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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06화 (206/741)

205화

유진이와 호진이에게 있어 도진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천하무적이요 우상이었다.

과거 무력한 삶을 살아와 '볼품없는' 모습이었던 때에도 고릴라 같았던 강치환을 한 방에 때려눕혔던.

그러니까 연신극기공을 수련하여 진화하고 있는 지금의 도진은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인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어리고 순수한 아이인 열 살 호진이의 눈에는 조금 과장을 보태 자신의 허리만 한 팔뚝을 자랑하는 젊은 트레이너의 모습이 인상 깊을 수밖에 없었고 형과 비교해 보게 되는 것이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두 손으로 드는 바벨도 아니고 한 손으로 드는 덤벨을 110kg은 들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자신은 30kg짜리 바벨도 두 손으로 힘들게 드는데 무려 한 손으로 그 네 배에 가까운 무게를 들 수 있다니 정말로 대단해 보였고 그럼 과연 형아는 얼마나 들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 아이다운 의문을 담은 시선에 도진은 피식 웃었다.

어떻게 대답해 주어야 할까.

굳이 여기서 '남자의 자존심'을 세워야 할 이유는 없었다.

호랑이가 고양이가 아니냐는 놀림에 진지해질 필요가 없듯 도진 또한 여기서 굳이 자신의 힘을 과시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다만…… 그렇다.

귀여운 막내의 기대가 담긴 시선을 외면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도진은 섭음술을 이용하여 호진이에게 말한 것이었다.

"글쎄. 정확히 들어 본 게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150킬로는 넘게 들 수 있지 않을까?"

"와아! 진짜?!"

"응. 진짜."

도진의 말에 호진이는 일말의 의심도 보이지 않으며 그저 눈을 반짝이는 채 감탄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당장에라도 덤벨을 번쩍 들어 보여 주고 싶지만 그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트레이너를 놀리는 것에 다름없는 일이라 자제했다.

일행의 주변으로 막을 친 섭음술이었기에 대화를 들을 수 있었던 소담이 옅게 미소지었고 유지은도 흐흥, 하고 목소리를 내었다.

덤벨 150kg. 내공을 운용한다 해도 학생이 들기엔 아득한 무게였다.

그렇게 막내의 기대를 충족시켜 준 도진이 유진이와 호진이, 그리고 릴리와 윌리엄의 운동을 봐 주었다.

"내공을 위주로 배우게 될 너희들이지만 당연히 기본이 되는 근력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야."

내공이란 대기만성의 힘이다.

재능 있는 자가 그 커다란 '그릇'을 완성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내공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내공이란 구슬이며 그것을 '서 말'에 이를 만큼 단련한다 해도 꿸 수 없다면 유의미한 힘의 행사를 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꿸 수 있는 것이 재능이기에 '무림인'이 특별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림의 영역이고 일반인의 영역에서는 꿰지 않은 구슬만으로도 무궁무진한 가치가 있다.

내공은 그 자체로도 무병장수와 피로회복 등의 효과를 가져다주니까 말이다.

여기에 '구슬을 꿸 재능'이 없다 해도 무공을 힘으로써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있으니 바로 외공(外功)이다.

외공은 육체를 주로 하여 내공을 보조의 수단으로 삼는 무공이다.

어차피 내공을 무공으로써 사용할 수 없다면 육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련법.

거창하게 말하면 만류귀종이란 말을 가져와 연신극기공과 통한다고 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이는 구슬이 서 말에 이르러 꿰지 않더라도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데 1학년의 정중한이나 2학년의 오정군이 그러했다.

이들은 내공 대신 외공을 택함으로써 또래보다 빠른 힘을 자랑했었다.

좋은 예로는 방금의 트레이너 같은 사람들이다.

무림인이 되지 못한 사람들.

그러나 이들은 전문적인, '헬스로서의 무공'으로 몸을 단련하고 트레이너라는 직업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외공은 일반인이 무공으로 몸을 단련하기 위한 좋은 수단인 만큼 그것을 전문으로 익혀 가르친다.

유진이나 호진이, 그리고 릴리와 윌리엄은 이런 식으로 '몸을 단련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무공'을 익히지는 않는다.

허나 내공의 그릇이 육체이기에 육체의 단련을 무시할 수 없으니 헬스장에서의 경험은 그 자체로 좋은 체험이었다.

