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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11화 (211/741)

210화

-그리드 디스크 사장을 참교육하는 잠룡 1~3.avi

한창 퍼지는 중인 그 동영상은 다름 아닌 도진이 소담과 유지은,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갔던 헬스장에서의 그 사건이 음성과 함께 찍힌 것이었다.

영상에 나오는 인물들의 얼굴을 눈을 제외하고 모두 블러 처리하였지만 도진을 제외한 모두가 워낙 눈에 띄는 외모들인 데다 누가 누구인지 영상이 업로드된 게시글에 설명까지 되어 있었기에 구분에 문제가 없었다.

도진은 그 영상을 확인하며 댓글을 보았고 거기서 몰랐던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

-저저저! 저 사장님은 눈깔을 왜 저렇게 뜸?

-직원 성희롱한다는 이야기 몇 번이나 있었자너..ㅋㅋ

-간도 크네. 비봉이랑 검봉까지 저렇게 보고 ㅋㅋ

알고 보니 그날 보았던 엄청난 몸의 중년인은 그 외모와 다르게 IT 업계의, 웹하드와 관련된 전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사장님이었다.

중요한 건 그 사장님, 양아진이 참으로 논란이 많은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직원에 대한 성희롱, 폭행, 갑질 등 온갖 논란이 있었는데 그것을 돈으로 틀어막기를 반복했고 그런 일들 때문에 유명해진 인물이었다.

연예인 등의 공인이었다면 뒤집어져도 벌써 뒤집어졌을 텐데 비교적 관심이 덜할 수밖에 없는 '일반인'이었고 따로 매체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으며 무대응으로 일관하니 장작이 크게 타오르지 못해 이슈가 되지 않았다.

딱 한 번 직원의 폭로가 화제가 되었으나 마찬가지로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돈으로 '합의'하여 일을 덮기까지 하니 오래가지 못해 묻혔었다고 누군가가 댓글로 설명을 해 주었다.

-폭로해도 안 되고 오히려 보복당했다고 함. 그러니까 관련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직원들은 그냥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함. 퇴사하려고 해도 보복이 두렵고 그쪽 바닥 거기서 거기니까 만약 퇴사한다 해도 어디서 입도 못 연다고 하네.

아는 사람은 아는, 결코 어쩔 수 없는 업계의 폭군.

그런 인물이 잠룡, 비봉, 검봉과 얽힌 동영상이었으니 폭발적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근데 시발 진짜 몸은 괴물 같다. 저게 일반인이 가능한 몸이냐

-듣기로는 웬만한 흑도 양아치들이 다 형님이라 부른다고 함.

-이름만 형님이 아니라 저 정도면 진짜 업계의 형님 아님?

-그런 소문도 있음.

-그래서 잠룡도 참은 건가?

-그게 아니라 명분이 약해서 참은 거잖아. 내공 고수가 몸 크기 보고 쫄 리가 없지.

-그것도 어느 정도지 저 정도면 어설픈 내공으로는 사려야 될 텐데.

셋으로 나뉜 동영상의 첫 번째에는 그런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허나 그건 두 번째 동영상을 보았다면 하지 않았을 무의미한 싸움이었다.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을 하셔야죠?"

-엌ㅋㅋ 도발ㅋㅋㅋㅋ

-저저저! 사장님 눈깔을 왜 그렇게 떠요?

-잠룡은 참지 않긔.

건수가 보이자마자 잠룡은 행동에 들어갔고 양아진과 대치했다.

"닦아."

-아, 까비. 이걸 안 싸우네.

-싸웠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거 아님?

-하긴. 잠룡이 내공을 익혔다고 해도 양아진 사장 정도 되면 비벼볼 만할 테니까.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다른 인물로 인해 해소되었다.

허나 그 인물,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를 윽박지르는 양아진의 모습에 네티즌은 분노했다.

-와 시발 저 정도면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냐;;

-나 같으면 저거 바로 고소했음.

-팩트) 안타깝게도 양 사장은 그런 고소를 몇 번이나 받았고 모두 무죄를 받았다.

-팩트2) 고소한 직원들이 오히려 고소를 당하고 고생을 했다.

-와, 세상 족같네.

영상에 분노를 쏟아내는 네티즌들.

그런 그들의 분노가, 세 번째 동영상으로 인해 해소되었다.

-엌ㅋㅋㅋㅋ 저, 저게 뭐야.

-손가락으로 150kg 실화냐 ㅋㅋㅋ

-양아진 사장 비벼볼 만하다고 했던 사람 찾습니다.

-비벼볼 만한 거 맞자너. 잠룡 손가락에 잘게 비벼질듯.

-근육이 뻥!

-내장이 울컥울컥

-ㅋㅋㅋㅋㅋ 그건 고어잖아 미친놈들아 ㅋㅋㅋ

선을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잠룡을 건드리던 양 사장이 침묵한 모습은 네티즌들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양 사장 참교육'으로 기분 좋게 끝날 것 같았던 일은, 그러나 2페이즈로 넘어가게 됐으니 양 사장이 동영상 유출자를 고소한 것이었다.

-아.. 그렇지.

-양 사장놈이 이런 걸 그냥 둘 리가 없지.

네티즌들은 안타깝지만 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출된 영상이 다름 아닌 '숭무동 헬스장의 CCTV 영상'이었기 때문이다.

숭무동은 주민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사전 협의와 승낙을 받지 않고선 동네를 촬영할 수조차 없게 되어 있다.

이런 곳의 시설 CCTV 영상을 '유출'한 것이었으니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리되었다.

