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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92화 (192/741)

191화

도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유지은은 복학한 그날부터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새벽에 모든 수업을 들어 놓고 오전부터 도진의 뒤를 따라다닌 것이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유일하게 색을 가진 것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요 집착이었다.

또한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파격적인 행동이었기에 당연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왜 검봉이 잠룡을 따라 다님?

-이 정도면 거의 스토킹 아니냐 ㅋㅋ

-그것도 그런데 검봉 정도 되는 후기지수가 남 시선 전혀 신경 안쓰고 저러는 것 자체가 놀랍다.

그리고 그 행동에 있어 도진이 가장 신경 쓰인 건 자신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함에 있어 남의 시선을 전혀 고려치 않는 유지은의 태도였다.

학교 내엔 유지은을 추종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아름답고, 또 항상 당당하며 절대적인 강함을 자랑하는 그녀를 동경하지 않기가 오히려 힘든 일이었다.

방학을 포함하면 반 년 이상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유지은을 동경하고 추종하는 학생들의 마음은 식지 않았는데, 유지은은 그런 시선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마치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단순히 그녀의 기행에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런 동경의 시선들조차 역시나 '무채색'이었다는 말이다.

집행부에서도, 도진의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후배. 서류 작성하는 거야?"

"네."

"흠. 나도 해볼까?"

유지은은 본래 집행부에서 선도 활동만을 했었다.

한데 도진이 행정 업무를 보고 있으니 빤히 쳐다보다 거들겠다 말했다.

민지서는 유지은에게 몇 가지 일거리를 맡겼고 유지은은 단 하루만에 익숙해져 그것을 처리해냈다.

"후배. 밥 먹으러 가는 거야?"

"네. 선배도 같이 가실래요?"

"응!"

점심 시간에도 빠지지 않도 동행했다.

도진은 먼저 그녀에게 권유하는 그림을 만들었고 친구들에게 암묵적으로 동의를 구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배제'하고 있었다.

안하무인이라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 높은 경지를 엿보게 된 그녀가, 그 때문에 역으로 아래가 잘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보고자 하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낮다고 하여 그것을 무시하는 심성이 아니었기에 보이게 되면 모른 척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해야 할 도리를 했다.

문제는 굳이 그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채색에 익숙해져 버린 그녀는 폐관 수련으로 인해 갑자기 너무 높은 곳에 올라 노력하지 않으면 아래를 볼 수 없게 되었고 굳이 그것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로 인해 균열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당장 도진이 유지은을 처음 만났던 그날의 집행부실에서가 그랬다.

유지은은 도진을 본 그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을 배제했다.

오직 도진만을 응시했고 그 외의 모든 것을 없는 것으로 해 버린 것이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인간 관계의 균열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도진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친구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허나 그것은 임기응변에 불과했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점심 식사에 참여할 때도 그렇다.

도진이 굳이 먼저 권유하는 형태를 취하지 않았다면 유지은은 '눈치없이 무례하게 식사에 끼어들려는 선배'가 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눈치없는 인간'이 되어 버릴 거라는 생각이, 도진이 유지은에게 신경을 쓰게 만드는 원인이요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였다.

-저도 눈치없는 인간이었거든요.

전생.

도진은 폭력과 왕따의 피해자였으며 치환 패거리는 세상에 하등 필요가 없는 가해자들이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며 이 부분에 한해서 도진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허나 그와 별개로 도진은 그 지옥 같은 나날 속에서 '왜?'라는 생각을 했다.

왜 나는 왕따를 당해야 했는가, 스스로의 문제는 없었는지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로 '눈치가 없었다'는 걸 꼽았다.

사교성도 없고 무공 실력도 보잘 것 없었는데 거기에 눈치까지 없었던 게 왕따를 당하게 된 원인이었다.

물론 그것은 '원인 중 하나'일 뿐이고 '잘못'이 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상황을 만든 원인 중 하나였기에 도진에게 있어서는 지울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눈치 없는 인간'이란 생각을, 유지은은 자꾸 되새기게 만들었다.

유지은은 눈치가 없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맞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왕따'가 되는 것만큼은 무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안 그래도 고립감을 느끼고 있는 그녀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가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하고 있었으니 자신에게 무한한 관심이라는 진한 감정을 보여주는 유지은이 도진은 신경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진 역시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지독한 고립감을 느껴 보았기에.

재능이라는 부분에 있어선 대척점에 있는 유지은이었지만 고립감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동질감을 느꼈다.

-쉽게 가고자 하면 쉽게 갈 수 있는 일이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네가 목표가 되어 주면 된다.

위지혁은 그렇게 말했다.

유지은이 가진 문제들의 근본 원인.

'목표가 없는 삶'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빠르며 간단한 방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유지은은 재능의 화신이지만 도진은 천마의 후계자요 이내 천마가 될 무인이다.

그것도 역대 최고의 천마가.

유지은이 이내 누구도 오를 수 없는 산의 정상에 오를 때 도진은 이미 지상을 넘어 하늘 위를 걷고 있을 것이다.

그런 도진을 목표로 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하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허나 도진은 그것이 최선이 아니라 생각했다.

도진이 유지은의 목표가 되어주는 것.

그것은 결국 유지은의 삶이 도진에게 종속되는 것에 다름이 없다.

-왜 따라다니기는. 한 번 붙어보자는 거자너 ㅋㅋㅋ

-ㄹㅇㅋㅋㅋ

때문에 도진은 다른 학생들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는, 은근히 대련을 바라며 옆을 맴도는 유지은의 진짜 의도를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지은은 자신의 기대가 깨어질까 봐 두려워 또한 도진의 모른 척을 모른 척하고 있는 형국이고.

