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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00화 (200/741)

199화

저벅.

앞으로 한 발 나서는 건 학생들의 선두에 선 유지은이다.

검봉으로 이름 높은, 학생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실력과 존재감을 가진 그녀는 과연 공동 전체를 가득 채울 만큼의 존재감을 발휘하여 작업 중이던 흑도 무인 전체의 시선을 모았다.

어둠이 내린 통로에서 등장한 학생들을 본, 메스를 움직이던 자들의 시선이 귀신 가면의 무인에게로 향했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한데 학생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으니 섭음술이었다.

"뭐야, 저것들."

"격리되어 떠돌다 이곳까지 온 모양입니다."

귀신 가면을 쓴 무인의 말에 질문을 던졌던 메스를 든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3조 애들이 일을 똑바로 못했나 보구만."

"시스템을 셧다운한 탓에 동선이 꼬였던 듯합니다."

이곳은 비상 탈출로와 이어진 마지막 '작업실'이다.

본래 외부인이 들어와선 안 되는 곳이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이었는데 개미굴 전체를 관리하던 시스템을 삭제하고 관리자들마저 대부분 빠져 나간 탓에 애송이들이 들어오는 일이 생겨 버렸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애송이들이 개미파의 정예 열 명을 이긴다는 상황은 애초에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뭐, 실적이 제 발로 굴러 들어왔으니 나쁠 건 없겠지."

메스를 든 자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했다.

그들에게 있어 해체할 수 있는 인간은 돈이 되고 실적이 되는 고깃덩이와 같았다.

메스를 든 자들은 내장팔이, 일명 장팔이로 불리는 자들이며 나름 기술자로 대우받는 '무림인'이었다.

거침없이 인간을 해체할 수 있으며 그에 관한 지식까지 가지고 있으니 일반 흑도 무인보다 실력이 좋았고 실제로 윗 계급이었다.

그런 자들이 세 명에 일을 거들고 있는 귀신 가면을 쓴 자들도 보통 이상의 실력을 가진 흑도 무인이다.

그들도 '검봉'을 안다. 학생의 차원을 완전히 넘어선 실력을 가졌다고 들었다.

실제로 1:1 '대련'이라면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패배할 것이다.

검풍을 구사할 수 있는 고수란 그만큼 대단한 영역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실전이며 그들은 흑도의 무인이다.

검풍을 구사할 수 있는 고수는 분명히 위협적이지만 학생인 이상 내공의 한계가 분명하다.

여기에 검봉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은 경험도 없고 겁먹는 게 명백히 보이는, 실력과 관계없이 허수아비에 불과한 애송이들이다.

애송이들을 빠르게 제압하고 차륜전(車輪戰), 이쪽의 전력을 온존하며 쪽수와 경험으로 밀어붙이면 검봉이라 해도 쉽게 무너질 것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학생들과 마주친 귀신 가면의 무인들도 했었다.

"반반한 애들인데 몸보신을 못하는 게 좀 아쉽긴 하지 말입니다."

"왜. 뭣하면 아랫도리만 잘라서 따로 챙겨줄까?"

"에이, 저한테 그런 취미는 없지 말입니다."

인간 같지 않은 소리를 하며 그들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학생들을 포위하기 위해 움직였다.

혹여 도망갈 수 있으니 점점 거리를 좁히는 그들의 뒤로, 돌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뭐, 뭐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섭음술도 잊고 고개를 돌리는 그들의 눈에, 비상 탈출로의 두터운 쇠문을 걸어 잠그는 도진이 들어왔다.

'어, 언제?'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 그들을 마주하며 도진의 입꼬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도진은 '학생들' 사이에 없었다.

-어둠이 내린 곳은 우리의 영역이다.

일부러 광량을 제한하고 짙은 음영을 만든 개미굴은 흑도의 영역이 아니라 사신 장호의 영역이었고 그 사신의 진전을 이은 도진의 영역이기도 했다.

유지은을 필두로 한 학생들이 일부러 더욱 존재감을 크게 하며 모습을 드러내 시선을 집중시키는 사이 무흔잠영을 최대한 펼쳐 은밀히 이동, 뒤를 잡은 것이다.

목적은 하나.

출구로 이어지는 두터운 쇠문의 잠금장치를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하. 재롱을 부리는구만?"

