을 상대로 인상적인 무공 실력을 보여 줌으로써 일반 대중에도 그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1차전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바로 그 '잠룡 김도진'을 상대로 박력 넘치는 비무를 보여 주었고 그것은 인정을 받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기에, 무림의 관계자들은 더더욱 강정민을 높이 샀다.

"호원무가의 장남이 입학 시험에서 낮은 등수를 기록했을 때만 해도 여러 말이 많았었는데, 그걸 다 실력으로 보여주는 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 대의 호원무가도 승승장구하겠네요."

도진은 몰랐지만 대한민국에서 권법으로는 최고로 친다는 호원무가의 장남이 바로 강정민이었기에 조기에 비무회에서 탈락했던 강정민에게는 여러 뒷말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심지가 굳은 강정민은 그런 뒷말을 오늘 이 자리에서, 마찬가지로 '조기 탈락'을 했음에도 그것을 모두 박살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강정민에 대해 감탄하던 사람들은 이내 도진에게로 화제를 옮겼다.

"강정민 학생도 대단했지만, 그래서 더 김도진 학생은 놀랍기만 하네요."

"그러게요. 결국 강정민 학생을 상대로도 본심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어쩌면 우리가 못 알아보는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죠."

강정민의 유수파암권을 상대로 도진은 전혀 밀리지 않는 신묘한 검로와 '힘'을 보여 주었다.

다만 그것은 항상 그렇듯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다.

그것은 분명한 진무이며 그렇기에 보고도 꿰뚫어 볼 수 없는 신묘한 이치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무공이라면 모름지기 '특징'이랄 게 있어야 하는데 도진에게선 그런 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정말로 검법인가조차 의심이 갈 지경이다.

"외공으로는 한 손에 꼽는 학생들을 넘어설 정도의 힘을 보여 주는데 내공과 초식의 수준조차 높으니 정말로 수수께기 그 자체네요."

유지은은 압도적인 천재이지만 정의검가의 출신으로 정의검가의 무공을 쓴다는 분명한 근원이 있는데 도진은 그런 것조차 없으니 무림의 시선은 유지은이나 그 신상이 불분명한 서소담 이상으로 도진을 블랙박스처럼 여기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알려지기로는 무공을 본격적으로 드러낸지 이제 1년……. 그야말로 잠룡 같네요."

'잠룡 김도진'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문월동의 불량 학생들에 의한 조직적인 원조 교제 사업 사건 때다.

그 사건부터 김도진이란 이름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건 이전의, 중학생 김도진은 '낙제 학교의 낙제생'이었음이 알려지며 잠룡의 이름이 커질수록 과거의 일 또한 화제가 되었다.

하나 논쟁거리가 되는 건 그때의 낙제생 김도진이 과연 본래 실력이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다.

-아니 말이 됨? 1년만에 이 정도 실력이라고?ㅋㅋㅋ 무슨 게임하는 줄 아나 ㅋㅋㅋ

-ㄹㅇㅋㅋㅋ 무공이 1년만에 그렇게 뚝딱 늘면 세상에 검기 날리는 학생만 수천명은 되겠네.

도진은 '너무 빠르게' 강해졌다.

그러니까 도진이 모종의 이유로 실력을 감추고 지내다 그제서야 드러낸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심지어 무림의 관계자들 또한 그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말이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과연 도진이 누구에게 사사받았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하는 자들 또한 적지 않았다.

검봉 유지은의 아성마저 위협하는, 그야말로 규격 외의 실력을 보여주는 도진의 무공의 근원이 어디인지에 관해서 강렬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허나 그 뒷조사의 결과는 시원찮았다.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아무것도 건질 만한 게 없는데 심지어 부자연스러운 부분마저 없어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거, 건질 게 너무 없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김도진 그 자체에서 찾았다.

중학생 시절, 그리고 그 이전의 김도진은 '길거리의 잡초' 같은, 혹은 설정이라곤 전혀 필요없는 소설의 단역 엑스트라보다 못한 비중의 인물이었다.

그러니 이제와서 그 뒤를 파보려 해도 쉽지가 않은 것이다.

때문에 김도진은 그 별호가 딱 들어맞는, 오랜 시간을 수면 밑에서 숨어 있다 이제서야 때가 되어 승천을 위해 모습을 드러낸 '잠룡'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도진의 영혼에 천마와 사신이 깃들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음에서 비롯된 오해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잠룡의 비무를, 한유아 또한 블루홀을 연상케 할 정도로 깊이 침잠한 사파이어색 눈동자로 지켜보았다.

"헤에, 진짜 말도 안 되게 강해졌단 말이야."

"……예."

조용히 섭음술로 읊조리는 한유아의 중얼거림에 곁에 있던 민지서가 조용히 대답했다.

한유아는 자신의 무림인 같지 않은, 티 하나 없이 예쁘고 유려한 손을 펼쳐 내려다보며 말했다.

분명히 입학을 위해 방문했던 첫 만남 때만 해도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한 수 아래의 실력을 가지고 있던 도진이었다.

그랬던 도진이, 분명히 눈을 떼지 않고 있었음에도 어느새 등 뒤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져 버렸다.

성명절기(聲名絶技), 그러니까 세상에서 그녀를 대표하는 무공인 '황익무(凰翼舞)'는 도진과의 첫 만남에서 사용했던 금황조(金凰爪)가 포함된 조법(爪法)과 지법(指法), 장법(掌法), 권법(拳法) 등 손과 팔을 이용하는 기술을 집대성한 무공이다.

겉으로는 티가 전혀 없는 지극히 아름다운 옥과 같은 손이지만 이 손을 만들기 위해 그녀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온갖 것들을 감내해야만 했다.

