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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96화 (196/741)
  • 195화

    토벌대는 결국 개미굴의 2층, 더 깊은 지하에 진입하게 되었다.

    "자료에는 없던 지하 2층을 발견했습니다. 주변 구역에 대한 경계와 조사를 강화해 주십시오."

    -확인.

    타격대 대장은 개인적인 욕심을 더해 진입을 결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생각없이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먼저 지휘부에 보고를 했고 일절 방심하지 않았다.

    "경계를 한 단계 높이겠습니다."

    타격대 대장의 말에 따라 상체를 다 가릴 만큼 큰 방패를 착용한 타격대원들이 앞장을 섰다.

    총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초월적인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해도 여전히 인간이었기에 무림인도 총에 맞으면 당연히 죽을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일정 경지 이상의 무림인은 총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검기를 구사할 만큼의 고수는 '총알을 보고'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설령 그 정도는 아니어도 내공을 운용할 수 있는, 일정 경지 이상의 무림인이라면 총알은 무리지만 총을 쏘는 상대를 보고 대처하는 게 가능했다.

    총알을 맞추기 위해선 상대를 정확하게 보고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데 일련의 과정을 무인이 집중하여 보고 있다면 대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설령 총을 쏘는 사람 자체는 시야에 담지 못하더라도 상대의 기척,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 노리쇠의 소리 등으로 대처할 수도 있다.

    지금 앞장선 타격대원들은 그런 육체 능력만이 아닌 방탄복을 입고 방패까지 철저하게 준비한, 총을 철저하게 대비하여 준비한 장비들을 착용한 대원들이었다.

    총기 규제가 느슨한 가운데 무공의 등장으로 인해 더더욱 총기가 기승을 부리게 된 미국 등의 외국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화기 상대법을 익힌 그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화기 상대법은 무림학교에서 교양으로 다루지만 사실상 필수로 여겨지는 과목이었는데 이들은 그것을 유학까지 가서 익힌 엘리트였다.

    개미굴의 1층에서도 경계를 게을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전 조사를 통해 추측한 개미파의 수준으로는 총이 나올 확률은 희박하다 생각했기에 빠른 제압에 좀 더 중점을 두었었다.

    무공으로 인해 총기 규제가 더욱 느슨해진 미국 등과 달리 한국은 역으로 더더욱 총기 규제를 엄격하게 했기에 이들에게서 총이 나올 확률은 희박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인접한 중국이나 일본 또한 같은 추세였고 이 두 나라와 주로 거래하는 개미파였으니 그런 추론에 더욱 힘이 실렸다.

    한데 지하 2층의 존재가 개미파에 대한 경계를 더욱 강하게 해야겠다는 판단을 하게 만들었다.

    1층도 그랬지만 지하 2층 또한 순수하게 인력(人力), 사람을 동원하여 만들어졌다.

    무공을 익힌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엄청난 규모의 지하 거점을 만들었다는 소리다.

    남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었고 외관을 신경쓸 필요도 없었으며 납치해 온 자들이 거점을 파악할 수 없도록 광량도 줄이고 투박한 미로처럼 만들긴 했으나 그 규모만큼은 대규모 조직 못지 않았다.

    그리고 대규모 흑도 조직이라면, 부족한 무력을 보충하기 위해 틀림없이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

    사전에 파악하기로 개미파는 근래 들어 급격히 덩치가 커지긴 했으나 갑자기 몸만 자란 아이처럼 어설픈 부분이 있을 거라 추측했는데 이 정보가 틀렸을지도 모르겠다고 토벌대원들은 생각하며 날카로울 정도로 긴장했다.

    "…이 앞에 붙잡혔던 사람들이 있는 듯합니다."

    토벌대 대장이 맵 스캐너를 통해 확인한 정보를 말했다.

    두 번째 맵 스캐너 사용이었는데 첫 번째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개미파 소속인 듯한 흑도 무인들이 감지되지 않았다.

    챙길 것만 챙겨 급히 떠난 듯한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기에 1층에서 잔챙이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핵심은 이미 도주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허나 그럼에도 토벌대는 누구 하나 긴장을 풀지 않고 팽팽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전진했다.

    이런 때에 긴장을 풀만큼 어리숙한 자는 사지 중 하나 정도를 잃거나 아예 목숨을 잃고 강호를 떠났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분위기에 아직 익숙지 않은 실습 나온 학생들은 조금 버거운 기색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체력을 소모하던 학생들은, 우측으로 꺾인 길과 이어져 있던 공간에 버려진 '고기들'을 보고 꺾이듯 허리를 숙였다.

