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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08화 (208/741)

207화

진짜 천재의 발전 속도를 체험해 보겠느냐.

스승의 물음에 담긴 의도를 도진은 짐작할 수 없었다.

무언가 특훈을 준비한 것 같긴 한데 그것이 무엇일지 짐작가는 바가 없었다.

위지혁은 특유의 날카로운 웃음을 짓고선 말했다.

"언젠가 내 친우의 제자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지 않았더냐."

"네."

위지혁의 친우.

다름 아닌 검성 혁련휘였다.

이곳이 아니라 위지혁이 살던 시대의 불세출의 천재이자 무림맹의 맹주, 정파의 상징이라 불리던 사람.

"그 친구의 제자가 그렇게 천재였었지."

"아……."

유지은을 보았을 때 스승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었다.

내 친우이자 적수였던 검성 혁련휘의 제자가 떠오르는구나, 라고.

있는 대로 치트를 친 캐릭터 수준인 '천무지체'를 타고난 천재 중의 천재.

그것이 바로 검성 혁련휘의 제자였다.

"너도 느꼈겠지만 유지은 그 아이의 재능은 진짜이지만 그 재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예."

유지은의 재능은 천무지체를 타고난 검성 혁련휘의 제자 못지 않은 수준이었다.

허나 유지은이 이번 토벌에서 보여준 모습은 평가에 비해 손색이 있었다.

고대 무림과 현대의 환경에 차이가 있어서, 내공을 쌓기 어려운 환경이라서, 배우는 무공의 수준이 부족해서, 천무지체를 타고나지는 못해서.

다 맞는 말이었지만 좀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문제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잘 닦인 길을 달릴 줄만 알 뿐이었기 때문이다."

천재란 길을 더 빠르게, 쉽게 갈 수 있는 사람이다.

허나 그 길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니 천재라 해도 쉽게 갈 수 없는 길이 있으며 나아가다 보면 기어코 마주하게 된다.

무(武)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지극히 험난한 길을 갈 줄 알아야 하며 스스로의 두 발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줄도 알아야만 한다.

심지어는 이를 악물고 기어서라도, 몸이 다 쓸려 나가는 고통에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할 때도 있다.

유지은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

때문에 이번 토벌에서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아이는 넘어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걷고 있던 길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넘어졌음에도, 가야 할 길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음에도 나아가기로 결심할 계기도 생겼지."

넘어진 천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나아가거나, 안주하거나.

유지은은 나아가기로 했다. 그것도 전력으로.

이렇게 된 천재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위지혁은 그런 천재를 제자에게 보여 주기로 했다.

스윽-

"어……?"

갑자기 느껴진 기척에 고개를 돌린 도진은 당황했다.

심상세계에, 그동안 본 적이 없던 남자가 나타났다.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건 완벽에 가까운 얼굴이다.

옥기린(玉麒麟).

언젠가 무협에서 보았던 그 단어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남자의 얼굴은 완벽했다.

얼굴뿐인가. 이국적인 복장으로 감싼 몸 역시 마찬가지였다.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남'이란 단어보다는 '완벽한 조각상'이라 말하고 싶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마치 근육 하나 하나를 신이 섬세하게 조각한다면 이럴까 싶다.

그리고 그런 감상을 느끼게 하는 몸이 바로 천무지체라는 걸 도진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완벽한 좌우대칭과 균형. 일말의 군더더기조차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무공에 최적화된 몸은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이다.

"독고혁. 그 아이의 이름이었지."

"…스승님이 만들어내신 모습이군요. 이건."

"그렇다."

심상세계에선 원하는 걸 구현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사고력과 지식이 필요한데 그 부분에 있어서도 위지혁은 과연 절대고수다웠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고요히 서 있는 독고혁의 모습에는 일말의 파탄조차 보이지 않는다.

도진이 신안으로 보고 있음에도 말이다.

근육 한 올 한 올조차 완벽하게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위지혁의 경지가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비록 대화를 나누게 해 줄 정도는 아니다만 생사결(生死決)이라면 완벽하게 체험하게 해 줄 수 있다."

생사결이라니. 목숨을 건 결투를 뜻하는 말이었으니 꽤 무서운 단어 선택이다.

그러나 이곳이 심상세계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그쪽이 더 '특훈'에 어울리는 일이었다.

"이번 특훈은 그럼 저 독고혁이란 사람과의 대련이겠네요."

