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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07화 (207/741)

206화

그것은, 헬스장 전체의 시선을 모을 정도로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도진은 몸을 우락부락하게 키우는 타입의 무인이 아니었다.

때문에 연신극기공을 통하여 몸이 진화하고 있으며 키까지 꽤 컸지만 겉으로 보면 여전히 호리호리한, 무림인들 사이에선 '평균'이라 해야 할 만한 외형이었다.

그런 도진이 두 손도 아니고 심지어 한 손도 아닌, 무려 검지손가락 하나로 150kg의 무게를 더한 바벨을 들어 버렸으니 충격적이라 해야 할 만한 광경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경지에 이른 내공을 구사할 수 있는 무림인은 외공 수련자를, 육체를 초월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손꼽히는 고수는 중형 승용차마저 들곤 했으니 그 위용을 짐작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게 오랜 세월 내공을 수련한 고수에 국한된 이야기라는 거다.

숭무고에 다닌다 해도 아직 '학생'인 도진이 보이기엔 너무나 이른 신위(神威).

그래서 중년인은 멍청한 얼굴로 헤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숭무동의 시설에서 운동을 할 정도로 그 역시 나름의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고 그 지위만큼의 지식이 있었기에 잠룡과 비봉, 검봉을 알아보았다.

때문에 슬쩍 본 정도에서 그친 것이었고 도진의 '시비'에 평소 성질대로 받아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것이었기에 힘을 과시한 것이었는데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반격이 돌아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허헉!"

근데 거기서 도진은 한 술 더 떴다.

터억. 터억.

그것은, 150kg의 무게를 단 바벨을 검지손가락만으로 던졌다 받았다 하는 소리였다.

아니 조상님이 대신 들어주지 않는 봉의 무게만 해도 20kg이니 실제로는 170kg짜리다.

이쯤 되니 도저히 현실 같지가 않다.

도진은 그렇게 바벨을 몇 번 던졌다 받았다 한 뒤에 제자리에 놓고선 손가락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자, 봐. 손가락이 빨갛지?"

"응, 형."

대답하는 호진이는 물론이요 아이들의 시선이 반짝반짝 빛난다.

주변의 반응으로 지금 도진이 보여준 게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오히려 아이들이었기에 그런 반응에 더욱 민감했다.

"할 수 있다고 해서 이렇게 무리를 하면 안 돼. 한 번이야 이렇게 손이 조금 빨개진 걸로 끝나겠지만 그렇게 무리를 하면 나이 들어서 몸이 고장난단 말이야. 그러면 나이 들어가지고 남이 떠주는 죽만 먹고 살아야 되는데 그러면 얼마나 슬프겠어. 그렇지?"

"응!"

"그렇네요."

호진이는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릴리는 흘끗 중년인을 보며 옅게 웃었다.

눈치 빠른 아이답게 도진의 의도를 바로 알아챈 모습이다.

당연히 그 의도를 중년인 또한 단번에 알아챘지만 이번에도 평소 성질대로 발작하지 못했다.

아까 전 도진이 그랬던 것처럼 '명분'이 분명치 않았던 건 오히려 핑계다.

다가가서 따져봐야 본전도 못 건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애써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그였기에 일순 착각을 하고 있었다.

후기지수가 대단해도 결국 학생인데 오래도록 운동하며 몸을 단련한 내가 밀릴 게 뭐가 있겠나.

그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다행히 그는 부족하지 않았던 머리로 자각하고 사린 것이다.

그는 훌륭한 '분노조절잘해'였다.

그렇게 바짝 엎드리고 몸을 사리는 '굴욕'을 감당하는 그를 두고 도진 일행은 헬스장을 떠났다.

* * * *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줘서 고맙네."

"그렇게 공적인 관계로 인사하시면 좀 섭한데요?"

"하하하! 그런가.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일이니 인사를 해야지."

