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악마 가면을 쓴 마두는 두 자루의 단검으로 연신 유지은의 검을 두들겼다.
카카카캉!
그는 유지은보다 훨씬 긴 두 팔을 십분 활용했다.
두 자루의 단검을 유지은의 사정거리 밖에서 일방적으로 휘둘렀다.
그의 속도는 유지은보다 위였으며 심지어 힘에서도 우위에 있었다.
'…내공만이 아니라 육체 능력도 위야.'
무공을 수련한 절대적인 시간의 차이는 내공의 차이를 가져온다.
현대 무림의 것들보다 한 차원 높은 무공을 익힌 유지은이었지만 환경적 요인까지 더해져 세월의 격차를 완전히 좁히진 못했다.
여기에 육체를 '깎아낼' 정도로 단련을 한 그는 육체 능력에서도 유지은의 위에 있었다.
카캉!
심지어 그는 마두답게 단검에 내기(內氣), 그러니까 신외지물(身外之物)에 내공을 주입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기까지 했다.
몸 속의 내공을 무기에 주입할 수 있다는 건 그렇지 못한 자들을 상대로 할 때 압도적인 우위를 보장한다.
그러니까 똑같은 무기를 휘두른다 해도 내공이 깃들어 있다면 더 강한 충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물리력'을 부여하는 것이 무기에 내공을 주입하는 경지인 것이다.
내공은 물론 육체적으로도 앞서는 조장은 그 힘과 사정거리까지 철저하게 활용하여 유지은을 몰아쳤다.
카카캉!
단검 두 자루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긴 리치를 이용, 거리를 주지 않으며 일방적으로 공격하는데 내공을 주입하여 파괴력까지 높인 그 공세는 한 수 한 수가 슬래지 햄머를 내리치는 듯한 힘까지 담고 있다.
웬만한 수준의 무림인은 감히 받아낼 수 없을 만큼의 공격.
무림인이 그러하니 학생 수준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 공격을, 유지은은 받아내고 있었다.
캉!
휘둘러진 단검을 유지은이 받아냈다.
마두가 들인 힘에 비해 소리가 크지 않았는데, 유지은이 오히려 먼저 검을 뻗음으로써 그 힘이 최대치가 되기 전에 부딪친 것이다.
여기에 격돌하는 순간 검을 절묘하게 비틂으로써 충격의 대부분을 흘리기까지 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도 정확한 기술. 그것을 실전에서 마두를 상대로 해낼 수 있는 것이 검봉 유지은이었다.
그녀 역시 무기에 내기를 깃들일 수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무기에 내기를 깃들인 상태를 유지하며 신기에 가까운 검술을 구사한다.
이것이 가능한 유지은이었기에 그녀는 실력에서 열세임에도 이 싸움의 승리를 확신했다.
캉!
수세임에도 공세에 나서는 형태로 먼저 검을 뻗음으로써 마두가 들인 힘만큼 효과를 볼 수 없도록 한다.
그리고 그나마도 검을 비틂으로써 충격을 흘리기까지 해 그녀는 이 한 수의 교환으로 아주 약간 '힘의 소모'에서 이득을 보았다.
카캉!
숨 쉴 틈 없는 격전의 연속에서 그 힘의 소모에서의 이득을 반복한다.
유지은의 두 눈동자가 신묘한 빛을 담고 반짝였다.
극도로 발달한 기술의 싸움인 무공은 그렇기에 '수 싸움'이 된다.
그리고 절대적인 재능을 가진 유지은은 이 수 싸움에 능했다.
눈앞의 마두는 분명히 '지금의 유지은'보다 강하지만, 그것은 무공에 조금 더 익숙할 뿐이지 유지은보다 무공을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마두는 스스로가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자신이 유지은보다 강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알 뿐, 이 '수 싸움'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유지은은 철저하게 계산된 수 싸움을 통해 그가 가진 이득, 체력과 내공 등을 소모하게 만들어 정신을 차렸을 때 어느새 수세에 몰려 있음을 자각하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이내 승리를 가져가는 것.
그녀는 그런 싸움을 유도했고 마두는 그녀가 짠 판 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후욱."
