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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88화 (188/741)

187화

심상세계의 수련을 끝낸 도진은 두 시간여의 수면을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

천마심공을 운용하여 천마기로 전신을 깨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피곤함은 모두 날아가고 몸에 활기가 그득해진다.

날뛰는 천마기로 인해 그것이 좀 과한 감이 있었지만 4성의 끝자락에 이른 지금은 그것도 익숙해졌다.

간단히 아침을 먹으며 스승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 학교 생활은 어떠하냐.

-좋습니다.

도진이 숭무고에 입학하겠다 마음먹은 건 그것이 당시 상황의 도진에게 있어 가장 확실하고 빠른 등용문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무공을 통한 '입신양명'을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등용문이 숭무고였기에.

그 외엔 크게 고려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직접 다니면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등용문으로서의 숭무고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천마의 후계자인 도진은 굳이 숭무고라는 간판을 내세우지 않아도 결국은 이름을 떨치고 절대고수가 되었을 테니까.

지금 도진이 숭무고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 이 작은 사회에서 얻은 인연과 생활 그 자체였다.

전생에서의 도진에게 있어 무림학교란 지옥에 다름 아니었다.

간절하게 빠져나가고 싶지만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

그 지옥이, 현세에서는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으로 가득한 배움터가 되었다.

좋은 인연들도 생겼다.

운명처럼 친해진 소담.

좋지 않은 첫인상이었으나 친구가 된 오대용.

나지윤, 주정아, 한유아는 물론이요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홀로 동떨어져 있던 전생에선 알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겪게 되었다.

이것은 이 시기가 아니면 겪지 못할, 깨달음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경험이었다.

무공의 배움터로서의 숭무고도 나쁘지 않았다.

위지혁과 장호는 현대의 고수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고대 무림의 절대고수들조차도 감히 댈 수 없는 경지의 무인이었으나 그것이 '전체'가 될 수는 없었다.

위지혁과 장호에게 배우면서 도진은 숭무고 교수들의 가르침 또한 소홀히 듣지 않았고 그 관점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으로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결코 길을 잘못 드는 일은 없을 게다.

위지혁은 도진의 그런 '중용(中庸)'을 지키는 태도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으며 장호와 심상세계에서 소담과 함께 벚꽃길을 걷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복수귀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지극한 삶.

제자가 그런 삶을 살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

두 스승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진은 언제나처럼 잔잔하지만 충실한 하루를 보냈다.

오전 수업을 열심히 들었고 시간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다.

한데 그 점심 식사 시간에, 주변 학생들을 웅성거리게 하는 소식을 들은 것이었다.

"검봉이 드디어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온대!!"

"헐!"

"진짜?"

"어. 내가 분명하게 확인했어. 출관회에 일정 공지 떴더라."

그 소식을 들으며 새삼 도진은 깨달았다.

'아. 그러고보면 한 번도 본 적이 없구나.'

같은 숭무고에 다니며 심지어 같은 집행부 소속임에도 도진은 단 한 번도 검봉 유지은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입학식 때도 나타나지 않았고 입학 후엔 이미 폐관 수련에 들어가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봉(劍鳳).

도진 이전에 최고로 꼽히던, '괴물'이라고까지 불리는 무공 실력을 자랑하던 후기지수였다.

전생의 도진과는 당연하게도 전혀 인연이 없던 시대의 주연 중 한 명이었다.

3년 내내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천재들 중의 천재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천재.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무림에서도 고수로 인정받았던 무인.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고 채 30대가 되기 전에 '검후(劍后)'의 별호를 쟁취해냈다.

수세기에 한 번 나올까 싶은 천재.

그것이 바로 검봉이자 검후였던 유지은이었다.

다만, 무림인으로서의 유지은과 달리 인간 유지은으로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냉검후(冷劍后).

언뜻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 칭호는 그러나, 사실은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유지은에 대한 사람들의 감상이었다.

유지은은 인간미가 없었다.

무인으로서 악인을 처단할 때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으며 동정도,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무인과의 대련이나 서로의 목숨이 걸린 대결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싸웠고 마치 당연한 것처럼 언제나 승리했다.

당연한 일이었기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차라리 인간계와 동떨어진 어떤 무의 화신이 어울릴 듯 했기에 사람들은 유독 흑도의 토벌에 앞장섰던 유지은을 경외했었다.

그리고 도진이 기억하는 마지막 근황은, 그런 유지은이 다시 한 번 폐관 수련에 들어 2년이 넘도록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것이었다.

"무슨 생각해?"

검봉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던 도진을 일깨운 것은 곁에 앉아 있던 소담이었다.

소담의 깊은 눈빛에 도진은 웃으며 말했다.

"아, 검봉 선배 생각."

"와, 다른 여자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그렇게 당당히 이야기해도 되는 거야?"

"모함하는 거 보소. 엔터 업계 사람이 그래도 되는 거야?"

근래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친해진 주정아와 그런 허물없는 농담을 주고받다 본론으로 돌아왔다.

"하긴, 도진이 너는 특히 신경쓰일 수도 있겠네. 요즘 잠룡이랑 검봉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 같은 질문도 많이 올라온다던데."

"아니 싸우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주정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탈 1학년이란 평가를 받는 잠룡 김도진과 마찬가지로 탈 1학년의 실력을 보여주었던 검봉은 유독 비교가 많이 되고 있었다.

다만 도진은 그런 세간의 평가에 흔들리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숭무고에서도 격이 다르다는 검봉 유지은은 과연 얼마나 대단할까 호기심이 들었던 것이었다.

"직접 본 사람 있어?"

