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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97화 (197/741)

196화

"……."

토벌대에 참여한 타격대의 부대장은 시야를 가득 메운 벽에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주르륵.

코가 쓸려 피가 흘렀지만 그 쓰라림조차 남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멍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찰나에 일어난 그것은 그야말로 통로를 막아 버릴 정도로 커다란 벽이 격발음과 함께 총알처럼 반대편 벽에 처박히는 함정이었다.

그리고 그 경로에 그가 있었다.

무림맹이 아니라 정부 소속이라 해도 무림 전담 타격대에서 10년이면 무림인, 그것도 강호인으로 대접받을 만큼의 경험과 실력을 인정받는다.

그런 그였기에 찰나의 순간 반응하여 몸을 뒤로 날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다'고 싫어도 깨닫고 말았다.

급작스런 움직임이었기에 충분한 속도가 붙지 않았고 눈깜빡일 틈도 없는 순간 그것은, 몸의 일부가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쏘아지는 벽에 짓이겨지고 말 정도로 치명적인 '느림'이었다.

안 돼. 죽고 싶지 않아. 살려 줘.

머리가 모조리 하얗게 새어 빠져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극도의 스트레스가 그를 덮쳤다.

그리고 갑자기 영혼을 잡아채는 듯 당기는 힘이 그를 당겼고 찰나를 또다시 찰나로 나눈 순간 죽음에 걸쳐 있던 몸의 절반이 탈출에 성공했다.

몇 초의 공백 후 그는 자신의 옷을 잡아챈 손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이 다름 아닌 낙하산, 검봉 유지은이 데려온 잠룡 김도진이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생생하게 체험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오롯한 감정으로 그득한 인사였다.

도진은 그 인사를 담담한 얼굴로 받았다.

무언가 유감이 있었던 게 아니다.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상황에 대한 대처부터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예."

마치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가 흠칫 놀란 얼굴로 대답했다.

도진의 말대로였다.

갑작스럽게 함정이 발동한 지금, 냉철한 이성으로 즉시 대처해야만 했다.

이미 일부 무인들은 한껏 신경을 곤두세운 채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방금의 함정은 격발음과 함께 작동했다.

한 번으로 끝날 거라 생각할 수 없었고 소리를 듣자마자 반응해야 살 수 있었기에 극도로 긴장한 것이다.

그 가운데 부대장은 인이어를 통해 통신을 시도했고 몇 가지 장비를 확인하더니 얼굴이 새하얘졌다.

"바, 방해 전파?"

방금의 함정은 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두터운 벽은 토벌대의 중간을 갈라 버렸다.

대장을 포함한 선두가 중간의 학생들, 그리고 뒤를 맡은 토벌대와 나뉘어 버린 것이다.

함정도 대비해야 했지만 우선 지금의 상황에 대한 대처도 해야 했기에 본능처럼 인이어로 통신하려 한 것인데 그것이 먹통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부대장이 중얼거린 말에 무인들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정부에서 토벌을 위해 지급한 특수 장비다.

EMP에도 면역이며 그 외 여러가지 기능이 있는데 방해 전파에 대한 대비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데 지금 그 장비의 통신이 먹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맵 스캐너 또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맵 스캐너는 파장을 퍼뜨리고 그 파장을 통해 주변을 '스캔'하는 물건이다.

한데 그 맵 스캐너가 방금과 같은 함정을 잡아내지 못했다.

파장의 투과율 등에 한계가 있다고는 하나 정부에서 지급한 고등급의 맵 스캐너가 방금 전 같은 함정마저 잡아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개미굴에는 정부 기술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의 기술이 적용되어 있으며, 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의 조직이 개미굴을 운용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여기에 통로 저편을 확인한 무인을 통해 토벌대가 완전히 고립되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벽은 이쪽만이 아니라 외길이었던, 출구가 있는 저쪽까지 막아 버린 것이다.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 만큼의 위기 상황이었다.

도진은 굳은 얼굴로 생각했다.

'어디지?'

이 정도면 정부도 쉽게 건드릴 수 없을 만큼의 수준은 되어야 한다.

중국의 '삼합회', 일본의 '막부', 혹은 이탈리아의 '마피아' 같은.

하지만 그런 수준의 조직이 저지르는 일이라고 하기엔 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개미파가 그들의 말단이었다면 일을 이렇게 처리하지 않을 터였다.

쉽게 들키지도 않았을 테고 들켰다면 중요한 것들만 챙겨서 내빼지 이렇게 토벌대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

제아무리 강대한 흑도 조직이라 해도 정말로 전쟁을 하게 되면, 끝장을 보게 되면 그들의 몰락으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함정이 어쩌다 잘못 발동됐다? 아니다.

도진은 이 사건의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고의라는 걸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오래 생각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쿠르르르르-

"헉!"

갑작스런 천장의 진동에 무인들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새하얘졌다.

이곳 지하에서 '천장의 진동'이란 다름 아닌 붕괴의 조짐이었기 때문이다.

이만한 규모의 지하가 무너진다면 설령 검기를 다발로 뽑아낼 수 있는 '무협지 속의 고수'라 해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지상의 구조물과 함께 상상도 못할 무게의 토사가 내려앉을 테니까.

때문에 육성으로 벽 너머와 소통하던 무인들은 다급히 출구를 향해 뛰려 했으나 그 또한 저지되었다.

"……."

그들이 지나왔던 통로에서 소리없이 나타난 무인들이 있었다.

스르릉-

무기를 뽑아드는 그들은 펑퍼짐한 차림에 귀신 가면을 썼는데, 끈적한 살기와 어우러져 짙은 음영을 드리운 모습은 과연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가 있었다.