장팔이 중 하나가 코웃음을 쳤다.

이름 있는 흑도 조직이 대부분 불문율로 여기는,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음으로써 정체를 추측할 수 없게 만드는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이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의 이유는 보통 하나다.

살인멸구(殺人滅口).

죽여서 정체를 들킬 일 자체를 없게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건방지게 문을 잠그고 뒤를 점한 애송이.

그리고 문이 없는 통로를 막아 선 애송이들까지.

역으로 그들을 포위한 형세가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꼴에 명문 무림고를 다니며 축복받은 재능으로 또래를 압도하는 무공을 익혔다 자부하겠지만 그래봐야 학생 수준.

그들의 경험과 잔혹함을 보여주면 배운 무공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무너질 것들이다.

흘끗.

장팔이 중 하나가 턱짓으로 도진을 가리켰다.

죽이라는 그 턱짓에 귀신 가면의 무인 하나가 나섰다.

훅!

일말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귀신 가면의 무인이 도를 휘둘렀고.

스각!

도진과 교차하는 순간 귀신 가면의 무인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끄아아아아악!!"

푸슈우우우우-!

나뒹구는 무인의 사지에서 동시에 피가 뿜어졌다.

도진이 그 교차하는 순간에 손발의 힘줄을 잘라 버린 것이었다.

후두둑-

도진은 백설을 허공에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냈다.

백설은 새하얀 검신에 더러운 종자의 피가 묻는 걸 거부한다는 듯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았고 그것은 도진의 앞에 마치 혈선처럼 그어졌다.

"……."

사위가 조용해졌다.

자신과 상대의 역량을 지레짐작하는 멍청한 것들.

내려앉은 침묵을 두른 듯 도진이 서늘한 비웃음을 띄운 채 거리를 좁혔다.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그저 백설을 늘어뜨린 채 거리를 좁히는 그 모습은 그래서 더더욱 공포스러운 것이었고, 장팔이 중 하나가 다급히 해체하던 사람의 목에 메스를 들이댔다.

"…더 이상 다가오면 다 죽여 버릴 거다."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협박.

…이라고 생각했지만 도진에겐 아니었다.

"죽여 봐."

"…뭐라고?"

"죽여 보라고."

아무런 여지가 보이지 않는 대답이었다.

억지로 참거나 허세를 부리거나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 어떤 의미조차 두지 않는 대답.

실제로 도진은 그랬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죽는 건 의미가 없다.

어차피 살리지 못하니까.

복수조차 하지 못하고, 죽여 버려야 할 놈의 뜻을 이뤄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마찬가지다. 이것은 감정을 떠나 협상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일이었다.

더더욱.

"그 사람, 이미 죽어 버렸거든."

"……헉!"

짐승조차 되지 못할 놈이 메스를 들이댄 건 이미 숨이 끊어져 버린 희생자였다.

그것이 불러온 분노가 도진은 물론이요 학생들의 기세를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들은 전력을 잘못 계산했다.

분명히 숭무영재고의 학생 다섯은 귀신가면의 무인 넷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흔히 말하는 '학생'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 심지 또한 굳건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그 중 한 명이 도진에 의해 손발이 잘렸으며 기세가 학생들에게 넘어감으로써 공포를 억누르고 제 실력을 발휘할 상황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장팔이들을 훨씬 넘어서는 실력을 가진 도진과 유지은이 있다.

탈출로조차 막혔으니 그들의 운명은 정해진 셈.

도진의 계산대로였으나.

"이건 또 뭐야?"

훅-

갑자기 피냄새와 함께 등장한 변수가 그 계산을 오답으로 만들어 버렸다.

"……!!"

유지은과 학생들이 다급히 거리를 벌렸다.

그들이 지나온 길에서 피칠갑을 한 악마가 양손에 '고깃덩이'를 질질 끌며 등장했다.

그 악마를 본 장팔이와 귀신 가면 무인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키는 190이 넘어 보이는데 몸은 비쩍 말랐고 악마 가면을 써 짙은 음영 아래 진짜 악마처럼 보인다.

일견 툭 치면 부러질 듯 허약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무서우리만치 집요한 성격과 노력으로 '깎아낸' 것이다.

배운 무공의 위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말 그대로 육체를 깎아낸 결과가 그 모습이었다.

