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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17화 (217/741)

216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주정아가 경기를 치른 비무대의 바로 옆 비무대 근처였다.

수군거리는 건 숭무고 학생 하나와 숭무영재고의 학생 넷으로 이뤄진 그룹이다.

대놓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섭음술을 쓰고 수군거리는 것이었지만 그 어설프고도 엉성한, 30년쯤 되어 너덜거리는 모기장 수준의 섭음술로는 도진의 이목을 가리지 못한 것이었다.

'흐음.'

그리고 섭음술을 뚫고 그들의 대화를 들은 도진은 수군거리는 대상이 다름 아닌 서태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씹새끼 요새 실력 좀 늘었다고 아주 자기 세상이야."

"숭무회 해체 안 됐으면 좆도 씨발 대가리도 못 들고 다닐 새끼가."

그들의 주절거림에 도진은 피식 웃었다.

지껄이고 있는 그들이 바로 그 숭무회 해체에 포함되지 않은 피라미 중의 피라미들이었기 때문이다.

도진에 의해 개박살이 난 숭무회와 연관된 일진 그룹들은 숭무영재고에까지 퍼져 있었다.

당연히 숭무영재고의 학생들도 처벌 대상이었고 랭킹전에 참여하는 숭무영재고의 학생들 또한 총원보다 적은 수가 된 이유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지금 지껄이는 피라미들은 그 처벌마저 피할 만큼 실력도 영향력도 미미한 놈들이라는 거다.

그랬던 놈들이 한가락하는 양아치들이 사라지자 제 세상인냥 기세가 등등해 지껄이니 웃음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여우조차 없으니 들쥐들의 세상이로구나. 껄껄.

도진은 무흔잠영의 묘리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던 기세를 조금 드러냈다.

"헉!"

그러자 수군거리던 놈들이 도진을 발견하고선 앗 뜨거라, 플래시가 비친 바퀴벌레마냥 후다닥 흩어졌다.

도진은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피식 웃었다.

'흐음.'

저런 꼴을 보일 정도로 중심이 되는 숭무고 1학년은 그리 대단한 수준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리도 자신 있게 지껄이는 건 그가 '숭무고 학생'이기 때문이다.

숭무고와 숭무영재고의 평균차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태생부터 시작하여 둘 사이의 간격부터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도진에게야 우스운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어마어마한 재능에 그 재능을 꽃 피울 어마어마한 지원 속에서 성장한 것이 숭무고 학생이다.

환경, 영약,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숭무고생은 숭무영재고생을 압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에스포의 권민국은 재벌이자 무가의 후계자로서 상위권의 무공인 '태양맹공'을 어마어마한 지원하에 익혔다.

허나 일반적인 가정의 숭무영재고 학생이라면 고만고만한 수준의 무공을 고만고만한 환경에서 익혔을 것이다.

이건 극단적인 차이지만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렇게 숭무고와 숭무영재고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때문에 개천에서 정말로 용이 나 버린, 그것도 승천을 앞둔 '잠룡'이라고까지 불리는 도진이 특이한 케이스인 것이고.

이런 차이가 있다는 걸 숭무고와 숭무영재고의 학생 누구나 알고 있으니, 비무 상대가 숭무영재고의 서태주로 정해진 숭무고의 이름 모를 1학년생이 그토록 자신감에 넘쳐 있는 것이다.

'재밌겠네.'

도진은 웃으며 비무대로 시선을 향했다.

시간이 되어 비무대 위에 오른 건 바로 그 서태주다.

서태주는 도진과 눈이 마주친 순간 입술을 꾸욱 다물고 주먹을 쥐었으나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서태주의 의지였다.

'학교에서 가능하면 너랑 사이가 가깝다는 건 알리지 않고 싶어.'

'그래?'

'응. 그러면 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너에게 기대고, 네가 있으니까 괜찮다는 식으로 생각할 거 같거든.'

서태주의 말에 위지혁은 제법 기특한 생각을 한다고 껄껄 웃었다.

그 말대로였다.

