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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89화 (189/741)
  • 188화

    현대에는 이런 주장이 있다.

    -고대의 무림인들 중에는 검기를 넘어 검강(劍罡)은 물론이요 무형검(無形劍)마저 구사할 수 있는 경지의 고수들이 있었다.

    무협지를 많이 봐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간간이 발견되는 문헌에 그런 묘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 위를 달리는 수상비(水上飛), 풀 위를 달리는 초상비(草上飛), 아예 허공을 걷는 허공답보(虛空踏步)에 대한 묘사도 자주 보이곤 했다.

    현대의 무공이 고대 무림에 비해 퇴보해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었지만 그 수준이 어느 정도냐에 대해선 여론이 갈렸다.

    이런 문헌의 묘사와 주장이 과장되어 있다는 입장의 사람들의 대표적인 주장은 그거다.

    -그걸 다 믿을 거면 아예 온갖 신화도 다 믿지 그러냐?

    간단하지만 결코 쉽게 반박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문헌을 믿는 쪽에서는 이렇게 주장했다.

    -처음엔 검기조차 거짓말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수십 년 전에 검기를 실제로 구사하는 고수들이 나타났다. 이대로 발전하면 검강은 물론이고 문헌의 경지가 거짓이 아니라는 건 금방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고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전생에서 도진은 후자를 지지했다.

    당장 휴대폰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인간이었던 것처럼 무공 또한 과학과 마찬가지로 점점 발전하면서 허구로 여겨지던 경지가 실현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진은 정말 상상도 못했던 형태로 문헌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위지혁과 장호의 존재였다.

    -현대의 무공은 우리 입장에서 '원시 무림'이라 해야 할 만큼 퇴보해 있다.

    천마 위지혁과 사신 장호가 증명해 주었다.

    현대의 무공은 고대 무림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퇴보해 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공 수련에 부적합할 정도로 자연지기가 옅어 성취를 보기가 힘들었다.

    도진이 보고 겪은 모든 무인들이 그 사례였다.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퇴보한 무공과 환경의 제한으로 인해 그것을 채 다 꽃피우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오늘 처음으로, 예외를 보았다.

    신안을 뜬 도진은 검풍을 구사하는 그 한 수로 검봉 유지은이 익힌 무공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도진을 통하여 본 위지혁이 그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었다.

    -제대로 된 무공이다.

    위지혁이 말하는 제대로 된 무공이란 퇴보하지 않은, 위지혁의 시대에서도 인정받을 만한 무공이란 소리였다.

    현대의 무공들과 아득한 수준 차이가 나는 무공.

    -이게 가능한 일이었군요.

    '고대 무림'이 언제였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건 도진마저 몰랐다.

    위지혁과 장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언뜻 청나라 즈음 같은데 어느 때엔 차라리 고대 문명인가 싶은 부분도 있었다.

    역사 지식의 부족 때문인가 싶어 한때 본격적으로 문헌과 자료를 찾아본 적도 있었지만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무언가 하나둘씩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도진은 이것이 현대에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세계의 역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공백에 무림이 있었다는 '역사의 미싱 링크에 무림이 있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어찌되었든 그런 배경 아래 그 시대의 무공을 익힌 사람을 보았으니 도진은 물론이요 위지혁마저 놀랐던 것이다.

    -가전(家傳) 무공일까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선조가 창안한 무공이 대대로 전해 내려져 왔을 거라곤 여러모로 생각하기 힘들다.

    아마 그 선조는 우연히 소실되지 않은 고대 무림의 서적 등을 발견해 익힌 뒤 전수했을 확률이 더 높다.

    그리고 전수되며 개량·발전되었을 터.

    -주술을 동원했든 어떤 다른 방법을 썼든 이 시대까지 자료를 남길 방법이 없지는 않으니 그쪽이 더 설득력이 높아 보이는구나.

    -그렇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술법에도 능통한 장호의 말이었기에 설득력이 더 강했다.

    -그 연원이 궁금하긴 하지만 쉽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로구나.

    -예.

    장호의 말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의 연원을 묻는 건 금기에 가깝다.