당연히 아무나 할 수 없으며 극한의 고통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과정이었으니 그것을 해낸 자의 무공은 결코 약할 수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기세만으로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그는 강했으며, 실제로 그는 기세에 걸맞는 조직의 간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 조장님."

"그래. 고기 가져왔다."

3조 조장을 맡고 있던 그는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난도질당한 피투성이의 두 사람을 바닥에 던졌다.

두 사람의 너덜너덜한 복장을 알아본 학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두 사람은 다름 아닌 토벌대의 무인이었던 것이다.

보이는 건 두 사람이지만 그 외의 사람들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란 짐작을 하기에 충분했다.

"다른 조원들은……?"

"나갔어. 근데 뭐 필요없잖아?"

의도가 담긴 장팔이의 물음에 3조 조장은 비죽 웃고선 가면 속 유일하게 드러난 두 눈으로 학생들을 응시했다.

"내 취미 생활을 양보할 이유도 없고 말이야?"

악마들 사이에서도 악마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을 회뜨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가 그였기에.

피로 번들거리는 단검을 가면 속에서 핥는 그의 모습은 위협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게 명백히 보여 학생들의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들었다.

'좋지 않아.'

도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의도적으로 학생들의 기세를 끌어올리기 위해 만든 판이 변수의 등장으로 인해 깨져 버렸다.

분노와 기세로 억눌렀던 공포가 다시 학생들을 흔들고 있었다.

모든 것을 떠나 지금 등장한 흑도 무인의 실력이 장팔이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진짜'라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흑도가 흑도라 따로 불리는 무림의 한 축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

무림맹에 뒤지지 않는 무력을 가지고 흑도를 떠받치는 '마두(魔頭)'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무인이 지금 나타난 광인(狂人)이었다.

그야말로 격이 다른 위기 상황.

퇴로는 스스로 막았고 애초에 그 퇴로가 생로가 아닌 사로(死路)이기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마두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저건 내가 맡을게."

나선 것은 검봉 유지은이었다.

유지은이 한 발 나서며 기세를 일으키자 학생들을 압박하던 기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놀랍게도 유지은은 스스로의 기세로 마두의 기세를 받아친 것이다.

마두, 3조 조장의 태도도 조금 변했다.

"뭐야. 좀 하는 게 있었네?"

유지은은 검을 뽑아 악마 가면의 조장을 경계하며 말했다.

"내가 이길 수 있어. 나머지는 맡기면 되는 거지?"

도진은 유지은의 말에 네, 하고 힘주어 답했다.

"부탁드릴게요."

격이 다른 마두라고 하지만 유지은 또한 격이 다른 천재다.

언뜻 보기에는 유지은이 열세로 보이지만 확신을 가진 그녀의 태도를 보면 믿어볼 만하다 판단했다.

그녀에게 마두를 맡긴 도진이 학생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움직이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고, 그건 여러분들의 선행이 되는 거예요. 움직여요."

공적이 아니라 선행.

그 단어 선택과 말에 담긴 힘이 학생들이 이를 악물고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무섭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공포는 억눌러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공포만큼이나 큰 것이 이 참혹한 현장에서 희생되고 있는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다는 사람다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학생들은 무기를 꽉 쥐고 도진의 뒤를 따랐다.

협행(俠行)이자 선행(善行).

제 입으로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현대 사회였으나 그 가치는 여전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죽여!!"

장팔이들을 필두로 한 개미파의 무인들이 살기등등하게 무기를 휘둘렀으나 숭무영재고의 학생들 역시 공포를 이겨내고 무기를 휘둘렀다.

카캉!

숭무영재고에 입학하기 위해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 왔다.

숭무고에 입학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노력했고 더욱 간절했다.

그런 학생들의 노력의 결실이자 정수인 무공은, 사람이길 포기한 흑도 무인에게 뒤쳐질 수 없었다.

그들은 훌륭하게 흑도 무인들을 토벌했고 도진은 그들의 협행이자 선행이 빛을 바래지 않도록 장팔이들의 팔다리 힘줄을 끊어 놓았다.

빠각!

"꺽."

턱뼈를 아작내 자결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희들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 죽으면 안 되지."

그렇게 사회의 해악을 정리한 도진은 학생들과 함께 피해자들의 뒷수습을 하며 유지은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검봉이 마두의 공격으로 인해 수세에 몰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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