위지혁은 도진의 말에 대답 대신 씨익 웃었다.

무언가 더 해 줄 말이 있지만 일부러 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도진은 그 부분을 굳이 파고들지 않았다.

스승이 말해주지 않는다는 건 직접 깨닫는 게 더 좋은 일이라는 뜻이었으니까.

특훈을 수행하며 스스로 터득하면 될 일이었다.

스릉-

도진이 마음먹은 순간 독고혁이 검을 뽑았다.

검을 내리고 고요히 선 독고혁을 마주하며 도진 또한 백설을 구현해 쥐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으니 오히려 높은 공부를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시작."

거기에 위지혁 또한 여상스런 목소리로 '시작'이라 말했고.

푸푹.

다음 순간 도진은 여덟 개의 대혈(大穴)에 구멍이 뚫려 무너졌다.

"……!"

아주 조금, 찰나의 시간이 지나서야 도진은 반응할 수 있었으나 이미 그것은 늦어 있었다.

"끌끌. 방심했구나, 제자야."

무너진 도진에게 스승의 목소리가 무겁게 파고들었다.

그래, 그것은 방심이었다.

허나 그 방심을 마냥 비방하기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도진은 분명히 제대로 대비를 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수준'이었다는 게 문제였던 것이다.

신안의 끝자락을 붙잡고 연신극기공으로 단련하는 도진은 또래 중에선 적수가 없다고 자부해도 될 만큼의 성장을 이루었다.

재능을 제대로 개화하지 못한, 그러나 그렇다 해도 상식을 초월한 재능으로 경지에 오른 유지은에게도 압도당하지 않을 만큼의 성취를 도진은 얻었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도진은 또래로 보이는 독고혁을 마주했고 특별한 위협을 감지하지 못했었다.

진지하게 임하긴 했으나 스승이 말하길 '진짜 천재'라 했으니 기량을 먼저 파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마냥 잘못이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진짜 잘못이라면 도진이 독고혁의 역량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잘못이었다.

'미, 친…….'

도진은 방금의 한 수로 이해했다.

독고혁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수준의 무인임을.

역량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것은 곧 독고혁이 도진의 이목을 속일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물며 도진은 독고혁의 역량을 읽어내지 못했음에도 그에 대한 경계를 하지 않았는데, 경계를 잊을 정도로 그것이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여기에 결과까지 생각하면 변명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완패였다.

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성은 했느냐?"

"예."

거짓말처럼 상처가 사라지고 도진은 다시 백설을 들었다.

두웅-

그리고 천마군림을 시전했다.

현실에서는 아직 쓸 수 없는, 심상세계에서 스승 천마와의 대련에서 필사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바로 그 천마군림이었다.

세계와 도진이 연결되며 감각이 확장되었다.

그 모습에 위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위지혁이 구현한 독고혁은 요즘 말로 하면 '각성한 독고혁'이었다.

천무지체를 타고났으며 스승 혁련휘의 뒤를 이어 천하를 안정시키겠다는 맹세를 지키기 위해 무의 길을 나아가려는 그 독고혁.

지금 도진이 가진 모든 것을 다하지 않고서는 검을 맞대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훅-!

도진의 준비가 끝나자마자 다시 한 번 독고혁이 움직였다.

혁련휘의 독문 운신법인 '운위(雲暐)'의 묘리에 따르는 독고혁의 움직임은 분명히 두 눈에 담고 있음에도 그야말로 잡을 수 없는 빛무리처럼 기이하다.

도진은 그것을 눈과 몸의 감각으로 억지로 좇는 대신 일체화한 세계를 통해 느껴지는 존재감으로 붙잡았다.

그렇게 붙잡은 독고혁의 검이 휘둘러졌다.

슥-

평범한 가로 베기.

그러나 그 가로 베기에서 파생되는 검로가 마치 세계를 덮을 것만 같다.

신안을 가진 도진이기에 읽을 수 있는 검로였으며 반대로 신안을 가졌기에 감당할 수 없는 역량을 읽어내고 압도당하게 된다.

차라리 읽을 수 없다면 과감하게 검을 들이밀 수 있었을 텐데 거기에 담긴 이치를 읽을 수 있었기에 대적하는 데에도 크나큰 용기가 필요했다.

물론 도진은 망설이지 않고 검을 들었다.