헬스장을 나온 도진은 먼저 릴리와 윌리엄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날 이후 계속해서 친분을 쌓고 있는 올리버 후작과 인사를 나누고 다음으로는 동생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슈킨팍시로 소담과 유지은을 기숙사와 집까지 바래다주기로 했다.

"다음주에 보자."

"응. 조심해서 가."

"들어가, 후배."

"네."

우선 소담을 학교 앞 정문에 내려주고 유지은이 머무는 정의검가 본가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조석에 앉은 유지은이 말했다.

"후배. 내공 안 썼지?"

유지은의 물음에 도진은 숨길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니까 힘이 좀 들었죠."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그 내용은 너스레로 덮을 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내공은 그 자체로 육체 능력을 증폭시켜 주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이 슈퍼 히어로가 될 수는 없었다.

무공을 통하여, 수련을 통하여, 깨달음을 통하여 원하는 대로 구사할 수 있어야 초월적인 힘을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데 도진은 그런 식으로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서 그런 엄청난 힘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도진의 육체에 본격적으로 내공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초월적인 힘을 낼 수 있을 만큼 어마무시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그때 마두를 압도할 수 있었던 거야.'

개미굴에서 도진이 마두를 압도할 수 있었던 건 유지은도 다 읽지 못할 만큼의 무공을 구사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마두를 넘어설 만큼의 육체적인 스펙이 갖춰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유지은은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몇 번 보여 준 적이 있었지.'

당시 폐관 수련 중이었던 유지은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도진을 '꽃'으로 삼은 뒤 관련 이야기들을 뒤적이던 중 본 것들이 있었다.

외공으로는 최고로 꼽히던 1학년의 정중한과 2학년의 오정군을 '힘으로' 압도하던 도진의 이야기를 말이다.

이쯤되니 유지은도 육체 단련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녀의 육체적 차이는 분명하고 또 극명하다.

허나 그런 차이를 넘을 수 있는 게 무공이 아닌가.

"새삼 후배랑 나랑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네."

"사람마다 장점이 다른 법이니까요. 선배는 저한테 없는 게 또 있을 거예요."

"어휴, 진짜 도덕 선생님 같아. 후배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슈킨팍시가 정의검가로 통하는 길에 접어들었다.

정의검가의 본가는 그 길을 따라 가면 있는 서울 외곽의 고색창연한 멋이 가득한 한옥이다.

넓은 마당과 별채 등 세도가의 양반들이 살았을 법한 큰 규모의 한옥 정문에 '正義劍家'란 한문이 흔히 말하는 용사비등(龍蛇飛騰)한 필체로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월요일에 봐요, 선배."

"응."

인사를 나누고 도진은 차를 돌렸다.

떠나가는 도진을 유지은이 정의검가의 현판을 배경으로 두고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전생에서는 배경이되 결코 가깝지 않았던 그 이름을 뒤에 둔 유지은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보인다.

이번 생에는 그 거리가 좁혀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도진은 집으로 돌아왔다.

"잘 바래다줬어?"

"네."

돌아온 도진은 간단히 옷만 갈아입고 어머니와 함께 지하 연무장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연호신공을 봐드리기 위해서였다.

유진이와 호진이는 오전에 봐 주었고 어머니는 이렇게 주말에 토요일이나 일요일 하루 날을 잡아 봐드리고 있는 도진이었다.

"그럼 해볼게."

"네."

도진의 어머니, 서정원이 아들에게 배운 대로 연호신공의 동공(動功)을 시작했다.

육체의 단련과 동시에 운기를 병행하는 연호신공의 동공을 행하는 어머니를 도진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전생의 어머니와 현생의 어머니가 겹쳐진다.

손목조차 제대로 돌릴 수 없었던 어머니.

허리는 물론이요 무릎의 연골마저 닳아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그 어머니가 연호신공의 동공을 거침없이 해 나간다.

