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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98화 (198/741)

197화

"아……?"

그녀를 끌어올려준 담담한 목소리는 다름 아닌 도진의 것이었다.

그녀의 영혼에 스며드는 목소리는 왜 그 존재를 잊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분명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도진은 백설을 늘어뜨린 채 학생들을 지키듯 다섯 명의 귀신 가면을 쓴 흑도 무인들 앞을 막아섰다.

"할 수 있죠?"

"……응."

그녀의 능력을 확인하는 말에 유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처럼 생소했던 감정이 사라지고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를 안심시킨 목소리가 이번엔 학생들에게로 향했다.

"저기요, 아저씨들."

생소한 호칭과 목소리에 담긴 강렬한 힘이 주저앉았던 학생들에게로 향했다.

네 명의 남학생과 한 명의 여학생이 고개를 들어 도진을 보았다.

딱히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았음에도 도진의 등은 흉악한 무인들의 기세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저 다섯 명, 내가 이길 수 있어요. 여러분들 지켜드릴 수도 있어요."

"아……!"

도진의 말에 귀신 가면의 무인들은 가소롭다는 감정을 두 눈에 담은 채 그저 지켜보았다.

어디 얼마든지 재롱을 부려 보라는 눈빛이었다.

도진은 아예 몸을 돌려 학생들을 마주하며 말했다.

"그런데, 그것도 여러분들이 협조를 좀 해 줘야 가능한 일이란 말이에요."

"혀, 협조?"

여학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하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협조요. 그렇게 벌벌 떨면서 고개를 박고 있으면 눈 먼 칼 하나 하나까지 내가 다 막아줘야 하는데, 그건 힘들단 말이에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이 꽉 물고, 칼 꽉 쥐고, 일어나란 말이에요."

한 명 한 명, 도진이 강렬한 시선으로 눈을 맞추며 말했다.

공교롭게도 남은 학생들은 숭무영재고의 학생들이었다.

구면은 아니었지만 학교를 오며 가며 보았음을 깨달음을 통하여 트인 머리가 기억하고 있었던.

상상도 못할 잔혹한 장면에 눈물 콧물을 줄줄 흘렸으면서도 실습을 계속하겠다 말하던 때의 얼굴.

싸우던 무인들이 날붙이에 눈이 꿰뚫리고 내장이 쏟아질 때의 후회하던 얼굴, 그리고 말들.

도진은 그런 한심한 모습을 보인 그들이, 그렇게 될 정도의 심지밖에 가지지 못한 이들이 왜 억지로 실습을 계속하려 했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들은 그렇게 해야만 이름의 가치를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복장이 대단치 않음에서 여러가지 실적이나 혜택으로 숭무영재고에 들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숭무영재고에 들어왔기에 이들은 '실적'을 내야만 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실적이자 가치는 신용대출의 신용마냥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리 매겨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모험을 해서, 여기서 대부분이 포기한 실습을 무사히 마치면 그것은 크나큰 실적이 되어 그들의 '신용'을 높일 근거가 되어 줄 것이라 생각했기에.

금봉도 아니고 검봉도 아니며 폭룡도 아니고 잠룡도 아니다.

완벽하지 않은, 평범하게 노력하고 평범하게 발버둥치던 학생들이었다.

때문에 도진은 그들이 브리핑 후 도진을 뒷담화 했던 학생들임에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지 않았고 짐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도기(道器)로서의 도진은 아마도 전생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난도질당해 구출대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하게 됐을 그들을 구해주려 했다.

베풀 수 있는 것이라면 베푸는 것이 도기로서의 성정이었기에.

"걷는 것만 해요. 걸을 수 있는 길은,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 도진은 천마의 후계자로서 검을 들었다.

귀신 가면을 쓴 흑도 무인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허나 눈으로 너 따위가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도진은 행동으로써 답했다.

훅-

"……헉?"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도진은 가장 앞에 서 있던 흑도 무인의 간격 안에 있었다.

그는 크게 놀라 검을 떨쳐 도진이 파고들지 못하도록 했고 다음 순간 도진은 옆에 있던 무인의 허리를 크게 베어 버렸다.

"헉!"

허리를 베인 무인이 무기마저 버리고 두 손으로 옆구리를 틀어 막았다.

