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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14화 (214/741)

213화

랭킹전 준비로 서류 지옥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한 주의 마지막, 금요일의 집행부 활동을 마친 도진은 집으로 향했다.

"수고했어. 다음주에 보자."

전문 용어로 '꽤 빡셌던' 활동을 함께 해서인지 조금 더 돈독해진 느낌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학교를 나와 슈킨팍시를 몰고 숭무동에 들어선 도진은 앞서 가는 익숙한 차를 한 대 볼 수 있었다.

지금 도진이 운전하고 있는 차와 같은 회사의 초기 모델, 슈킨팍시 클래식의 두드러지는 뒷모습을 도진은 결코 지나칠 수 없었으니 그것이 바로 아버지가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차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느새 해가 짧아져 어둑한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회사원들의 퇴근 시간이긴 했으나 금요일 저녁 이 시간에 아버지, 김서우가 퇴근하는 건 없다시피한 일이었기에 도진에게 있어 이건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

앞서 가던 김서우 또한 뒤차의 존재, 아들의 차를 룸미러를 통해 눈치챘기에 두 대의 차는 앞뒤로 나란히 속도를 맞춰 집에 도착했다.

"아버지."

"그래. 학교에서 온 거야?"

"네. 아버지는……."

"오늘은 일이 좀 빨리 끝나서 퇴근 했지. 내일 오후 출근이야."

"그러시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도진은 아버지를 살폈다.

아버지는 올리버 웨일스 후작의 '선물'을 입고 있었다.

도진의 도움에 감사하며 했던 그 선물은 다름 아닌 세계에서도 유명한 프리미엄 맞춤 양복이다.

한 땀 한 땀, 무엇 하나 장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게 없는 예술품 같은 양복은 세파에 자연스럽게 구겨지고 색이 바래가는 중이었는데 그것을 무심하게 걸친 아버지의 모습은, 도진의 두 눈에 깊게 새겨질 만큼 인상적이었다.

연호신공을 수련함으로써 이제 그 어떤 세파에도 깎여 나가지 않을 아버지가 명품 양복을 무심하게 걸치고 있는 그 모습은 말로 형언하기에 너무나 힘든, 그러나 나쁘지 않은 감정이 도진을 웃게 만들었다.

'한 벌은 A급, 한 벌은 평소 입을 걸로 써야겠네.'

애써 기쁨을 감추고 담담하게 말하던 아버지였다.

하나는 애지중지, 정말로 귀한 때에만 조심스레 입기 위해 보관하고 다른 한 벌은 자랑하기 위해 입으려 한다는 어머니의 '번역'에 슬쩍 고개를 돌리던 아버지이기도 했다.

최대한 아들의 도움없이, 자신의 손으로 빚을 다 갚기 위해 여전히 매진하고 있는 아버지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랬어. 내 일을 남이 하면 도저히 잠을 못 자는 성격이었단 말이지.'

그렇게 말씀하시던 아버지는 그러나 아들의 고집에 자신의 고집을 꺾고 도움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들어가요, 아버지."

"그래."

때문에 찾아가지 않고선 여전히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는데 마치 선물처럼 오늘은 가족이 다 모이게 되었다.

"형!"

"아빠!"

격렬히 반겨주는 동생들. 그리고 그 동생들 뒤에서 웃는 어머니까지.

오랜만에 다 모이게 된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았다.

"상다리 부러지겠는데요, 어머니."

우벽진 명장과 도진이 함께 만든 식탁이 혹시 부러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저녁 밥상은 푸짐했다.

평범한 5인 가족이 먹기엔 너무나 과한 양.

그러나 도진은 물론이요 연호신공을 배우고 있는 가족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연신극기공이 그렇듯 연호신공 또한 몸의 진화를 촉진하는데 그 영향으로 모두 식욕이 왕성해졌으니 식탁 위의 반찬들 중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질 건 단 하나도 없을 것이었다.

도진의 너스레에 어머니 서정원은 활기차게 웃으며 말했다.

"요즘 신메뉴 연구하고 있거든."

"아, 그러시구나."

식탁 위 음식들은 가정에서 만든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다종다양하며 엄청난 정성이 들어가 있는 게 플레이팅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들어간 재료 역시 음식 관련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할 법한 '생소하면서도 몸에 좋으나 맛은 장담할 수 없는' 것들이 꽤 쓰였다.

