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195화 (195/741)

194화

반지하의 공장 겸 창고 아래에 만들어진 개미굴은 투박하고도 음습했다.

마치 원시 시대의, 혹은 짐승이 만든 굴을 떠올리게 만드는 투박한 형태에 빛조차 충분하지 않아 짙게 음영이 깔려 있었다.

심약한 사람이라면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공포감을 조성하는 곳으로 개미굴이 아니라 차라리 개미지옥의 구멍처럼 보였다.

허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그런 외형에 겁을 집어먹고 굳어 버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번에 자리를 잡고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였다.

"악."

"컥."

계단 아래 있던 자들을 대번에 전투불능으로 제압하는 사람들.

-2조 개미굴 진입 완료. 현장 파악에 들어갑니다.

"확인. 1조 진입 완료. 현장 파악 시작합니다."

-확인.

반대편 입구를 제압하기 위해 나뉜 2조와 통신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기계를 꺼내 주변 지형을 확인하는 토벌대의 총지휘를 맡은 무림 전담 타격대의 대장까지.

타격대 대장이 꺼내든 건 휴대폰을 닮은, 그러나 더 크고 두꺼운 물건으로 '맵 스캐너'라 불리는 장치였다.

파장을 퍼뜨려 일정 범위 내의 지형이나 물건, 사람의 분포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그 기능의 수준에 따라 전략 물자로까지 취급되는 것으로 그 정도 수준까지 오면 정부의 허가없이는 소지할 수 없을 만큼 귀하고도 비싼 물건이다.

허가없이 구매할 수 있는 것도 가격 때문에 영세한 규모의 문파나 기업에선 한 대나 겨우 보유할까 싶은 수준이었다.

"주변 지형 파악 완료되었습니다. 자료를 전송할 테니 참고하여 움직여 주십시오."

맵 스캐너를 이용해 파악한 지형과 개미파 무인들의 분포 자료가 지급된 소형 태블릿을 통해 전송되었다.

전부는 아니고 주변으로 국한된 정보였지만 이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2조가 좌측으로, 저희 1조가 우측 통로를 돌며 개미파를 제압, 중심까지 이동하겠습니다."

개미파의 지하 거점은 정말로 개미굴을 연상케 할 만큼 넓고 복잡한 편이었지만 맵 스캐너의 힘으로 어렵지 않게 작전을 수립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구역을 제압한 뒤 다시 맵 스캐너를 이용하기를 반복했다.

도진은 거침없이 움직이는 토벌대를 따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정부가 주도하는 작전이네요.

-그렇구나.

이번 작전은 침투조 83명에 바깥에서 함께 움직이는 인원까지 모두 합치면 무려 3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 작전이었다.

그 규모만 보면 며칠 정도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 만큼의 작전.

허나 작전 자체의 내용은 그 규모에 비해 대단하지 않았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대규모 작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실습을 허가해 주었다는 부분이다.

말이 무림고 학생이고 실습을 좀 겪어본 2학년이지 실제 무림에서 활동하는 무림인들이 보자면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다.

자칫하는 순간 손가락이, 손이, 팔다리가, 아예 목숨이 날아가는 무림에서 활동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무림고 학생의 경험이란 어린 아이가 목검을 들고 휘두르는 것과 그리 다를 바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들의 '교육'을 겸할 수 있을 정도로 이번 개미파 토벌 작전은 위험성이 낮게 판단되었다.

때문에 만약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민간 차원에서, 무림 문파나 민간 무림 군사 기업에서 일을 맡았다면 이번 작전의 진행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었다.

애초에 진입 단계에서 EMP 수류탄으로 전자 기기를 무력화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다.

맵 스캐너도 그렇지만 진입시 사용했던 EMP 수류탄도 군수 물자 취급이었으니 말이다.

민간 무림 군사 기업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분쟁 지역이나 전쟁 등에 용병을 파견하는 등의 일만 하는 건 아니다.

무공이란 게 발전하고 보급되며 분쟁이 격화되는 등 여러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지구촌은 '평화롭다'고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중소 기업'이라 할 만한 곳은 굵직한 계약을 따지 못하면 경호나 흑도 토벌 등의 일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번 흑도 토벌에 참여한 곳들도 그런 소규모 기업들이었다.

