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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02화 (202/741)
  • 201화

    카아앙!!

    "……."

    날붙이의 격돌이 만들어내는 충격과 소리에 그녀의 눈이 떠졌다.

    그녀는 어느새 후배의 품에 있었다.

    후배는, 놀랍게도 한 손으로 남자를 튕겨내 버렸다.

    "부탁할게요."

    "으, 응."

    후배는 담담히 그녀를 학생들에게 맡기고 악마의 앞에 섰다.

    장팔이들과 귀신 가면의 무인들을 처리하고 희생자들의 응급처치까지 마친 뒤였다.

    그녀는 그만큼의 시간을 벌었다.

    악마는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도진을 마주했다.

    "이건 또 뭐하는 빌어처먹을 재능충이야?"

    "재능충 아닌데."

    악마의 말에 도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도진의 도발에 악마는 폭발하지 않았다.

    "찢어 주마!"

    이미 폭발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자루 단검을 들고 쇄도하는 악마를 마주하며 도진은 오히려 백설을 늘어뜨렸다.

    "후우……."

    길게 호흡을 조절했다.

    -한 번 보여주려무나.

    -예.

    위지혁의 말에 도진은 답하며 몸을 움직였다.

    팍!

    내공이 잔뜩 깃들어 있는 단검을 도진은 반 걸음 움직여 피했다.

    캉!

    "……!!"

    동시에 옆구리로 날아든 백설에 악마가 크게 놀라 뻗으려던 다른 손의 단검으로 막았다.

    강렬한 내공이 담긴 단검의 수비에 도진은 굳이 밀어붙이지 않고 물러났다.

    "새끼가!"

    자신이 위기를 느꼈다는 것에 분노한 악마가 다시 단검을 내뻗었지만 이번에도 도진은 겨우 반 걸음으로 그것을 피해 버렸다.

    캉!

    "!!"

    이어서 악마는 다시 한 번 가슴팍을 찌를 뻔한 백설을 다급히 단검을 교차해 막아내야 했다.

    "……뭐야? 도대체 뭐야?"

    흥분한 그가 중얼거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건, 납득하기 힘들었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상식의 영역'에 있었다.

    괴물 같은 천재 새끼들은 그런 게 가능한 놈들이었으니까.

    설령 그것이 지금의 그로서도 도무지 파악할 수 없을 만큼의 고등 수법이라 해도 억지로 납득할 수 있었다.

    당장 검봉마저 그런 모습들을 보여 주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회피를 하는 놈의 무기가 지척까지 다가와 있는 건 상식적이지 못했다.

    지척에 이르러서야 그 공격을 인식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공격하는 과정이 생략된 것만 같았으니까.

    회피를 하고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회피를 했는데 공격까지 한' 것만 같았다.

    더욱 미칠 것 같은 건,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면서도 도진의 기세가 고요하기만 하다는 거다.

    마치 그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으아아아아!!"

    눈이 뒤집힌 악마가 내공을 폭발적으로 일으키며 폭풍 같은 기세로 단검을 휘둘렀지만 도진의 기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치 뿌리를 깊이 내린 갈대처럼, 몰아치는 바람에도 자연스럽게 흔들릴 뿐 공격이 닿지 못했다.

    지금 그의 내공은 평상시의 두 배, 그러니까 마두급의 두 배가 되어 학생 수준에서는 그야말로 항거할 수 없는 태풍 같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왜! 왜!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태풍 같은 위력의 공격은 도진에게 유의미한 위협이 되지 못했다.

    스슷!

    오히려 잔뜩 호흡이 흐트러진 그의 몸에 혈선이 하나둘씩 새겨졌다.

    호흡과 함께 흐트러진 이성이 도진의 공격을 다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극한까지 집중하여도 지척에 이르러서야 잡아낼 수 있는 공격을 흥분한 이성으로 막아낼 수는 없었다.

    도진은 그렇게 승기를 잡아가면서도 고요한 기세에 변화가 없었다.