"……."

스르릉!

토벌대 또한 조용히 무기를 뽑아들었다.

"…지금부터 생사를 따지지 않겠습니다."

단순히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억지로 농담하자면 중 2병이라 저런 차림을 하는 게 아니다.

'거물 조직'쯤 되면 말단이라 해도 전 세계 정부와 무림맹에 범죄자로 등록되고 수배령이 내려진다.

때문에 전면에서 활동하는 말단일수록 정체를 감춰야 하고 정체를 감춘 채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여기에 나타난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분단되어 버린 토벌대의 말살일 터.

더욱, 그런 목적을 가지고 온 자들이 총이나 전기톱 등의 장비 대신 순수하게 날붙이를 들고 온 것이 시사하는 바 또한 명확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타격대의 부대장은 선언했다.

'살아남기 위해 적들을 사살해도 문제 삼지 않겠다'고.

카아아아앙!!

대화는 없었다. 그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무기를 휘둘렀다.

퍽!

창이 눈을 뚫고 뇌를 헤집었으며 칼이 허리를 찢어 내장이 쏟아졌다.

평범했어야 할 실습은 그렇게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현대가 아닌 '무림'이 되어 버렸고 뒤에 남겨진 학생들은 벌벌 떨었다.

"오지 말걸. 오지 말걸. 오지 말걸."

후회와 공포로 점철된 그들은 고개를 처박은 채 무력하게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오직 유지은과 도진만이 그들을 지키듯 검을 뽑은 채 서 있었다.

여차하면, 토벌대를 뚫고 도달하는 자들이 있으면 나설 생각이었으나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쿠르르르르-

"……!!"

또 한 번 천장이 진동했다.

목숨이 걸린 싸움 중에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고 그 현상에 잠깐 한눈 판 토벌대를, 귀신 가면을 쓴 흑도의 무인들은 공격하지 않았다.

"헛!"

그 대신 그 틈을 노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무림인들은 순간 고민했다.

추적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

백중세인 상황에서 도주한 그들에게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분단된 지금, 벽 너머에서도 들리던 싸움의 소리까지 감안하면 섣불리 자리를 뜨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정답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벽을 깨고 합류한다?

쏘아져 반대편 벽에 부딪칠 때의 충격에 금이 가 드러난 벽 내부는 통짜 쇠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이걸 깰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자칫 충격으로 천장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추적하겠습니다!"

때문에 부대장은 과감히 저들을 추적하기로 했다.

완전히 막혀 버린 길의 저편에서 나타났다는 건 다른 통로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천장이 무너질 것 같지만 않았어도 구원을 기다리며 제자리서 수비하는 걸 택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니 활로를 뚫는 걸 택한 것이었다.

짧은 순간 판단을 내린 부대장의 외침에 토벌대는 망설이지 않고 뒤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유지은은 그 뒤를 따르려다 멈칫했다.

도진이 토벌대를 따라가는 대신 웅크리고 있던 학생들을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어나요."

"으, 으으……."

"여깄으면 확실하게 죽어요. 죽고 싶어요?"

"……."

담담한, 그래서 더 귀를 파고드는 도진의 서늘한 목소리에 패닉에 빠져 있던 학생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멀어지는 토벌대 무인들의 등에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고 싶으면 움직여야 해요. 최소한 스스로 움직일 수는 있어야 지켜줄 수 있단 말이에요. 이해했어요?"

"아, 으, 응. 네."

"좋아요. 그럼 달려요."

도진의 말에 학생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예 다리가 풀려 버린 듯한 남학생은 도진이 업다시피 하여 끌고 갔다.

그런 도진을, 유지은은 신묘한 눈동자에 담으며 속도를 맞춰 곁에서 뛰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미 토벌대는 등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다.

조급해진 학생들이 두려움에 더 속도를 높이는데, 순간 도진은 붙잡고 있던 남학생을 밀쳐내더니 다른 두 학생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잡아요, 선배!!"

도진의 외침에 유지은은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여 튀어나가 나머지 한 명의 학생을 붙잡으며 멈춰 섰다.

콰아아아아앙!!

그들의 앞에서, 또 한 번 벽이 총알처럼 튀어 나와 길을 막아 버렸다.

"아, 아아아……."

학생들이 절망했다.

그들의 '보호자'가 지금 이 순간 완전히 사라져 버렸기에.

그리고 그 절망에 쐐기를 박듯, 본래는 없던 길이 좌우에서 드러나며 열 명의 귀신 가면을 쓴 흑도 무인들이 나타났다.

지금껏 덤덤하던 유지은의 표정이 그들을 보며 굳었다.

보는 순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지금의 그녀'가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숫자라는 것을.

하나하나는 그녀의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일곱 이상은 지금 그녀의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녀에게 있어 무공이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었기에 그들의 수준과 지금 자신의 수준을 단번에 파악하고 결론내릴 수 있었다.

함께 온 학생들을 지키면서는 결코 싸울 수 없다. 설령 외면하고 전력을 다한다 해도, 말도 안 되는 천운이나 변수가 없는 이상 여기서 그녀는 죽는다.

파르르-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손이 떨린다는 생소한 경험을 했다.

'뭐지?'

일순 이해가 가지 않았다가 뒤늦게 그것이 '공포'라는 것을 알게 됐다.

너무나 생소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자연스럽던 호흡이 불편해졌다.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길을 잃은 아이가 되어 버린 것만 같았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국 주변 상황마저 챙길 수 없을 정도로 그녀가 매몰되어 버릴 것만 같던 순간, 그녀를 끌어올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선배. 다섯 명만 맡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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