그러지 않으면 내장이 쏟아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한 명이 당해 버린 상황에 흑도 무인들이 경악하며 흉흉한 기세를 피워 올렸다.

방심하다 찰나에 한 명을 잃은 상황에 마음을 고쳐 먹은 것이다.

허나 도진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기습으로 한 명을 무력화시킨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고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무흔잠영을 이용한 심리전이었다.

지금 도진의 수준으로는 제대로 무공을 익힌 흑도 무인을 상대로 정면에서 무흔잠영을 통한 '암살'을 성공시킬 수 없었다.

심상세계라면 가능하겠지만 이곳은 육체의 한계가 있는 현실이었기에.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비장의 한 수를 사용했다.

한 순간의 허점을 노려 상대의 간격으로 파고들 수 있도록 무흔잠영을 구사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으로.

도진이 노렸던 흑도 무인은 자신의 간격 안으로 들어온 도진을 위험한 간격에서 깨달았고 빠르게 대응했다.

그 일련의 과정이 주변 네 명의 무인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그로 인해 생긴 틈을, 진짜 목적이었던 틈을 노려 도진은 또 한 번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여유가 있었지만 사실 지금 육체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한 수의 연계였다.

하지만 남은 네 명의 무인은 그것을 알 수 없었고 오히려 과도한 경계를 하게 되었으니 도진에겐 이 또한 이득이었다.

카강!

뒤에서 날붙이가 격돌하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진다.

도진이 단숨에 한 명을 무력화시키자 유지은이 안심하며 마음껏 날뛰는 소리였다.

일곱을 상대할 수 있었던 그녀였다.

여기에 벌벌 떨기만 하던 학생들 또한 도진의 말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으니 마음쓸 곳이 완전히 사라져 온전한 실력을 낼 수 있었기에 더더욱 기세가 거셌다.

그 기세는 또 도진에게 힘이 되었으며 도진을 마주한 흑도 무인 넷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여유가 사라진 네 명의 흑도 무인이 도진에게 덤벼들었다.

제대로 합격술을 배운 듯 네 사람은 한몸처럼 도진을 몰아붙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진은 밀리지 않았다.

훅!

전면의 흑도 무인이 몸으로 가렸던 창이 갑자기 튀어 나왔지만 도진은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귀신처럼 짙은 음영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오히려 기습을 가했다.

카앙!

전면의 흑도 무인을 노렸던 도진의 백설은 크게 놀라 도를 뻗은 다른 흑도 무인에 의해 막혔지만 이번에도 도진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 싸움은, 무조건 도진이 이길 싸움이었으니까.

전생에서 실패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토벌에 참여했던 건 '오지랖'이었다.

허나 그 오지랖이 대책없는 선의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래. 너는 이제 이 정도 오지랖을 부려도 될 만한 수준이 되었느니라.

도진의 물음에 천마 위지혁은 그렇게 대답했다.

스승의 보증이 있었기에 도진은 오지랖을 부렸던 것이고 그렇기에 이것은 힘없는 정의가 만들어내는 민폐이자 오지랖이 아니라 온전한 선행(善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도진은 스승의 보증을 참으로 만들기 위해 백설을 휘둘렀다.

전생의 사건 모든 것을 바꿀 순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전생에서보다 나은 방향으로 사건을 이끌고 싶었고 그 변수를 만들기 위해 천마기를 일으켰다.

두웅-!

"……!!"

도진이 휘두른 백설에 맞서려던 흑도 무인이 경악했다.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공포스런 무언가가 도진의 백설에 깃들었고 그것은 단숨에 이를 드러내어.

퍼퍼퍽!!

무인을 찢어발겼다.

근거리에서 몰아친 검풍(劍風)이었다.

검봉 유지은이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검풍을, 도진 또한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설마 검풍을 사용할 정도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또다시 허를 찔린 한 명이 무너졌고, 절반 가까이 수가 줄어 버린 흑도 무인들은 더 이상 이를 드러낸 도진을 막지 못했다.

훅-

광량이 적어 짙은 음영이 드리운 토굴은 사신의 무공의 기초가 되는 무흔잠영의 무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미 몇 번이나 보았음에도 흑도 무인들은 그 치명적인 이빨을 가진 도진의 움직임을 읽지 못했다.