그래서 진척없이 주위를 맴도는 유지은의 문제를 근본적인 부분에서 해결해 보려 도진은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었다.

무공이 아닌 다른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도록,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권유해 보았다.

굳이 이기고 지거나 경지를 논해야 하는 것들이 아니라 순수하게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는 것들을.

그것은 굳이 거창할 필요가 없다.

설령 '먹는 낙'이라도 좋다.

그를 위해 무공을 계속해 나가는, 먹기 위해 운동하는 것처럼 무공이 '주'가 아닌 '부'가 되는 그림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 재능으로 무공에 매진하지 않는 것이 아깝다고?

그것은 그 사람의 가치이지 유지은의 가치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도진의 시도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무얼 권유하든 유지은은 흥미를 가지지 못했으니까.

한두 달은커녕 몇 년으로도 될까 싶을 만큼 답이 보이지 않는다.

허나 도진은 그로 인해 초조해하지 않았다.

이런 일을 이미 겪었고 답 또한 깨닫고 있었으니까.

오대용을 도와주던 때에 호군자 주대운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다주려는 것이다.

이미 열여덟 해를 살아온, 심지어 그 밀도가 비할 데 없이 높은 유지은의 삶의 물길을 바꾸려는 시도.

겨우 한두 번의 작은 삽질로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고도 얕은 생각이다.

이것은 오래 어울리며 꾸준히 해야 할 일이다.

-인재를 얻으려면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껄껄. 그렇구나.

유지은은 전생에서 독보강호(獨步江湖) 했던 무인이다.

집안에서도 경원시당했으며 사회에서는 물론 무림에서조차 그 시선은 다르지 않았다.

도진은 그런 유지은의 미래를 바꿔주면서 동시에 자신의 울타리 안에 함께 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멀리 돌아가는' 게 가장 좋지 않겠는가 하고, 도진은 오히려 여유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이 그런 여유로운 도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는지,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주말이 코앞으로 다가온 목요일.

"나 주말에 인천항으로 실습 나가."

유지은은 그렇게 자신의 스케쥴을 말해 주었다.

"네에."

도진은 별다른 감흥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2학년 2학기의 숭무고 학생들에게 있어 실습은 일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으니까.

당장 3학년이 되면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무림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데 2학년 2학기는 그런 무림에 나가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하는 기간이다.

그리고 유지은은 민간 무림 군사 기업을 운영하는 정의검가의 후계자로서 이미 무림인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으며 실습을 해 왔다.

이제 와서 실습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부여를 할 이유가 없었다.

설령 그것이 타 학교의 학생들까지 포함된 대규모 실습이라도 말이다.

-음, 제자야.

한데 거기에 위지혁이 나선 것이었다.

-네, 스승님.

-어디까지나 내 걱정일 수도 있다만, 걸리는 부분이 있구나.

-걸리는 부분이요?

-그래. 네가 전생에서 위키를 통해 보았던 내용이 있다.

전생의 도진은 무언가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웹서핑을 주로 이용했고 그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작성하여 만들어지는, 웹을 통한 정보 공유 사이트라 할 수 있는 위키 사이트를 심심찮게 방문하곤 했다.

어느 정도 영혼을 추스른 위지혁과 장호는 그런 도진으로 인해 위키의 방대한 내용을 흡수했고 말이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위지혁이 말했다.

-바로 올해 겨울에 있었던 사건으로 '무림고 학생 엽기 감금 해체 사건'이라는 게 있었다.

-그건…….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있었다.

위지혁이 그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올해 11월.

대한민국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사건이 터졌으니 실습을 나갔던 무림학교 학생들이 흑도 조직에 의해 감금당했다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었다.

대한민국 전체에서 난리가 난 건 여기서의 '처참한 모습'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안구가 적출되고 이가 모조리 뽑혀 나갔으며 혀 또한 불로 지져 놓았다.

장기가 적출된 학생들도 적지 않았으나 단전을 파괴하지 않아 오히려 죽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 외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상상도 하기 힘든 일들을 당한 흔적들도 있었다.

뒤늦게 밝혀지길 어떤 흑도 조직 소탕에 실패하였는데 그것을 은폐하고 대규모 구출대를 급파, 다급히 구출과 소탕 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정보가 흘러나가 알려진 사건이었다.

무림학교 학생들 가운데 숭무고, 숭무영재고 학생들이 섞여 있었고 학생들의 집안, 정부, 민간 무림 군사 기업들까지도 합심하여 실패를 숨기려 했다는 게 알려지며 대대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규모가 크긴 했지만 대단한 수준의 흑도 조직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했던 게 원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지.

흑도 조직은 소탕되지 않았다.

처음 소탕에 실패한 인원들을 미끼로 하여 절반 가까이가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고 알려졌다.

처참하게 발견된 무림학교 피해자들은 그 전에 실습을 나갔다 실종된 학생들이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미끼가 된 인원들이 무사했던 건 아니었다는 거다.

그들 역시 참혹한 모습으로 여기저기 여보란 듯 '전시되어' 있었고 그것으로 시간을 번 사이 흑도 조직의 절반 이상이 도주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위키에 기록된 내용이라 모두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대대적으로 뉴스도 났었으니 어느 정도는 믿어도 될 것 같구나.

-스승님의 말씀은…….

-그래. 장소와 시기상 지금 이 아이가 참가한 실습이, 그 사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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