그리하여 이내 그의 체력과 내공의 소모가 온존한 유지은에 비해 열세를 띠게 되었을 때, 승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유지은은 승부에 나섰고.
캉!
"……!!"
그녀는 자신이 짠 판이 깨지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 * * *
검봉 유지은에겐 도진의 신안(神眼)과 비슷한 능력이 있었다.
특별한 어떤 무공이 아니라 천부적인 재능이 가져다 준 능력이다.
무공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라고까지 할 정도의 그녀였기에 가진 능력 이상으로 무공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 가능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수 싸움'을 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영역에 있는 마두를 이길 수 있다 말한 것도 그런 재능을 바탕으로 한 판단이었다.
그녀가 그녀보다 강한 사람을 상대로 한 대련에서 승리를 거두곤 했던 '수 싸움'으로 판을 만들고 이끌어 나갔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싸움을 그녀는 언제나처럼 완벽하게, '최선'으로 이끌었고 이내 승리를 목전에 두게 되었다.
그녀는 방심하지 않고 승리를 결정짓기 위한 마지막 한 수를 내뻗었고, 그것은 계산 이상의 힘으로 받아치는 마두에 의해 실패했다.
캉!
남은 내공을 모조리 짜낸 듯한 강력한 공격에 유지은은 멀찍이 밀려났다.
계산과 달랐지만 유지은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직 그 한 수를 위해 마두는 큰 손해를 보았으니 유지은에게 있어 손해가 아니었다.
오히려 큰 이득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일말의 변수조차 남기지 않을 만큼 방금의 한 수로 마두는 내공을 소모하고 말았으니까.
허나 마두에겐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었다.
우득-!
여유가 생긴 마두가 무언가를 깨물었다.
"……!"
앞서의 경험으로 유지은은 일순 그것이 자살을 위한 독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쿠구구구구궁!
"……!!"
무언가를 깨물어 삼킨 마두에게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놀랍게도, 마두의 내공이 갑자기 폭증했다.
안 그래도 유지은을 압도하던 내공이 처음 보았을 때의 두 배는 될 정도로 늘었고 그 기세에 유지은은 일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이길 수 없다.
유지은의 무공에 대한 압도적인 재능은 내공이 두 배로 불어난 마두의 역량마저 단번에 측정해낼 수 있었고 그 값이 유지은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까지 알려 주었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최선 이외의 답을 내려본 적이 없던 유지은은 답을 찾지 못해 여전히 굳어 있었고 마두는 그런 유지은의 틈을 노리지 않고 킬킬 웃었다.
"씨발 존나 불합리하잖아. 나는 30년을 피똥 싸면서 무공을 익혔는데, 그런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재능 타고난 년이 더 세네? 이 씨발 엿 같네?"
고개가 모로 기운다.
"근데 뭐 사람 죽으란 법은 없더라. 세상 참 좋아졌어. 이런 약도 생기고. 그치?"
말이 좀 중구난방이다. 그러나 그 안에 필요한 정보가 있었다.
'…내공을 늘리는 약.'
내공이란 게 시간에 버금가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를 가지는 만큼 내공을 늘리기 위한 연구에 대한 투자는 천문학적이며 국가 단위로 진행되고 있다.
허나 그 성과는 더딘 편이었다.
편법적으로 내공을 폭증시키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후유증 또한 심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몸을 망치는 오버트레이닝처럼, 과다하면 독극물이 되어 버리는 산소처럼 인간을 망가뜨린다.
눈앞의 마두는 그런 약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런 약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붕괴하지 않는다는 거다.
오히려 정말로 내공이 늘어난 것처럼 자유자재로 그것을 운용하고 있다.
이 또한 유지은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해볼까?"
훅!
마두가 몸을 날렸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내공은 폭발적인 신체 능력의 증가를 가져오고 그것은 이미 알고 있던 대로 유지은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있었다.
쾅!
억지로, 겨우 빗겨냈으나 충격을 다 해소하지 못한 유지은의 자세가 무너졌다.
쾅!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어지는 공격을 유지은은 놀랍게도 한 번 더 흘려냈다.
무너진 자세를 억지로 바로하지 않고 힘의 방향을 바꾸어 흘려냄으로써 공격을 흘림과 동시에 자세를 바로 잡는 놀라운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마두에겐 오히려 그것이 괴물같이 보였다.