짓쳐오는 힘을 손목을 돌림으로써 부드럽게 유도하여 되치는 움직임에 막힘이 없고 강하게 내딛는 힘을 허리를 활처럼 튕겨 뻗어내는 주먹에도 거리낌이 없다.

성취는 느리다.

하지만 도진에게 있어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본래는 갚지 못했을, 가난으로 인해 쌓이기만 했던 그 이자가 원금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어떠니?"

동작을 마무리한 어머니의 물음에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만 하시면 될 거 같아요."

* * * *

두 시간에 걸쳐 꼼꼼히 어머니의 연호신공을 점검한 도진은 저녁을 먹은 뒤 아버지에게 연락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 도진아.

"저녁 드셨어요, 아버지?"

-그래. 너는?

"저야 당연히 먹었죠. 메뉴는 괜찮았어요? 회사 밥이면 시원찮았을 거 같은데……."

-여기가 힘 쓰는 일이 많은데 밥이 시원찮아선 안 되지. 그랬다간 바로 파업일 거다. 게다가 나는 이제 간부여서 간부 식당을 쓰니 더 좋은 밥을 먹고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돼.

"회사에 간부 식당이 어딨어요. 아들을 너무 쉽게 보시네요, 아버지."

-하하. 들켰구나. 그래도 소시지 한두 개 더 먹을 수 있는 건 사실이니 더 잘 먹고 있는 건 사실이다.

"기왕이면 소시지 말고 고기를 더 드세요."

자주 연락을 하다보니 아버지와도 이렇게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다.

가족이지만 관계가 피상적이었던 과거보다 훨씬 나은 상황에 도진은 미소지으며 물었다.

"수련은 꾸준히 하고 계시죠?"

-그래. 있다 야근 끝나면 또 할 테니 잔소리는 하지 않아도 돼.

"네. 그럼 오늘은 검문 없는 걸로 할게요. 자주하면 경계심이 떨어지니까요."

-녀석.

아버지 김서우는 고등반에 진학하지 못하고 삼류 무인에 머물렀으나 본래 재능이 있던 사람이었다.

때문에 나름의 성취를 보고 있었고 그것을 도진은 자주 회사를 찾아가 확인했었다.

이제 아버지는 그 어떤 풍파에도 깎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되어 도진은 지하 연무장에서 홀로 연신극기공의 수련을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시행하는 연신극기공은 육체의 진화와 함께 여전히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선사했다.

그러나 호흡을 빼앗고 전신을 안팎에서 프레스로 누르는 듯한 압력이 행해짐에도 불구하고 도진의 움직임에는 일체의 어긋남이 없다.

육체와 함께 정신력의 단련까지 함께 하는 극한의 수련.

그 수련을 도진은 두 시간이나 행하고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후욱, 후욱."

마치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온 듯 몸이 열기를 뿜어낸다.

도진은 그 열기가 가라앉은 뒤에야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심상세계에서 도진을 마주한 위지혁이 웃으며 말했다.

"열심이구나, 제자야."

스승의 말에 도진도 웃으며 답했다.

"이러지 않으면 추월당할 테니까요."

도진은 유지은과 약속을 했다.

결승에 올라 랭킹전에서 붙기로 말이다.

유지은. 검봉. 어릴 적부터 검을 잡은 압도적인 천재.

그 천재가 지금 진심으로 무공에 매진하고 있는데 도진이 게으름을 부릴 순 없었다.

겨루기로 약속한 이상 도진은 진심으로 이길 생각이었고 그 모습에 위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옳다. 본래 천재란 것들은 계기가 주어지면 말도 안 되는 성장을 하는 법이거든. 정신차리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멀어져 버릴 게다."

자신도 천재면서 남일 말하듯 하는 위지혁이었다.

다만 그것이 마냥 남일 말하듯 하는 건 아니었는데 실제로 위지혁은 그런 천재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천재를, 제자에게도 보여주기로 했다.

"제자야."

"예, 스승님."

"진짜 천재의 발전 속도를 한 번, 체험해 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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