하지만 여론이 또다시 반전된 건 그 유출자가 바로.

-'양아진 그리드 디스크 대표 동영상' 유출자는 그리드 디스크의 직원!

영상 내의 피해자였던 그 직원이라는 기사가 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당사자가 인터넷에 유출 이유를 글로 올렸다.

- - - -

제가 한 일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목적이 옳다 해서 옳지 않은 수단을 사용한다는 게 용납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가 양아진 대표를 고발한다 해도 이전의 피해자들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슈가 되지 않으면 그들은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을 테고 오히려 저를 가해자로 몰고 갈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염치 없지만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에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저를 욕하고 조롱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셔도 되니 제발, 관심만 가져주십시오.

- - - -

절절한 그 게시글은, 얼마 가지 않아 삭제되고 말았다.

허나 그 파장만큼은 삭제될 수 없었기에 온갖 커뮤니티가 들끓었고 도진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온 것이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도진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 변호사님."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오성 그룹 법무팀의 간판인 나성보였다.

-혹시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이야기, 보셨습니까?

"예. 양아진 대표와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 일과 관련하여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나성보는 그 직원의 사건을 자신이 담당하려 한다고 말했다.

"나 변호사님이요?"

-예.

나성보는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었다.

법적인 일이 으레 그렇듯 긴 시간을 소요하면서도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아 관현 그룹에 관한 일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을 만큼 나성보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한데 여기에 또 하나의 일을 맡으려 한다고 말한 것이었다.

-도진 학생도 얽혀 있으니 더더욱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음, 제가요."

-예. 그 영상에는 도진 학생과 동생들, 친구분들이 나와 있으니 여기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도 있으니 말입니다.

나성보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진은 바로 이해했다.

영상에는 집중적으로 '당사자들'이 비치고 있었다.

영상 유출 자체도 문제지만 당사자들의 이해 또한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는 말이었다.

-도진 학생의 의사를 한 번 확인하고 싶어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렇네요."

나성보의 물음에 도진은 웃는 얼굴로 답했다.

"벌을 내려야겠죠?"

* * * *

이번 사건을 맡은 숭무경찰서는 꽤 살벌한 분위기였다.

'피의자' 신분으로 앉은 그리드 디스크의 직원 정종호가, '피해자' 신분으로 앉은 양아진 사장과 조사를 맡은 경찰들에게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수많은 폭력과 협박을 행사한 가해자가 바로 옆에 앉아 압력을 행사하는데 주변을 둘러싼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오히려 오롯이 그의 잘못으로 인해 이곳에 앉은 것처럼 그를 가해자 취급하고 있다.

"저에 대한 양 대표의 폭행과 협박에 대한 조사도 함께 진행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정종호는 덜덜 떨리는 몸에 이를 악물고 항의해 보았으나 유의미한 저항이 되지 못했다.

"그 건에 대해선 따로 조사할 예정입니다. 지금은 정종호 씨의 불법 CCTV 영상 유출에 관해서 조사하는 자리이니 성실히 응하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가중 처벌 될 수 있습니다."

"……."

파르르.

억울함과 공포에 떨림을 참을 수가 없다.

더더욱 억울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우우우-!

공정한 수사를 진행해라!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바깥에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에 힘을 얻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경찰들이 모인 사람들을 해산시켰으며 그걸로도 모자라 양아진 대표측 '경호원'들이 신변보호를 명목으로 주변을 장악해 버린 것이었다.

제아무리 발버둥쳐봐야 그로서는 결코 폭군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만 뼈저리게 절감하고 말았다.

그것이, 이곳에 들어오지 못한 어머니의 생각에 더 세게 이를 악물도록 만들었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그의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경찰들의 압박과 경호원들의 위협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흩어지고 소수만이 초라하게 남은 그 안에 정종호의 어머니가 있었다.

세파에 찌들어 허리마저 굽은 그녀는 그러나 형형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경호원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신고되지 않은 시위를 위협으로 간주하여 경찰들은 사람들의 출입을 봉쇄했다.

양아진의 경호원들 또한 그것을 빌미로 삼아 사람들을 위협했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정종호를 돕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악으로 간주하여 기사를 쓸 거라는 걸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에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으나 그녀는, 그리고 심지가 강한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켰다.

떠난 사람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호의로 모인 사람들이 발벗고 나서주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남에게만 엄격한 잣대였으니까.

"위협 행위시 무력에 의한 체포가 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녀는 위협에 굴하지 않고 남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자리를 지켰다.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배우지 못했고 힘을 행사할 수 없는 그녀에게 있어 최선은, 이렇게라도 화제가 되게 만들어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관심을 모으는 것이었다.

은연중 가해지는 압박에 숨이 턱 막히고 다리의 힘이 풀릴 것 같지만 필사적으로 버텼다.

여기서 그녀가 쓰러지면, 이들의 손에 의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말 것이었으니까.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의지를 노쇠한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안 되는데…….'

은연중 가해지는 압력은 독과 같이 그녀의 몸을 갉아먹었다.

그렇게 독에 잠식되어 점점 더 감각이 둔해지던 몸이 깜깜해지는 시야와 함께 이윽고 무너지려 했고, 누군가의 몸에 부딪쳤다.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사과와 그녀를 지지하는 단단한 두 손에 담긴 힘이, 그녀의 둔해지던 몸을 일깨웠다.

은은하게 웃는 청년이 두 눈에 들어왔다.

그 청년이 고개를 들어 입구를 막은 경찰들에게 말했다.

"길 좀 비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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