만약 서태주가 흔히 말하는 '잠룡 라인'을 탔다는 게 알려졌다면 아까처럼 감히 피라미들이 서태주를 찍어 누르겠다고 작당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태주는 그것을 티내지 않았고 도진 또한 서태주의 생각을 존중해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때문에 요즘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일진들의 밥'이었던 서태주에게 질투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서태주와 마주하는 숭무고 1학년생은 수투(手套)를 낀 권법가였다.

캉!

묵직한 쇳소리가 나는 수투를 낀 그의 특기가 비무에 특화된, 한정된 공간에서 상대를 몰아치는 형태의 권법이라는 걸 도진의 신안은 단번에 읽어냈다.

비릿하게 웃는 모습에서 서태주를 비무라는 명목으로 흠씬 두들겨 패려는 의도가 가득하다는 것도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생각했던 대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시작!"

비무가 시작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숭무고생이 달려들었다.

선공(先攻)의 우세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물며 그의 무공은 선공을 시작으로 하여 기세를 늦추지 않고 몰아쳐 상대를 압박하는 스타일이었다.

권투의 스트레이트를 닮은 펀치는 내공과 기세에 힘입어 상대를 한 방에 눕힐 만큼의 위력을 담고 있다.

반쯤은 견제의 의도이지만 흔한 숭무영재고생에게는 그 잽 같은 스트레이트가 '필살기'나 다름없는 위협이 된다.

그 주먹을 마주하며 서태주는 자신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숭무회 해체 이후에도 숭무영재고에는 처벌을 피한, 혹은 가벼운 처벌만으로 살아남은 양아치들이 있었다.

나름 몸을 사리긴 했으나 그 모자란 성격과 성질이 어디 가는 건 아니어서 그들에게 피해자였던 서태주는 여전히 우스운 취급을 받았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참았겠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한 서태주는 참지 않았다.

"어쭈? 이 새끼가 막아?"

빠악!

숙제를 대신 하라는 그의 말을 거절하자 뺨을 치려는 손을 막았고 오히려 그 면상을 후려쳐 주었다.

'개싸움' 끝에 서태주는, 과거라면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을 '피라미'에게 승리했다.

그때부터 서태주는 매일매일 반창고를 달고 살았다.

이길 때도 있었지만 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려워 움츠리거나 피하지 않았다.

서태주에겐 도진이 준 '연단공'이 있었으니까.

수련한 만큼, 노력한 만큼, 그리고 싸우는 만큼 몸이 더 단단해지고 질겨진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두려워하지 않고 주먹을 쥐며 나아갈 용기와 의지를 가지기에 충분한 보답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연단공을 선물한 도진이 비무를 지켜보고 있었다.

콰득-

서태주는 쥐고 있는 주먹에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상대는 숭무고의 학생으로 분명히 좋은 무공을 익혔을 것이며 좋은 환경에서 수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주먹이, 인생을 바꿔준 도진의 연단공으로 단련된 자신의 주먹보다 도저히 센 것 같지 않았기에.

콰아앙!

서태주는 망설임없이 자신의 주먹을 그의 주먹에 부딪쳤다.

"끄악?!"

그리고 그 결과는 그가 한 치의 의심없이 믿었던 대로였다.

숭무고생은 마치 뼈가 부러진 건 아닐까 싶은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자세가 완전히 무너졌고 그리하여 드러난 틈은, 설령 다섯 살짜리 아이라도 찌를 수 있을 만큼 컸다.

뻑!

"꺽."

배에 깊숙하게 박힌 주먹에 그의 등이 새우처럼 꺾였다.

이대로 무릎을 안면에 먹여 주면 비무가 끝났겠지만 서태주는 그렇게 쉽게 비무를 끝내지 않았다.

짝!

수투를 낀 그의 손바닥이 숭무고생의 뺨을 쳐올렸다.

상체가 쳐들린 그의 몸에 서태주의 주먹이 소나기처럼 연속으로 쏟아졌다.

"악. 컥. 끅."

무자비한 난타.