    웬만큼 친하다 해도 간단히 꺼낼 수 없는 말.

    최소한 부부지간은 되어야 조심스레 해 볼 정도였으니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때문에 답을 찾지는 못하고 스승들과 여러가지 추론을 하며 집행부실에 들어온 도진은 한유아와 류대현의 복잡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안녕."

    "어서 와."

    "네, 안녕하세요."

    한유아와 류대현의 얼굴에 담긴 그 복잡함이 무엇인지 도진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흔히 범재가 천재에게 느끼는 '벽'을 마주했을 때의 그 감정이다.

    한유아와 류대현도 본 것이다.

    학생의 신분으로 검풍을 구사한, 그 말도 안 되는 경지에 있는 동기를.

    아마 두 사람은 그런 감정을 평생 느껴본 적이 없었을 것이었다.

    압도적인 재능을 타고 났으며 환경까지 받쳐 주었다.

    타인이 걸을 때 두 사람은 쭉 뻗은 직선 도로를 차로 달리는 만큼의 차이를 내며 앞서 나갔을 터.

    한데 그런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유지은은 아예 제트기를 타고 추월해 버린 형상이었다.

    제아무리 막힘없는 도로를 한계까지 액셀을 밟아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자각하고 마는, 그런 감정을 두 사람은 느끼고 말았을 것이다.

    -그 아이의 재능은 압도적이다. 상미보다도 높다.

    유지은의 재능은 위지혁이 그렇게 말할 정도로 격이 다른 영역이었다.

    걷는 인간은 꾸준히 달리는 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나 땅을 달리는 차는 산을 넘기 힘들고 절벽이나 바다는 아예 넘지 못한다.

    허나 하늘을 나는 제트기는 그런 '땅의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재능의 차이란 그런 것이었다.

    -내 친우이자 적수였던 검성 혁련휘의 제자가 떠오를 정도로구나.

    위지혁이 교주였던 시절 무림맹주로 있던 검성 혁련휘의 제자는 무림인에게 있어 최고의 자질이라는 '천무지체(天武之體)'를 타고 났었다.

    현대식으로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RPG 게임에서 치트로 모든 수치를 최고로 조작하여 만든 캐릭터라 할 수 있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재능을 한데 모아 타고 나는 것이 천무지체였다.

    지금 위지혁은 유지은의 재능이 그 정도라 말한 것이었다.

    거기에 현대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무공까지 익혔다.

    이쯤 되면 내공을 모으기에 가혹하다는 환경은 그리 대단한 장애조차 아니다.

    오히려 그런 환경이기에 재능과 무공이 더욱 빛을 발한다.

    제트기라는 비유가 결코 과하지 않은 이유였다.

    "우리 또래에 검풍이라니, 현실 같지가 않네."

    "그러게. 벌써 해외에서도 난리더라."

    "한국도 아니고 해외?"

    "숭무고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순위권이잖아. 거기에 검봉 선배 일인데 검풍을 보여줬으니 벌써 뒤집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지."

    주정아의 말에 나지윤은 담담히 그렇게 말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 범위를 확장해도 공식적으로 고등학생 때 검풍을 구사한 사례는 없었다.

    한데 최초로 한국에서 그 사례가 나타났으니 해외 토픽감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그 해외 토픽의 주인공이, 집행부실에 나타났다.

    "…안녕."

    "안녕. 오랜만이네."

    "…안녕."

    "…오랜만입니다."

    처음의 인사는 유지은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와 아주 짧은 공백 후 나온 인사.

    거기에 류대현은 씁쓸함을 감추고 웃으며 인사했다.

    질투하기보다 친구의 성과에 기뻐해주는 모습은 흔히 말하는 대인배스러운 모습.

    허나 인간관계에 아직 서툴렀던 류대현은 유지은의 짧은 공백에 담긴 감정을 읽어내지 못했다.

    그렇게 류대현이 놓친 것을, 한유아와 민지서는 놓치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며 한순간 집행부실의 모두를 그 신묘한 눈에 담았던 순간 스쳐갔던 '감정'을.

    그것은 실망이요 당황이었다.

    굳이 말로 하자면 '이것밖에 안 된다고?'.