    지금 마두를 압도하는 것이, 유지은을 패배하게 만든 마두를 압도하는 것이 본래 그래야만 하는 '이치(理致)의 검'이었기 때문이다.

    도진이 지금껏 스승들에게 배운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이치요, 무리(武理)였다.

    피상적인 초식이 아니라 본질이자 깨달음의 근원이 되는 이치이자 무리.

    도진은 그것을 지금 모든 행동에 담고 있었다.

    본래 이것은 수련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무공을 익힌지 일 년도 되지 않은 육체로는 배운 것들을 모두 구사할 수가 없었다.

    아직 기초 무공만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그런 깨달음을 준비가 덜 된 육체로 최대한 구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배운 것을 가능한 범위에서 구사하기 위해선 신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찰나의 수 싸움이 연속되는 실전에서는 당연히 사용하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도진은 신안으로 확실하게 보았다.

    지금 남자는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과분한 힘을 행사하고 있었고 그로 인한 파탄이 드러나고 있음을 말이다.

    약물을 사용하여 증가한 힘에 그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공이라는 극한으로 발전한 기술은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완벽하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확실히 읽을 수 있었기에 도진은 유지은이 패할 정도로 강해진 남자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치의 검을 구사했다.

    익숙하지 않은, 과분한 힘의 사용은 필연적으로 파탄을 만들어내고 파탄이란 곧 틈이다.

    유지은은 흔들림과 공포로 인해 그 파탄의 틈을 읽지 못했지만 도진은 분명하게 읽었다.

    도진은 그 틈을 무흔잠영의 이치로 파고들어 천마검공의 무리로 찔렀다.

    시선을 잇지 못하게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틈으로 검이 휘둘러지니 마두로서는 공격을 성공시킬 수 없으며 도진의 공격의 과정을 볼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것이 압도적인 내공의 차이를 메꾸고 오히려 도진이 악마를 압도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으아아아아아!!"

    악마가 결국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는 기어코 이성을 잃고 두 자루의 단검에 모든 힘을 담아 떨쳐냈다.

    콰아아아아!!

    두 줄기 검풍이 뭉치며 파도처럼 일대를 휩쓸었다.

    폭증한 내공을 모조리 담은 일격.

    태풍을 연상케하는 파괴력의 그 검풍을 도진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피하지 않았다.

    두웅-!

    천마기를 일깨웠다.

    고요하던 도진의 기세가 난폭하게 날뛰며 커져갔다.

    그렇게 커지는 천마기를 도진은 백설에 담았다.

    천마검공(天魔劍功), 효아(哮牙).

    쿠오오오오오-!!

    억눌리던 천마기가 자유를 찾은 기쁨에 포효하며 쏘아져 나갔다.

    흉포한 천마기의 이빨은 조잡한 검풍을 찢어발기며 그 근원이 되는 악마마저 휩쓸었다.

    퍼퍼퍼퍽!

    "커흑."

    갈기갈기 찢어진 악마가 널부러졌다.

    도진은 말없이 다가가 피투성이가 된 악마의 팔다리 힘줄을 짓이겨 버렸다.

    "끄으아아아아아악!!"

    피가 터져 나올 정도로 온몸을 비틀며 고통에 놈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곧 드러난 두 눈을 번들거리며 도진을 노려보았다.

    "죽여 이 새끼야."

    광기에 찬 눈으로 말하는 악마의 가면을 도진은 벗겨냈다.

    그리고 입 안을 뒤져 어금니 안에 숨겨 두었던 독약마저 꺼내 버렸다.

    "죽이라고 이 새끼야!!"

    "싫은데?"

    발악하는, 가면이 벗겨진 악마의 두 눈을 마주하며 도진이 말했다.

    "죽이면 너무 편해지잖아. 너 같은 새끼는 살아서, 두고두고 고통 받아야지."

    빠각!

    그리고 자비없이 주먹을 내리쳐 남자의 이빨을 턱뼈와 함께 부숴 버렸다.

    "키, 키키키."

    남자는 그 꼴이 되어서도 킬킬거렸다.

    믿는 구석이 있는 모습이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곧 알 수 있었다.

