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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10화 (210/741)

209화

위지혁에게는 도진 이전에 몇 명이나 되는 제자가 있었다.

천마신교의 교주로서 후계자를 두어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그것을 미루고 미루다 갑자기 제자를 들였는데, 이는 친우 혁련휘의 영향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친우를 바뀌게 만들었을까.

티를 내지는 않았으나 열패감이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막고 있던 혁련휘를 바뀌게 한 감정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교에서도 손꼽히는 재능을 가진 아이 하나를 들여 가르쳐 보았다.

대단한 재능을 가졌으나 천무지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허나 위지혁은 그것을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았다.

현대의 말로 하자면 온갖 치트를 친듯한 녀석을 비교 대상으로 하여 '평범한 아이'를 질책하는 건 너무 못난 행동이지 않은가 말이다.

하물며 위지혁에게는 그런 아이라도 얼마든지 하늘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제자는 그런 위지혁의 지도 하에 훌륭히 천마신공을 익혀 나갔고 이내 어느 정도 되었다 싶을 즈음 무림에는 알려지지 않은 친우와의 만남에 제자를 데리고 나갔다.

-그 아이가 자네의 제자인가?

-자네가 하도 제자 자랑을 하니 나도 한 번 제자를 들여 보았지.

-덕분에 무림맹이 난리가 났었다네. 황궁에서도 칙서가 왔었지. 제발 일을 좀 천천히 추진하게나.

친우가 만약 현대의 말을 알았다면 급발진 좀 하지 말게, 혹은 깜빡이 좀 키고 들어오게나,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찌되었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둘 다 제자를 들인 김에 자연스럽게 비무를 하게 되었다.

그 비무에서 위지혁의 제자는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나빠지는 일은 없었다.

배운 기간이 있었고 위지혁의 제자는 그날의 패배를 거울 삼아 더 강해지겠다 다짐했으니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1년 뒤의 '리벤지'에서도 위지혁의 제자는 패배했다.

1년 전보다 더욱 압도적인 차이였다.

다시 1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필사적으로, 미친듯이, 뒤가 없는 것처럼 수련했으나 위지혁의 제자는 독고혁을 이기지 못했다.

차이는 점점 벌어지기만 했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오버페이스로, 피를 쏟으면서 달려도 멀어지기만 하는 독고혁의 등에 제자는 망가지고 말았다.

빛나는 것 같았던 스스로의 재능이 독고혁에 비하면 반딧불에 불과했으며 필사적으로 달려도 따라잡기는커녕 더더욱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라이벌'에, 위지혁의 제자는 이윽고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졌다.

통제를 잃은 내공이 폭주하고 그 불길은 마음마저 불태워 버린다.

-으아아아아아!!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독고혁에게 달려들었다.

5성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천마기는 주화입마에 휩쓸려 통제를 잃고 미쳐 날뛰었으며 그것은 독고혁이 아닌, 위지혁의 제자를 난도질했다.

-내 제자가 못난 모습을 보이고 말았군. 미안하네.

-…자네.

-괜찮아. 괘념치 말게. 이번 일에 대한 사과는 내 꼭 하도록 함세.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제자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목숨은 건졌으나 폐인이 되어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침상에서 보내다 마감했다.

…그때의 기억이, 제자의 모습이 지금의 제자와 겹쳐지고 말았다.

"…일어날 수 있겠느냐."

그래서 위지혁은 조심스레 제자를 부를 수밖에 없었으나.

"당연히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승님."

형형한 눈동자로 일어나는 제자의 모습이 위지혁의 걱정을 완전히 지워 주었다.

도진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일어섰다.

두 다리로 대지를 딛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그 모습에 단 한 점의 절망도 묻어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달렸다.

가진 모든 것을 다하였고 무리를 하여서라도 앞서 나가는 천재를 따라잡으려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따라잡기는커녕 오히려 거리가 멀어지기만 했고 재능의 격차를 통감해야만 했다.

허우적거리며 필사적으로 따라붙는 모든 행동이 앞서 나가는 천재의 속도를 더해주는 행위가 된 것만 같은 착각마저 느껴야 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진은 절망하지 않았다.

무너지지도 않았고 멈춰서지도 않았다.

달리다 넘어졌으나 그 고통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또래를 압도하는 경지에 올랐고 천재에도 뒤지지 않는 신위를 보였지만 도진은 스스로가 천재가 아니란 걸 잊지 않았다.

도진은 꾸준히, 손이 부르트고 이내 다 까진다 해도 절벽을 기어 올라가야만 한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힘이 들어도 멈추지 않고, 제아무리 아파도 그것을 참고 나아가는 것만이 자신의 장점이란 걸 알고 있었다.

남들이 편한 길로 더 높은 곳에 오르고 누군가는 심지어 자신보다 빠르게 절벽을 올라간다 해도 부러워하지 않고, 조바심내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이내 하늘에 오를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도진은 흔히 말하는 '열혈물'을 좋아했다.

그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아무리 고난에 상처입어도 넘어져도 이윽고 일어나 극복하고 마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에 끌리는 법이기에.

단순무식하게 근성론을 주창하는 게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것을 꺾이지 않고 이겨내는 이야기가 좋았다는 말이다.

도진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은 도진을 짓누를 뿐이었고 그것을 이겨낼 방법이 도진에겐 없었다.

물론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생의 이야기다.

이번 생에는 시련을 이겨낼 분명한 '길'이 있었다.