그들이 읽을 수 있을 만큼 도진이 사신의 무흔잠영을 허투루 익히지 않았기에.

그들은 도진이 자신의 간격 안으로 들어온 뒤에야 반응할 수 있었고 그것이 그들의 선택지를 극단적으로 줄여 놓았다.

팟!

도진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대상이 된 흑도 무인은 다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1:1이라면 악수(惡手)가 되었겠지만 다른 둘이 백업을 해 줄 것이었기에 의도가 담긴 회피였다.

그 뒤를 쫓기 위해 도진이 몸을 날리자 양쪽에서 도가 날아들었다.

급히 몸에 제동을 걸고 피해야 할 상황.

그러나 도진은 상체를 뒤로 눕혀 그것을 피하면서 오른발을 축으로 몸을 회전, 다시 한 번 검풍을 쏘아내 우측 무인의 하반신을 피투성이로 찢어 놓았다.

그러고도 멈추지 않고 고스란히 기세를 이어 나가 검을 올려침으로써 왼쪽에서 도를 뻗은 무인의 상체를 갈라 버리기까지 했다.

"괴물 같은 놈!"

결국 혼자 남아 버린 흑도 무인이 참지 못하고 속에 있던 감정을 토해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무공을 배웠고 거들먹거리는 무림맹의 무인들을 상대로 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의 실력과 경험을 쌓은 진짜배기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무림맹 무인도 아니고 겨우 학생, 그것도 1학년에게 압도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1학년은…… 믿을 수 없게도 그 나이에 검풍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검풍뿐인가. 검을 맞댄 순간 느껴지는 힘과 내공은 집채만 한 호랑이의 이빨과 발톱을 마주한 듯한 공포감과 압박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을 담아 괴물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게 겨우 무림학교 고등반 1학년의 실력이라고? 내공이라고?

말도 안 된다. 저것은 그야말로 괴물을 품은 놈이었다.

"크흑!"

그는 자포자기하여 그저 전력을 다해 도를 휘둘렀고.

쾅!

그것을 도진은 정면에서 부숴 버렸다.

'미…… 친.'

천마기가 깃든 도진의 백설은 칼날이 아닌 칼등으로 그의 도를 부숴 버리고도 기세를 줄이지 않고 그의 갈비뼈를 으스러뜨려 놓았다.

쿠당탕!

그렇게 마지막 한 명의 흑도 무인까지 가슴팍이 함몰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모든 흑도 무인을 무력화시킨 도진은 몸을 돌렸고 그보다 빨리 흑도 무인들을 처리한 유지은의 신묘한 두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치 그 깊은 두 눈 안에 정말로 도진을 담아 버리려는 것처럼 유지은은 도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두 눈을 마주한 도진에게 유지은이 물었다.

"이제…… 어쩔 거야?"

유지은의 물음에 도진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우선은 저 사람들이 먹은 약의 시료부터 채취해야죠."

"시료……?"

"네. 망설임없이 자살할 정도의 사람들이 먹은 약이니까 가져가면 무언가 단서가 될지도 모르죠."

"…그렇구나."

유지은은 최대한 빠르게 흑도 무인들을 처리하기 위해 살수(殺手)를 펼쳤지만 도진은 그 와중에도 목숨을 끊지는 않았다.

한데 모두가 제압되자 그들은 남김없이 무언가를 깨물더니 죽어 버린 것이다.

무협지의 살수도 아니고 망설임없이 죽음에 이르는 약을 준비해 두었다 먹어 버렸다.

도진은 그렇게 죽어 버린 흑도 무인들의 입 안에 남은 것을 미리 챙겨 왔던 장갑을 끼고 채취하여 시료 봉투에 담아 밀봉했다.

본래 혹시나 증거가 될 마약을 채취하게 될지 몰라 지급 받은 것인데 이렇게 사용하게 됐다.

그리고 귀신 가면을 벗겨 그들의 얼굴까지 찍었다.

유지은은 그런 도진의 모습 또한 빠짐없이 두 눈에 담고 있었다.

시료 채취까지 끝나자 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지은이 다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답을 바라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도진이 말했다.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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