    저벅저벅.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기척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도진이 잠가둔 철문 너머에서였다.

    그것이 출구였음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들이 아이스박스를 옮기던 길이었음을 생각하면 지금 다가오는 자들이 어느 쪽 편일지는 명백한 일이었다.

    "키, 키키키키."

    이가 모조리 부서진 남자가 웃었다.

    도진은 그 남자를 마주하며, 오히려 비웃고선 스스로 철문을 열어 버렸다.

    그리고 드러난 '지원군'의 정체에 남자가 두 눈을 부릅떴다.

    "괜찮습니까?!"

    지원군은, 민관 합동의 구출대였다.

    * * * *

    출구를 발견했으나 그것은 당장 생로(生路),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이 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도진이 발견한 출구는 본래 학생들이 아니라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던 개미파가 이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으니까.

    개미굴을 무너뜨릴 준비를 마친 개미파는 당연히 이런 때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출구를 사용하고 있었고 그것은 곧 저 출구를 나간 곳에 개미파의 무인들이 높은 확률로 모여 있을 거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빠르게 개미굴을 이탈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나가는 족족 소수로 찢어져 흩어졌을 확률은 얼마든지 있다.

    허나 반대로 일정 이상의 수가 모여 있을 경우 또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섣불리 출구를 이용해 나갈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금 해체당하고 있는 희생자들을 외면하고 이들마저 모조리 사라진 뒤 출구를 이용해 나가는 거다.

    하지만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최악'을 선택하려 해도 개미굴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니 이마저 불확실성이 남고 만다.

    이들이 모두 나가며 개미굴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말이다.

    도진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었고 그 순간 발견한 게 바로 '비상 연락망'이었다.

    개미굴에 들어오기 전 도진은 하나의 보험을 들었으니 다름 아닌 한유아였다.

    "어, 선배. 이번 토벌에 참가하시는 거였어요?"

    토벌에 관한 자료를 받은 도진은 그 안에서 익숙한 이름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것이 한유아였던 것이다.

    "뭐 직접 참가는 아니고 서포터 느낌이야."

    한유아는 민간 무림 군사 기업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림 관련 회사인 무림 범죄 대처 전문 용역 업체, 민간 무력 기업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진입조가 아닌 외부 조력조의 자격으로 이번 토벌에 관여를 하게 되었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선배한테 연락해도 되죠?"

    "물론이지. 이런 때 의지하라고 있는 게 선배잖아."

    바로 여기서 도진이 하나의 보험을 들었으니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한유아에게 연락을 하기로 하며 받은 비상 연락망이었다.

    비록 전생과 많은 부분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미래의 지식이 있는 도진은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비상 연락용 통신기로 거침없이 한유아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토벌의 특성상 정보를 외부에 유출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어 나지윤이나 오대용 등의 힘을 빌릴 수 없는 상황에서 금화의 영애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유아가 외부조로 참가한 건 그만큼이나 도진에게 있어 호재였다.

    그 보험이 상상을 넘어서는 개미파의 함정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었는데, 놀랍게도 출구가 가까워지자 방해 전파가 옅어지며 연락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도진은 희생자들을 구하기 위해 나설 수 있었다.

    작업실의 인간 이하의 것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여기에 전자식이 아닌 수동으로 잠금 장치를 거는 거대한 철문만 잠글 수 있다면 위치 정보와 함께 전송된 구조 신호를 받은 한유아에 의해 구출대가 빠르게 올 것이었으니까.

    길어도 10분만 버티면 된다는 계산이었고 악마 가면을 쓴 간부가 등장하는 변수가 있었지만 그 계산은 결국 들어맞았다.

    -충격! 대한민국에서 암약하는 거대 흑도 조직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대한민국은 새벽에 있었던 토벌 작전으로 인해 크게 떠들썩해졌다.

    현장에서 움직인 인원만 300여 명이 넘었던, 무림 전담 타격대에 민간 무력 기업을 넘어 민간 무림 군사 기업까지 참여한 민관 합동의 대규모 토벌 작전이 대서특필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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