도진의 물음에 자리에 함께 한 오대용과 주정아는 물론이요 소담도 고개를 저었다.

"뭐 사교계에 관심 있던 선배는 아니었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무공 수련으로 보냈던 것이 유지은이었는데, 그녀는 유서 깊은 검가(劍家) 출신이었다.

그러니까 가전 무공이 실전되지 않고 전수되어 온 신비문파 출신이란 말이다.

직계와 방계에게만 무공을 전수하는 폐쇄적인 무가였는데 약 80년 전부터 문호를 개방하여 '무림 르네상스' 시절 이름을 떨쳤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무림에서 유명한 고수로 통했는데 그 절정이 유지은이라고, 도진은 방과 후 집행부실에서 나지윤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지윤에게 유지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을 한유아와 류대현이 한 것이었다.

"이번엔 또 얼마나 사고를 치려는지 모르겠네."

"그러게. 성질 좀 죽었으려나."

도진의 시선이 두 선배에게로 향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지은 선배가 그렇게 사고를 많이 쳤어요?"

도진의 물음에 류대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도 내가 1학년 때 숭무회랑 치고 박은 이야기는 알지?"

"네."

"그런데 사실 나보다 더 숭무회랑 치고 박은 게 지은이였어."

"진짜요?"

"어. 걔 진짜 완전 쌈닭이었어. 난 아직도 기억하는 게 나랑 숭무회가 싸울 때 '재밌겠네'라면서 끼어들던 그 목소리야."

"음……."

그것은 도진이 알고 있던 '냉검후 유지은'과는 배치되는 이야기였다.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으나 즐기지 않았고 싸울 때 이렇다 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사람들이 더욱 경원하던 것이 검후 유지은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검후 유지은이 쌈닭이었다니,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지. 나는 검후 유지은의 검봉 시절 이야기를 몰랐으니까 오히려 이때는 이랬을지도 모르지.'

학창 시절과 성인 때의 성격이 달라지는 건 얼마든지 있는 일이었다.

-음…….

다만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듯한 사부의 목소리가 도진이 심상세계에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왜 그러세요, 스승님?

-지금 말할 만한 것은 아니구나. 직접 봐야 확신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럼 한 번 직접 보러 가 볼까요?

-그럴 수 있다면 그러자꾸나.

수련계를 낸 학생은 출결관리감독회, 줄여서 '출관회'에 수련의 성과를 증명해야만 한다.

여기서 기준 이상의 성과를 증명하지 못하면 출결 점수가 깎이고 이것은 유급에 이를 수도 있을 만큼 치명적이다.

이 출관회의 검증은 학생의 의사에 따라 비공개로 치러질 수도 있고 공개적으로 치러질 수도 있다.

자신의 어필이 중요한 숭무고이기에 존재하는 시스템으로 보통은 비공개로 치러지는 그 검증을 유지은은 공개적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이는 금세 학교 전체로 퍼져 화제가 되었고 방과 후 드넓은 실내 수련장에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몰려든 학생들 사이에 도진이 있었다.

중앙과는 상당히 떨어진 위치였으나 지대가 높았기에 도진에겐 오히려 더 좋은 자리였다.

지금의 도진에게 얼마간의 거리는 일절 장애가 되지 못했으니 말이다.

중앙에 놓인 비무대 앞에는 수련 성과를 평가하기 위한 숭무고 소속의 교수들이 앉아 있었는데 삼재인 정도수, 철탑거권 석호필 등 명망과 권위가 높은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역시 검봉이네. 정도수 교수님이랑 석호필 교수님까지 동시에 나오시고."

"검봉인데 저 정도는 돼야 평가를 하겠지."

학생들이 웅성거린다.

2학년은 '그 괴물'이 이렇게 긴 폐관 수련을 깨고 나와 얼마나 더 대단한 괴물이 되었을지 모르겠다며 웅성거렸다.

1학년은 그렇게 소문이 자자한 검봉의 실력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며 웅성거렸다.

스륵-

"……."

그리고 그 웅성거림은, 조용히 등장한 오늘 검증의 주인공으로 인해 적막으로 뒤덮였다.

자박.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 소리.

그 걸음으로 인해 품이 넓은 소매가 옷에 스치며 나는 소리.

그 소리의 근원인 검봉 유지은의 기세가 그렇게 만들었다.

굳이 덩치를 부풀리듯 기세를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호랑이나 사자가 그러하듯, 그저 자연스러운 기세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는 강자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 강자의 자태는, 도진마저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날카롭지만 유려하며 시리도록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손을 뻗을 수밖에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마치 명장이 혼을 다하여 완성한 절세보검(絶世寶劍)이 인간의 형상으로 구현된다면 그러할까 싶은 자태였다.

그 절세보검을 닮은 검봉 유지은이 검을 뽑았다.

스릉-

마치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검명(劍鳴)이 강당에 퍼져 나가고 보검이 시린 빛을 뿌렸다.

유지은은 그 보검을 무심히 들더니 이내 가볍게 떨쳐냈고, 정면에 있던 허수아비가 깔끔하게 동강났다.

"……!!"

그리고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검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던 허수아비를 동강낸 것이 다름 아닌 '검풍'이었기 때문이다.

검풍(劍風).

체내의 내공을 검에 깃들여 떨쳐냄으로써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검기의 전 단계였다.

학생이 구사하기엔 너무나 높은 경지의 수법.

그렇기에 학생들은 물론이요 정도수와 석호필마저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놀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도진과 위지혁이었다.

-스승님. 저건…….

-그래, 바로 보았다.

놀랍게도 검봉 유지은은.

-저건, '우리 시대'의 무공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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