'무로써 악을 단죄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정의검가가 덩치에 맞지 않게 이번 작전에 이름을 올리긴 했으나 참여한 인원들의 면면이 방계이거나 경지가 낮은 인물들이었으니 역시 과하지 않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EMP 수류탄이니 고성능의 맵 스캐너니 하는 건 이들만으로 토벌 작전을 진행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인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부 주도이기에 과할 정도의 장비들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이었고, 그랬기에 개미굴 제압은 자칫하면 긴장이 풀릴 정도로 파죽지세였다.

"컥."

"억."

제대로 소리를 높이지도 못하고 개미파의 무인들이 제압당했다.

통신 체계가 마비된 상황에서 토벌대는 EMP에 영향을 받지 않는 특수 장비를 이용하는데 무력 수준마저 개미파의 무인들을 압도한다.

여기에 한 치의 자비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통신 장비가 먹통이 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다 무서운 기세로 들이닥친 토벌대에 쓰러지기 바빴고 그렇기에 함께 한 학생들의 '실습'까지도 배려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토벌대에는 있었다.

캉!

"윽!"

어느 정도 합류 지점이 가까워오자 앞장서던 토벌대의 무인들이 개미파 무인 두어 명을 흘렸다.

놓친 게 아니라 일부러였다.

어느 정도 상처를 낸 뒤 뒤로 넘겨 따라오던 학생들에게 처리를 맡긴 것이다.

꾸욱-

그 의도를 모를 만큼 멍청하면 무공을 익힐 수도, 이 자리에 올 만큼의 실력을 쌓을 수도 없었기에 학생들은 당황하지 않고 바로 자신들의 무기를 쥐고 움직였다.

푸욱-

"아아악!"

"컥."

배를 찔리고 팔다리를 베인 개미파 무인들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마음과 달리 선행하던 무인들처럼 깔끔하게 해내지 못한 것이다.

학생들의 수준이 낮은 게 아니라 이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밑바닥 흑도 무인들의 수준은 뻔하다.

숭무고나 숭무영재고쯤 되면 뛰어난 학생은 1학년 때 이미 그들의 수준에 도달하기도 한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애송이 취급을 받는 것은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며 얻는 경험이 살아남은 그들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온실 속의 화초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

그것들이 '실전'에서 그들이 피상적인 무공 경지 이상의 실력을 내도록 만든다.

마찬가지로, 그런 실전을 겪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이런 육식계 실습이었으니 이 실습을 겪는 2학년과 3학년들이 일반적으로 1학년들을 압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이런 것들을 감안하여 이제 비명이 터져도 상관없는 곳까지 와서야 토벌대는 학생들에게 실습 기회를 주었다.

"크으윽!"

그렇게 주변을 지켜보던 도진 쪽으로도 개미파의 무인 한 명이 떠밀려왔다.

도진의 바로 옆에는 이미 무림인이라 해야 할, 경지는 물론이요 경험으로도 또래를 아득히 벗어난 유지은이 있었지만 그녀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자연스럽게 물러나 버렸다.

도진의 대처를 보고 싶다는 표시였다.

"……."

동시에 여유가 있는 모든 인원의 시선 또한 도진에게로 집중되었다.

'검봉이 데려왔다지?'

'아이돌 경호 놀이 한 번 한 게 전부인 새끼가 무슨 자신감으로 온 거야?'

'경험도 없는 1학년 따위가.'

'실력 한 번 보자.'

여러가지 감정이 장호에게 배운 '사람의 감정을 읽는 법'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급박한 상황이면서 동시에 경험해 본 적 없는 상황.

여기에 관심마저 집중된다.

그러나 도진은 전혀 얼어붙지 않았다. 과도하게 긴장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런 상황에 가져야 하는 감정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가진 채 움직였다.

스릉-

백설을 뽑았다.

"허억허억! 비켜!!"

사실 뽑을 필요도 없는 상대였다.

안 그래도 처참한 수준의 실력인데 그나마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시선은 물론이요 그 움직임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황과 공포 등에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허나 도진은 굳이 백설을 뽑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스각-

"……!"

빠악!

텅그렁!

강호를 살아가야 할 도진 또한, '사람'을 베어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두 팔의 힘줄을 갈라 무기를 손에서 놓게 만듦과 동시에 관자놀이를 찍어 비명을 막는다.

그리고 무너지는 두 발목의 힘줄마저 잘라 철저하게 무력화시키는 일련의 동작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다.