    "우웨에에에엑!!"

    "웨에엑!!"

    먹었던 것을 격렬하게 게워 내며 정신없이 눈물 콧물을 흘려댄다.

    평소라면 그것을 심할 정도로 지적했을 무인들은,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그만큼 눈앞의 광경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간헐적으로 몸을 떠는 '고기'가 있었다.

    아니, 그것은 아직 고기가 아니었다.

    숨이 끊이지 않았으니 그것은 아직 '사람'이었다.

    손발톱이 뽑혀 나가고 눈동자가 있어야 할 곳 또한 텅 비었다.

    배가 좌우로 벌려져 있었는데 안의 내용물을 거칠게 뜯어낸 듯한 흔적이 배 밖으로 나와 있었다.

    분수처럼 쏟아졌던 듯한 채 마르지 않은 피의 흔적이 가득했고 심장이…… 힘겹게 뛰는 중이었다.

    스- 스-

    무언가 소리를 내고 싶은 듯 성대는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으나 목에 구멍이 나 있어 애처롭게 바람 새는 소리만이 났다.

    허나 그는 그래도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 외 대부분의 희생자는, 사람이 아니라 고깃덩이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타격대 대장이 맵 스캐너를 통해 스캔한 정보를 보고도 사람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이런 씨…… 발."

    결국 무림인들 중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감정을 토해내고 말았다.

    온갖 끔찍한 것들을 보게 되는 게 무림인이라지만 이건 그것마저 넘어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학생들 고개 돌려. 여기로 눈길 주지 마라."

    책임자급의 무인 중 한 명이 말했다.

    웬만하면 익숙해지라 하겠는데 이건 그런 말을 감히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흑도 토벌에만 10년을 보낸 그조차도 버티기 힘들고 상상도 못할 정도로 이건 잔혹했다.

    학생들은 이미 몸을 돌리고 구토를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도진과 유지은만이 최소한의 평정심을 유지했다.

    타격대 대장이 통신으로 말했다.

    "…추가 희생자들을 확인했습니다. 끔찍한 상황으로, 수습을 해야할 것만 같습니다. 추가 인원을 요청합니다."

    -확인. 지금 바로 추가 인원 출발하겠습니다.

    "확인."

    통신을 끝낸 타격대 대장이 말했다.

    "추가 인원이 올 겁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여기서 실습을 끝내고 추가 인원과 함께 학생들은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강요는 하지 않을 테니 개인이 판단하십시오."

    학생, 혹은 애송이라 말하지만 그래도 성인으로 대우받는 무림고 학생들이었기에 타격대 대장은 권유의 형식으로 말했다.

    추가 인원을 요청한 건 명목은 현장 수습이었지만 사실 학생들을 안전하게 돌려보내기 위해서였다.

    크나큰 충격을 받은 학생들은 대부분 그 권유에 동의했고 유지은과 도진, 일부 학생들만이 계속 참가하는 것을 택했다.

    "일부는 남아 학생들과 함께 자리를 지켜 주십시오. 저희는 탐색을 계속하겠습니다."

    타격대 대장은 실습생들과 관계가 깊은 다섯 명의 무인만을 남기고 계속 전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흑도의 거점을 소탕하는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추가 인원을 기다릴 수 없었으니 인원을 소수 나누는 쪽을 택한 것이다.

    위에서도 마약의 위치나 잡혀 있던 사람들을 확인만 하고 거점 제압을 우선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1층은 정말로 미끼였던 건가.'

    타격대 대장은 슬며시 이를 악물었다.

    위층에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짐승처럼 다뤄졌던 듯 험한 모습이었다.

    허나 그것도 방금 본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개미파.

    정말로, 조사했던 것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까하고 슬며시 두려운 감정마저 드는 타격대 대장이었다.

    그런 타격대 대장의 감정을 읽은 도진은 고민하고 있었다.

    -보통 놈들이 아니로구나. 무공 실력은 모르겠다만 적어도 심성만큼은 정상이 아니다.

    장호의 말이었고 도진이 동의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그야말로 악마가 사람을 해체한 듯한 광경이었다.

    그 유지은마저 오래 응시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을 정도였다.

    밀수와 인신매매로 근래 덩치가 커졌던 흑도 조직이라고 했던가.