다만 거기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으니.

"맛있다!"

"형아도 먹어."

"그래, 고마워."

서정원의 음식은 흔히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음식에 뭘 자꾸 이상한 걸 넣는다'는 푸념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맛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번화가의 커다란 한식집에서 찬모로 일했던 만큼 서정원의 음식 솜씨는 보통 이상이었다.

여기에 TJ푸드로 이직하고 실무와 연구를 병행하면서 지식 또한 전문가 수준으로 쌓고 있었으니 '막 때려넣는' 게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을 요리에 녹여내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냈다.

"조금 생소한 재료들로 건강한 도시락을 한 번 내볼까 하는 의견이 나와서 만들어 본 거거든. 어때? 뭔가 아쉬운 건 없니?"

"네. 맛있어요."

"가족 찬스 쓰지 말고 엄정하게 평가해 줘도 되는데."

어머니의 말에 도진은 웃으며 한 번 더 맛있어요, 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닮아 이런 쪽으론 무뚝뚝한 편인 도진이었으니 미사여구없이 맛있다고 하는 게 찬사였다.

"근데 어머니."

"응?"

"마당 한쪽에 삽이랑 꺼내 놓으셨던데 뭐 하시게요?"

이사 온 집은 넓은 마당을 끼고 있다.

그리고 이 넓은 마당엔 으레 그렇듯 텃밭으로 쓸 수 있는 공간 또한 마련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삽 등의 도구가 놓여 있었다.

꽤 떨어진 곳에 있던, 그것도 밤이었으나 도진은 놓치지 않았다.

"아, 그거. 텃밭 한 번 만들어 보려구. 이제 슬슬 자리도 잡았고 여유도 좀 있으니까."

"그러시구나. 언제 하시게요? 도와드릴게요."

"내일은 쉬게 됐거든. 그래서 내일 하려구. 엄마 혼자 쉬엄쉬엄 하면 되니까 안 도와줘도 돼. 너도 무공 익히느라 힘들 텐데."

"에이, 그건 아니죠. 어머니 아들 고수잖아요. 오히려 안 움직이면 몸이 녹슬어요."

"나도 도울래!"

"나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유진이와 호진이도 손을 번쩍 들며 그렇게 말한다.

"그럼 모두 같이 할까?"

"네!"

어머니의 제안에 동생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 모습을 김서우는 웃으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미소는 도진이 놓치지 않았다.

"아버지도 같이 하실 거죠?"

"그래야겠네."

연호신공을 익히지 않던 때의 김서우였다면 회사 일에 지친 몸을 쉬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호신공을 익힌 김서우는 이제 회사 일로 기력이 쇠하고 지치는 일은 없으니 가족이 다 함께 오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아쉬움없이 화기애애하게 식사하며 이야기하던 중 김서우가 말했다.

"도진아."

"네, 아버지."

"그 랭킹전이란 거, 언제 누구랑 비무할지 미리 대진표가 나온다던데."

"네. 맞아요."

랭킹전의 대진표는 김서우의 말대로 미리 결정이 된다.

대진표가 나와야 컨디션 관리를 포함한 비무의 모든 것을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진의 확인에 김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나한테 그 대진표를 좀 미리 알려주면 좋겠구나."

"무슨 일 있으세요?"

김서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한두 번쯤은 보러 갈 수 있게 근무 시간을 조정 좀 하려고."

"아……."

혹시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싶었던 도진은 예상치 못했던 말에 입을 살짝 벌리고 말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바쁘시다.

그러니까 랭킹전에 참석하지 못한다 해도 당연하게 이해하고 또 원망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그 말이 도진의 마음 속 커다란 파문이 되었다.

"비무는 일곱 시부터 한다면서. 그러니까 시간 잘 맞추면 다 같이 보러 갈 수 있잖아?"

"우리도 갈 거야!"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들까지.

입학식 때 생각했던, 언젠가 가족들이 다 함께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렇게 빠르게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네요. 그럼 대진표 나오면 바로 표로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

"그래."

"릴리랑 윌리엄도 부모님이랑 같이 올 거라고 했어."

"그랬어?"

"응. 같이 보기로 했어."

"그렇구나. 잘 됐네."

호진이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자주 어울려 노는 릴리와 윌리엄이 이번 랭킹전 축제에 놀러갈 거라며 이야기를 꺼낸 듯했다.

