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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04화 (204/741)

203화

"헬스장?"

"네."

유지은이 예상외의 대답에 다시 물으니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헬스장.

무공과 함께 더욱 번성하기 시작한 시설이었다.

무림인이란 재능 있는 사람이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얻을 수 있는 칭호다.

허나 그런 재능이 없더라도 무공은 무조건 익히는 게 이득이었고 끊임없는 발전·연구 끝에 '보편적인 무공을 배울 권리'를 충족할 수 있는 무공들이 교육 과정에 포함되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가 무공을 배우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무공을 익히기 위한 몸을 단련하기 좋은 공간이 바로 헬스장이었다.

대부분의 무림인은 따로 헬스장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 시간을 차라리 고유의 수련법에 투자하는 게 이득이었고 설령 헬스장을 이용할 수 있더라도 그런 '고유의 수련법'을 혹여 들킬까 공개된 장소에서 제대로 된 수련은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무림인이 자신만의 수련장을 집에 마련하는 건 이런 이유가 컸다.

허나 일반인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숨겨야 할 것도 없고 제대로 된 환경에서 운동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하물며 무공으로 인해 평균적인 운동 능력이 올라간 환경에서 그런 능력에 걸맞는 본격적인 운동 기구와 공간을 집에 갖추는 건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었기에 더더욱 기구를 갖춘 헬스장이 선호되는 것이다.

이런 배경이었기에 도진이 헬스장에 간다는 대답은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소문이 나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진은 무려 검풍을 구사할 수 있는, 세계 무림을 기준으로 하여도 고수라 불릴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 고수는 헬스장에 가 봐야 크게 의미가 없으니까 말이다.

무림인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일반인들의 단련을 위주로 구성된 헬스장의 기구들로는 몸풀기 정도나 가능한 것이 지금 도진의 수준이었다.

실제로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말도 안 되는 중량의 기구들로 전신 운동을 몇 시간하는 것보다 연신극기공을 15분 수련하는 게 더 나았다.

도진은 유지은의 의문이 담긴 시선에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촬영을 헬스장에서 했거든요."

"아, 그거 봤어."

도진은 아직 간간이 웹예능 '바른 엔터 걸그룹 관찰 TV'에 출연하고 있다.

레드슈와 안티체리가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서서히 빈도를 줄이고는 있지만 사실상 지금 인기의 한 축인 도진이 갑자기 사라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 도진이 함께 한 촬영의 소재가 다름 아닌 헬스장이었다.

'일상 관찰 예능'인 만큼 소재에 관해선 고민이 필요했는데 안티체리의 막내 설하은이 굿 아이디어를 냈으니 바로 헬스장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시즌 비시즌이랄 게 없어서 항상 관리를 해야 했거든. 헬스장 덕을 많이 봤었어.

촬영 중 설하은은 그렇게 말했었다.

"헬스장 등록하겠다는 댓글 꽤 있던데."

"하하. 꾸준히 다니면 좋긴 하죠."

도진은 헬스장의 의의를 나태와 싸우기 위한 무기라고 보았다.

돈이 들어간 데다 '싫지만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 속의 나태와 싸우기 위한 무기가 되니 말이다.

물론 그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나태를 이기는 건 아니라는 게 함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무기의 승률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 촬영 때문에 또 헬스장에 가는 거야?"

"아뇨. 촬영은 다 끝냈어요."

"그러면?"

"그 방송을 동생들도 봤는데 그거 때문에 헬스장 가보고 싶다고 해서요."

"아, 그렇구나."

유지은은 이제야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이 동생들을 아낀다는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동네에 시설 좋은 헬스장이 있거든요. 사실 이사오고 나서 동네를 제대로 둘러본 적도 없고 해서 이 기회에 좀 둘러볼 겸 헬스장도 동생들 데리고 한 번 다녀오려고 해요."

사실 연호신공을 전수받은 유진이와 호진이가 헬스장을 이용할 필요는 없었다.

지하에 무려 명장 우벽진이 주도하여 만든 연무장도 있고 말이다.

허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도진은 위지혁의 지론에 따라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동생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했으니까.

그래서 이번 주말에 시간을 냈다.

유지은은 도진을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나도 같이 가도 돼?"

예상했던 말이었기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유지은이 함께 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었다.

입원했던 며칠간 도진은 빠짐없이 유지은의 병문안을 갔고 그때 유지은은 말했다.

-후배. 한 판 붙자.

-캐릭터랑 말투가 안 어울리는 거 같네요, 선배.

장난스레 대답하긴 했지만 유지은은 진심이었다.

마음에 변화가 온 그녀는 망설이고 있던 그 말을 결국 꺼낸 것이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기에 도진은 자연스레 답한 것이었는데, 거기에 변수가 있었다.

-지금은 말고 랭킹전에서 붙자.

-어, 랭킹전에서요?

-응.

랭킹전.

숭무고는 연말마다 1학년과 2학년 전체가 참여하는 비무 대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랭킹전'이라 불렀다.

3학년은 대부분의 행사에서 제외되니 실질적으로 숭무고 학생 전체가 참여하는 가장 큰 규모의 비무 대회다.

-나는 당연히 결승에 올라갈 거고 도진이 너도 올라올 테니까 거기서 붙으면 되잖아. 그렇지?

그녀는 너무나 당연하게 자신과 도진이 결승에서 붙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은 결코 자만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붙어 보고 싶은데, 아마 지금 붙으면 내가 질 거 같으니까. 열심히 수련해서 그때 붙자.

그건 아닐 거 같은데요.

도진은 그런 생각을 했다.