    천하의 한유아와 민지서라 해도 표정 관리를 하기 힘들게 만드는 그 감정의 스쳐감에 두 사람 또한 대답이 조금 늦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나타남과 사라짐을 한 걸음 떨어져 있던 도진은 모두 놓치지 않았다.

    -혹시 스승님이 생각하셨던 게 이것이었습니까?

    -그래, 맞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있다.

    -천재의 눈에 평범한 사람은 원숭이로 보인다.

    마냥 우스갯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는 말이다.

    특히 그것이 무림인이라면 더더욱.

    육체와 머리. 양쪽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초월적인 힘까지 얻고 나면 평범한 사람을 '열등종'이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실제로도 적지 않으니까 말이다.

    -고대 무림에도 그런 경우가 많았겠네요.

    -그래. 정사마(正邪魔)를 가릴 것 없이 그런 것들이 많았지. 왕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고대 무림은 현대와 달리 도덕이니 윤리니 법이니 하는 개념도 희미했으니 그 악영향이 더욱 심각했다.

    -신교는 어땠습니까.

    -있었는데 없어졌지.

    있었는데 '위지혁이 다 때려잡아서' 없어졌다는 뜻이다.

    그만큼 그런 사상은 위험한 것이었고 천마신교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저 아이는 본성이 올곧아 그런 쪽으로 빠지지는 않겠구나.

    유지은은 자신에 한참 못 미치게 된 동기들의 모습에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냈으나 곧바로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된 자신에게 놀란 모습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현재 상황 그 자체에 대한 당혹감만을 보인다.

    -그래서 고장나고 말았던 것이지.

    유지은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것도 점점 더 가속이 붙은 채.

    그것은 곧 '평범함'과 점점 더 멀어진다는 뜻이며 이는 감당하기 힘든 고립감과 괴리감이 적응할 틈도 없이 유지은을 덮친다는 뜻이었다.

    경쟁을 통하여, 온 힘을 다하여 가장 먼저 정상에 오른다면 기쁠 것이고 성취감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쟁을 할 것도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쉽게 정상에 오른다면 어떨까.

    하물며 그 정상에는 그녀 이외에 누구도 올라오지 못한다.

    그 경쟁자가 작디 작은 거북이라면?

    오롯이 혼자만인 세계에서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찾아올 고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검봉 유지은은 아직까지 경쟁자가 있었다.

    허나 그나마도 이번의 폐관 수련으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나와 동등한 경쟁자는 여기에 없으며 앞으로 단 하나도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고립감과 괴리감은 성장할수록 점점 더 그녀를 압박할 것이었고 이내 검후란 별호를 얻었을 즈음엔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되어 그녀를 짓누를 것이었다.

    '…여중제일인이 아니라 천하제일인이었을 거야.'

    그녀의 화려한 무패 행진은 여중제일인(女中第一人)이란 인정과 함께 검후라는 별호를 부여했다.

    허나 도진은 그녀가 사실 천하제일인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이 정도의 재능과 무공을 가진 사람이 천하제일인이 아닐 거라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도진이 아는 가장 마지막의 근황, 2년 간의 폐관 수련은 어쩌면 기대를 완전히 접고 세상과 단절한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랬을지도 모르겠구나. 세상의 안에 있을수록 오히려 고독만이 커졌을 테니.

    -스승님은 어떠셨습니까.

    재능이라 하면 위지혁 또한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제자의 물음에 위지혁은 피식 웃었다.

    -그거야 소위 말하는 '케바케' 아니겠느냐. 나는 사람마다 가진 재능이 다르다 생각했고 그 가치 또한 동등하다 생각했으니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삶이 모두 깨달음이요 중용을 가르치던 위지혁다운 대답이었다.

    -그렇군요.

    도진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화를 이어 나가려는데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외부로 시선을 돌려야했다.

    "……."

    눈이 마주친다.

    그 신묘한 빛이 깃든 눈은 다름 아닌 검봉 유지은의 것이었다.

    곡선을 그리던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너, 이름이 뭐야?"

    그녀가, 깊은 눈동자에 한가득 도진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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