처음이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그 동작에 은연중 질투하던 학생들은 잠시간 몸이 굳어 버렸고 토벌대의 사람들 또한 눈동자가 흔들리고 말았다.

허나 도진은 그런 반응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무력화된 개미파의 무인을 지나쳐 계속 나아갔다.

-어떠냐.

-괜찮습니다.

장호의 물음에 도진은 담담히 대답했다.

강한 척하거나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진실로 그러했다.

위지혁은 도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의 자질을 가진 도진이다.

그런 도진이 '깨달음의 수련'을 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이제 와 처음이라고 해서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선의(善意)는 선한 자에게만.

도진이 가진 도기(道器)로서의 본성은 오롯이 선한 자에게만 베풀어진다.

악한 자에게는 그 도기로서의 선의 대신 천마로서의 패도만이 드러날 뿐이다.

내가 행한 것은 날붙이로 사람을 상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세상에 하등 쓸모가 없는, 두어봐야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릴 해악을 구제(驅除)한 것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치료해도 회복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손목과 발목의 힘줄을 벤 것이 도진에게 있어선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그 정도 의미였다.

그러하니 흔들릴 이유가 없었고 이어서 휘둘러진 검에도 역시 망설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예상을 완전히 넘어서는 경지와 대처를 보여줌으로써 도진은 업신여기고 시험하려던 의도를 완전히 분쇄했다.

검봉 못지 않은 압도적인 후기지수.

그 소문이 거짓이 아님을 단번에 증명해 버렸다.

그 뒤로 도진이 네 명을 더 제압했을 때 1조는 중심부에 도달하여 2조와 합류했다.

"전 구역 제압 완료했습니다."

2조는 좌측, 1조는 우측으로 움직이며 맵 스캐너를 통해 파악한 모든 구역의 제압을 완료했다.

개미굴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정찰을 하거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써야 했을 텐데 맵 스캐너 덕분에 거침없이 움직여 빠르게 개미굴의 제압에 성공했다.

"마약과 납치한 아이들의 위치는 파악했으나 이게 다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음……."

신속하게 개미굴을 제압하기 위해 토벌대는 마약을 보관한 곳이나 서류, 심지어 납치된 사람들까지도 우선 파악만 하고 지나쳤다.

한데 그것이 정확히 파악해봐야 알겠지만 개미굴의 규모에 맞지가 않았다.

-미끼였다.

장호는 여기에 대해 그렇게 단언했고 도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것도 목숨이 걸린.

그렇기 때문에 '최소 투자 최대 효과'를 노리지 않고 안전과 확실함을 추구하여 '과다 투자'를 한다.

여기에 우수한 장비까지 동원한, 정부 주도 하에 진행한 토벌이었으니 이들은 개미굴의 제압이 수월했던 것에 일절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이 정도의 투자를 했는데 고전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뒤따르는 도진은 아니었다.

장호에게 배운 도진은 이것이 마치 시간을 벌기 위한, 피라미들을 이용한 눈속임처럼 보였다.

애초에 이게 끝이라면 전생에서처럼 토벌이 실패할 수가 없었다.

아직 무언가가, 진짜가 더 있다.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고 곧 그것이 드러났다.

"……음?"

한 번 더 맵 스캐너를 이용한 타격대 대장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의 시선은 아래를 향해 있었는데, 바로 그 아래에 개미굴의 '2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놈들……."

그가 중얼거렸다.

정부에서 지급한 맵 스캐너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탐지 범위에 한계가 있었고 특히 맵 스캐너의 약점인 상하의 탐지 범위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좁은 편이었다.

때문에 밑으로 이어진 통로가 있는 이곳에서야 2층의 존재를 알 수 있었고 도진이 내렸던 지금까지가 시간 끌기라는 결론을 뒤늦게 내린 것이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이번 토벌에 참여한 무림인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정의검가 쪽 사람의 물음에 타격대 대장은 고민했다.

이제서야 덩치를 불리고 있을 뿐 아직 머리는 굵지 못한, 그저 그런 흑도라고 생각했다.

한데 이렇게 2층까지 준비한 걸 보니 만만하게 보아선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이런 걸 발견해 놓고 위험하다며 일단 물러났다간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뒤집어 써야 했다.

그는 아직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싶었고 책임을 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진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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