그것은 그를 무시하고 잡아먹으려 들었던 패거리들에 대한 경고이자 일진 피라미에게 폭력의 공포를 새겨 주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도진은 스승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탁탑마왕이 떠오르는 것이 이대로만 수련한다면 볼 만한 권사(拳士)가 되겠구나.

탁탑마왕(托塔魔王)은 위지혁이 천마로 있던 시절 무림에서 이름을 떨치던 거구의 권사였다.

이름없는 고아로 소랑대에 입교하여서 이내 장로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자 피나는 노력가로 기초 연단공만으로 경지에 오르고 인정받아 이내 상승 무공까지 하사받은 소랑대의 전설이기도 했다.

-이미 네 사람이 되었으니 나중에 시기가 오면 괜찮은 무공을 전수해 볼 만하겠구나.

-예, 스승님.

위지혁의 눈에 서태주는 도진을 그야말로 교주처럼 신봉하며 정진하고 있는, 이미 천마신교의 교도라고 해도 될 만한 아이였다.

처음 기초 연단공을 전수받을 때만 해도 재능과 실력 모두 부족한 편이었지만 이대로만 노력하여 정진한다면 추후 상승 무공을 전수할 만한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을 듯 했다.

기초 연단공이라 해도 천마신교의 무공. 온힘을 다해 정진한다면 상승 무공을 익히기 위한 기반을 닦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서태주 승!"

그야말로 비오는 날 먼지날 정도로 얻어맞고서야 양아치 숭무고생은 바닥에 널부러질 수 있었다.

서태주는 담담히 주먹을 불끈 쥐었고 도진과 시선을 맞춘 뒤 비무대를 내려갔다.

그런 서태주의 등을 보며 도진은 슬쩍 웃었다.

-갑자기 비무가 하고 싶어졌네요.

-지금이라도 이 스승은 제자의 바람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만.

-안타깝게도 집행부 활동이 끝나지 않았네요.

맘같아선 당장이라도 연신극기공을 수련하고 심상세계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랭킹전 시기의 집행부엔 할 일이 산더미 같아 그럴 수가 없었다.

때문에 도진은, 수면 시간을 평소의 절반으로 줄임으로써 심상세계에서의 수련 시간을 두 배로 늘린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예선 이틀째.

용봉관엔 예선 1라운드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각계의 관계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자신을 어필해야 하는, 그것도 숭무고와 숭무영재고에 입학했을 만큼의 학생들마저 긴장할 정도로 그 수는 물론이요 대단한 면면들이 보이고 있었는데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김도진이랑 무진혁. 이만큼 모일 만도 하지."

"그렇죠. 사실상 예선전 하이라이트 아니겠습니까."

잠룡 김도진과 그 명성이 땅에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이번 숭무고 1학년, 42기 중에서도 손꼽히던 에스포의 멤버 무진혁의 비무였다.

오성의 오성아, 명장 우벽진에 유명한 업계의 간부들마저 '일개 예선전'을 보기 위해 몰려들 이유로는 충분했다.

도진이 저번 실습에서 흑도의 마두를 잡은 건 기밀에 부쳐졌기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활약했다는 정보만큼은 퍼졌다.

바로 그 '검봉'만큼의 활약을 펼쳤다고 말이다.

그야말로 감도 잡히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성장 중인 잠룡.

바로 그 잠룡을 상대로 무진혁이 얼마만큼의 실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그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류가 감돌고 있었기에, 군홍무가에서 나온 사람들의 표정은 좋을 수가 없었다.

'꼴이 말이 아니군.'

군홍무가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무림세가이면서 정치권과 특히 유대가 끈끈하여 그 위세가 대단한 무가란 말이다.

당연히 진무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 진무를 익힌 대 군홍무가의 둘째가 무진혁이거늘 겨우 예선 따위에서 달동네서 굴러먹던 놈의 들러리 취급을 받고 있으니 기분이 더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더러운 기분은 더욱 기분 더럽게도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저벅.

세계적으로 유명한 '눈 시리즈'의 오리지널이라는 백설을 들고 비무대 위에 오르는 잠룡 김도진.

그 김도진의 기세가, 고요히 퍼져 나가며 마주한 무진혁과 함께 선 비무대를 지배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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