동생들은 우리도 가면 안 되냐고 서정원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했고 그것이 여기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아, 그리고 티켓은 사지 않으셔도 돼요."

도진의 말에 가족들의 시선이 모였다.

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집행부잖아요. 집행부원 가족은 프리패스에요."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

그 말은 반대로 의무에는 권리가 따른다고도 할 수 있다.

집행부원은 학교를 위해 '봉사'를 하고 있으니 그에 관한 여러 권한과 혜택이 주어지는데 여기에는 가족들을 랭킹전에 초대할 수 있는 특권 또한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중에 제가 드리는 전자 패스권 휴대폰으로 제시하시면 자유롭게 출입하실 수 있어요."

"와, 형 진짜 대단하다."

호진이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도진은 씨익 웃어 주었다.

"잘 먹었습니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나도 같이!"

식사가 끝나고 동생들과 함께 설거지를 했다.

그렇게 그냥, 모든 게 그냥 다 좋았던 하루가 지나고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일찍 일어나 다 함께 연호신공으로 몸을 풀고 아침을 먹은 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왔다.

"뭐부터 해야 돼요?"

도진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김서우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온갖 일들을 다 해봤는데 개중엔 밭일도 있었기에 이쪽 지식이 풍부해 막힘없이 가족들을 이끌고 일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렇게 텃밭을 가꾸고 있자니 바로 이웃집에서 한 사람이 찾아왔는데 다름 아닌 명장 우벽진의 손자 우서진이었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혹시 저도 같이 해도 될까요?"

"옷 더러워질 텐데 괜찮아?"

"그러려고 이렇게 입고 왔어요!"

꼭 끼워주길 바라는, 사슴 같은 눈빛에 부모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우서진은 화색을 띠며 모종삽을 들었다.

곁에 다가와 파종을 돕는 우서진의 모습에 도진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수련하고 나온 거야?"

"네."

대답하며 눈을 맞추는 우서진은 여전히 도진에 대한 동경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동경을 동력 삼은 듯 무공의 성취도 대단했다.

삼음지체를 치료하긴 했으나 타고난 음기 자체는 지우지 않은 우서진은 여자에 가까운 외모가 되었다.

나지윤이 '미소년'으로 불리지만 분명한 남자라면 이쪽은 '미소녀'에 가까운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우서진은 그로 인한 혼란을 느끼지 않고 잘 성장하고 있는 듯 보였다.

겉으로는 호리호리해 보이지만 대장장이로서 부족함이 없는 단단한 기세와 육체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외모와 마찬가지로 우서진은 육체 또한 여려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그렇지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무림인들 대부분은 우락부락하게 몸을 키우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체급은 중요한 요소지만 그 이상으로 '몸의 가동 범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스모 선수 등을 생각하면 된다.

극한으로 발전한 기술을 구사하는 것이 무공인데 이 무공을 구사하기 위해선 몸의 가동 범위 또한 극한까지 활용해야 한다.

한데 그 가동 범위에 제한이 생길 정도로 몸을, 근육을 키울 수는 없는 것이다.

예외가 되는 건 초식을 단순화한 무공을 익히거나 외공을 구사하는 자들 정도다.

대신 내공 사용자들은 몸의 '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우스갯소리처럼 여겨지던 '내장형근육'과 비슷한 개념이다.

최적화된 수준의 몸을 만든 뒤 육체와 내공의 수련을 병행하여 그것을 유연하면서도 단단하게 진화시키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몸에 내공을 구사함으로써 여리여리한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조금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근성장 호르몬 과다로 근질이 좋은 특이 체질의 사람이 있는데 무공을 수련함으로써 그와 유사한 효과를 발생시키고 그것을 극대화하는 과정이라 설명할 수 있다.

삼음지체의 저주는 해소하고 축복은 받아들인 우서진은 그렇게 '내공 고수'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무시무시하게 내공이 불어나는 중이었고 동시에 육체 또한 강화되었다.

여기에 여성적인 형질이 강해지면서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앞서는 유연성 또한 획득했으니 그것은 무공의 구사에 있어 또 하나의 장점이었다.

'숭무고는 문제없이 합격하겠어.'

도진은 그런 우서진의 상태를 신안으로 읽어내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둘도 없던 랜선 친구는 당당히 숭무고에 합격할 것이고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될 것이었으니 흡족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 미소에 우서진 또한 영문을 모르면서도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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