아직 몸이 여물지 않은 아이들에겐 더더욱.

"형, 무거운데 나 무게 줄여도 돼?"

호진이가 30kg의 바벨을 내려놓고서 물었다.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힘들게 들지 않아도 돼. 정확한 자세랑, 거기에 쓰이는 근육을 확실하게 파악하는 게 지금은 더 중요해."

호진이는 최대한 힘을 쓰면 30kg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최대한의 힘을 내는 것보다 정확히 힘을 내는 게 더 중요했기에 도진은 직접 무게를 10kg 줄여 주었다.

"저도 줄여도 돼요?"

"물론이지."

호진이가 스타트를 끊으니 소심한 성격의 윌리엄도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었지만 릴리도 유진이도 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여기니 도진은 그것을 지켜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서, 도진은 문월고에 다녔고 문월고의 시설에서 체력 단련을 했었다.

문월고는 분위기가 결코 이렇지 않았다.

유치하다고 해야 할 만큼 마초적이었고 그렇기에 최소한 남들만큼의 무게를 들지 않으면 비웃음을 동반한 관심을 받기 일쑤였다.

-크하압! 크하아아압!!

괴성을 내지르며 또래를 넘어서는 무게를 '치던' 강치환을 포함한 일진 무리들.

그런 일진 무리들과 분위기 때문에 도진을 포함한 '초식'들은 이윽고 시설에서의 체력 단련마저 포기했어야 했다.

거기에 비하면 아이들의 모습은,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파악하여 다른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페이스를 조절하여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절로 흡족한 미소가 나오는 광경이었다.

쿵-

…한데 그 광경에, 이질적인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머리를 완전히 밀고 피부가 갈색으로 탄 거구의 중년인이었다.

훅-

진한 땀내가 풍기는 그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운동을 한 모습이었다.

190에 달하는 키에 근육으로 꽉 들어찬 어깨는 떡 벌어져 사람이 올라타도 남을 만큼의 거구다.

거기에 두른 분위기까지 말 그대로 '짐승'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 중년인이, 도진의 일행 쪽으로 시선을 향하더니 혀를 날름이며 고개를 돌렸다.

"……."

도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 시선은 분명한 '품평'의 시선이었다.

소담과 유지은을 노린내가 나는 시선으로 훑고선 '맛있겠다'며 혀를 날름이고선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린 것이다.

유지은은 가치없는 짐승의 시선으로 여겼기에 흘려 넘겼고 소담 또한 익숙한 시선이었기에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그래서 도진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시선이었다.

내 울타리에 있는 사람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는 것을 도진은 그냥 넘길 만큼의 호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다만 그렇다고 해서 다가가 쥐어팰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저씨, 눈을 왜 그렇게 떠요?

…라고 따지면서 쥐어패면 오히려 도진이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뭔가 확실한 건수가 없는 한 마음 속 데스노트에 얼굴을 저장해두는 게 지금으로썬 최대였는데, 중년인은 그런 도진의 신경을 더욱 거슬렀다.

철컹!

그가 벤치 프레스를 준비했다.

특수 제작된 봉에 쇳덩이를 기가 질릴 만큼 채웠는데, 그 무게가 무려 380kg에 달했다.

무공으로 인해 사람들의 평균 능력이 올라갔다 해도 어마어마한 무게였으며 웬만큼 운동을 한다 해도 엄두를 못 낼 무게였다.

무공이 없던 시절엔 대회에서나 볼 법한 무게였으니 말이다.

중년인은 그만큼의 무게를 달고선 바벨을 들었다.

"크아아압! 끄으으으윽!!"

온 사방에 울려 퍼질 소리를 내면서 바벨을 올렸다 내린다.

그것을 다섯 번 반복하고서 바벨을 놓아 버렸다.

콰아아아앙!

"힉!"

윌리엄이 깜짝 놀라 누나인 릴리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유진이와 호진이도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놈 참 매를 버는구나.

위지혁의 말대로였다.

그야말로 가지가지하는 인간이었다.

이쯤 되면 한 소리할 명분은 되었는데 심지어 하나가 더 추가됐다.

"후우."

중년인은 그걸로 끝이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른 기구를 찾아 움직인 것이다.

땀이 그대로 묻은 기구를 놔두고.