    싹이 더 자라기 전에 뿌리를 뽑겠다는 의도였고 정부와 무림맹이 이만큼 일을 잘하고 있다고 홍보하기 위한 작전으로 보았었다.

    홍보 목적이면 대충하려는 건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무림의 일이라면 그 반대다.

    사고가 없도록 철저하게 대비하여 일을 진행했고 당장 맵 스캐너나 동원된 규모만 봐도 일절 허투루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생에서 이 토벌은 실패했다.

    이런 준비를 하고도 처참하게 실패했고 목표였던 흑도 조직은 핵심이 빠져나갔단 말이다.

    도진은 토벌대를 이끌고 있는 타격대의 대장이 우선 물러나길 바랐다.

    하지만 그 본질을 따지면 공무원이었던 타격대의 대장은 결국 진입하기로 했고 도진은 입장상 그것을 반대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이른 시기에 추가 인원을 급파했고 그들을 따라 학생들이 돌아가게 된 것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조건은 좀 더 나아졌어.'

    전생에서 위키의 기록에 따르면 인질로 잡힌 학생들은 물론이요 무인들까지 처참한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었다고 했다.

    아까 전 광경으로 보면 그 처참한 모습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그런 희생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고 도진은 판단했다.

    더불어 적나라하게 말해 학생이라는 족쇄가 없어진 토벌대는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변수는 더 있다.

    위키의 기록에 없었던 정의검가가 이번에는 있다는 부분이다.

    비록 유지은을 제외하고 직계나 정예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그래도 이름 높은 정의검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긍정적인 일이었다.

    도진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며 신안을 빛냈다.

    이 감각과 신안은 도진 스스로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었지만 스승들, 위지혁과 장호의 도움을 받기 위한 의도가 더 강했다.

    특히 이번엔 장호를 더 의지하고 있었다.

    장호는 살수계의 신(神)이었으며 그를 위한 온갖 기술들 또한 숙지하고 있었으니 거기에는 어둡고 한정된 공간에서의 기습이나 함정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 공간에서 만약 무슨 일이 있다면 도진이 느끼고 보는 것을 통하여 장호가 한 발 빠르게 읽고 알려줄 수 있을 것이었다.

    '낙하산 실습생'의 입장인 도진이 토벌대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어떤 위험이 있을 때 한 발 앞서 알려주기라도 할 생각이었고 그것으로 도진은 이 토벌을 전생과 다른 방향으로 이끌려 했다.

    -함정이다.

    장호의 말에 도진이 우뚝 멈춰섰다.

    멈춰선 도진의 시선은 다름 아닌 달라진 벽을 향해 있었다.

    지금까지의 개미굴은 토굴 형태였다.

    투박하고도 인공적인 조각을 하지 않은, 기껏해야 굴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세우는 등의 보강이 전부인 말 그대로의 토굴.

    한데 그 토굴의 벽에 어느 순간부터 인위적인 보강이 되어 있었다. 진흙을 이용하여 돌을 박아 넣은 모습.

    흔히 말하는 돌담의 형상이었다.

    일부러 광량까지 제한하고 외부에 보여줄 일이 없어 투박한 형태로 만든 지하 거점에 갑자기 돌담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공장 겸 창고 지하에 만든 개미굴을 닮은 거대한 거점.

    그것을 무공을 익힌 흑도의 인력만을 동원하여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이나 반출해야 할 것들은 위장한 공장 겸 창고의 모습으로 철저하게 숨겼다.

    포장한 박스를 차에 싣고 은밀히 그것들을 감춘 것이다.

    이런 대규모 거점을 만들었음에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토록 들키지 않기 위해 수를 쓴 개미파였으니 이 돌담벽에도 분명히 의미가 있을 거라는 결론에 이른다.

    혹시 몰라 맵 스캐너를 통해 확인해 보았고 두드려도 보았으나 벽 너머 공간이나 어떤 장치가 있는 건 아니어서 토벌대는 긴장한 가운데 계속 진행하던 중이었다.

    "…뭡니까?"

    그렇게 긴장하던 중이었기에 토벌대는 갑자기 멈춰선 도진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함"

    정입니다.

    도진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철컥.

    그 말을 자르듯 마치 거대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듯한 소리가 있었고 그 소리에 반응하기도 전에.

    꽈아아아앙!!

    돌담벽의 일부가 총알처럼 반대편 벽으로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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