감당하기 힘들다 해서 도망치려는 도진은 이미 전생에 죽었기에.

도진은 오히려 가진 모든 것을 다해 검을 움직였다.

카앙-!

독고혁이 구사하는 검로의 근본에 도진의 백설이 부딪쳤다.

어느새 깊게 가라앉은 도진의 눈동자엔 이치가 그득하다.

도진이 자신보다 높은 경지와 내공을 지녔던 마두를 잡아낼 수 있었던 바로 그것, '이치의 검'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현실 세계와 달리 제약이 없는 심상세계에서 천마군림까지 사용한 도진이 자아내는 이치의 검은 과연 격이 다른 영역에 있었다.

카캉!

천마 위지혁이 가르친 천마검공의 묘리가 사신 장호가 가르친 무흔잠영의 묘리에 실려 독고혁이 뒤덮었던 세계에 파탄을 일으킨다.

검성의 무공을 천무지체로 구사하는 독고혁에게 파탄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심상세계의 도진은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검성 혁련휘의 성명절기 성린수요검(星璘繡曜劍)을 이 시기의 독고혁은 완벽하게 체득하지 못했다.

천무지체의 천재성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습득하고 있었으나 아직 완벽하지 못했고 그 틈을 도진은 신안으로 보고 이치의 검으로 두드렸다.

서로가 행할 수 있는 것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았기에 생사결은 이내 '이치의 싸움'이 되어 버렸다.

상대의 수를 읽을 수 있고 거기에 대한 대처법도 안다. 하지만 그 대처법을 실행할 수 없기에 차선을 선택해야 하고 그로 인한 파탄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한다.

결국 깨달음을 조금 더 체현할 수 있는 쪽이 이기는, 그야말로 무협지에서도 선문답 같은 싸움이 되어 버렸는데 여기서 승기를 잡은 건 도진이었다.

독고혁은 압도적인 천재이고 도진보다 높은 경지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으나 그것은 '일반적인 무인'으로서의 이야기였다.

평범한 무림인으로서의 수련과 가르침을 통하여 고수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와 달리 도진은 전혀 다른 단계를 밟아 강해졌다.

'무공(武功)'이 아닌 '무도(武道)'를 배웠고 이치와 깨달음에 무공이 따라오는 형태로 수련을 해왔다.

그러니까 무공을 구사하는 독고혁은 이치의 영역에서 검공을 구사하고 있는 도진에 비해 '한 수 뒤쳐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도진은 그 차이를 생사결의 찰나에 깨달았고 그래서 승리를 확신했다.

독고혁은 분명한 천재이지만 어디까지나 무공으로써 검술을 구사하고 있으니 본질적인 약점을 찌르는 도진에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도진은 검성의 절기인 성린수요검의 근본적인 약점을 찌르고 있었으니 한 수 위의 실력을 가진 독고혁이 현재의 최선을 택한다 해도 파탄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캉!

한 번 본 검로. 그렇기에 확실하게 꿰뚫어 본 검로의 시작을 도진은 과감하게 파고듦으로써 봉쇄했다.

자연스럽게 한 발 내딛으며 허리를 비틀고 손목을 퉁겨 위로 긋는 독고혁의 검을 내리침으로써 형세의 유리를 취하며 더 강한 힘으로 억눌렀다.

검을 봉쇄했고 동시에 거리를 줄였기에 주먹이 닿을 수 있는 간격이 되었다.

도진은 미리 준비하고 있던 한 수, 왼 주먹을 쥐면서 오른쪽 어깨로 독고혁의 명치를 노렸다.

검수(劍手)라 해서 검만 쓰는 게 아니다.

독고혁 정도 되면 초근거리에서의 박투(搏鬪), 맨손 싸움에도 대비하는 법이다.

때문에 도진은 왼손을 쓸 것처럼 어깨의 움직임부터 시작하여 주먹을 쥐는 허초(虛招), 페인트를 줌과 동시에 과감히 더 거리를 좁혀 오른쪽 어깨로 명치를 노린 것이다.

위지혁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한 수.

그 한 수가 독고혁의 명치를 강타했다.

콰앙!

승부를 결정짓는 듯한 타격음이 터졌다.

도진의 오른쪽 어깨가 완벽하게 독고혁의 명치를 때렸다.

그리고.

"…초식을 버리란 것이 이런 뜻이었구나."

명치를 강타당한 독고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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