도진은 그렇게 익혀낸 그녀의 황익무에 연신 밀리다 발끈하여 주먹을 쥐던, 그런 장래가 기대되지만 '귀여운 후배'였는데 말이다.

이제는 오히려 자신이 귀여운 선배가 되어 버린 건 아닐까 싶어 씁쓸한 맛이 남는다.

그래선 안 되는데.

하지만 그걸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들이밀어져 버렸다.

그녀의 황익무는 고유 무공이며 금화의 직계에게만 허락될 만큼 수준 높은 무공이지만 결국 '진무'에 이르진 못했다.

진무란 신비가 깃든 무공이지만 황익무는 신비가 아닌 철저하게 계산된 기술의 정수다.

쉽게 말해 유수파암권은 '마법'이고 황익무는 '마술'이란 거다.

도진은 그런 마법을 마찬가지로 마법으로 상대하여 압도했다.

그런 마법을 쓰지 못하는, 결국 눈을 속이기 위한 트릭을 연마했을 뿐인 그녀는 결코 도진을 따라잡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그녀를 어둑하고 끈적한 아래로 가라앉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 그건 변명이다.

마술이든 마법이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뒤쳐졌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에게 하는 '사실'이자 변명.

"와……. 역시 금봉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그러게. 남들은 지금 비무 준비하느라 피똥싸고 있을 텐데 금봉쯤 되면 이렇게 후배 비무도 구경하고 그럴 수 있나 보네."

"금봉한테 천박하게 말투가 그게 뭐냐."

언뜻 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한유아는 쓰게 웃었다.

꽤 멀리 떨어진 곳인 데다 귓속말에 가까워 웬만한 무림인이라도 들을 수 없었겠지만 그 웬만한 수준을 뛰어넘은 한유아는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방금의 생각과 겹쳐 웃음을 더욱 쓰게 만들었다.

다른 게 아니다.

'다르게 보이도록 한 것'이다.

금봉 한유아는 그래야 하니까.

검봉 유지은처럼, 잠룡 김도진처럼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럼에도 압도적으로 비무에서 이겨야만 했다.

동급으로 여겨지는 폭룡과는 호각을 이루더라도, 검봉 유지은을 만나서 정해진 패배를 맞이해야 하더라도 그 이전까지는 금봉 한유아로서의 이름값을 다해야 한다는 거다.

세간에 널리 잘못 알려져 있는, 물 아래로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백조에 다름 아닌 모습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비무를 구경하러 올 수 있도록 시간을 짜내고 만들어내었다.

그야말로 마술사의 트릭에 다름 아닌 일이다.

'…미련을 버릴 줄 아는 게 중요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김도진을 자신의 심복으로 만들고 싶었던 욕심을 끊어내려 했다.

김도진은 오성과도 동등한 관계에서 거래를 하고자 했다.

그랬던 김도진이 '한유아의 심복'이 될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었다.

기대하는 게 어리석은 일이었다.

하물며 지금에 와서는 더더욱 말이다.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었으니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버릇이 있는 그녀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 할아버지는 어쩌실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아는 오군성이라면 그런 김도진이기에 한 번쯤 크게 부딪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한유아'는 그럴 수 없는 처지였기에 이쯤에서 욕심을 접는 게 맞았다.

"…가셔야 합니다."

"응, 그러네."

도진과 강정민의 비무를 곱씹는 사이 짧았던 시간이 다 되었다.

그녀의, 2학년 본선의 1차전을 치러야 할 시간이었다.

한유아는 마음을 정리한 내심을 드러내듯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 * * *

축제와 함께 랭킹전이 진행되며 1학년과 2학년의 128강이 64강으로 줄어들었다.

예선과 달리 강행군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64강이 확정된 다음날은 비무없이 모든 학생들이 하루를 쉬게 스케쥴이 짜여 있었다.

그러나 이 쉬는 날에도 집행부는 학교에 나와야 했으니 다름 아닌 '가요제' 때문이었다.

쉬는 날이라 해도 축제는 계속된다.

그리고 내일은 그 축제의 가요제가 진행되는 날이었으니 최종 점검과 함께 완벽한 준비를 해두어야 했던 것이다.

가요제는 숭무고, 숭무영재고에서 지원한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참가하는 가요제와 초청 가수들의 무대로 꾸며지는 두 개의 파트로 나뉜다.

도진은 그 가요제를 위한 야외 특설 무대의 현장 점검을 한유아와 함께 하고 있었다.

"도면 주세요."

"예."

여느 때와 다름없는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현장을 체크하는 한유아.

"이 정도면 이제 내가 없어도 괜찮겠네. 맡겨도 되지?"

그러나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고 마지막을 도진에게 양보하며 미소짓는 그 얼굴에 평소와 달리 그늘이 져 있음을 도진은 놓치지 않았다.

'음…….'

조금 고민이 됐다.

정말로 친한 사이라면 부담없이 물어보겠는데 아직 그렇지 않은 사이의 한유아에게, 본인이 숨기려 하는 감정을 굳이 꺼내도 되겠느냐는 그런 고민이.

"네. 맡겨주세요."

도진은 결국 그것을 들추지 않기로 했다.

"응. 그럼 믿고 갈게."

한유아는 손을 흔들며 떠나갔고 도진은 그런 그녀의 등을 잠시 바라보다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래, 연심(戀心)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깊이 참견할 순 없는 노릇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삶이 있고 자연이 그러하듯 항상 맑은 날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도진은 한유아의 그늘에 대한 생각을 치워내고 서류에 집중했다.

'응?'

그리고 서류를 읽던 도진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호오, 이것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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