또 한 번의 기회를 준 스승들이 닦아 준 길이.

위지혁이, 장호가 도진을 위하여 하늘에 이르는 길을 닦아 주었으니 도진은 그 길을 그저 걷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다면 남는 건 오로지 하나뿐이다.

포기하지 않는 것. 도진은 그저 멈추지 않고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백설을 들었다.

패배를 안겨 준 독고혁을, 점점 멀어지고 말 독고혁을 한 점 두려움 없이 마주했다.

카앙!

검을 맞댄다. 그 한 수에 이미 패배가 결정되었을 만큼 격차가 벌어져 있었다.

이치를 찌르는 도진의 검에서 형에 얽매여 있는 스스로를 깨닫고 그것을 실시간으로 수정, 발전한다.

초식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최선'이 언제나 최선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중용(中庸)의 도(道)마저 깨닫고서는 움직임에 담기까지 했다.

도진이 곱씹고 또 곱씹어 깨닫고서도 행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했던 것을, 독고혁은 생사결 중에 터득하고선 그 자리에서 체현해 버렸다.

그 뿐인가.

도진의 검을 발판 삼아 급속도로 성정하기까지 했다.

그래, '발판'이다.

상대하는 자를 한낱 발판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의 존재였다. 독고혁은.

압도적인 천재란, 그런 것이었다.

그랬기에 위지혁이 들였던 그 아이는, 제자는 주화입마에 들어 무너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독고혁은 상대하는 자를 파멸시킬 만큼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보았던 위지혁은 제자를 믿으면서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진은 물러서지 않았고 겁먹지도 않았다.

도진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이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잠룡이라 불리지만 본래 '문월고의 낙제생'이자 인생의 낙오자로 기나긴 세월을 살았었다.

격차가 벌어지고 따라잡지 못하는 게 당연한 삶을 살았다.

물론, 그 당연한 일을 이번 생에는 받아들이고 용납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도진은 뒤따라가는 것만큼은, 꾸준히 나아가는 것만큼은 할 수 있었다.

앞서 나가는 자를 보고 배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은 알았다.

그러니까 눈앞의 독고혁은 오히려 좋은 '페이스 메이커'였다.

나를 보고 배워 앞서 나간다고? 그렇다면 나는 그렇게 앞서 나가는 당신을 보고 배우겠다.

혼자만 달려서는 이것이 좋은 속도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더 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앞서 나가는 무시무시한 페이스 메이커가 있으니 한 번 거기에 맞춰 달려 보겠다.

그 페이스 메이커의 속도가 압도적이라 해서 도진은 자격지심에 빠져들지 않는다.

그의 속도가 빨라 따라잡지 못하는 자신을 인정하니까.

허나 그것은 그 자리에 안주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어코 따라잡고 말겠다는 향상심이 있기에 비로소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결국 따라잡지 못해 상대를 놓칠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카앙!

'나는 기어코 당신을 따라잡고, 추월할 테니까.'

제아무리 멀어진다 해도 도진의 걸음이 멈추는 일은 없다.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고 그렇게 도진의 걸음이 계속되는 길은 하늘에 이르기 위해 스승들이 이끌어 주는 길이다.

그 끊임없는 무의 길을 결코 멈추지 않고 나아감으로써 도진은 이윽고 천재들을 따라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펼쳐지는 길은 천재들이라 해도 결코 앞서나갈 수 없는, 넝마가 되어서라도 기어갈 수 있는 자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다.

그 길에 이르러서 도진은 천재마저 추월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도진이 멈추는 일은 없다.

패배한 도진에게 위지혁이 물었다.

"이길 수 있겠느냐, 도진아."

"당연히 제자가 이기지 않겠습니까, 스승님."

제자는 망설임없이 대답했고 스승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호오. 그렇게 단언해도 되겠느냐, 제자야."

"독고 공자…… 라고 해야겠죠? 독고 공자는 분명히 강하지만 저를 패배시킬 순 없으니 단언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도진의 입꼬리가 스승을 닮아 날카롭게 올라갔다.

"독고 공자는 저를 패배시킬 수 없습니다."

스스로 멈추지 않는 한 누구도 도진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저를 이길 수 있는 건 오직 저뿐이니까요."

그러니까 도진을 이길 수 있는 건, 오직 도진뿐이었다.

도진의 백설이 독고혁을 향했다.

* * * *

심상세계에서의 특훈은 끊임없는 독고혁과의 생사결과 그 생사결 속에서의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그 생사결을 계속하며 도진은 스승이 마련한 특훈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아가라.

스승이 도진에게 원했고 깨달아 주길 바랐던 것.

그것은 바로 흔들려도 좋고 잠시 멈추어 서도 좋으며 넘어져도 좋다. 그저 계속 나아가라는 것이었다.

길(道)이란 결코 평탄할 수 없으며 나아가다보면 힘이 들고 멈추고 싶은 순간이 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위지혁은 말해주고 싶었고 다행히 도진은 결코 멈추지 않고 나아갈 심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진은, 압도적인 속도로 나아가는 천재를 따라가느라 먼지투성이,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결코 멈추지 않음으로써 가파른 산 하나를 넘어냈다.

좋아하는 것을 믿고 결코 놓지 않음으로써 그렇게 장족의 발전을 해낸 도진은 어느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동영상이 포함된 게시글 하나를 보게 되었다.

-그리드 디스크 사장을 참교육하는 잠룡 1~3.avi

'응?'

끝난 줄 알았던 일이 더욱 크게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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