이 나이에 이 정도라니. 앞으로 10년, 아니 5년만 지나도 얼마나 강해질지 짐작도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진짜 존나 부러울 정도야. 검봉이라고 했지? 가지고 싶네."
입을 비죽이 찢는데 혐오감보다 공포감이 더 크게 엄습했다.
그가 말하는 '가지고 싶다'가 성욕이 아니었기에.
그는 가지고 싶은 것을 망가뜨림으로써, 단검으로 갈기갈기 찢음으로써 만족을 느끼는 사이코패스였기에 유지은을 한 점 한 점 저며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검을 쥔 손을, 휘두르는 팔을, 허리를, 다리를.
모조리 갈기갈기.
유지은은 그 충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남자의 기세에 이를 악물고 내공을 일으켰다.
훅!
유지은이 일으킨 내공은 고스란히 검을 통하여 뻗어나가 물리력을 행사했다.
내기를 깃들이는 경지를 넘어 외부에 행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구사할 수 있는 것.
바로 검풍이었다.
오래 끌면 필패였다.
그렇다면 가진 가장 강한 수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고 유지은은 지근거리에 있는 지금 최선의 한 수를 구사한 것이었다.
검풍의 파괴력은 그만큼의 내기를 무기에 깃들이는 것보다 낮지만 어차피 사람을 상하게 하는 데엔 기준 이상의 힘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칼날바람이라 할 수 있는 검풍은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으며 그 대처가 까다로운 수단이었다.
찰나의 순간 검풍은 마두를 덮쳤다.
허나 폭발적으로 내공이 증가한 그는 일종의 각성 상태로 그 찰나를 길게 늘인 것처럼 보고 있었고 즉시 대응했다.
퍼퍼퍼퍽!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었다.
그렇게 된 쪽은, 유지은이었다.
'아…….'
주르륵.
피가 흘렀다.
팔, 다리, 몸, 얼굴까지.
흘러내린 피는 눈에 고여 흑백의 세상을 검붉게 물들였다.
혹여 빈틈이 될까 봐 그 피를 닦지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뜬 유지은을 마주하며 마두가 킬킬거렸다.
"맹호천참(猛虎千斬)이란 초식이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초식이야."
그것은 검풍이었다.
단순한 검풍이 아니라 초식으로써의 검풍.
마두는 유지은의 검풍에 검풍으로 구사하는 초식으로 맞대응하여 공격을 파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녀까지 갈기갈기 찢은 것이었다.
압도적인 내공의 차이가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저기 드러난 새하얀 피부가 처참히 갈라져 피를 쏟아내는 그 모습에 마두는 만족하여 킬킬거렸다.
그리고 유지은은 그것이 동반하는 고통과 생소한 감정에 몸을 떨었다.
그 생소한 감정이 유지은은 이제 무엇인지 확실하게 안다.
공포.
피가 빠져 나갔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공포가 유지은의 몸을 더욱 떨리게 만들고 있었다.
'패배'는 여러 번 겪어 보았다.
그녀의 수련 상대이자 대련 상대는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였기에.
허나 유지은은 그것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패배라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머지 않은 때에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넘어설 수 있을 테니까.
그저 무공에 익숙해지기 위한 과정 이상의 의미가 아니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패배했다.
그리고 그 패배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참혹한 죽음을 가져올 패배였다.
그 의미를 유지은은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의미를 알게 되어 떨리는 몸은, 그녀가 아는 최선을 실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마두가, 악마가 천천히 다가온다.
피로 번들거리는 단검으로 그녀의 몸을 갈기갈기 찢기 위해.
그녀는 알고 있었다. 가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알고 있는 걸 도저히 몸이 실행하려고 들질 않는다.
제 아무리 움직이라고 명령해도 듣지 않는 몸에 그녀는 무인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두 눈을 질끈 감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말았다.
'살려 줘!'
속으로 소리쳤다.
순간 떠오르는 건 그녀가 한 수 아래라 생각했던, 흑백의 세계에 색채가 깃들어 있던 후배의 얼굴.
그리고 그 후배의 손길이, 거짓말처럼 그녀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