그래서 도진은 망설임없이 나섰다.

"저기요."

"……."

도진의 목소리에 거구의 중년인이 고개를 도려 도진을 응시했다.

뭐냐는 그 시선에 도진이 기구를 가리켰다.

"기구를 썼으면 땀은 닦고 가셔야죠. 기본 에티켓 아닌가요?"

"……."

중년인의 짐승 같은 눈동자에 사나운 기가 어린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기세에 눌려 몸을 떨 정도.

그러나 당연히 도진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을 하셔야죠?"

오히려 도발하듯 한 마디를 더 던질 뿐.

중년인의 눈동자가 더욱 흉포한 기세를 띠었지만 행동은 없었다.

다만 그렇게 잠시의 대치 상태가 이어지는 사이 또 한 명의 남자가 들어와 분위기를 바꾸었다.

"닦아."

"아, 예. 사장님!"

멀끔한 차림의 젊은 남자는 중년인의 앞뒤 다 자른 말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빠르게 움직여 벤치 프레스의 땀을 깔끔히 닦았다.

중년인은 그것을 확인도 하지 않고 다른 운동을 시작했다.

-흑도의 승냥이 같은 놈이로구나.

뒷골목에서 알량한 힘으로 군림하는, 그래서 더 흉포한 자를 보는 듯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류였다.

허나 그것을 징치하기엔 또 명분이 부족해져 버렸다.

그 태도와 달리 도진이 지적한 것을 실행하긴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자리로 돌아왔는데, 사건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크웁! 크아아아아압!!"

중년인은 그 뒤로도 어마어마한 무게를 '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기가 질릴 무게로 웨이트를 하며 괴성을 내질러 분위기를 흐리는 것이다.

여기에 일행으로 보이는, 뒤치다꺼리를 하는 젊은 남자에게도 운동을 시키며 윽박질렀다.

"그 정도 무게 가지고 되겠어?! 사내 새끼가 근성이 있어야지! 더 채워!!"

"예! 예, 사장님."

"이 정도도 못해서야 앞으로 어떻게 중요한 일들을 할 수 있겠나! 엉?!"

잔뜩 기가 죽은 남자는 중년인의 잡아먹을 듯한 지적을 받으며 기구의 무게를 더하는 모습을 반복했다.

명백히 오버트레이닝에 죽을 기세로 기구를 드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저게 그 유명한 갑질이라는 것이로구나.

-예. 그런 것 같네요.

사장님이라는 호칭도 그렇고 이 주말에 헬스장까지 끌려와 뒤치다꺼리를 하는 모습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흐음.'

도진은 생각했다.

분위기가 완전히 망쳐졌다.

이대로 더 운동을 할 상황이 아닌데, 그렇다고 그냥 나가자니 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도진이나 소담, 유지은이야 상관없지만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강하게 하고 말 것이니 '이기고 나간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주고 싶었다.

살려 줘.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여기에 중년인에 의해 한계를 넘어선 무게에 혹사당하는 남자의 시선이 도진과 맞닿기까지 했다.

'좋아.'

결론을 내린 도진이 벤치 프레스 앞에 서며 말했다.

"호진아."

"응, 형아?"

"형이 바벨 한 번 들어볼까?"

"응!"

헬스장에 와서 도진은 한 번도 기구를 드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도진의 그 말에 호진이는 물론이요 유진이와 릴리, 윌리엄, 소담과 유지은까지 일행 전체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도진을 보았다.

철컹-

도진은 바벨의 무게를 맞추면서 말했다.

"운동이란 건 자신의 역량에 맞춰서 해야 돼. 무조건 무거운 걸 든다고 해서 좋은 게 아냐. 그건 오히려 자신의 몸을 망치는 어리석은 일이야."

들으라고 한 말이었고 그 대상이었던 중년인은 분명히 그 말을 들었기에 서늘한 시선을 보내왔다.

그리고 도진이 맞춘 무게, 150kg을 확인하더니 비죽 입꼬리를 올려 비웃음을 만들어냈다.

그게 변명이냐고 말하는 것처럼.

도진은 그 비웃음에 피식 웃으며 바벨을 들었고.

"……."

"헉!"

비웃음 짓던 중년인은 턱이 빠진 듯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150kg의 바벨이, 도진의 검지손가락에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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