비록 유지은이 패한 마두를 도진이 이기긴 했으나 싸움이란 건 그렇게 수학 공식과 답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다.

순수하게 대련을 한다면 도진은 이 시점에서는 아직 유지은을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도진을 마주하며 유지은은 활기가 깃든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무공 수련 계속해봐야 의미가 있나 싶었는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달라졌어. 나보다 센 후배가 있으니까 한 번 이겨보고 싶은 그런 생각이 좀 든다고 해야 할까.

-음, 그건 좀 좋지 않은데요.

-왜?

-선배 같은 천재가 쫓아오면 무섭잖아요.

-와, 나 같은 미녀가 쫓아오면 기뻐해야 하는 거 아냐?

-생각해보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야!

겉으로는 불성실한 척을 했지만 사실 도진은 진지하게 그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단순히 도진을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대련하자는 게 아니었다.

지금 그녀는 도진을 '삶의 목표'로 삼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도진이 이미 우려했던 그녀의 삶이 도진에게 종속될지도 모르는 것이었으니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도진의 고민에 위지혁이 말했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뭐, 누군가를 목표로 하는 삶도 나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꼭 그렇게 생각할 것도 아니니라. 당장이야 좁은 의미로 너를 목표로 살겠지만 저 아이의 시야가 점점 넓어지면 네가 생각하는 종속된 삶이 아니게 되지 않겠느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스승의 말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지혁의 말대로였다.

어두운 밤 길을 잃은 배가 등대의 빛을 따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허나 길을 찾고, 이내 날이 밝으면 배는 다른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은가.

길을 찾을 때까지 당분간 도진이 유지은의 등대가 되어주는 건 결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면서 도진의 울타리가 유지은이 돌아올 '부두'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도진은 유지은의 랭킹전에서 붙어보자는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고 지금에 이르렀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지은은 헬스장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시야를 넓혀줄 겸, 새로운 의미를 찾기 위한 경험 중 하나를 만들어 줄 겸 도진은 유지은과 함께 헬스장에 가보기로 했다.

"그럼 내일 오전에 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해요."

"응, 알았어."

* * * *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온 유지은은 교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소담을 마주하게 되었다.

유지은은 천재답게 마주치자마자 그녀가 누굴 기다리는지를 바로 알았고 생각했다.

'조금 미안하게 됐네.'

소담이 기다리는 건 당연히 도진이었다.

많은 시간을 붙어다니는 두 사람이었으니 도진이 주말에 헬스장에 간다는 이야길 자연스럽게 들었을 테고 함께 가자는 약속을 했을 것이었다.

'아니, 어차피 동생들이랑 같이 가는 건데 내가 방해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미안한 건 아닐지도?'

데이트도 아니고 동생들과 함께 헬스장에 갈 뿐이니 그런 생각도 든다.

"안녕. 후배 기다리는 거야?"

"네. 안녕하세요, 선배. 오늘 같이 가신다고 이야기 들었어요."

"아, 그랬어?"

"네."

후배가 나한테만 이야기하는 걸 깜빡했구나.

소담의 말에서 유지은은 그걸 알게 되었다.

"일찍 나왔네. 선배도요."

얼마 지나지 않아 슈킨팍시 로드런너를 타고 도진이 나타났다.

"같이 가는 사람 있으면 얘기를 해줬어야지."

"아하하. 그러게요. 깜빡했네요. 죄송해요, 선배."

"아니 뭐 사과할 정도의 일은 아니고."

잡담을 나누는 사이 도진이 모는 슈킨팍시가 숭무동에 도착했다.

차로 이동하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여서 금방이었다.

"확인되었습니다."

입구에서 경계를 서는 무인들을 통하여 확인 절차를 거치고 도진의 집에 도착했다.

"어머, 어서와요."

"안녕하세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가니 도진의 어머니 서정원이 두 사람을 맞이해 주었다.

서태주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TJ 푸드로 일자리를 옮긴 서정원은 전문적인 업무를 막힘없이 처리하는 나날을 보내게 되고 또 연호신공을 익히면서 생기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활력이 넘치는 삶의 원동력이 된 아들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예쁜 '여자 친구들'을 데려왔으니 만면에 미소를 띠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정원이 정성스레 음료와 다과를 내놓았고 예의 '샤이닝 폭포'가 인상적인 거실에 앉아 있으니 준비를 마친 유진이와 호진이가 내려왔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너희들이 후배 동생들이구나. 반가워."

꾸벅 인사하는 유진이와 호진이의 모습에 유지은이 활짝 웃었다.

도진이 아끼는 동생들이라고 하니 조금 특별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소리없이 입술로만 '늘었어'라고 말하는 호진이의 옆에 선 유진이에게 도진이 물었다.

"릴리랑 윌리엄은?"

"곧 올 거래."

"그래."

릴리와 윌리엄.

도진이 이사오며 도와주었던 올리버 후작 부부의 아이들이다.

유진이와 호진이 또래였던 만큼 아이들은 금방 친해졌고 오늘 헬스장도 같이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잠시 다과를 즐기고 있으니 유진이의 말대로 근처에 사는 릴리와 윌리엄 남매가 금방 도착했다.

한껏 꾸민 듯 하면서도 복장은 트레이닝복인 게 귀여웠다.

특히 릴리는 금갈색 머리카락에 노란 트레이닝복이라 병아리를 연상케 해 특히 시선이 간다.

"안녕하세요."

병아리가 우아하게 인사했다.

유지은은 그 인사에 답하며 병아리의 시선이 도진에게 집중되는 걸 놓치지 않았다.

'완전 마성의 남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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